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무슨 페이퍼를 하나 올렸다가 한 시간 만에 지웠다.  세일하는 <크리스마스 악몽>  DVD랑 이벤트 하는 책들 주문하고 나서 딴에는 좋은 정보를 공유한답시고 올린 페이퍼였다. '땡스투 눌러주시라니깐요~~' 호들갑을 떨어놓고 한 시간 만에 다시 들어와 삭제한 이유는 땡스투는커녕 아무도 댓글을 달아놓지 않아서였다. 슬럼프 끝에 의욕적으로 올린 작품이 관객에게 외면당하는 연출가나 배우의 심정이 이럴까?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은 자체 심의였다. 책이나 DVD 산 것  굳이 떠벌릴 건 뭐람, 하는 새삼스러운.)

그리고 오후에는 슬픔을 잊고자 붙잡고 있던 일감에 매진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가 스스로의 실력에 감탄하면서 최근 붙들고 고쳐놓았던 모든 문장들이 제자리로 돌아온 정도가 아니고 말도 안되는 문장으로 바뀌어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나는 생애 최초로 교열 교정자로서 내가 고친 문장들을 어느 출판사의 한 새파란(?) 편집자에 의해 교열 교정 당한 것이다.

나는 스스로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문장 수선공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 해도 어디냐 하는......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조금 구차하고 수상쩍은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그것을 심히 훼손당한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언젠가는 맞을 펀치였다.

내가 맞은 건 앞통수일까 뒤통수일까? 그리고 나는 이 위기를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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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18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로드무비님, 크리스마스 악몽, 브리핑에서 잠깐 봤는데 계속 인수인계해 준 직원과 통화중이어서 ..변명같지만..정말 죄송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죠? 로드무비님, 저도 너무 놀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일단 심하게 무례한 그 편집자에게 차근차근 자초지종을 들어보심이 어떨까요? 이런 때 왜 제 머릿속은 늘 상투적인 문장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 걸까요? 로드무비님, 기운 차리시고 힘 내세요..

icaru 2005-02-18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편집자에게 그런 일을 당하셨다는 글을 읽고... 핫....님의 그 기분...아주 자알 ~ 알조랍니다...전요....
저도 가끔 물론 저라고 배터랑은 아니지만...일을 하다보면...그리고 소위 크로스 교정이라는 걸 하다보면... 얼굴이 화끈화끈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죠....내 어이없는 실수를 참담하게 인정해야 할 때와, 그와 반대로..상대가 수정한 것의 어이없음에 대한 짜증... 그 정도가 심할 땐...다 때려치우고 싶다...한다니까요...(속으로만 골백번요...)

오전에 한번 서재에 들어왔었는데...크리스마스 악몽은 못 봤시융... 가끔 그렇게 여러 서재 브리핑 속에 뭍혀 버려 놓치고 갈때가 왕왕 있더라고요...

2005-02-18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깍두기 2005-02-18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삭제한 페이퍼를 살려내라 살려내라~~~나에게도 볼 기회를 줘야지!!!
그 겁없는 편집자는....왜 그랬을까요.....????

플레져 2005-02-18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때를 덜 보여주신 건 아니었어요?
간 큰 편집자네요...로드무비님 글을 훼손하다뉘~!!

로드무비 2005-02-18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말하면 제가 간 큰 아르바이트생이었던 거죠.
복돌이님, 너무 심려마세요.

날개 2005-02-18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페이퍼 못봤었어요.....ㅡ.ㅜ 거 참 이상하네~ 계속 들락날락 했었는데..
여하튼, 기분 푸시어요..! 그 세계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얼마나 기분이 상하셨을지가 생생히 느껴져요..ㅠ.ㅠ
글구, 삭제한 페이퍼.. 다시 올려주세요..!

비로그인 2005-02-18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이 로드무비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로드무비님, 우리가 응원할게요..맘이 정말루 짠해요..

