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를 날려줘 어른을 위한 동화 20
이윤학 지음, 엄택수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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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청소년 도서쯤으로 생각했다.  풍기는 분위기는 자유롭게 훨훨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희망의 느낌을 주는 소설인걸로 짐작했더랬다.  물론, 늘 짐작이 빗나가지만 말이다.

콩새라는 아이는 엄마, 아빠, 오빠와 떨어져 산다.  어느날은 포항 이모집에 살기도 하고 어느날은 외할머니댁, 그도 아니면 친가의 어느 친적집에 맡겨져 산다.  콩새에게 좋은 아빠지만 엄마에게는 제대로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하는 아빠덕에 엄마는 오빠 한명 키우기만으로도 벅찬것이다.  그래서, 늘 아들인 오빠는 데리고 살지만 어린콩새는 친적집에 맡기고 만다.  그래서 콩새는 늘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게 꿈이자 희망이다.  엄마가 보고싶고, 오빠가 보고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외할머니댁에 살면 힘들지는 않다.  자신을 다정하게 대해주는 외할머니가 계시고, 말없고 무서운거 같지만 알고보면 콩새가 입학할때를 대비해 선물을 준비해 놓는 외삼촌이 있다.  그래서,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  하지만, 다른 친적집에는 사촌언니의 괴롭힘이 있고, 친척들의 눈칫밥이 있다.  아직 어린 콩새에게는 힘든일이 아닐수 없었다.

내내 콩새가 이리저리 쫓기듯 사는 얘기들이 실려있지만, 어디에도 콩새의 본명은 거론되지 않는다.  콩새는 단지 새처럼 작다고, 콩처럼 작다고 아이들이 지어준 별명일 뿐이다.  아마도 그래서 제목이 "내새를 날려줘"인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아픔에서 적당한 희망을 주는 소설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적당함보다 유치스런 느낌이 드는건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내내 아이의 시선으로 쓰여지는 글들이 조금은 유치했다.  마음의 희망을 갖는 이야기가 그래서 그다지 와 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콩새의 삶이 안타깝지만 그뿐이다.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랄까?  이제는 이런 어려운 시대의 글들이 와닿치 않는 시대가 돼 버린건지, 작가의 글이 와 닿치 않는건지 모르겠다.  후자 쪽에 좀더 무게가 실리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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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메이 아줌마 (양장)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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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그리운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곁에 있지만 늘 보고프고 그리운 사람이 있을수도 있고, 매일 볼수 없어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 기억해 더듬어 내자면 그 한사람 한사람들과의 추억때문에 미소가 지어지기도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그 상대는 연인이 될수도 있고, 가족이 될수도 있다.  지금 현재로서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연인들의 기억보다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더 커져간다.  그것은 그만큼의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한 가정을 이루고 살다보니,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책은 마치 한권을 읽고 났지만 영화 한편을 본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잔잔함 속에서 터져나오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소박하지만 그런 평면적인 이야기의 흐름에서 글을 써 냈다는 사실에 탄복하기도 한다.  
가족이 없이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어느날 메이아줌마와 그의 남편 눈에 들어온 소녀.  예닐곱살에 그들의 품에 안긴 소녀는 그들에게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물론, 그 소녀에게도 그들과의 만남은 행운이자 행복 그 자체였다.  자신을 위해 울고 웃는 아줌마와 아저씨의 사랑만으로도 소녀는 아무것도 필요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행복을 시기한 하늘의 장난일까?  메이아줌마가 아저씨와 소녀의 곁을 떠난다.  메이아줌마를 잃은 아저씨는 소녀가 학교가는 준비도 도와주지 않고 밥 먹는 것도 챙겨주지 않을 정도로 멍한 시선만을 지닌채 살아간다.  소녀도 메이아줌마가 사무치게 그립지만 아저씨를 그냥두다간 더 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  그러던중 자신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동네친구가 아저씨와 생각을 같이 하면서 친구가 된다.  서로간에 말도 안되는 것들에 진지하게 대화를 하기도 하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날 영적인 교감을 한다는 목사의 기사를 읽게된 아저씨는 죽은 메이 아줌마와 교감하기 위해 소년, 소녀와 목사를 만나려고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것은 목사가 아니라 목사의 조카뿐 목사는 이미 세상을 등지고 없었다.  그때 충격을 받은 아저씨의 모습이란......  소녀는 아저씨의 허무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저씨처럼 넋놓고 있자니, 모든일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게다가 자신마져 넋놓고 있다면 아저씨가 어떻게 될것만 같다.  그러나, 소녀는 알고있다.  이모든 사실들을 자신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다는 걸.

