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유고 산문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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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역사일 뿐 현재와 무관하다는 인식에 대한 철저한 경계. 삶은 고뇌이지만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하는 자세. 문명을 우상화하고 자각 없는 개발에 대한 무자비한 비판. 토지를 읽은 후 이 책을 읽는다면 더 도움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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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역사의 정치 딕테 시리즈 3
조앤 스콧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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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에 대한, 역사적으로 특수한 지식으로 상대화된 젠더 개념을 통해 페미니스트들은 여성과 성차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동시에, 역사학을 비롯한 다른 분과 학문의 정치에 비판적으로 도전하는 방법을 제공해 줄 양날의 분석 도구를 벼릴 수 있다. 그래야만 페미니즘 역사학은 단지 과거의 불완전한 기록을 바로잡거나 보충하는 시도가 아니라 역사가 어떻게 젠더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장소로 기능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 P37

"젠더"와 "역사", "정치"는 내가 모두 관심을 가지는 개념이자 용어이다. "역사"는 관심을 둔 지 꽤나 오래 되었고, "정치"는 현실 정치가 너무 답답하여 욕을 하면서도 그 끈을 놓을 수 없어 억지로 붙잡고 있는 느낌이고, "젠더"는 최근 들어 공부해보고 싶어진 용어라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과연 현실에서 조화될 수 있는 개념인지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젠더 개념을 역사학을 비롯한 다른 학문 지식을 이용하여 비판적인 도구로 사용해보자 주장한다.
초반에 서문과 서론이 어렵다는 느낌이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인용한 사건이나 인물들이 생소해서 그렇지 친절한 설명에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젠더와 "정치"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도 아니고, 여성 주체의 회복과 대립하는 것도 아니다. 젠더와 정치를 넓은 의미로 정의할 경우, 공과 사의 구별은 해소될 것이고, 여성의 경험에는 그것만이 가진 개별적이고 독특한 특질이 있다는 식의 주장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거와 현재 남성과 여성으로 고착된 이분법이 과연 명확한 것인지 이의를 제기하며, 남녀 이분법에 따라 서술된 역사 그 자체의 정치적 성격을 폭로할 수 있다. - P61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인 파트가 젠더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일 것이다. 나는 젠더를 '생물학적인 성sex'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성'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여러 페이지를 할애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성별 간 차이로 인식되는 것에 의해 사회관계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네 가지 요소가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첫 번째는 상징(서구 기독교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이브 등...). 두 번째는 상징이 가진 의미에 대한 해석에 따른 규범적 개념(범위, 한계를 설정하거나 억제하는 역할. 서구 빅토리아시대의 가정 이데올로기 같은 것). 세 번째는 정치 개념과 사회제도 및 조직에 대한 고려(젠더는 친족 관계만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경제, 정치의 영향 속에서도 구축됨). 네 번째는 정체성(개인적 면만 아니라 집단에 대한 논의까지. 시기에 따라 개개인의 문화적 경험은 달라지는 것, 집단으로도 확장할 수 있음). 난해한 개념들이라 직독직해가 안 될 수는 있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젠더라는 개념을 더 폭넓게 확장하여 정리해보는 데 의의를 두었다. 이 모든 요소가 연관되어 영향을 주지만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젠더에 대한 나의 정의는 두 가지 부분과 각각의 부분집합들로 이루어진다. 그것들은 서로 연관돼 있지만 분석적으로 구별돼야 한다. 핵심은 다음 두 명제가 뗄 수 없이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명제] 젠더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성차에 기반한 사회관계들의 구성 요소다. [두 번째 명제] 젠더란 권력관계를 의미화하는 주된 방식이다. (...) 성별 간 차이로 인식되는 것들에 입각해 사회관계들을 구성하는 젠더는 네 개의 상호 연관된 요소들을 포함한다. 첫 번째는 복합적인(흔히 모순적인) 재현들을 떠올리게 하는 문화적으로 유효한 상징들이다. (...) 두 번째는, 규범적 개념들이다. 이는 상징들이 가진 의미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는, 다시 말해 그 은유적 가능성들에 한계를 설정하거나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새로운 역사 연구의 핵심은 불변성과 영속성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억압의 본질을 밝혀내는 데 정치 개념과 사회제도 및 조직에 대한 고려를 포함해야만 한다. 그것이 젠더 관계의 세 번째 측면이다. (...) 젠더의 네 번째 측면은 주관적 정체성이다. (...) 역사 연구가 제기해야 하는 질문은 이 네 가지 측면들 사이의 관계가 어떤 것이냐 하는 점이다. - P88~92

역사학에서 여성은 오랜동안 주변화되어 있었고 배제되어 있었다. 2부와 3부에서는 젠더와 계급의 연관성과 역사 속에서 젠더가 어떤 모습으로 묘사되었는지 확인하고 향후 여성의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 써야 효과적인지 확인해볼 수 있다.

