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엔 두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고래가 그랬어를 얼른 읽어서 정상궤도로 올리는 것, 다른 하나는 현수 기저귀 떼는 것. 그런데 고래가 그랬어는 아직 제대로 읽을새도없이 하루하루가 무지하게 바쁘게 지나갔다. 그건 현수의 기저귀 떼는 연습이 더 시급했고, 한번 마음 먹은 일인만큼 서두르고 싶었다.  

현준이를 유치원 보내고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현수의 기저귀를 빼고 팬티와 바지를 입혀 놓고 '쉬, 응가 마려우면 엄마한테 말해.' 해놓은지 3주, 첫째주엔 전혀 효과없이 바지를 적시며 여기저기 소변을 누던 녀석, 그래도 '응가'는 가렸다. 물론 '응가'라고 말하지 않고 '쉬'라고 했지만 얼굴이 울그락푸그락 하면서 '쉬'하면 그건 '응가'였고, 변기에 앉혀서 한참을 기다리면 결국 해냈다. 게으른 엄마는 아가용변기를 사용하지 않고 어른 변기에 어린이용변기커버를 올려놓고 사용했지만 곧 적응했다. 물론 실패도 여러번이었지만 결국 해냈다. 

문제는 자주보는 소변, 여기저기 다니며 '쉬'를 했지만 그나마 다행인건 카펫이나 이불, 매트리스, 쇼파 등에서는 소변을 보지 않았고 내가 닦기 편한 바닥에만 볼일을 보는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여러벌의 바지를 빨아야했지만 그건 세탁기를 돌렸으니 큰일일게 없었다. 아무데나 소변을 보면 엉덩이를 때려준다는 엄마들도 있지만 나는 현준이때도 그랬지만 현수에게도 '쉬했구나. 잘했어. 근데 엄마한테 먼저 말해주면 좋겠어. 화장실가서 하면 좋을 것 같아.'하고 말해주었고 거의 첫주는 먼저싸고 '쉬'소리를 했고, 둘째주는 "엄마, 쉬" 소리와 함께 싸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잘했지만 좀 더 빨리 말해달라고 화장실에 가면 좋겠다고 했더니 이번 세째주는 제법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그래도 영 어색한지 잘 누지 못하더 녀석이 엊그제 세번을 성공한 이후로 어제는 다섯번, 오늘은 오전에는 내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았고, 현준이가 집에 돌아와서 이것저것 주문하는게 많아 조금 늦게 간 탓에 화장실 문앞에서 볼일을 보았을뿐 오후내내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낮동안에 현수에게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갖는다면 대체로 실수할 것 같지는 않고 이제 남은 건 잠을 자며 소변보는게 남은 셈이다. 어떤 날은 밤새 소변을 보지 않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기저귀가 묵직할 정도로 많은 양의 소변을 보는 날도 있으니 그걸 맞추는 게 쉽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점차 나아지는 현수를 보면, 곧 기저귀를 떼지 않을까 싶다. 

아직 의사소통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진 않지만 그래도 상당부분 잘 알아듣고 그렇게 행동하려고 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특히 기저귀를 빼고 예쁜 팬티를 입는게 참 좋은가 소변을 보고 팬티를 입히려고하면 너무도 좋아한다. 예쁜 그림이 자기도 마음에 드는지 하는짓이 참 귀엽고 예쁘다. 

이제 현수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게 되었으니 어느새 훌쩍 자란 느낌이다. 어느새 현준이처럼 엄마와 떨어져서 지내게 되겠지 생각하니 조금은 서운한 마음도 들고 아쉽기도 하고 왜그런지 아린 느낌이 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내 품에 안고 있으면서 벌써 이런 생각을 한다는게 왠지 조금은 우습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엄마니까 이런 마음이 드는거겠지 생각하면 부모님께 늘 반항하던 내 어린날의 치기가 떠올라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현수야, 하나하나 배워야할게 너무도 많지? 그래도 참 잘하고 있는 모습보니까 엄마가 참 뿌듯해. 아빠도 현수가 하나하나 배우는거 보니까 참 신기하대. 또 현수도 어느새 자라는구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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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03-2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기도 트레이닝을 해야하는데 엄두가 안나요~.ㅠㅠ
어떻게 다른 애들을 시켰나몰라요~.ㅎㅎ
현수가 지금 정확히 몇개월이죠????

