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서 자기 집을 공개(자랑)하는 연예인들 중
내가 꼴불견이라고 생각하는 유형.
신발장과 냉장고 속, 심지어는 속옷 서랍까지 보여줘놓곤
침실 앞에서 잠시 망설이는 시늉을 하며,
"처음으로 공개하는 거예요!"라고 생색내는.
("나는 하나도 안 궁금하거든. 그러니 안 보여줘도 되거든!"
괜시리 기분이 좀 안 좋은 날은 이렇게 궁시렁대며 채널을 돌린다.
그래놓고 다시 돌려서 구경한다.)
침실이 별것이어서 꽁꽁 감춰두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게 어색해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 할 건 또 뭐람.
두 번째 밥맛 유형.
으리으리한 호화저택의 현관문을 열며 "누추합니다!" (그런 겸손은 절대 사절!)하질 않나,
대부분을 외제 가구로 치장한 인테리어의 방, 거실 혹은 주방에서 겸손한 척 거드름을 피며
"저는 심플한 걸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그런 주둥이는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
'심플'이라는 단어는 아무데나 갖다붙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자신에게 내재된 모순을 여러 차례 깨달았다.
벽지를 고를 때, 내가 내세운 것도 심플.
소파를 구경하면서도 심플심플.
이래서야 주둥이로는 심플을 외치지만 자신의 안목에 대단히 자부심을 가진 듯한,
그동안 화면으로 본 재수없는 누구누구와 무엇이 다르랴.
이사 첫날부터 어제까지 휴지뭉텅이를 들고 찾아온 손님이 네다섯.
현관문을 열면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이런 인사가 제일 먼저 튀어나온다.
"호호, 집이 좀 넓고 호화스럽습니다. 각오하시고......"
그리고는 아직 정리가 안 되어 엉망인 방들을 의젓하게 보여준다.
우리집보다 훨씬 넓은 집에 사는 손님들이 나의 장단에 맞추어 줄 때 기분이 좋다.
이사 와서 제일 좋았던 건 그동안 모아둔 대형 스티커를 새 냉장고며 욕실 유리창이며
아이 방 창문에 종류별로 붙이는 일이었다.
구름이 흘러가는 모양의 아이 방 창문과, 키스 하링 스티커(60 x30센티미터?)를 붙인 냉장고가
특히 마음에 든다.
스티커를 붙인다면 무조건 질색을 하는 나의 남편도 이번에는 아주 흡족한 눈치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