계급 개념의 구축에 여성적인 것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검토하지 않은 채 노동계급 여성에 대해 쓴다는 게 가능할까? 여성들의 문화가 여성들을 어떻게 재현하고, 여성들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묻지 않은 채, 여성에 대한 글쓰기가 가능한가? 이런 문화적 재현과 자기 정의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그 연관성을 읽어낼 수 있을까? 계급의 의미-그 용어나 정치적 기획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상징적 조직화나 언어적 재현의 역사-를 질문하지 않고서 계급에 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 P168
여성 노동자의 주변화는 역사적으로 생산된 효과이며 그 자체가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여성 노동자가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주변적 존재였다고 여기는 역사가들은 19세기의 담론적 조건을 무비판적으로 영속화하면서 그 작동을 분석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 P286

1부와 더불어 인상적이었던 파트는 4부 내용이었다. '평등과 차이'라는 제목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는데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 안에서도 평등에 주목하는 입장이 있는 반면 차이에 주목하는 입장이 있다. 우리 나라도 차별금지법 문제로 시끄러운 것처럼 개인의 권리가 중요하냐 집단 정체성이 더 중요하냐라는 논쟁은 극단성을 띠게 마련이다. 집단을 선택할 것이냐 개인을 선택할 것이냐는 문제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얼마 전 어느 영화에서 우리가 익숙했던 백인 여성 캐릭터를 쓰지 않고 흑인 여성 캐릭터를 써서 논란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이렇게 따지면 특정 범주로 사람을 묶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는 비단 인종 뿐 아니라 계급, 젠더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최근 미국에서는 백인 남성이 중요 집단으로 다시 가시화되면서 인종 차별이 발생하고 있고 한국도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역차별을 운운하며 백래시가 가시화되고 있다.

페미니즘의 역사와 정치 전략은 차이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면서도 차이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분법적 차이를 다분법적 차이들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 대신 비판적 페미니즘 관점은 항상 두 가지 행동을 포함해야 한다. 첫째는, 범주를 통해 설정된 차이들의 작동에 대한 체계적 비판, 그것이 만들어 내는 배제와 포함의 유형들-그 위계-의 폭로, 그리고 그 궁극적인 "진실성"에 대한 거부이다. 그렇지만 이런 거부가 동일성 혹은 유사성을 내포하는 평등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것이 두 번째 움직임인데) 차이들에 근거한 평등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여기서 차이들이라는 것은 모든 고정된 이분법적인 대립항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하고, 방해하고,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을 말한다. - P306

저자는 개인과 집단, 평등과 차이는 필연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는 상호 의존적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차별은 차별에 대한 항의로 정치화하고, 개인의 정체성은 집합적 정체성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에 맞서면서 명확해진다고.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오늘날 최고의 정치적 해결책은 (집단이든, 개인이든, 평등이든 차이든) 최종적이고 총체적인 해결책을 주장하는 것의 위험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내가 설명해 온 역설들이야말로 물질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다. 바로 그 물질적인 것을 통해 정치가 구성되고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 P371

<행복의 약속>도 잘 읽었었는데 후마니타스 딕테 시리즈 중 한 권인 이 책도 역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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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유목제국사 - 기원전 209~216 유목제국사
정재훈 지음 / 사계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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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는 기원전 3세기 중반 등장하여 중국과 겨룰 만큼 강력한 유목제국으로 오랜 시간 존속했다는 인상을 남겼고, 유목제국의 '원상原象'으로서 이후 초원 유목민을 대표하는 통칭이 되었다. 이는 중국과 같은 하나의 '역사 단위'로서 초원의 유목 세계, 즉 북아시아사의 '시작점'에 흉노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흉노 유목제국사의 전개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고대 유목제국'의 성격에 새롭게 접근해볼 수 있다. 흉노는 이후 유목 세계의 중요 전통이자 영광스러운 '유산'의 하나가 되었다. - P379