니르바나 2005-02-18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힘내세요.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사시니까 그런 일도 겪는 게 아니겠어요.
속 상하시긴 하시겠지요.
그럼 어쩌겠어요. 참아야지요.
지는 게 꼭 지는 게 아니고, 이기는 게 꼭 이기는 게 아니랍니다.
온갖 더러움을 다 담아내어 아래로 아래로 흐르지만 결국 하늘로 오르는 게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 아니겠습니까?
로드무비님의 넉넉하신 물같은 품격을 저는 늘 기억하고 있답니다.

기다림으로 2005-02-18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통수든 뒤통수든, 띵~하게 울리는 머릿속때문에 꽤 마음 심란하셨겠어요.
하지만..누군가에게 펀치를 맞으셨대도 전 로드무비님의 자부심에 힘을 드리고 싶은데요? 저는, 좋아요. 다른 사람에게 고쳐졌다고 해도 분명 로드무비님께서 쓰신 글 한 줄이 제 마음에 더 와닿았을 거에요~ 힘네세요!!

비로그인 2005-02-18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누구한테서든지 정신없이 흠씬 두들겨 맞고 싶은 심정인데... 그럼, 무비 언니가 저를 패주시면, 무비 언니는 스트레스 풀리실테고, 저는 또 저대로 만족하고. ㅋㅋ 앗, 이거 영화 [거짓말] 같은데... 오잉~

조선인 2005-02-18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음, 제가요, 요새 질러 페이퍼엔 되도록 댓글을 안 답니다.
이달 카드한도가 달랑 몇 만원 남았거든요.
도무지 통제가 되지 않아 아예 카드 이용한도를 줄여놨더니
조금은 절약하게 되더라구요.
최소한 결제일 전주가 되면요. -.-;;
이게 아까 댓글을 안 단 이유에요. 부디 용서를.

비로그인 2005-02-1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어요~님의 페이퍼~보고 싶어요~^0^~

비발~* 2005-02-19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땐 글 하나를 놓고 담담하게 편집자에게 한 수 일러주세요~^^ 단, 그럴 가치가 있을 때만!

kleinsusun 2005-02-19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새내기 편집자가 너무 "오버"를 했네요.
신입사원 특유의 뭐 그런거 있쟎아요. 뭐라도 해야 되고, 나서고 싶고 하는....
혹시 할일이 없어서 고친건 아닐까요? 쩝....저까지 화가 나요.

로드무비 2005-02-1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걸핏하면 심란한 페이퍼를 올리고 있군요.
여러 님들이 위로해 주시니까 재미들린 것인지도 몰라요.
사실 이 정도의 일이야 뭐 일이랄 것도 있겠습니까?
세상에는 구체적이고 무시무시한 슬픔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무튼 따뜻한 위로 남겨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니르바나 2005-02-1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을 응원하기 위한 소생의 짧은 페이퍼 들어갑니다.
기대하세요.

하루(春) 2005-02-19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접속중이어서 제 댓글을 보신다면, FM 107.7MHz의 방송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

숨은아이 2005-02-19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초에 이벤트 참여에 매진하느라고 요즘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글을 잘 못 읽어요. ㅠ.ㅜ 교열 문제는 참 민감해요, 그렇죠? 각자 자기 스타일이 있고, 중요시 여기는 부분에 대한 소신이 달라서... 양보할 것은 하고 털어버려야지요. 하지만 정말 지켜야 할 것은 싸워서 지키기로 해요.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기획 중심으로 일하는 편집자 중에는 한국어 문법도 잘 모르는 친구가 꽤 되지 않습니까? "두 장수"를 "두 명의 장수"로 고친다든가 하는 걸 보면 돌아버릴 지경이죠. 뒷담화예요. ㅋㅋㅋ)

2005-02-19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2-20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제가 님 때문에 웃는다니깐요.ㅎㅎ
대강 얼버무려 일 끝냈습니다.^^
숨은아이님, 나이가 드니까 교정 아르바이트도 못하겠어요.
나 어린 편집자들은 말로만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무시하고.
뭘 해먹고 살아야할지......
하루님, 저 FM107 메가헤르츠...저 놈이 뭐시랍니까?
혹시 그 시간에 근사한 음악이라도 나왔는지요? 궁금.
니르바나님, 고맙습니다. 다시 한 번......^^

하루(春) 2005-02-20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전자음악단이 나왔지요. 말솜씨는 없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