꿈꾸는섬 2009-03-27 23:05   좋아요 0 | URL
2007년 7월20일에 태어났으니까, 21개월...맞죠?
 

중고샵에서 산 이후 한참동안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었다. 

읽을때마다 여행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김훈의 탁원한 글솜씨에 매료되어 이 책 한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김훈의 책은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을 읽었었는데 에세이도 좋다는 많은 사람들의 평이 그냥 있었던게 아니란 걸 알았고, 다른 나머지 에세이집도 시간이 되면 챙겨서 보고 싶다.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자전거여행 2> <바다의 기별> ......

아이들 키우며 천천히 읽어가야겠다.  

 

 

봄이 되니 마음은 벌써 여기저기 놀러가고 싶은데 현준이에게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않으니 이젠 여행도 자제를 해야할 것 같다. 그래도 때마다 아이들 데리고 나들이는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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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3-25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에세이집 중에서 자전거 여행 1.2권이 제일 좋아요. 소설집으로 '강산무진'도 좋답니다. 얼마 전에는 '언니의 폐경'이 드라마화 되었는데 좋더라구요. 김훈의 색깔이 아주 많이 묻어나진 않았지만요.
짬을 내어 여행을 다녀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전 베트남을 너무 가보고 싶은데 간밤 꿈에 베트남 갔어요..;;;;;

꿈꾸는섬 2009-03-27 21:33   좋아요 0 | URL
역시 마노아님^^
다음엔 베트남에 다녀오셔서 여행기 올려주세요.ㅎㅎ
강산무진도 챙겨서 읽어봐야겠어요.ㅋㅋ 고마워요.

프레이야 2009-03-25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쪽이나 아무곳에서 펼쳐읽어도 좋은 책이지요.
사진도 참 좋구요.
가까운 곳이라도 아이들이랑 나들이 다녀오세요.^^

꿈꾸는섬 2009-03-27 21:35   좋아요 0 | URL
맞아요.ㅎㅎ사진도 참 좋았고, 아무쪽이나 읽어도 좋았고, 다시 읽어도 질리지 않더라구요.
봄이되니 나들이 가고 싶은데 남편이 너무 바쁘네요. 혼자서 두 아이를 감당해야한다니 조금 겁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한번 시도는 해봐야지요.ㅎㅎ
 

어제 하루종일 유난히 심심한 하루를 보냈다. 아빠도 집에 없었고 엄마 혼자 현준이 현수를 상대하다보니 자연히 현준이가 많이 심심했던 것 같다. 게다가 비도 왔었고, 날이 개긴 했지만 쌀쌀할 것 같아 집 밖으로 한번도 나가지 않았더니 오후에는 밖에 잠시 나가고 싶다고 했지만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하루종일 집안에서 보냈다. 

오늘 아침, 

밥도 잘 먹고 혼자 씻고 유치원복을 챙겨 입으며 오늘부터는 "엄마, 현준이가 오늘부터는 안 울게." 그런다. 그래도 내심 유치원 현관 앞에서 또 울면 어쩌나 했는데, 오늘은 정말 선생님들께 인사도 잘하고 기분좋게 교실로 갔다.  오히려 울고불고 난리치는 현수를 들어매고 현준이 교실을 지나쳐 오는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오후에 데리려 갔더니 기분좋게 달려 나왔다. "엄마,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 하고 말하는데 저절로 현준이를 끌어안았다. 하루종일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 것 같아 보여 다행스럽고 내 기분이 더 좋았다. 

이젠 정말 유치원에 적응한 것 같아서 다행스럽고 이젠 더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싶은 마음이 드니 홀가분하다. 

오히려 오늘은 현준이가 집이 더 심심하다고 말한다. ㅎㅎ 유치원에서 하는 활동들이 재미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현준아, 고맙다. 엄마,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재미있어하니까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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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3-2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군에~ 적응하고 즐거운 곳이 됐으니, 이젠 걱정 안하셔도 되겠어요.
그동안 애쓰셨어요.^^

꿈꾸는섬 2009-03-24 21:12   좋아요 0 | URL
ㅎㅎ정말 다행이에요.^^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09-03-23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준이가 차츰 적응해가는가 봐요.
어젓해지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면서 한편 안쓰럽지요.
잘 해낼 것이니 염려마세요^^

꿈꾸는섬 2009-03-24 21:13   좋아요 0 | URL
혜경님 말씀대로 잘 해내기만을 바래야죠.ㅎㅎ 고맙습니다.