이 책은 저자가 쓴 고대 유목제국에 대한 연구서 중 앞선  ⌜위구르 유목제국사 744~840⌟, ⌜돌궐 유목제국사 552~745⌟에 이어 세 번째로 출간된 책이다. 지난 달 ⌜돌궐 유목제국사 552~745⌟를 읽고 나서 이 책이 마침 출간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렇게 연이어 읽게 되었다. 저자는 2010년부터 흉노 연구사업(부경대)에 참여하여 몽골과 러시아 바이칼 남부, 중국 신장의 관련 유적을 답사하면서 한문 기록과 발굴 성과를 연결하는 작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흉노의 존속 기간은 400년 정도로 존속 기간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은 2천년도 더 된 일이라 그 기록이 아주 적다. 게다가 흉노 스스로 남긴 기록이 없기 때문에 중국 측의 한문 기록만 남아 있다. 그마저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범엽의 ⌜후한서⌟와 진수의 ⌜삼국지⌟ 같은 정사의 열전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주요 내용도 전쟁과 화친 등 외교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흉노만의 독특한 습속이나 유목국가 자체에 관한 내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게다가 중화주의적 입장에 근거한 중국 측 기록을 온전히 믿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특히 반고는 흉노를 '오랑캐'라고 하면서 강한 반감을 드러냈고 이는 이후 역사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부정적 편견이 자리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물론 사마천은 ⌜사기⌟에서 최대한 객관적 태도로 정보를 가공해 흉노의 역사를 기록하였고, 유목 습속과 국가 체제에 관한 내용을 유일하게 남겼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작업을 일구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문사료를 기초로 연대별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고고학적 발굴 성과 자료에 의한 연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다만 이 자료는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어,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정도의 시기만 보여줄 뿐 흉노 전사를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공간적 범위와 문화적 복합성에 따라 발굴 자료와 문헌 기록이 불일치하는 것을 해소하기 위해 흉노의 역사는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흉노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서는 앞서 다양한 연구가 있었다. 이 가운데서 기존에 '제국'의 개념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져 왔다. 이 책은 그 연장선상에서 '유목제국' 흉노의 사적 전개 과정을 정리하고, 그 성격을 재검토하였다. 앞선 흉노 역사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건국 이전부터 소멸 시기까지 다섯 파트로 나누어 설명한다.

흉노는 그의 선조가 하후씨의 먼 자손으로 순유라고 한다. 당[요]과 우[순] 이전부터 산융, 험윤, 훈육이 있었는데 북쪽 족속[의 땅]에 살았다. [흉노는] 길들인 짐승을 풀어 먹이며 따라다니는데 [계절에 따라 일정한 곳을] 맴돌며 옮겨 다닌다. 길들인 짐승의 많은 수는 말, 소, 양이고, 쉽게 보기 어려운 길들인 짐승은 낙타, 나귀, 노새, 버새, 뛰어난 말, 무늬가 있는 말이다.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니며 살아 성곽, 붙박여 사는 곳, 농사를 짓는 땅에서 먹고 사는 것이 없지만 각자 나누어 가진 땅이 있다. - P70
이는 사마천이 그린 흉노의 모습을 저자가 재해석하여 복원한 모습이다. 사마천은 흉노의 선조와 기원이 되는 사람들이 북쪽 족속에 살았다고 표현했고 뒷부분에는 유목에 대한 정의, 가축 종류, 생활 모습 등을 기술하면서 흉노를 한과는 완전히 다르며 중국에 대응할 만큼 독자적인 존재였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기술하였다. 흉노가 단순히 유목 민족으로 떠돌며 수렵으로 생활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융'과 '호'에 대한 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융'은 목축을 주업으로 하면서 농사도 병행하는 사람들이었다. 환경이 열악해지면 살림살이를 이동하며 옮겨 다녔음을 알 수 있다. '호'는 사육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마궁술에 특화된 사람들로 초원에서 계절에 따라 순환 이동을 하며 가축을 사육하는 목축을 했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죽고 진한 교체의 혼란이 본격화되자 흉노는 세력을 확장하면서 묵특 시기에 중국을 상대할 정도의 거대한 유목제국으로 발전하며 209년 국가를 건설한다. 흉노는 이 때 초원의 유목 세력만이 아니라 장성 주변에 흩어진 융까지 확보했다. 그 뿐 아니라 진한 교체기 중국의 혼란이 확대되면서 이탈한 중원 출신의 주민도 다수 포섭하였다. 선우는 '크다'를 뜻하는 군장 칭호로 묵특 이후 호와 융 모두를 통합한 유목국가를 다스리는 '하늘의 아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체제 안정을 위해 만기장 24인을 두어 국가를 운영했다. 선우 이하 24명의 만기장은 세습 관료로 선우를 배출하는 연제씨 출신이거나 이와 연합한 특정 씨족 출신이었다. 묵특 시기 흉노의 영역은 동으로는 요동, 남으로는 텐산 부근의 오아시스와 그 주변 초원에 이르는 범위에 걸칠 정도로 넓게 퍼져 있었다. 묵특 사후에는 한과의 사이에서 어느 일방도 우위를 확보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무제가 들어선 후에는 양국 간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흉노는 한과의 전쟁으로 막북 초원으로 밀려난데다 전쟁 대응으로 내부 체제를 안정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개별 세력의 성장을 용인한 결과 대선우 즉위 과정이 합의가 아닌 정변을 통해 이루어지며 내부 결속력이 약해졌다. 내부 세력의 갈등은 흉노 체제의 약점과 대선우 권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많은 사람들이 한에 투항하였다. 이로써 흉노는 오아시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한 이외 주변 세력에도 도전을 받으며 세력이 약화되었다. 반면 한은 흉노의 막북 고립과 무력 정벌을 이끌어냈다.
기원전 57년을 전후로 흉노에서는 대선우 계승을 둘러싼 지배 집단 내부의 갈등이 폭발하며 5명의 대선우가 쟁립하는 내전이 벌어진다. 혼란 속에서 대선우가 된 호한야는 일시적으로 상황을 수습하는 듯 했으나, 형 질지골도후에게 쫒겨난다. 그는 고비 이남으로 내려와 한에 도움을 요청했다. 남하한 호한야는 한의 도움을 받으며 세력을 회복한 반면 질지골도후는 막북에서 세력을 유지하려다 끝내 실패했다. 흉노는 호한야 사후 대선우 자리를 연장자 우선 원칙에 따라 형제들이 상속하기로 한다. 흉노는 계속 한과 평화 관계를 유지하면서 물자 지원을 받으며 한에 강하게 의존하게 된다.

