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도서관에 들러 <나는 왜 쓰는가>를 빌려왔다. 비는 내리고 아이들은 아프다고 집에 있고 하루종일 집안에서 뒹굴거리다보니 집안은 엉망이고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짬을 내어 잠깐씩 읽어가는데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 술술 읽혔다. 그의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일까. 

나는, 요새, 뭐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아니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같다. 생각은 끝없이 펼쳐지는데 막상 그 생각에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나는 왜 쓰는가, 300쪽 중)

 
   

 나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을 할 자신이 아직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 것 같다. 좋은 글을 써내지 못하는 것이. 

나는, 요새, 부질없는 생각들로 우울해하기도 한다. 우울해할틈도없이 바빴으면 싶지만 아주 가끔씩 대체 뭐하며 사는 것이냐...라는 나를 향한 질문으로 시작해서 결국 우울함으로 끝맺음을 하려고 한다. 이건 나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 아이들을 향해 웃어주고,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힘을 주어야하는 것이 나인데, 어째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는 것에 집착해서 웃음을 걷어내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비는 끊임없이 내리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먼저 제기하면서부터 문제는 시작되는 것 같다. 모든 것은 비때문이라고, 비의 탓으로 돌려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결국 그건 누구의 탓이 아니라, 나의 탓이라는 걸 다시 또 깨달으며 우울함은 배가 된다. 

나는 왜 쓰는가, 나의 외로움과 우울함을 견뎌내기 위해서 쓰고 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조차 슬픔으로 만들어버리는 나의 외로움과 우울함, 그것을 이겨내야하기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많은 것을 이해해줄 것 같았던 남편은 "내 일에 지장없게 행동해."하고 말하고, "엄마때문에 힘들어."하고 말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외롭고 우울한 건 당연한 것일테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한동안 쉬었던 독서논술수업을 다시 시작했다. 남편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아이들을 맡기게 되었고, 그 날은 저녁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다. 그 탓에 남편도 아이들도 심통이 났다. 가족들에게 폐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뿐인듯, 서로가 힘든 시간이 된 것 같다.  

나는 대체.....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해야할 일과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끊임없이 질문이 생겨난다.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일, 남편의 내조를 잘 하는 일,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데 내게도 분명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서두르는 것도 아닌데, 나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노력하고 있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은 것 같다. 

나는 왜 쓰는가,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서, 나를 키우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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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16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픈거 다 나으셨나요? 아이들 수족구는 어때요?

고민하시는 모습이 꿈꾸는 모습과 비슷하네요. 아름다와요.
끊임없는 질문, 요즘 저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질문이라도 하는게 어디예요,
어디 바닷가 깊은 속에 푹 빠져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하늘로 떠오르려 노력하는게 어디냐고 자화자찬한답니다.
꿈섬님......... 아름다우세요.

꿈꾸는섬 2011-07-18 10:00   좋아요 0 | URL
아이들 다 나아서 유치원에 보냈어요.^^

예쁘게 봐주시는 마녀고양이님, 너무 고마워요.^^

2011-07-16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8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1-07-1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하게 잘 지내시죠?
장마 피해는 없으신지... 더위조심하세요^^

꿈꾸는섬 2011-07-18 10:03   좋아요 0 | URL
후애님 한국 들어오셔서 참 좋으시겠어요.
근데 많이 아프셨다면서요. 지금은 좀 나으셨나요?

세실 2011-07-16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조를 잘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각자의 삶이 있는 거니까요.
전 당당히 요구합니다. 아이들에게도, 옆지기에게도....

더위에 지치고, 가끔은 삶에 지칠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긍정적으로 나를 위로해야해요.
힘내세요. 꿈꾸는섬님.


꿈꾸는섬 2011-07-18 10:04   좋아요 0 | URL
내조를 잘하려고 애쓰지 않을게요.ㅎㅎ
저도 당당히 요구하려는데 자꾸만 부딪히게 되네요.

긍정적으로 나를 위로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좋은 말씀 고마워요.^^

비로그인 2011-07-16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의 소통을 위해서, 나를 키우기 위해서 쓴다! ^^
책 읽는 것도, 어쩌면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비 많이 오는데, 피해 없으시길욥!!