마노아 2009-03-24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시간이 약이었네요. 다행이에요.^^

꿈꾸는섬 2009-03-24 21:13   좋아요 0 | URL
정말 시간이 약이었던가봐요.ㅎㅎ 너무너무 다행이죠. 고마워요. 마노아님^^

kimji 2009-03-2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네요. 기쁜 소식입니다^^ 처음에 힘들었던 만큼, 더 신나고 더 씩씩하게 잘 지낼거에요. 현준이 화이팅입니다!

꿈꾸는섬 2009-03-24 21:14   좋아요 0 | URL
ㅎㅎ고맙습니다. 현준이가 앞으로도 잘해나갔으면 좋겠어요.ㅎㅎ 고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3-25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있으면 놀아주지 않는 현준이 때문에 섭섭해지실 겁니다 ㅋㅎㅎ

꿈꾸는섬 2009-03-27 21:35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내일은 왜 유치원에 가지 않느냐고 제게 따지더군요. 이젠 유치원이 더 재미있나봅니다.ㅎㅎ 정말 다행이에요.ㅎㅎ
 

이번주에 남편은 두번째 집에 들어오지 못한단다. 며칠전 친구 아버님 상, 오늘은 야근. 

남편이 없는 날엔 유난히 아이들도 나를 더 힘들게 한다. 밥상앞에서 장난치며 밥도 잘 안 먹고, 아빠는 왜 안오냐고 계속해서 물어보고, 엄마가 엄마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면서 자기들끼리는 또 어찌나 싸우는지...... 

낮에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에 얼굴을 박으며 넘어진 현수의 코밑 인중은 붉게 실핏줄이 다 터지고 엄청 부어올랐다. 한참 놀이에 집중하던 현준이에게 집에 가자고 해도 막무가내로 가기 싫다고 우기는 녀석,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엄마 쫓아 집에 왔는데 집에 와서야 "엄마, 미안해." 그런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두녀석 옷을 모두 벗겨 욕실에 집어넣고 씻기고, 금새 저녁밥 먹이고, 약 먹이고, 쉬마렵다며 쉽게 볼일을 보지 못하는 현수와 실랑이, 결국 소변은 거실에, 대변은 변기에 싸긴했는데 다 안싸서 팬티에 살짝 또 묻혀놓고, 다시 변기에 앉아 한참을 싸고...... 

설거지도 못했는데 책읽어달라고 조르는통에 책 먼저 읽고, 현준이 옷 손빨래는 하지도 못한채 담가만두고, 결국 아이들 잠 들때까지 아무것도 못한채 옆에 붙어 있었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을 잘도 돌보는데 나는 늘 서툴고 늘 어설픈것만 같다. 여전히 엄마다운 엄마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언제쯤 좋은 엄마가 되려나 싶고, 그 생각하니 또 가슴이 갑갑하고 숨이 막힌다. 요즘들어 숨이라도 편히 쉬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깨닫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노력해도 자꾸만 가슴이 갑갑하다.  

남편에겐 되도록이면 밤새워가며 일하지 말자고 하는데도 남편은 겨우내내 놀았던거 생각하면 안할수가 없다고 몸을 혹사시키고, 내일 저녁이나 되어야 집에 돌아온다는데, 어제 저녁에 보고 내일이나 되어야 볼 수 있다니 나도 어린아이처럼 남편이 보고싶기도 하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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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9-03-21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힘드시군요. 맞아요 아이들 어릴땐 옆지기의 도움이 필요하죠. 설거지할때 아이들과 놀아만 줘도 큰 도움 되는데....
전 직장 다니면서 아이들 챙기느라 배는 더 힘들었답니다. 그때 생각함 흑...
잠시려니 생각하고 조금만 편안한 마음 가지세요. 작은아이가 4살만 되어도 혼자 잘 놀아요.


꿈꾸는섬 2009-03-23 22:02   좋아요 0 | URL
저보다 더 많이 힘드신 분들이 계시겠지만, 아직 둘째가 어려서 그런가봐요. 님 말씀대로 1년만 참으면 좀 수월해질 것도 같으니 잠시려니 생각해야죠. 아이들은 정말 금방 금방 자라더라구요.