48년 흉노는 사촌 간 계승 분쟁으로 남북 분열이 되며 후한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포섭되었다. 이후 계승 방식에 불만을 품은 일부 세력이 한의 도움으로 흉노를 형성한다. 이후 북흉노와 남흉노의 분열이 고착화되었다. 한은 기미를 받아들이고 신하가 되겠다고 한 남흉노를 군사적으로 활용해 북흉노와 선비, 오환에도 대응하면서 자신들을 유리하게 이끈다. 막북 초원에서 흉노의 권위가 완전히 소멸하자 선비가 흉노를 따르던 유목민을 통합하여 신세력으로 등장했다. 후한 말 대선우를 비롯한 지배 집단의 일부는 남흉노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중국 내지로 들어온다. 이 중 일부는 조조의 견제를 받아 축소되다 소멸하고 다른 일부는 흩어져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다. 흉노는 216년 이렇게 완전히 소멸하고 해체되었다.

흉노의 활동과 영향 범위는 몽골 초원 뿐 아니라 오아시스, 중국 북변에 걸쳐 있었다. 이 공간을 하나로 묶어낸 흉노는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 영향을 남겼다. 6세기 돌궐, 13세기 몽골 유목제국도 자신의 뿌리를 설명하는 기제로 흉노를 끌어왔고 오호십육국 시대 흉노의 계승 국가를 자처한 '후계'가 계속 등장하는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흉노는 서진 말 군사적 수요가 커진 상황에서 서진 정권이 내분으로 붕괴하자 부활할 기회를 얻는다. 유연은 세력을 키웠고, 304년 새로운 국가를 세웠고 "홍방복업"이라는 명분을 내걸며 흉노의 나라를 '재건'한다 선언한다. 유연의 지향성은 새로운 통합제국 한漢의 건설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중국 내지에서 초원과 중국의 전통을 하나로 엮으려는 흉노 후예의 이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 움직임은 이후 300여 년간 전개된 분열의 시작, 이른바 오호십육국의 '전주국'으로 이해되었다. 흉노의 이런 움직임은 이후 오랫동안 전개된 북중국 혼란의 책임을 뒤집어쓰면서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북중국을 무대로 전개된 분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호와 한의 '대결'과 '융합'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이분법적 설명'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장성 안쪽으로 한정된 중국의 범위와는 다른, 초원과 북중국이 하나로 연결된 새로운 판도에서 비한非漢 세력들이 서로 얽혀 '다원적' 성격을 보여주었다는 부분에 초점을 두고 역사의 전개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면모는 남흉노의 후예인 유연과 그 뒤를 잇고자 했던 다른 집단들이 보여준 '복합적' 성격의 국가 건설 움직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런 점에 주목해 흉노를 비롯한 유목민에 대한 편견을 넘어 오호십육국시대 이후 오랜 분열기에 명멸했던 국가들의 사적 전개과정과 성격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 P396~397



최근 몇 개월동안 ⌜사기⌟와 ⌜통감절요⌟를 비롯하여 고대 중국사를 공부했다. 덕분에 흉노의 역사는 돌궐의 역사보다는 아는 이름과 사건이 많았다. 이름과 사건만 알고 있어도 그 이면의 접근은 더 수월해진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는 데 배경이 되었던 이릉, 한의 서역 원정의 시초가 된 장건(장건의 원정이 당시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한이 서역의 오아시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일), 흉노와 한의 결혼 관계 설정으로 흉노에 시집을 가야 했던 왕소군 등이 있었다.