꿈꾸는섬 2011-07-18 10:06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오랜만이에요.^^

세상의 소통, 나를 키우는 일, 글쓰기와 책읽기를 통해 해나가야겠죠.

장마가 끝이 난듯 해가 쨍쨍하네요. 우울한 마음도 밝아지려고 해요. 그게 비때문이었나봐요.ㅎㅎ

양철나무꾼 2011-07-1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조라...
언제 꿈섬님이랑 소주잔 앞에 두고 열띤 토론을 벌여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야말로 내조란 말만 나오면 깨갱하는 1人이니까 말이죠.

자기를 계발하고,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삶이야말로...
인생이란 긴 여정에서 봤을때 제대로 된 내조에 한걸음 가까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꿈꾸는섬 2011-07-18 10:07   좋아요 0 | URL
내조..저 그런 거 싫어요.ㅜㅜ

자기를 계발하고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삶, 그게 제가 바라는 삶이에요.^^ 그게 내조에 한걸음 가까이 가는 거군요. 기억할게요.^^

blanca 2011-07-16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섬님 지금 페이퍼는 마치 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딱 그래요. 만성 우울증이 왔답니다. 엄마,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나, 며느리, 아내, 딸. 이 경계들을 넘나드는 게 참 힘드네요. 비는 쏟아지고. 요새는 자꾸 자신이 작아지네요.

꿈꾸는섬 2011-07-18 10:09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도 요새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고 계시군요.ㅜㅜ
저도 자꾸 자신없어하는 제 모습을 발견한다죠. 너무 속상하고 슬프고 마음 아파요.ㅜㅜ
'나'를 좀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블랑카님도 힘내세요.^^

프레이야 2011-07-16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왜 쓰는가? 고민중 ^^
누군가 그랬어요. 글을 쓸 필요 없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래도 그럼에도 글을 쓰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 아닐까요? ^^
오늘 무지 더워요. 이제 더 더울건데 벌써 이런 말이 자꾸 나오네요.ㅠ
여름 잘 지내세요, 꿈섬님.

꿈꾸는섬 2011-07-18 10:10   좋아요 0 | URL
글을 쓸 필요없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군요. 하지만 글을 쓸 수 있는게 더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에 공감해요.^^
여기도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해요. 무더운 여름 건강하세요.^^

순오기 2011-07-17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할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여자들의 삶~~~ 그냥 나는 나일뿐이라고 가끔은 오기도 부리며 살자고요.^^

꿈꾸는섬 2011-07-18 10:10   좋아요 0 | URL
역할이 너무 많단 생각을 해요. 그러다보니 나를 찾기가 더 힘든 것 같구요.
나는 나일뿐...너무 좋은 말이에요.^^ 기억해둘게요. 순오기님.

승주나무 2011-07-18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수영 산문집 이후로 정말 혼을 쏙 빼놓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김수영 산문집보다 두 배로 게으르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산문은 게으르게 읽어야 한다는 진리가 있습죠^^)

글에 마음을 태우고 내 생각도 태우고... 그래서 제가 페이퍼를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꿈섬님 글을 읽고 있으니^^

꿈꾸는섬 2011-07-18 10:12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 저도 엄청 게으르게 천천히 읽었답니다. 정말 좋은 책이었어요.^^
책을 읽으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끊임없이 했거든요.^^

2011-07-18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8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망찬샘 2011-07-20 0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어려서 더욱 그러한 어려움이 닥치는 거예요. 아이들 어릴 때는 그래서 내가 포기하는 거야~ 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자라고 보니, 제가 게을렀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아이들 어릴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았다는 생각도 들고~ 아이들 어릴 때는 그 때문에 하지 못 하는 많은 것들이 더욱 아쉽고 그렇더라구요. 그래도 찬이 1학년 들어가니까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껌처럼 달라붙어 있더니 이제는 잘 떨어지고... 배는 편해진 것 같아요. 꿈섬님, 좀 더 영차영차 힘내세요. ^^

꿈꾸는섬 2011-07-21 12:27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있으니 기다려야겠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제 시간이 점점 많아지겠죠.^^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