어느 순간 소녀가 목놓아 울어버리는 대목이 있다.  아무말도 없이 거의 반나절을 꼬박 엉엉 울어버리는 소녀를 보고 그제서야 아저씨는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이유없는 소녀의 울음에 그저 마음만 전해주는 것이다.  소녀가 우는 장면에서는 나 조차도 엄청나게 눈물이 쏟아질 뻔 했을 정도로 책 곳곳에는 메이 아줌마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나 있다.  어느 곳 어느 장소, 메이 아줌마와의 추억이 없는 곳이 없으며, 모든것이 메이아줌마와 연결된 소녀와 아저씨의 삶은 그야말로 메이 아줌마와 함께 사라져 버린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메이아줌마만 그리고 살수는 없지않은가.  어찌보면 소녀가 아저씨보다도 더 현실적이고 강한 사람이었던거 같다.  아내를 잃고 멍해져 버린 아저씨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아저씨의 모습을 바라봐야했던 소녀의 마음은 얼마나 더 허하고 멍했을까?  어린나이에 감당할수 없는 일들을 너무나도 많이 겪은 소녀였지만, 결국 소녀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메이아줌마에 대한 그리움만은 소녀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그 울음을 통해 아줌마에게 하고자 하는 얘기들과 그리움을 몽땅 털어놓은 소녀는 아저씨와 다시금 웃을 준비를 한다.  그리운 사람이지만 늘 보고픈 사람이지만 메이아줌마에 모든것을 걸고 살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 처럼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엄청나게 묻어나는 책을 여즉 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리움에 대한 절절함이 완벽하게 녹아든 작품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생전 알지도 못하는 메이 아줌마가 나도 그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메이아줌마를 그리는 소녀와 아저씨, 힘내시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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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린이용) 생각하는 숲 1
셸 실버스타인 지음 / 시공주니어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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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그렇다.  읽지 않아도 읽은 느낌이 들고, 읽을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든다.  원체 많이 이야기를 들었던 책이라 읽은 느낌이 늘 드는것이고, 읽을때마다 그 감동이 늘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이 들 터였다.  나역시 이책을 만나기 전인데도 워낙 얘기를 많이 들었던 책이라 예전에도 봐온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 이책은 그동안 읽었었는데 소장하고픈 욕심이 생겨 이번에 다시 구매해서 읽었다.  새로 읽어도 읽어도 또다른 맛이 나는 책이랄까.

한 시대의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듯도 하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받는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이 반성되기도 하고, 그도 저도 아니면 그저 무조건 주는 이 나무와 같은 인간이 되어야한다는 반성을 하게 되기도 한다.  
처음 나무와 인간의 관계는 아이가 뛰어노는 공간에서 부터 시작한다.  아이는 나무위를 오르기도 하고 나무에 기대 잠들기도 하면서 자라고 자란다.  늘 자신보다는 아이를 생각하는 나무는 아이에게 뭔가를 제공하고 있다.  놀 공간에서부터 하다못해 그늘까지......  어느때는 과일을 주기도 하고 마지막에 줄 것이 없을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준다.  그리고, 아이가 나이가 들어 자신에게 왔을땐 아이가 앉아서 쉴 나무 그루터기가 되어준다.  이처럼 앞뒤 아무것도 재지않고 아이에게 주기만 하는 나무.  읽으면 읽을수록 감동이 커서 마음 한 구석에 뭔가 쿵하고 자리 잡은 느낌이다.  자신의 모든것을 주고도 그 마지막 하나까지 주기를 아까워 하지않고 주지못한 마음에 안타까워하는 나무를 볼때 나는 왜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나 하는 나의 그릇작음을 한탄하게 되기까지 한다.  