이 책은 한문 텍스트 기록 뿐 아니라 흉노의 역사 전개 과정에 따른 지도, 선우 승계 과정의 표 등을 실어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유물이나 유적 자료 사진을 실어 문화적인 이해도 가능하게 하였다. 흉노 관련 역사서를 읽을 때 레퍼런스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반가웠던 소식은 고대 유목제국사 3부작 중 절판된 ⌜위구르 유목제국사⌟ 가 내년 재출간을 목표로 작업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책이었기에 너무 안타까웠는데 다시 출간된다니 무척 기대가 된다. 3부작을 읽음으로써 기원전 3세기부터 9세기까지 유목제국사 읽기를 한 흐름으로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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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 백 년 전 「데파-트」 각 층별 물품 내력과 근대의 풍경
최지혜 지음 / 혜화1117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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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근대 백화점 상품들의 기원 탐방기다. 


근대 문물(상품)에 대한 기원을 알 수 있는 책은 그동안 역사, 에세이 등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내가 원했던 것은 이 책에 특화된 부분이었고 그런 면에서 프롤로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프롤로그는 1933년 9월 대구 청년 사업가였던 이근무가 경성 백화점을 순례하는 기행문을 적어 놓았다.

그는 1920~30년대 대구에서 이미 서적과 양품을 취급하는 상점인 무영당을 운영했던 사업가였는데 경성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백화점을 보면서 대구에서도 백화점 운영해보면 어떨까를 꿈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꿈은 실제로 현실이 된다. 이근무는 1937년 대구에 무영당 백화점을 열었고, 대구 3대 백화점이 될 만큼 성업했는데 중요한 것은 그 건물이 아직도 현존한다고 한다(이 부분이 놀라웠음!). 

그런 의미에서 그가 경성 백화점을 순례한 것은 자신의 사업을 위한 사전 탐방의 성격이 컸을 것이다. 지금의 청년 사업가가 꿈을 계획하고 실현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대구 본점(오늘날 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8)에 지은 무영당 백화점 5층 건물은 1936년 11월 말 준공되었다. 당시 대구 안에서 최대 경쟁사였던 미나카이 백화점 외관과 비슷하게 지었고 그는 드디어 "고추씨 서 말을 들고 대구로 내려와 거상이 된" 것이었다. 

무영당 백화점은 원래 취급하던 서적과 잡지, 문방구부, 운동구부, 액연회구부(액자와 그림도구), 양품잡화부, 악기부에 더해 12월부터는 여행구부, 양가구부, 식료품부, 완구부, 도자기, 식기부, 사진부, 식당 등을 새로 열었다. 그밖에 휴게장, 전망대 등 설비를 완비하여 이듬해 1937년 9월 15일 본격적인 백화점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조선에는 경성 뿐 아니라 지방에 많은 백화점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백화점은 서울 뿐 아니라 지방도 신세계, 롯데 등 브랜드 백화점이 대부분이라 아쉬운데 당시에는 독자적인 백화점들이 많았다. 개성의 김재현 백화점, 충북 괴산의 아모 백화점, 함흥 동양 백화점, 군산 풍천 백화점, 원산 기린야 백화점 등이다. 


이 무렵 백화점을 찾은 고객들은 안락한 환경 속에서 산책하듯 백화점 곳곳을 천천히 둘러보고 점원의 친절한 응대를 받으며 온갖 신문물을 마음껏 접해볼 수 있었다. 백화점에 머무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바깥 현실을 잊고 최상류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다. 물건값을 흥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각종 먹을거리,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 백화점은 물 건너온 박래품과 유행하는 온갖 물품, 말 그대로 '백화'가 넘쳐나는 스펙터클한 공간이었다.

현대인들도 백화점에 대한 로망이 있다. 

백화점의 문턱은 지금도 꽤나 높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갖춰 입고 가야 할 것 같은 진입 장벽이 있고, 어느 매장에 들어갔을 때는 구매를 하지 않고 둘러보는 것만으로 뭔가 부담스러운 분위기 같은 것이 있다.

대부분의 백화점 1층은 화장품 코너인데 들어가자마자 확 풍기는 향내가 후각을 자극한다. 부끄럽지만 백화점에서 차마 비싼 가방, 옷을 지르지 못하고 평소 잘 사용하지도 않는 고급 향수와 립스틱을 샀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히 떠오른다. 

사실 먹는 것에 진심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백화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코너는 식품 매장에서 빵 코너다. 자칭 빵순이기 때문에 빵 냄새가 그렇게 지나치기 어려운 것이다. 다들 특정 코너 앞을 서성거린 경험이 있으실 거라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과거 강릉에 있는 에디슨 박물관 가서 보았던 카메라, 축음기 등 근대 물품들을 보았던 기억이 스쳤고 잠시나마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이런 근대 박물관 구경하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다. 여전히 지금도 쓰여지는 물건도 있고 사장된 물건도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근대에 나온 상품을 보는 것만으로 과거로 떠나 여행을 하고 거기에 그 시절 물건에 추억이 있다면 향수를 떠올릴 수 있는 마법이 있다. 또 당시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즐거움도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이 시절 백화점에 어떤 물건들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을지 엿볼 수 있다. 

