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와 역사의 정치 딕테 시리즈 3
조앤 스콧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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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에 대한, 역사적으로 특수한 지식으로 상대화된 젠더 개념을 통해 페미니스트들은 여성과 성차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동시에, 역사학을 비롯한 다른 분과 학문의 정치에 비판적으로 도전하는 방법을 제공해 줄 양날의 분석 도구를 벼릴 수 있다. 그래야만 페미니즘 역사학은 단지 과거의 불완전한 기록을 바로잡거나 보충하는 시도가 아니라 역사가 어떻게 젠더에 관한 지식을 생산하는 장소로 기능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 P37

"젠더"와 "역사", "정치"는 내가 모두 관심을 가지는 개념이자 용어이다. "역사"는 관심을 둔 지 꽤나 오래 되었고, "정치"는 현실 정치가 너무 답답하여 욕을 하면서도 그 끈을 놓을 수 없어 억지로 붙잡고 있는 느낌이고, "젠더"는 최근 들어 공부해보고 싶어진 용어라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과연 현실에서 조화될 수 있는 개념인지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젠더 개념을 역사학을 비롯한 다른 학문 지식을 이용하여 비판적인 도구로 사용해보자 주장한다.
초반에 서문과 서론이 어렵다는 느낌이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인용한 사건이나 인물들이 생소해서 그렇지 친절한 설명에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젠더와 "정치"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도 아니고, 여성 주체의 회복과 대립하는 것도 아니다. 젠더와 정치를 넓은 의미로 정의할 경우, 공과 사의 구별은 해소될 것이고, 여성의 경험에는 그것만이 가진 개별적이고 독특한 특질이 있다는 식의 주장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거와 현재 남성과 여성으로 고착된 이분법이 과연 명확한 것인지 이의를 제기하며, 남녀 이분법에 따라 서술된 역사 그 자체의 정치적 성격을 폭로할 수 있다. - P61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인 파트가 젠더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일 것이다. 나는 젠더를 '생물학적인 성sex'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성'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여러 페이지를 할애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성별 간 차이로 인식되는 것에 의해 사회관계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네 가지 요소가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첫 번째는 상징(서구 기독교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이브 등...). 두 번째는 상징이 가진 의미에 대한 해석에 따른 규범적 개념(범위, 한계를 설정하거나 억제하는 역할. 서구 빅토리아시대의 가정 이데올로기 같은 것). 세 번째는 정치 개념과 사회제도 및 조직에 대한 고려(젠더는 친족 관계만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경제, 정치의 영향 속에서도 구축됨). 네 번째는 정체성(개인적 면만 아니라 집단에 대한 논의까지. 시기에 따라 개개인의 문화적 경험은 달라지는 것, 집단으로도 확장할 수 있음). 난해한 개념들이라 직독직해가 안 될 수는 있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젠더라는 개념을 더 폭넓게 확장하여 정리해보는 데 의의를 두었다. 이 모든 요소가 연관되어 영향을 주지만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젠더에 대한 나의 정의는 두 가지 부분과 각각의 부분집합들로 이루어진다. 그것들은 서로 연관돼 있지만 분석적으로 구별돼야 한다. 핵심은 다음 두 명제가 뗄 수 없이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명제] 젠더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성차에 기반한 사회관계들의 구성 요소다. [두 번째 명제] 젠더란 권력관계를 의미화하는 주된 방식이다. (...) 성별 간 차이로 인식되는 것들에 입각해 사회관계들을 구성하는 젠더는 네 개의 상호 연관된 요소들을 포함한다. 첫 번째는 복합적인(흔히 모순적인) 재현들을 떠올리게 하는 문화적으로 유효한 상징들이다. (...) 두 번째는, 규범적 개념들이다. 이는 상징들이 가진 의미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는, 다시 말해 그 은유적 가능성들에 한계를 설정하거나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새로운 역사 연구의 핵심은 불변성과 영속성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억압의 본질을 밝혀내는 데 정치 개념과 사회제도 및 조직에 대한 고려를 포함해야만 한다. 그것이 젠더 관계의 세 번째 측면이다. (...) 젠더의 네 번째 측면은 주관적 정체성이다. (...) 역사 연구가 제기해야 하는 질문은 이 네 가지 측면들 사이의 관계가 어떤 것이냐 하는 점이다. - P88~92