2009-03-21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3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3-2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신혼이시군요. 난, 남편 없는 밤이 좋던데~~ㅋㅋㅋ

꿈꾸는섬 2009-03-24 21:15   좋아요 0 | URL
ㅎㅎ애들하고만 있으면 왠지 허전하더라구요.
이런저런 얘기 나눌 사람이 남편뿐이라 그런가봐요.ㅎㅎ

kimji 2009-03-2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남편 없으면 애가 셋에서 둘로 줄은 기분이 드는데^^

꿈꾸는섬 2009-03-24 21:16   좋아요 0 | URL
애 셋 키우시는 분 여기도 계셨군요.ㅎㅎ
저희 남편은 워낙 잘 도와주는 편이라 남편없는 날은 배로 힘들더라구요.ㅋㅋ
아이들도 아빠를 기다리구요.^^
 

유치원 현관앞에서 목놓아 울던 현준이가 생각난다. 유치원에 가기 싫고 엄마따라 집으로 갈거야. 집에 가서 현수랑 엄마랑 놀거야. 엄마랑 공부할거야. 엄마, 나 두고 가지마....... 

그렇게 울부짖는 아이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울고불고 난리치는 현수를 들어안고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 크게 숨을 쉬는데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저리 아프게 우는데 나는 어떻게 아이를 그곳에 두고 어떻게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걸까? 내가 미웠다. 

그것도 잠시 현수 기저귀를 빼고 내의를 입히고 '쉬 마려우면 화장실가게 엄마에게 말해줘' 말하고는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로 집 구석구석 밀고 밀대로 쉽게 걸레질을 하고 그러는 사이 현수는 "엄마, 쉬"하더니 그대로 바지에 오줌을 쌌다. 그래도 잘했다고 이제는 조금만 빨리 말해달라고 했더니 "응" 그런다. 

그러고서 10여권의 책을 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책을 읽다보니 스르르 잠을 자는 현수를 두고 요즘 읽고 있는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집어 들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고 꿈속에선가 아이가 울어댔다. 누구네 집에서 아이가 우나 싶었는데 바로 내 옆에 있는 현수가 울어대던 것이다. 깜짝 놀라서 일어나 우선 현주 바지가랑이를 만졌으나 아직 오줌을 누진 않았다. 얼른 안아올려서 화장실로 데려가 오줌을 누였더니 한참을 누었다. 참 잘했어. 예쁜아, 너무 예뻐. 했더니 현수도 씩~~웃는다. 시계를 보니 1시30분, 이번주부터 특기신청을 해서 3시 귀가니까 천천히 여유롭게 현수 밥을 먹이고 옆집 언니와 아이들 데리고 한의원에 가기로해서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유치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이웃 아이들과 현준이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한의원에 다녀오고, 나의 증상은 화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침을 맞고 왔다. 현수가 하도 울어대는바람에 침의 효과는 그닥 좋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형네집에서 잠시 놀겠다던 현준이 아에 그 집에서 살고 싶단다. 우리 집에 가지 말자고 떼를 쓰고, 형네 아빠 얼굴을 보고 싶다며 또 떼를 썼지만 결국 현수와 엄마가 신발 신고 일어서니 어쩔 수 없이 일어서 따라왔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책 몇권 읽어주고 잠시뒤 아빠가 오고 저녁을 해서 먹는데 7시쯤 현준이가 밥상앞에서 졸고 있었다. 대충 저녁 먹이고 약을 먹이고 양치질을 시킨 후 방에가서 자라고 했더니 바로 곯아떨어졌다. 

기저귀 빼놓고 있던 현수는 응가 마렵다고 화장실에서 한참 실갱이하다가 결국 변기에 '응가'하고 예쁘다고 칭찬받고 또 책 몇권읽고 양치질을 시켰는데 이웃집 미끄럼대에서 떨어져 입에서 피가나던 것이 또 터져 피가 철철 흐르고 애 다친게 안쓰러운 남편 내게 혀를 끌끌 차고, 미안해서 책 몇권 더 읽어주고 잠자리에 뉘었는데 금새 곯아떨어졌다. 

