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현관앞에서 목놓아 울던 현준이가 생각난다. 유치원에 가기 싫고 엄마따라 집으로 갈거야. 집에 가서 현수랑 엄마랑 놀거야. 엄마랑 공부할거야. 엄마, 나 두고 가지마.......
그렇게 울부짖는 아이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울고불고 난리치는 현수를 들어안고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 크게 숨을 쉬는데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저리 아프게 우는데 나는 어떻게 아이를 그곳에 두고 어떻게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걸까? 내가 미웠다.
그것도 잠시 현수 기저귀를 빼고 내의를 입히고 '쉬 마려우면 화장실가게 엄마에게 말해줘' 말하고는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로 집 구석구석 밀고 밀대로 쉽게 걸레질을 하고 그러는 사이 현수는 "엄마, 쉬"하더니 그대로 바지에 오줌을 쌌다. 그래도 잘했다고 이제는 조금만 빨리 말해달라고 했더니 "응" 그런다.
그러고서 10여권의 책을 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책을 읽다보니 스르르 잠을 자는 현수를 두고 요즘 읽고 있는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집어 들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고 꿈속에선가 아이가 울어댔다. 누구네 집에서 아이가 우나 싶었는데 바로 내 옆에 있는 현수가 울어대던 것이다. 깜짝 놀라서 일어나 우선 현주 바지가랑이를 만졌으나 아직 오줌을 누진 않았다. 얼른 안아올려서 화장실로 데려가 오줌을 누였더니 한참을 누었다. 참 잘했어. 예쁜아, 너무 예뻐. 했더니 현수도 씩~~웃는다. 시계를 보니 1시30분, 이번주부터 특기신청을 해서 3시 귀가니까 천천히 여유롭게 현수 밥을 먹이고 옆집 언니와 아이들 데리고 한의원에 가기로해서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유치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이웃 아이들과 현준이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한의원에 다녀오고, 나의 증상은 화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침을 맞고 왔다. 현수가 하도 울어대는바람에 침의 효과는 그닥 좋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형네집에서 잠시 놀겠다던 현준이 아에 그 집에서 살고 싶단다. 우리 집에 가지 말자고 떼를 쓰고, 형네 아빠 얼굴을 보고 싶다며 또 떼를 썼지만 결국 현수와 엄마가 신발 신고 일어서니 어쩔 수 없이 일어서 따라왔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책 몇권 읽어주고 잠시뒤 아빠가 오고 저녁을 해서 먹는데 7시쯤 현준이가 밥상앞에서 졸고 있었다. 대충 저녁 먹이고 약을 먹이고 양치질을 시킨 후 방에가서 자라고 했더니 바로 곯아떨어졌다.
기저귀 빼놓고 있던 현수는 응가 마렵다고 화장실에서 한참 실갱이하다가 결국 변기에 '응가'하고 예쁘다고 칭찬받고 또 책 몇권읽고 양치질을 시켰는데 이웃집 미끄럼대에서 떨어져 입에서 피가나던 것이 또 터져 피가 철철 흐르고 애 다친게 안쓰러운 남편 내게 혀를 끌끌 차고, 미안해서 책 몇권 더 읽어주고 잠자리에 뉘었는데 금새 곯아떨어졌다.
그리고나서 알라딘에 접속했는데 좀 전에 우리집 앞에서 계단에서 후다닥 뛰어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어떤 아가씨가 '살려달라고' 소리를 치고 거친 남자의 목소리 들리고 나도 모르게 현관으로 뛰쳐나갔는데 남편은 문앞에서 바깥정세만 살피려고하고 내가 나가보려고 하니 남편이 대신 나갔고 '아저씨, 살려주세요. 모르는 아저씨에요. 저 죽이려고해요.' 그말에 나도 너무 놀라서 112에 신고해서 얼른 오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바깥 상황이,
아버지와 딸이 싸우는 상황......아버지는 왜 자꾸 집을 나가려고 하느냐며 너 같은건 맞아야된다고 욕설과 함께 자꾸 때리려고 하고, 딸은 왜 자꾸 때리냐며 악을 쓰고 대들고, 아버지와 딸이 막무가내로 무섭게 싸우는데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남편때문에 문앞에 서서 들으면서도 아버지에게 너무 막말하는 아가씨에게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아저씨도 딸을 왜 그리 막대하냐고, 참견아닌 참견을 하며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옆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나오셔서 말리시는데 우리집앞에 여기저기 핏자국이 있고 살려달라는 아가씨와 도저히 나가게 할 수 없다는 아저씨, 남편도 옆집 아저씨도 결국 말리다가 질질 끌려가는 아가씨 어쩌지 못하고 10층으로 올려보냈다는데 경찰들은 그래도 오지 않다가 남편이 보기싫다며 핏자국 다 닦아내고나니 그제서야 왔는데 우리집앞에서는 이미 상황 종료된 것을 뒤늦게와서 어쩌겠다는 건지, 10층으로 올라가겠다고 올라갔는데 그 뒤의 상황은 알 수가 없다.
하도 세상이 뒤숭숭하고 요즘처럼 여자피해자가 많은 세상에서 젊은 아가씨의 비명과 함께 들려온 '살려주세요'한마디는 너무도 무섭고 두려웠지만 가해자의 보복이 두렵진 않았던가 경찰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나도 참 평범한 인간은 아닌가보다. 스키너의 심리학상자에서 보았던 거리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올때 사람들의 반응은 커튼을 내리거나 모르는척 지켜보는 것인데 남편 말대로 난 참 겁이 없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버지 손에 질질 끌려 올라갔다는 그 아가씨, 어릴때부터 줄곧 맞았다고 왜 때리냐고 아버지랑 다시는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었는데 옆집 아저씨와 남편은 남자이기 때문일까? 그 아가씨의 절규보다는 다 큰 딸이 밤마다 외박하고 싸돌아다니는데 때리지 않을 아버지가 어디있겠냐는 아버지의 말이 더 일리있다는 듯이 집안 싸움은 집안에서 해결해야한다고 마무리 지어버리는데 겁도나고 무섭기도하고 세상이 참 각박하구나 생각도 들고, 그 아가씨 멀쩡할까 싶기도 하고 이래저래 오늘도 잠들기 어려울 것만 같다.
무서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