1층 식품부·생활 잡화부, 2층 화장품부·양품잡화부, 3층 양복부, 4층 귀금속부·완구부·주방용품부·문방구부, 5층 가구부·전기 기구부·사진부·악기부 이렇게 층별로 상품이 배열되어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물건을 소개하는 방식을 백화점 코너를 둘러보는 느낌을 주듯 전달했다면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이 중 나는 식품부와 생활잡화부, 문방구부가 참새를 방앗간 못 지나간다고 관심 있는 코너라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다. 


소개된 상품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 중 3가지만 꼽아 본다. 


1. 캐러멜

당시 수입 과자로 유명한 회사는 삼영, 즉 모리나가였다. 모리나가는 미국에서 서양 과자 제조법을 배운 모리나가 다이치로가 1899년 세운 회사로 주요 상품은 밀크 캐러멜, 밀크 초콜릿, 웨하스, 비스킷 등이었다. 모리나가 캐러멜을 일약 히트 상품으로 이끈건 1914년 출시한 휴대용 포켓 사이즈 캐러멜 포장 덕분이었다(우리가 기억하는 그 제품 맞다).

캐러멜은 이후 여러 회사에서 만들었는데 오사카 하면 떠오르는 글리코에서도 캐러멜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했다(이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창업자 에자키 리이치가 굴을 끓여 추출한 글리코 겐으로 1922년에 만든 것으로, 빨간 캐러멜 상자에 넣은 '문화적 자양 과자', '한 알에 300미터'라는 카피로 유명하다(P79~80). 




2. 축음기

1920년대 미국 축음기 생산 회사가 260개가 넘을 정도로 다양한 축음기들이 쏙아져나왔다.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많은 것들이 수입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축음기인 빅터, 콜럼비아를 비롯하여 일축에서 만든 '이글 B호'를 포함하여 니폰노혼 17호, 22호, 25호, 32호, 35호, 50호 등 다양한 모델들이 판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빅터 사는 밖으로 노출된 나팔 관리가 까다롭다는 주부들의 불만을 받아들여 1906년부터 캐비닛 가구나 상자 속에 내장한 모델 빅트롤라를 출시, 이후 '그랜드형' 축음기라고 불리며 각광을 받았다. 

빅터나 콜럼비아 회사는 지금도 그 이름을 들으면 '아!'할 정도로 유명하다. 축음기 하면 나팔관부터 떠오르는데 모형을 보기도 했지만 관리는 무척 까다로웠을 것 같다. 나는 평소 고전 음악을 듣는 편이라 오디오 등 관련 장비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앱이 워낙 편해서 평상시에는 앱으로 많이 듣지만 가끔은 아날로그적으로 CD나 LP로 듣는 맛이 분명히 있다. 




3. 만년필. 

만년필은 현재도 외제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은 품목이다. 그런데 외제 만년필의 홍수 속에서 동원상회에서 제작, 발매한 국산 반도 만년필도 있었다. 홍보는 주로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식이었는데, 만년필 대 한가운데에 한반도 지도를 중심으로 '바 ㄴㄷ ㅗ'라고 한글을 새겨 넣었다. 또한 광고 지면에 "외국제를 방지할 반도 만년필의 일대 성명"이라는 타이틀 아래 구구절절 외쳤다(P465). 1924년 무렵 조선에 만년필 소매점은 700~800개였고 만년필 행상도 1천 명이 넘었다(놀랍지 않나). 1924년은 조선물산장려운동이 한창이었던 만큼 반도 만년필의 당시 광고로 국산품 소비 장려의 일환을 엿볼 수 있다(P468). 

만년필은 미쓰코시나 조지야 3층, 화신 2층에서 판매했다. 히라타 백화점은 이미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만년필을 전면에 내세워 종류와 선택법, 그리고 관리법에 대해 신문 광고를 통해 상세히 안내했다(P469). 



이 책은 무엇보다 사진 자료가 풍부하게 실려 있어서 구경하는 맛이 있다. 여름 여행기 책으로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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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8-08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러멜 상자 보니까 완전 익숙하네요 ㅋ 아직도 저 색상으로 있는거 같은데 ㅎㅎ

요즘 백화점은 너무 비사서 못가겠습니다 ㅋ

거리의화가 2023-08-09 09:10   좋아요 1 | URL
어릴 적 저 카라멜 먹으려면 좀 비쌌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좀 비싸지 않나요?ㅎㅎ 아무튼 저 상자에 담겨져 나오는 형태도 한결 같고 맛도 한결 같은데 여전히 나오고 사랑 받는 걸 보면 그만큼 먹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겠죠?ㅋㅋ

백화점 저도 잘 가는 편은 아니에요. 올 초였나 집 근처에 백화점이 생겨서 구경할 겸 한 번 가보기는 했습니다. 그 이후론 안 가네요.