그리고나서 알라딘에 접속했는데 좀 전에 우리집 앞에서 계단에서 후다닥 뛰어내려오는 소리와 함께 어떤 아가씨가 '살려달라고' 소리를 치고 거친 남자의 목소리 들리고 나도 모르게 현관으로 뛰쳐나갔는데 남편은 문앞에서 바깥정세만 살피려고하고 내가 나가보려고 하니 남편이 대신 나갔고 '아저씨, 살려주세요. 모르는 아저씨에요. 저 죽이려고해요.' 그말에 나도 너무 놀라서 112에 신고해서 얼른 오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바깥 상황이, 

아버지와 딸이 싸우는 상황......아버지는 왜 자꾸 집을 나가려고 하느냐며 너 같은건 맞아야된다고 욕설과 함께 자꾸 때리려고 하고, 딸은 왜 자꾸 때리냐며 악을 쓰고 대들고, 아버지와 딸이 막무가내로 무섭게 싸우는데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남편때문에 문앞에 서서 들으면서도 아버지에게 너무 막말하는 아가씨에게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아저씨도 딸을 왜 그리 막대하냐고, 참견아닌 참견을 하며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옆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나오셔서 말리시는데 우리집앞에 여기저기 핏자국이 있고 살려달라는 아가씨와 도저히 나가게 할 수 없다는 아저씨, 남편도 옆집 아저씨도 결국 말리다가 질질 끌려가는 아가씨 어쩌지 못하고 10층으로 올려보냈다는데 경찰들은 그래도 오지 않다가 남편이 보기싫다며 핏자국 다 닦아내고나니 그제서야 왔는데 우리집앞에서는 이미 상황 종료된 것을 뒤늦게와서 어쩌겠다는 건지, 10층으로 올라가겠다고 올라갔는데 그 뒤의 상황은 알 수가 없다.  

하도 세상이 뒤숭숭하고 요즘처럼 여자피해자가 많은 세상에서 젊은 아가씨의 비명과 함께 들려온 '살려주세요'한마디는 너무도 무섭고 두려웠지만 가해자의 보복이 두렵진 않았던가 경찰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나도 참 평범한 인간은 아닌가보다. 스키너의 심리학상자에서 보았던 거리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올때 사람들의 반응은 커튼을 내리거나 모르는척 지켜보는 것인데 남편 말대로 난 참 겁이 없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버지 손에 질질 끌려 올라갔다는 그 아가씨, 어릴때부터 줄곧 맞았다고 왜 때리냐고 아버지랑 다시는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었는데 옆집 아저씨와 남편은 남자이기 때문일까? 그 아가씨의 절규보다는 다 큰 딸이 밤마다 외박하고 싸돌아다니는데 때리지 않을 아버지가 어디있겠냐는 아버지의 말이 더 일리있다는 듯이 집안 싸움은 집안에서 해결해야한다고 마무리 지어버리는데 겁도나고 무섭기도하고 세상이 참 각박하구나 생각도 들고, 그 아가씨 멀쩡할까 싶기도 하고 이래저래 오늘도 잠들기 어려울 것만 같다.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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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9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0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3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9-03-1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뒤숭숭 그 자체군요. ㅜㅜ

꿈꾸는섬 2009-03-20 21:3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ㅠ.ㅠ

2009-03-19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09-03-20 21:31   좋아요 0 | URL
단순한 가정폭력이 아닌 것 같아 가슴 졸였는데 그날 밤 이후 안 좋은 소식이 없는 걸로 보아서는 잘 마무리가 되었나봅니다.

세실 2009-03-1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준이가 유치원 생활 낯설어 하고 유난히 엄마의 품이 좋은가 봅니다.
곧 적응 잘하겠지요.
왠지 그 아가씨가 불쌍해 보이는....집 나가려고 하는것도 다 이유가 있겠죠. 에휴.

꿈꾸는섬 2009-03-20 21:40   좋아요 0 | URL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긴한데 아직도 유치원 문앞에만 서면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네요. 그래도 들어가서는 활동도 잘 하고 그런다네요. 집에 돌아와서도 잘 지낸 얘기하고 요새는 안가겠단 얘긴 안하더라구요.
그 아가씨 걱정되서 잠을 잘 못잤는데 남편이 그 아가씨가 아버지 속 꽤나 썩였을것 같다네요.

무해한모리군 2009-03-2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준이가 어서 빨리 재미를 붙여야할텐데 걱정이네요.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사람이 짐승도 아닌데 말 안듣는다고 왜 때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짐승도 때리면 안되지요 --)

꿈꾸는섬 2009-03-20 21:41   좋아요 0 | URL
점점 재미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휘모리님 말씀에 뜨끔, 오늘 현준이랑 현수랑 하도 말을 안듣고 싸워서 매를 들었거든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