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며칠 전 해물탕 거리 한 팩을 사놓고 김치냉장고에 넣어둔 걸 깜빡했다.
비닐을 벗기니 우럭 토막이며 조개며 곤이며 알이며 이미 싱싱하지 않다.
해물의 그 낯익은 비린내가 콧구멍 속으로 물씬 달려든다.
소쿠리에 담아 두어 번 흔들어 깨끗이 씻고, 맛술로만 부족할 듯해서 찬 소주를 좀 들이붓고,
큰 냄비에 넣었다.
무를 큼직하게 썰어넣고, 양념으로는 된장과 고추장을 1,2작은술 기본으로 해서,
다진마늘과 고춧가루와 후춧가루를 듬뿍 넣어 잘 개어서,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몇 주 전 포천에서 가져온 미나리가 남아 있어 탕이 끓는 동안 다듬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나물을 다듬고 있노라면 오만 가지 잡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 우정, 좋지! 하지만 때로는 헌신짝 같은 것이 우정이야!
--내 인색함에 인색함으로 화답해 오는 그대여, 라는 편지를 쓴 적이 있었지.
그녀는 내게 뭐라고 답장을 했던가?
'실력 이상의 우정이 어쩌구 저쩌구' 했던 것 같은데......
-- 상하기 직전, 혹은 약간 상한 과일이 제일 달고 맛있다고 썼던 시인이 양선희였던가?
그녀는 요즘도 시를 쓰나?
청양고추와 배추를 좀 썰어넣고 팔팔 끓이니 농익은 해물탕 냄새가 온집안에 가득하다.
이걸 온갖 양념 넣고 끓여서 과연 제대로 된 해물탕이 나올 것인지 조금 염려스러웠는데
한 국물 떠먹어 보니 너무나 만족스럽다.
조금만 시들어도, 냄새나도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렸던 날들이 있었다.
이런 맛과 즐거움과 보람을 진작에 좀 알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