독서괭 2023-08-08 19: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책 다방면으로 읽으시는 화가님👍
저녁시간이라 배고픈데 캐러멜 보니 군침이 꼴딱 넘어가네요..

거리의화가 2023-08-09 09:12   좋아요 1 | URL
역사책도 다양하게 보면 더 즐거운 법이죠^^ 한참 무더위에 읽었는데 두꺼워도 술술 읽혀서 금방 읽었습니다.
가다가 캐러멜 사셔서 드셨나요?ㅎㅎㅎ

건수하 2023-08-08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샀는데 제 책이 아닌 책입니다. 화가님 읽으셨군요 ^^

거리의화가 2023-08-09 09:13   좋아요 1 | URL
수하님 이 책 사셨었군요^^ 네. 나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놓았었습니다. 술술 읽혀서 금방 읽었어요!ㅎㅎ

희선 2023-08-09 0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신문 헤드라인(반도 만년필)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하는군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다가 이상한 말이네 했습니다 예전에는 백화점이 많았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8-09 09:15   좋아요 1 | URL
예전 신문은 오른쪽에서 왼쪽 배열이었을 겁니다! 신문들이 한문&일본어가 많아서 읽기 힘들더군요. 표어 같은 것은 쉬운 한자를 쓰는데 내용에 섞여 있는 경우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도 백화점이 많았다는 게 신기했어요. 사람 마음은 비슷한가 봅니다.

책읽는나무 2023-08-09 0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대구에 다녀왔을 때 중구 쪽이었던가? 암튼 근대화 거리 비슷한 곳이 있었어요. 거리를 걸으며 옛 성당이랑 병원 건물을 구경한 적 있었는데(성당에선 그 때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어 들어가보진 못했었네요. 그때 드라마가 꽤 유명했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요.ㅋㅋ) 무영당 백화점도 혹시 그 근처에 있었던 걸까? 생각만 해봅니다^^;;
그 시절 다른 지역에도 백화점이 많았었군요? 좀 놀랐습니다.
하긴...제가 어렸을 때 백화점이란 쇼핑 공간이라면 부산 도시를 나갔었어야 했는데 백화점 이름이 지금의 체인점? 백화점이 아닌 자체 백화점 이름이 여러 곳이었던 것 같아요. IMF가 직격탄이었고, 롯데 백화점이 들어선 후 모두 사라졌습니다.
만년필도 국산이 있었다는 것도 새롭네요.
바ㄴ도ㅗ....^^

거리의화가 2023-08-09 09:18   좋아요 1 | URL
대구도 근대화 도시죠^^ 무영당 건물은 중구에 있다니까 나무님이 보신 게 맞을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건물 자체 외관은 소박한 편인 듯 합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스쳐 지나갈 수도 있겠어요. 그냥 사무실 같은 외관이라!ㅎㅎㅎ
백화점이 엄청 많았더군요. 경성은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지방에도 많아서 놀랐어요. 인용한 백화점 말고도 많아서 몇 개만 올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IMF가 지방 백화점 위기의 직격탄이었겠네요ㅠㅠ 이제는 브랜드 백화점 지점 말고는 거의 보기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국산 만년필 신기하죠!ㅎㅎㅎ 저렇게 글자를 늘여서 쓰는 것도 마케팅인가 싶었어요.

자목련 2023-08-09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안겨주는 책이네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주제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기억해두었다가 알려줘야겠네요. 이미 알고 있을지도^^

거리의화가 2023-08-09 11: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목련님.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딱 들어맞는 표현입니다^^
이런 주제를 좋아하신다니 아마도 평상시에 관련 책을 보거나 박물관 등에 자주 가보실 것 같네요^^ 그분께서 이 책을 읽어보신다면 흥미로워하실거예요!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아우또노미아총서 81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신지영 외 옮김 / 갈무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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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에 여성으로 살면서 '마녀'라는 말과 '마녀사냥'이라는 표현에 익숙하다는 사실은 씁쓸함을 낳게 한다. 


그렇다면 마녀의 기원은 언제부터였는지 우리는 궁금해진다. 예전에 <여성괴물>을 읽을 때였나 아니면 어떤 다른 책일 수도 있겠지만 그 기원은 꽤나 오래되었다. 16세~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종교와 가부장적 사회의 결합이 원인이었다고 기억된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마녀의 기원, 역사를 설명하고 오늘날을 진단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반성했다. 


'마녀'에 대한 박해가 가부장 권력의 표현의 일환으로 행해진 점은 원래도 이해하고 있었으나 이것을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와 연결시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에서 여성은 소외적인 존재였다(이는 여성 뿐 아니라 장애인, 동성애자를 비롯한 소수자들로 확대 적용할 수 있다). 

그런 여성을 평가 절하하는 방식의 기제로 자본주의가 작용했고 무엇보다 마녀사냥이 식민주의 국가의 경로를 따라 확대되었다고 논지를 전개한 것에서 저자의 탁월함을 느꼈다.

