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전 로그인을 하지 않고 내 방에 찾아들어갔다.
들창문으로 발돋움하고 남의 단칸 자취방을 훔쳐보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페이퍼 제목들이 참 거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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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반지하 연립을 중심으로 방을 구하러 다닐 때 어둑하고 좁은 집구석에
너도나도 대형 결혼사진을 화려한 액자에 넣어 걸어두고 있는 걸 보고 질리는 기분이었다.
열 집 중 아홉이 그랬으니......
(그런데 그건 호화아파트의 거실이나 침실에 걸린 걸 봐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에 반발씩이나 하여 보험 아줌마에게 얻은 1천 원짜리 손바닥 반만한 주석 액자에
조그만 결혼식 사진을 넣어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다.

성대 앞의 인도 가게에서 분홍과 파랑 구슬이 보석처럼 박힌 예쁘장한 액자를 하나 사서
사진을 바꿔 끼운 건 이곳에 이사 와서였다.
그래도 결혼사진인데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마음 깊숙이 있었던 것일까?

싸구려 주석 액자처럼 지나치게 멋을 부린 것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무심한 척 고른 제목들인데 멀찍이서 바라보니 단어들이 좀 우습다.
누가 보면 엄청나게 알뜰한 주부의 방인지 알겠다.

지금은 사소한 것들에 반발할 때가 아니라 감싸안고 깊숙이 뿌리를 내릴 때.
예쁘장한 액자를 하나 새로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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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2006-11-0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히 멋있는 제목들인걸요. 전 결혼하고 한 3년 지날 때까지도 결혼식 사진을 액자로 만들지 않았어요. 그러다 신창원이 잡혔을 때요, 신고한 사람이 집에 결혼 사진도 없는 게 이상해서 그랬다잖아요. 결혼 사진이 없으면 이상해 보이나 싶어서(-.-) 신혼여행 때 가이드한테 낚여서 찍힌 사진을 패널로 만들어 걸었죠. ^^

가랑비 2006-11-09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사소한 것들에 반발할 때가 아니라 감싸안고 깊숙이 뿌리를 내릴 때"라는 구절에 추천을...

Mephistopheles 2006-11-09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도.안.거.시.기.합.니.다.

기인 2006-11-09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어요~ 안 거시기 해요 ^^; ㅋ

해리포터7 2006-11-09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력적이어요.로드무비님..그 제목에 끌려 들어오는걸요..

물만두 2006-11-09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는 님들은 거시기에 반해 오는 거라구요^^

날개 2006-11-09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형결혼사진 걸려있는거 별로 안좋아해요...^^ 울집꺼는 창고속에....ㅎㅎ
애들 사진만 자꾸 걸린다는...

인터라겐 2006-11-09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방이며 거실이면 결혼 사진으로 도배한 집도 있습니다. 크크
왜냐.. 귀찮아서 그냥 두는 거예요.. 액자떼어내면 도배해야 하잖아요...

waits 2006-11-10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가끔 그거 하는데요, 빼꼼~ 온통 퍼온글 투성이더라는..;;;
로드무비님의 들창 안에는 '생활'이 가득하네요. ^^

nada 2006-11-1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생활'의 산 증인이세요, 로드무비님은..

건우와 연우 2006-11-10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단스럽게 불러세우지 않아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게 하는 힘이 있는걸요.
그래서 로드무비님이 정말 좋아요.^^

플레져 2006-11-10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모아놓았더니 로드무비의 삼거리 점방이 됐군요ㅎㅎ
오붓하니 난롯가에 앉아있는 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6-11-12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 님, 호호 삼거리 점방.
맞아요.
따뜻한 호빵이라도 하나 드실래요?^^

건우와 연우 님, 헤헤 고맙습니다.
떠들썩한 호객행위 싫어하는 건 님도 똑같으시죠?^^

꽃양배추 님, 제, 제가요?
기뻐해야 할지 서글퍼 해야 할지......
기뻐할래요.^^

평택, 나어릴때 님, 퍼온글이 어디 보통 글들입니까?
그리고 종종 소중한 일기의 한 자락을 보여주시면서.^^

인터라겐 님, 그런 면도 있겠군요.
저도 게으름 하면 결코 남에게 빠지지 않는지라.^^

날개님, 애들이 엄마아빠를 밀어내는 형국이군요.
창고로 밀려난 결혼사진 보관 잘해놓으세요.
예쁜 얼굴 흠집 안 나게.^^

물만두님, '거시기'라는 말을 더욱 자주 써야겠구만요.^^

해리포터7 님, 우와 매력씩이나요?
헤헤, 앞으로도 제목 지을 때 신경 쓸게요.^^

기인 님, 메피스토 님, 안 거시기하다고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요.^^

FTA반대벼리꼬리 님, 추천 고맙고요.
자연스러운 스냅 사진 패널 좋지요.
말씀하신 사진 보고싶어라.ㅎㅎ
그런데 집에 결혼사진 없다고 수상하게 보고 신고했다는 사람이
전 더 수상하네요.;;
(포상금 액수 엄청 났겠죠?)








가랑비 2006-11-13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게도 자연스런 스냅 사진이 아니고... 왜, 관광지 가서 가이드가 이렇게 저렇게 포즈 취해봐라 해서 그대로 했더니 몇 시간 뒤 사진 앨범이 떡하니 나오더라 하는 거 있잖아요. 바로 거기에 걸렸는데, 20만원쯤 됐을 거예요. 마음에 안 들면 안 사도 된다고 하지만, 내 사진이 앨범으로 돼 있는데 안 살 수가 없더라고요. -.- 결혼식 때 야외 촬영 같은 거 안 했으니 그거 한 셈 치자 하고 말았지요. 아무튼 그때 서비스로 액자 만들 만하게 크게 두 장을 따로 뽑아주었거든요. 그걸 썼다는 야그여요.

로드무비 2006-11-13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20만 원이라니!
엄청나군요.
전 해운대에서 1만 원 주고 폴라로이드 한 장 찍고도 투덜거렸는데......
야외촬영 그런 건 당연히 안했고, 식장 사진기사가 찍어준 딱 석 장의
결혼사진이 있을 뿐입니다.
신랑신부, 양가 친지들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그 정도면 벽에 걸어둘 만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