역사학에서 여성은 오랜동안 주변화되어 있었고 배제되어 있었다. 2부와 3부에서는 젠더와 계급의 연관성과 역사 속에서 젠더가 어떤 모습으로 묘사되었는지 확인하고 향후 여성의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 써야 효과적인지 확인해볼 수 있다.

계급 개념의 구축에 여성적인 것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검토하지 않은 채 노동계급 여성에 대해 쓴다는 게 가능할까? 여성들의 문화가 여성들을 어떻게 재현하고, 여성들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묻지 않은 채, 여성에 대한 글쓰기가 가능한가? 이런 문화적 재현과 자기 정의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그 연관성을 읽어낼 수 있을까? 계급의 의미-그 용어나 정치적 기획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상징적 조직화나 언어적 재현의 역사-를 질문하지 않고서 계급에 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 P168
여성 노동자의 주변화는 역사적으로 생산된 효과이며 그 자체가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여성 노동자가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주변적 존재였다고 여기는 역사가들은 19세기의 담론적 조건을 무비판적으로 영속화하면서 그 작동을 분석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 P286

1부와 더불어 인상적이었던 파트는 4부 내용이었다. '평등과 차이'라는 제목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는데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 안에서도 평등에 주목하는 입장이 있는 반면 차이에 주목하는 입장이 있다. 우리 나라도 차별금지법 문제로 시끄러운 것처럼 개인의 권리가 중요하냐 집단 정체성이 더 중요하냐라는 논쟁은 극단성을 띠게 마련이다. 집단을 선택할 것이냐 개인을 선택할 것이냐는 문제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얼마 전 어느 영화에서 우리가 익숙했던 백인 여성 캐릭터를 쓰지 않고 흑인 여성 캐릭터를 써서 논란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이렇게 따지면 특정 범주로 사람을 묶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는 비단 인종 뿐 아니라 계급, 젠더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최근 미국에서는 백인 남성이 중요 집단으로 다시 가시화되면서 인종 차별이 발생하고 있고 한국도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역차별을 운운하며 백래시가 가시화되고 있다.

페미니즘의 역사와 정치 전략은 차이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면서도 차이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분법적 차이를 다분법적 차이들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 대신 비판적 페미니즘 관점은 항상 두 가지 행동을 포함해야 한다. 첫째는, 범주를 통해 설정된 차이들의 작동에 대한 체계적 비판, 그것이 만들어 내는 배제와 포함의 유형들-그 위계-의 폭로, 그리고 그 궁극적인 "진실성"에 대한 거부이다. 그렇지만 이런 거부가 동일성 혹은 유사성을 내포하는 평등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것이 두 번째 움직임인데) 차이들에 근거한 평등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여기서 차이들이라는 것은 모든 고정된 이분법적인 대립항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하고, 방해하고,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을 말한다. - P306

저자는 개인과 집단, 평등과 차이는 필연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는 상호 의존적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차별은 차별에 대한 항의로 정치화하고, 개인의 정체성은 집합적 정체성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에 맞서면서 명확해진다고.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오늘날 최고의 정치적 해결책은 (집단이든, 개인이든, 평등이든 차이든) 최종적이고 총체적인 해결책을 주장하는 것의 위험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내가 설명해 온 역설들이야말로 물질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다. 바로 그 물질적인 것을 통해 정치가 구성되고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 P371

<행복의 약속>도 잘 읽었었는데 후마니타스 딕테 시리즈 중 한 권인 이 책도 역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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