과거에 식민주의를 경험했던 국가였던 제3세계 여성들은 기존의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는 것 뿐 아니라 식민주의, 현재의 자본주의와도 갈등이 맞물리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1부에서는 자본주의와 유럽의 마녀사냥의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2부에서는 오늘날의 마녀사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은 페데리치의 핵심 주장이 담긴 <캘리번과 마녀>을 읽기 전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는 책이어서 '좀 궁금한데?'하면 정리한다는 느낌이라 아쉬웠다. 그러니까 맛보기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더 깊은 내용은 <캘리번과 마녀>를 읽으시길. 

대부분의 마녀사냥 역사가는 가장 정치적 직관이 탁월한 학자들인 경우조차도 사회학적 분석에 머무르면서 ‘마녀들은 누구였는가? 기소된 죄목은 무엇이었는가? 어디에서 어떤 처벌을 받았는가?‘ 같은 질문들을 고찰했다. 또는 의료 전문직의 탄생, 기계론적 세계관의 발전, 가부장적 국가 구조의 도래 같은 주제들에 국한된 마녀사냥 분석을 전개했다. 그러나 노예무역과 ‘신세계‘ 토착민의 박멸과 마찬가지로 마녀사냥이, 근대 자본주의 세계가 부상하는 길을 열어젖힌 다양한 사회적 과정의 교차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은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다. - P35

인클로저 개념은 토지 매·독점, 소작료 폭증, 새로운 과세 명목 등을 아우른다. 인클로저가 어떤 형태를 취하든 폭력적 과정이었음은 분명하다. 호혜적 유대가 특징이었던 공동체들은 극심한 양극화를 겪게 되었다. 토지 귀족뿐만 아니라 부유한 농민도 담장 두르기를 했고, 적개심이 커졌다. 서로가 가까이 살았고 보복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 P42

여성에 대한 폭력, 특히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과 및 아메리카 선주민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는 이유는 자본이 이 세계의 자연자원과 인간노동에 대한 압도적인 통제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재식민화 과정이 ‘지구화‘이며, 지구화는 자기 공동체의 재생산을 직접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여성들을 공격하지 않고는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천연자원이 풍부하여 상업모험기업의 거점이 되고 있고 반식민주의 투쟁이 가장 강력하게 벌어져 온 지역들(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등)에서 더욱 극심해졌다.여성에 대한 야만적 행위는 ‘신 인클로저‘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 - P97

어떤 페미니스트는 소유권을 부여하는 것이 여성들의 안전을 더욱 보장하거나, 아프리카의 농촌에서 종종 마녀사냥이나 여러 형태의 무력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어 온 토지 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환상이다. 그 이유는 세계은행과 미국국제개발청이나 영국 정부 같은 다른 개발업자들이 추진하는 토지법 개정은 외국 투자자들에게만 이익을 주고 농촌에는 더 많은 부채, 더 많은 토지 양도, 그리고 빼앗긴자들끼리의 더 많은 분쟁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 P156

를 대신해서 필요한 것은 토지와 다른 공동의 자원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는 새로운 공동체주의의 형태들이다. 여성이 자식이 없더라도, 자신이 낳은 아이가 아들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어서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더라도, 또는 남편이 죽고 보호해줄 남자 후손이 없더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공동체주의의 형태들이 필요한것이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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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07 10: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오 완독 축하합니다, 거리의 화가 님. 후딱 다 읽고 리뷰까지 쓰셨네요. 저는 오늘 아침 시작했습니다. 부지런히 얼른 읽도록 할게요!!
저는 실비아 페데리치를 비롯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단체를 만들고 활동하고 연대하고 운동했던 기록에 대해 보노라니, 와 정말 다들 대단하다 새삼 감탄했어요.

거리의화가 2023-08-07 10:57   좋아요 2 | URL
네. 얇아서 금방 읽을 수는 있는데 안의 내용은 사실 굉장히 많은 것을 담고 있더군요. 캘리번과 마녀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미 2023-08-07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캘리번의 마녀>도 역시 후딱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에서는 독서 자극이 엄청나서 (화가님은 두꺼운 책까지!)
매일매일 읽고 싶은 책들이 늘어나는데다 각각의 책들이 또 스스로 가지를 뻗어나가니 쉴틈이 없습니다. ㅎㅎㅎ

2023-08-07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수하 2023-08-07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이렇게 금방 읽고 후기까지 쓰셨으니 <캘리번과 마녀>도 잘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긴 좀더 촘촘한 근거가 들어가 있답니다.

거리의화가 2023-08-07 13:07   좋아요 1 | URL
촘촘한 근거가 궁금하여 <캘리번과 마녀> 읽어보려구요^^ 이번 달 책을 읽었으니 짬이 생겨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 지나면 또 안 읽게 되니 이번엔 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