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 MBC 요리 프로를 보며 라면을 함께 먹고 있어야 할 시간에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가 잔뜩 쫄아있다.
"로 로 로드무비, 나 나 나야."
"지금 어디얏!"
"친구네 집.어제 그만 술마시다가......"
"마누라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는데 당장 집에 달려오지는 못할망정 이럴 수가 있어?"
금요일 저녁 남편이 집에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나는 혼자 맥주를 마시며 울고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약속이 있어 저녁을 먹고오겠다던 남편이 외박을 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그 집에서 한잠 늘어지게 자고 오후 세 시에나 기어들어왔다(이렇게 표현해도 된다! 되고말고.).
남편이 묻는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 이런 식으로 하면 일 못한다고 통보했어?"
"미쳤냐? 그렇게 하면 일해준 게 다 헛일이 되잖아. 돈도 못 받고......"
"그래서 엉엉 울면서 일 마무리 해갖고 보냈어?"
남편의 눈에 경멸의 빛이 살짝 지나간다. 나도 이런 내 자신이 한심해 죽겠다. 맥주를 마시며 울다 잠들었던 나는 새벽에 일어나 남은 일을 얼렁뚱땅 마무리하여 퀵으로 보냈다. 한가지 확실한 건 남편이 그런 일을 겪었다면 내가 길길이 뛰며 그깟 돈 포기하라고 난리를 쳤을 거라는 사실이다.
갈수록 사는 일이 수치스럽고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잘난척하며 살기로 했다. 안 그러면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