비록 나무로 비유되어 있지만, 웬지 그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나무 그대로가 아닌 우리 주위의 인물중 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부모님.  부모님의 사랑처럼 그렇게 나무는 끊임없이 베풀고 주기만 하는 것이다.  웬지 자신의 모든것을 걸고 사랑하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아닌 나무에게서 인간보다 더한 숭고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인간은 한없이 사악한 존재로 느껴지는 폐단이 좀 있긴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아낌없이 퍼 줄 수 있는 이 나무처럼 나도 오랫만에 어린아이처럼 반성을 깊이 깊이 해본다.  어릴적에는 무던히도 이런 훌륭한 인물이 되어야겠다고 반성하고 생각했으면서 커서는 이런 반성을 제대로 해본적이 없다.  그런데, 오랫만에 그런 생각이 든다.  나역시도 이렇게 아낌없이 퍼줄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반성을 위한 독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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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끽연자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8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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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츠이 야스타카를 얼마전에 처음 알게되고, 그의 글에 대한 기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차에 이책을 만났다.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인상적이었지만, 작가의 이름을 알기전까진 일단 내 책꽂이에서 자리만 차지하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발견한 이름 츠츠이 야스타카.  호시신이치와 버금가는 번뜩이는 기지와 재치가 돋보이는 작가가 아니던가.  단, 조금의 아쉬움이 있다면 이책이 단편이라는 이유다.  짧은 글에 대한 깊이보다는 긴글에서 오는 감동이나 깊이를 좋아하는터라 단편이라면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한번쯤은 늘 망설이게 되는게 내 책읽기의 얕음이다.  아쉬움이 조금 남긴하지만, 그래도 다시금 그의 글을 만난다는 기대는 그런 망설임을 반감시켜주었다.  어쨌거나 츠츠이야스타카가 아니던가.

많은 단편들이 나를 미소짓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했지만, 역시나 가장 기억에 남고 생각이 깊었던건 책 제목 그대로인 "최후의 끽연자"였다.  웬지 표지에서도 깊고 깊은 골초를 연상시키는 아저씨의 등장이 범상치 않은 느낌을 주긴했지만, 내용을 읽고 나서는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고나 할까.
작가에게 어느날 담배를 피지못하는 금연령이 내려진다면?  물론, 담배를 피우지 않은 작가들도 많치만, 웬지 작가하면 깊고 깊은 담배한모금쯤은 피울거 같은 느낌이 든다.  깊은 내면에서 글을 한자한자 써내는 작가들에게 담배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기쁨같은 존재일것만 같다.  누구나 다 알듯 담배가 치명적이라는건  분명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세상 모두에게 내려진 금연.  하지만 작가는 코웃음을 친다.  금연에 대한 결심과 일들이 한두번도 아니고, 대대적으로 국가에서 금연을 시행하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금연은 웬지 쉽게 끝나는 사안이 아니었다.  국가적으로 금연을 하지 않는 자들은 세상에 발을 붙일수도 없을뿐더러 중대 죄인으로 취급받는 사태까지 가는것이다.  애연가로서의 삶과 주위에 공공연이 금연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던 작가는 대역죄인에 몰리게 되면서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세상 모든이들이 중죄인이 되기싫어 금연을 시작하지만, 그는 끝까지 애연가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남은 담배들을 입에 물고 위기의 상황에 몰리게 되는데......

