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 MBC 요리 프로를 보며 라면을 함께 먹고 있어야 할 시간에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가 잔뜩 쫄아있다.

"로 로 로드무비, 나 나 나야."

"지금 어디얏!"

"친구네 집.어제 그만 술마시다가......"

"마누라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는데 당장 집에 달려오지는 못할망정 이럴 수가 있어?"

금요일 저녁 남편이 집에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나는 혼자 맥주를 마시며 울고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약속이 있어 저녁을 먹고오겠다던 남편이 외박을 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그 집에서 한잠 늘어지게 자고 오후 세 시에나 기어들어왔다(이렇게 표현해도 된다! 되고말고.).

남편이 묻는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  이런 식으로 하면 일 못한다고 통보했어?"

"미쳤냐? 그렇게 하면 일해준 게 다 헛일이 되잖아. 돈도 못 받고......"

"그래서 엉엉 울면서 일 마무리 해갖고 보냈어?"

남편의 눈에 경멸의 빛이 살짝 지나간다. 나도 이런 내 자신이 한심해 죽겠다. 맥주를 마시며 울다 잠들었던 나는 새벽에 일어나 남은 일을 얼렁뚱땅 마무리하여 퀵으로 보냈다. 한가지 확실한 건 남편이 그런 일을 겪었다면 내가 길길이 뛰며 그깟 돈 포기하라고 난리를 쳤을 거라는 사실이다.

갈수록 사는 일이 수치스럽고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잘난척하며 살기로 했다. 안 그러면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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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20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는 저의 지난주 금요일 페이퍼 '앞통수뒤통수'에 남겨주신 님들의 댓글에 대한 저의 성실한 답변입니다.^^

반딧불,, 2005-02-2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아세요??
뒷모습 그림이란, 상처받은 마음..기댈 데 없는 절망의 마음을 나타낸다는 것을요.
혹은 정말로 믿을 것이 없다라는 마음이라고 어떤 아동미술 심리 책에 나와 있었어요. 주하의 뒷모습인가요??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힘내시라는 말씀밖에 들일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있죠. 그래도 님을 비난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라는 것도요. 아쉬죠??

2005-02-20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02-2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죄송합니다. 님이 슬픈 시기에 저라도 위로를 드렸어야 하는데........으흐흑. 전 하여간 로드무비님 편이어요

로드무비 2005-02-2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그 말씀만 들어도 위로가 되옵니다.^^
속삭이신 님, 하나도 두서없지 않습니다.
친절한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반딧불님, 저 사진은 어느 님 블로그에서 보고 퍼왔어요.
정처없는 제 심정 같아서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깍두기 2005-02-2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 사는 게 쉽지 않군요. 그래도 계속 잘난척 하셔야 됩니다.

2005-02-20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2-2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는 게 모욕이고 수치더라구요..사회나 개인, 모두 통틀어 굴종의 시대를 산다는 느낌이 들어요..조금씩 그 순간들이 잊혀질 거지만, 그렇지만 기억하자구요. 로드무비님의 재능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계속 그 사람과 대화하고 토론하고 노력하는 수 밖에요..앗싸~로드무비님, 화륑!

하루(春) 2005-02-20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에 쏙드는 글과 사진이구먼요. ^^*

로드무비 2005-02-20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마음에 쏙 드는 글과 사진에는 추천 한방 날려주는 거랍니다.^^;;;;
복돌이님, 그렇죠? 제가 비록 엄살을 떨고는 있지만 제 케이스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힘든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속삭이신 님, 제가 언제 기운을 잃었다고 기래요.
님만 보면 땡깡을 부리고 싶으니......^^;;;
깍두기님, 제가 계속 마지못해 잘난척하겠으니 얄밉다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하루(春) 2005-02-2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줄리 2005-02-20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이는 곰돌이와 함께 바다를 건너고 싶은가 봅니다....

비로그인 2005-02-2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라진 페이퍼, 뭐라 말도 안올리고 슬쩍 보고만 간 이로썬 참 죄송한 일이에요. 맨날 저는 슬금슬금하기만 하거든요.
기운 다 내신 후니 다행입니다. 더 힘내세요. 무비언니.

플레져 2005-02-20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로드무비님이에요. 제가 꼭 님의 반만 닮았으면....

sooninara 2005-02-20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사는게 나이든 지혜 아니겠습니까? 전 소심한 A형이라서 대충대충 좋은게 좋은거라 살아갑니다요..

balmas 2005-02-20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있었단 말입니까??

누가 감히 로드무비님께 그런 짓을, 버럭!! (늦게 와서 큰 소리는 ...-_-a)

힘내세요, 로드무비님. 그깟 일 때문에 로드무비님의 실력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

저는 시간이 지나면 로드무비님이 옳았다는 게 밝혀지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우하하하.

그러니 언짢은 감정 털어버리시길 ...

그런 뜻에서 추천 한 방~~

그리고 개운하게 털어버리라는 뜻에서 그림 하나~~(^^;;;)


조선인 2005-02-20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분부대로 마음에 쏙 드는 사진에 추천 한 방.
그런데 마음에 쏙 드는 글은 아닐 지도 몰라요.
아니, 마누라가 홀로 술 먹고 우는데, 감히 외박을 하다니, 형부 실망이에욧!
(은근슬쩍 동생을 자처하며 오바하다. -.-;;)

로드무비 2005-02-20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형부라니 왜 내 가슴이 다 설레이지요?ㅎㅎ
발마스님, 이렇게 고마울 수가.
저 님의 말씀에 용기백배했습니다.
정훈이 만화도 너무 고마워요. 흑.
수니나라님, 플레져님, 잘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처음과 끝님, 정말 오랜만에 오셨죠? 흑.
그 페이퍼는 사실 웃자고 쓴 거고요.
님을 보니 너무 좋습니다.^^
dsx님, 말씀도 어쩜 그리 귀엽게 하시는지......
하루님, 호호.^^

날개 2005-02-20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뒤늦게 댓글 달기도 뭣하여 그냥 갈까 하다가...
추천만 날리고 갑니다.. 다른 분들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네요..^^

2005-02-21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2-21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댓글 많다고 그냥 가시면 안돼요.
제가 삐질 거니까.^^
속삭이신 님, 공감해 주셔서 고마워요.^^

숨은아이 2005-02-21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우셨군요. ㅠ,ㅜ

로드무비 2005-02-21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곡을 했답니다.ㅠ,.ㅜ

하얀마녀 2005-04-14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치는 경멸의 빛, 수치스럽고 나아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 그런데 왜 이렇게 재미나게 쓰신거에요! 버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