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며칠 전 해물탕 거리 한 팩을 사놓고 김치냉장고에 넣어둔 걸 깜빡했다.
비닐을 벗기니 우럭 토막이며 조개며 곤이며 알이며 이미 싱싱하지 않다.
해물의 그 낯익은 비린내가 콧구멍 속으로 물씬 달려든다.

소쿠리에 담아 두어 번 흔들어 깨끗이 씻고, 맛술로만 부족할 듯해서 찬 소주를 좀 들이붓고,
큰 냄비에 넣었다.
무를 큼직하게 썰어넣고, 양념으로는 된장과 고추장을 1,2작은술 기본으로 해서,
다진마늘과 고춧가루와 후춧가루를 듬뿍 넣어 잘 개어서,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몇 주 전 포천에서 가져온 미나리가 남아 있어 탕이 끓는 동안 다듬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나물을 다듬고 있노라면 오만 가지 잡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 우정, 좋지! 하지만 때로는 헌신짝 같은 것이 우정이야!

--내 인색함에 인색함으로 화답해 오는 그대여, 라는 편지를 쓴 적이 있었지.
그녀는 내게 뭐라고 답장을 했던가?
'실력 이상의 우정이 어쩌구 저쩌구' 했던 것 같은데......

-- 상하기 직전, 혹은 약간 상한 과일이 제일 달고 맛있다고 썼던 시인이 양선희였던가?
그녀는 요즘도 시를 쓰나?

청양고추와 배추를 좀 썰어넣고 팔팔 끓이니 농익은 해물탕 냄새가 온집안에 가득하다.
이걸 온갖 양념 넣고 끓여서 과연 제대로 된 해물탕이 나올 것인지 조금 염려스러웠는데
한 국물 떠먹어 보니 너무나 만족스럽다.

조금만 시들어도, 냄새나도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렸던 날들이 있었다.
이런 맛과 즐거움과 보람을 진작에 좀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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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6-04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조금만 시들고 냄새나도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요. ㅠ.ㅠ

하늘바람 2006-06-0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덜 싱싱해도 맛날것같은데요. 아 먹고파라

에로이카 2006-06-04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문 있습니다. 저는 해물탕 종류를 끓일 때, 배추랑 후추는 안 넣거든요... 로드무비님께서 언급하신 것 중에 없는 것으로는 생강이랑 콩나물을 넣어요... 제가 알기로는 이게 뭐 표준적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배추와 후추를 넣으면 맛이 어떤 지 혹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오... 침 꼴까닥.. 배 꼬르륵... 언제고 한 번 로드무비님 식으로 해봐야 하겠네요.. ^^

부리 2006-06-04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문학적 내공이 잔뜩 들어간 해물탕, 그거 먹으면 저도 리뷰 잘쓸 수 있을까요?^^

Mephistopheles 2006-06-04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 로드무비님은 해물탕을 끓이시면서까지 저런 심오한 생각을 하시는 걸 보면..
아무리 봐도 밥상위의 철학자 같아 보인다니까요...

건우와 연우 2006-06-04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일찍 모든걸 알면 아마도세월이 알려주는 애틋함이나 아련함은 알기 어려웠겠죠...
근데 해물탕 먹고 싶네요

瑚璉 2006-06-04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생각도 없이 요리하는 제가 부끄럽습니다요(-.-;).

반딧불,, 2006-06-04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후....
너무 맛나겠어요.
그게 시간이더라구요.
이제는 대충 고쳐서 만들 수 있게 되는 그 시간이라는...;;

검둥개 2006-06-0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나물을 다듬고 있노라면 오만 가지 잡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전 이상하게 언제나 그래요. 나물도 안 다듬으면서 --.--;;

비로그인 2006-06-0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없을거라거나 글이 안재밋다고 한다면 저 빨간 글러브로 한 방 주시려는 의미??^^

날개 2006-06-05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물탕.........!
집에서 할 자신은 없고, 한번 사먹어주겠습니다...흐흐~

니르바나 2006-06-07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나물을 다듬을 때는 나물삼매에 빠지시면 어떨까요.
우정삼매에는 헌신짝도 없고 실력도 없어야지요.^^

로드무비 2006-06-07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나물삼매!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나물 다듬는 걸 싫어해요.
삼매는커녕 오만가지 잡생각이 떠올라서.ㅎㅎ

날개님, 님 사시는 동네도 맛집 많은 걸로 유명하더군요.^^

캐서린님, 그럴 리가!!
제가 쓰는 열쇠고리입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기념으로 한 장.ㅎㅎ

검둥개님, 하긴, 항상 오만 가지 잡생각이지요.
언제쯤 쓸만한 생각이 떠올라 줄까요?^^*

반딧불님, 신기하죠?
나이 드는 게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제법 알뜰해지기도 하는 걸 보면.^^




로드무비 2006-06-07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질님, 저도 아무 생각 없이 요리합니다.
근데 이상하게 나물 다듬을 땐 뜬금없는 생각들이
줄줄이 떠오르더라고요.^^

건우와 연우님, 애틋함, 아련함, 그런 정서를 좀 많이
가지는 게 좋을까요?
별로 선호하지 않는 건데, 요즘 팍팍 늙는다는 게 느껴집니다.;;

메피스토님,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믄
정말 뭔 증뿔난 생각을 한 것처럼 으쓱해지잖습네까!^^

부리님, 문학적이든 뭐시든 간에 그 내공이라는 것 저도 한번
가져봤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에로이카님, 콩나물이 없어서 그냥 넣어준 거고요.
후추는 비린내 없애려고.
있는 재료로만 어떻게든 만들려다 보니 항상 전 좀
닥치는 대로 만드는 편이에요.
섬세한 요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맛이 괜찮다고 하니 다행이지요.^^

하늘바람님, 그런데 역시 나중에 데워먹으니 비린내가
더 많이 나더군요.
해물은 그때그때 바로 요리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수단님, 저도 그랬다니까요.
그런데 있는 재료 최대한 끝까지 아껴 활용하는 것도
의외로 재밌네요.
자기 만족감이 그 첫째!^^

마태우스 2006-06-07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같이 내공을 키워봅시다.
naegong2.com에 가입하시고 가입비 내시면 됩니다. 휴대폰 결제도 가능합니다^^

로드무비 2006-06-0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청하신 웹사이트의 주소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는데요?ㅋㅋ

OTL 2006-06-14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물탕먹고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