과연 한편의 짤막한 단편에서 마져도 나는 그의 비틀어치는 블랙코메디의 맛을 엄청나게 봐버렸다.  담배피는자가 범죄자로 인식되는 사회.  물론, 지금도 그렇게 인식되고 있지만, 국가적으로 대역죄인 취급을 받지는 않는다.  단지 권장되어지는 일일뿐이다.  금연 위반에 벌금을 물리지만 죄인은 아닌 상황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그런 애연가들에게 극단을 제시하고 있었다.  살인자보다도 더 무섭게 취급되는 상황인것이다.  물론, 간접흡연 또한 살인에 이른다고 볼때 그건 어쩌면 미래에서 일어날 법한, 허구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닌 사실적인 지금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먼 미래가 아니라 곧 닥칠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그의 통찰력이 무섭기까지 하다.  게다가 그렇게 깊이까지 금연에 대한, 애연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못한터라 이 책이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새롭게 와닿는지도 모른다.  최후의 끽연자, 그리고 표지의 인물, 그런데 그 사람이 웬지 작가 자신인거 같은 느낌은 나혼자 드는 생각일까?  이책을 쓴 츠츠이 야스타카 역시 엄청난 애연가 일거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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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 제41회 일본 문예상 수상작
야마자키 나오코라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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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범상치 않은것이 이책의 매력이다.  타인의 섹스를 누가 비웃었단 말인가.  기실 따지고보면 세상 사람들이 다른이의 섹스에 호기심은 있으되, 원체 은밀한 얘기이기에 비웃을 수도없고, 깊이 파고들수도 없다.  그런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은 웬지 모를 도발이 느껴졌다.  그러고보면 내가 아닌 다른사람의 생활에 대해 조금은 비웃었었는지도 모르겠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비웃고 시작한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의미파악과 나의 반성을 하고 들어가기에 앞서 솔직히 이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이책의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있다.  늘 책 읽기를 겉으로 휘휘 거리고 마는 나는 짧은 지식과 얕은 알음으로 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적이 허다하다.  내가 생각하는 대충의 느낌만으로 책을 읽어나가기에 이번에도 읽긴 읽었으되 저자가 의도하는 바나 책 제목이나 연결이 되지 않고 겉돌고만 있다.

미술학교 선생님과 제자.  일단 두사람의 관계도만을 설명했을때 벌써 부적합한 단어가 떠오른다.  게다가 그 관계가 지금의 책 제목과 매치가 되면 더더욱 상상해서도 안되며,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 버린 사실에 경악한다.  일반적으로 선생님과 제자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나버리면 부도덕이 그야말로 하늘을 치솟고 책 역시도 제대로 된 책으로 대접받기 어렵다.  그런데도 참 이상스럽게도 나는 이책을 자연스럽게 읽어버렸다.  이미 너무도 흔한 소재로 인식되어져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정도가 되어버렸단 말인가?  어쨌거나 선생님과 제자사이로 규정짓고 읽어버리면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선생님의 모델이 되기위해 작업실을 드나들다 불륜에 이르고, 선생님의 남편까지 우연히 부딪혀 만나지만 그들이 더럽다거나 혐오스럽다는 느낌은 없다.  선생님의 남편 또한 자연스레 모든걸 받아들이듯이 이소설은 그런 느낌을 지낸채 남자주인공의 시선을 따른다.  그들의 관계가 지속될순 없지만 어느한순간 남편에게 돌아가 버린 선생님으로 인해 남자주인공은 그녀를 찾아헤맨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갑작스런 그녀의 심경변화가 궁금해진다. 

그들의 만남이 부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글에서는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런 저자로 인해 나까지도 그둘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들의 만남을 비웃지 않치만, 역시나 이성적으로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도덕 부도덕의 의미를 벗어던지고 이책은 그저 담담히 서술되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여전히 제목과 내용의 속뜻을 이해못하고 있다.  그들의 사랑을 비웃지 말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책 제목에 따라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는것이다.  그들의 사랑을 비웃지 않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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