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활에서 두 가지 큰 일이 마무리가 되면서 내가 결심했던 가장 첫 번째 일. 조깅을 시작했다.
어제 집에 돌아와서 사실은 씻고 일찍 자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며.. 결심과 함께 며칠 전에 산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기분전환을 위해 엄청 튀는 핑크빛 운동복이다. ㅋㅋㅋ) 운동화를 신고 집 앞에 있는 호수공원으로 나갔다. 많은 사람이 있는 La Festa를 지나.. 육교를 건너자 곧 한적.. 할 줄 알았던 호수공원이 나왔다.
주말이라 그런지 8시 반이고, 해도 졌는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래도 모처럼 나온 거고, 대단한 결심으로 나온 것이기에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음, 난 역시 alive 하고, attractive해! 이렇게 나를 위해서 조깅도 하고! 멋져!' ㅋㅋㅋ 속으로 생각하면서 정말 신나게 달렸다. 기분도 상쾌하고 몸도 가볍고.. 정말 기분 좋았다! 뭐든지 다 잘 될 것만 같은 막연한 희망이 생겼다.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말 소리가 흩어지며 들렸다.
와이프랑 같이 산책나온 아저씨의..'저렇게.. 달려야 돼..'
친구들과 수다떨며 지나가는 어떤 여학생..'우리도 조깅을 하는 거야.. '
엄마, 동생이랑 같이 산책하는 꼬마의...'엄마, 나 키 많이 컸지?'
..
문득.
난 이제 더이상 키도 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울컥했다. 이렇게 열심히 달리고, 살아가고는 있는데, 난 이제 키만 안 크는게 아니라 모든 게 정지해 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에 갑자기 속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달리다, 걷다 보니 호수공원의 한 쪽 끝에 다다랐다.
돌아서 반대방향-호수 건너편으로 달리다 보니 내가 나온 고등학교의 교복도 보였다.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앗, 우리 학교 교복이네!!'
쭉 가다 보니. 하나 둘이 아닌것이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마침 야외 극장에서 우리 고등학교 합창부(TAB)의 정기 공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와.. 밀려드는 추억들.. 우연치고는 너무 신기했다.
또 걷다보니 다른 한 쪽의 공연장에는 아주 제대로된 세트를 차려놓고.. 아마도 무슨 방송을 하기 위한 것인 듯 했다. 알고보니 살아있는 건 내가 아니라 호수공원이었다.
그래도 모처럼, 조깅하면서 정말 많은 걸 느꼈다. 나도 살아있다는 상쾌함 한 조각,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 한 조각, 고교시절의 풋설은 사랑 한 조각. 머리를 흩날리는 시원한 바람 한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