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t
 

  오랜만에 군대에 간 학교 후배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해군 군악대에 들어간지 꽤 됐는데(7월에 제대란다), 팔자도 좋게 3주만에 휴가가 있다니... 얼마나 군 생활이 하기 싫을까.

  군대에 가면 그렇게 옛날 친구들이나 만나서 놀던 사람들이 생각나다던데, 아마 그랬는지, 여태 연락 한번 없더니만 이번엔 내 생각도 났나부다.

  암튼 저녁먹고 같이 Hollys가서 차 마시며 수다 떨다가 영화 이야기가 나와서 영화나 보러가자며 극장에 들어갔다. 사실.. 볼 게 없더라. <하울..>이나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은.. 내가 아마 미래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절대 <하울..>을 선택했을 꺼다. 이거볼까 저거 볼까 하다가 동생이 이 영화가 무슨 2차 대전을 다른 시각으로 본 거라나.. 어디서 헛소문을 듣고 와서는..ㅡㅡ;

  내가 아무리 만화 영화나, 상상력이 넘치는 내용을 좋아한다지만, 이건 아니었다. 황당하게 생긴 복고풍 로봇들과 딱달라붙는 치마에 높이가 1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하이힐을 신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여기자. 엄청 구리구리하게 생긴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엄청 미래적으로 생긴 비행기들을 따돌리는 그 이름도 찬란한 Sky Captain. (생기긴 잘생겼더라.)

  아무때고, 어디서건 나타나는 숨어있는 조력자들의 몫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무전도 안 통하는데 어디서 슝 나타나서 단번에 명령을 취소하는가 하면 다른 군인들은 다 죽는데 그들은 살아남아 '스카이 캡틴'에게 힌트를 준다. 모든 비행기는 물 속에서도 잠수함처럼 살아남는다. 모든 출연진은 수압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공중에서 아무리 빙빙 돌아도, 절대 토악질을 해대지 않는다. 아무도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아. 우리의 스카이 캡틴은 작은 양주 잔에 하얀 위장약을 따라 마시더라. 웩)

  모든 문제는 어이없이 싱겁게 풀리고, 놀래주기 위해 꾸민듯한 모든 설정은 어설프도 하나도 놀랍지 않다. 다만 한 박자 뒤에 느낄 수 있을 뿐이다. "ㅋㄷㅋㄷ 아마도 이 장면에서 놀래켜 주고 싶었던 모양이긴 한데.."

고3때 수능이 끝나고 정말이지 시간이 500배 쯤으로 늘어난 것처럼 안 가는 듯 느껴질 때, 학교에서는 한 술 더 떠서 여기저기, 이것저것 시시하고 재미없는 이벤트를 꾸며댄다. 단체로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 롯데월드에 그 많은 고3학생들을 데려가 출석체크를 해대며 몰아 넣는 식의 이벤트말이다.  그때, 이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를 본 적이 있으니 바로 그 영화의 제목은 <스타쉽 트루퍼스> 같지도 않은 로봇들과 얼토당토 않은 로맨스. 바보 같은 외계인들과 시시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 이게 끝이야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결말.

왜. 왜. 왜.

왜 이런 영화를 만드는 건지.. 이런 건 민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충격을 정화하기 위해 동생이랑 차후에 <하울..>을 한 번 더 보기로 약속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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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5-01-2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그렇게 충격적이었군요. 기네스 펠트로 좋아하는 배우인데 조금 더 멋진 영화에서 만나고 싶어서 이 영화는 안 봤어요. 님, 오랜만에 서재에 왔어요. 그 동안 정신없이 바쁘고 일도 많아서요. 주말은 조금 여유 있게 보내려고 해요. 님도 편안한 주말 되세요.

Hanna 2005-01-22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밀밭님 정말 오랜만에 발걸음을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 이 영화.. 맞아요. 좀 충격적이죠. 저도 기네스 펠트로 좋아하는데.. 사실 예쁘긴 예뻐요. 그리고 어떤 특수 처리를 했는지 화면이 굉장히 부드러워보이면서 펠트로의 빨간 입술이 정말 예쁘게 보이지요. 하지만.. 무슨 영화를 .. 여배우 입술 보려고 볼 순 없잖아요. 그쵸? 보지 마세요. ㅡㅡ^
편안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 박카스가 힘이 되어 드리고 싶은 마음, 텔레파시로 전해 졌나요? 훗.
 
존 맥스웰의 관계의 기술
존 C. 맥스웰 지음, 황을호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참 진도가 안 나가는 책이었다.  관계의 기술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 관계에 과연 기술이 필요한 것인지 말이다. 차라리 목회의 기술이라고 하던지.. 사실, 목회도 나는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모든 것이 어긋난다.

기업가들을 위한 책이라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많고, 주장은 지극히 일반적이다. (좋은 태도를 가지라, 격려하라, 뭐.. 그런 종류의) 일반적인 이야기들. 목사님들을 위한 책이라면 이 책은 더더욱 부적절하다. 이 책에는 은혜란 없고, 성경에 나와 있는 원리들을 찾기 보다는 어디서 주워들은 원리들을 여기저기 끼워맞춰 놓은 것 같은 조각 조각 퍼즐같다.

각 문단은 뭔가 부족한 논지들로, 깊이 있게 논의된 부분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모든 예화들은 주장들에 어긋나 있고, 웃으라고 해 놓았는지는 몰라도, 그다지 웃기지도 않다. 이 글을 추천한 사람들은 이 책에서 저자의 유머에 넘어갔다고 하지만, 뭐가 어떤 유머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간혹 가다가 유익한 것도 있으니, 예화들을 논지와 연결하여 읽지 말고, 따로 따로 보면 다 좋은 말들이요, 기억해야 할 문구들도 눈에 띈다는 점이다. 책을 낼 때는 좀 더 다듬고, 심사 숙고하고, 생각을 많이 해서 냈으면 좋겠다. 겨우 다 읽었다.

리더쉽은 그렇게 계산한다고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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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 연습을 많이  안 하는지.. 많이 해도 이런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쉬운 곡에선 자신감을 보임.

조모씨:  연습을 많이 하지 못하지만, 3개월만에 많이 늘었다. 그러나 본인은 정작 만족 못함. (내가 닥달해서 더 안 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솔직함이 부럽다. 나도 음악에 대해, 레슨 내용에 대해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 여기가 안된다구요~!!"

준하: 엄지 손가락을 세워서 측면으로 치는 연습. 핑거링의 원리, 악보내 다이내믹 살리는 법. 어깨내리고 연주할 것.

윤성: 정말 많이 좋아짐 스케일의 레가토에 대해 부담없이 이해했음. (손가락을 그려주고 건반위에서 연결해서 굴리라고 표현했더니 한 번이 알아들음.. -기특한 놈) 손목에 힘 많이 빠짐

혜진: 리듬/박자에 대한 개념 미흡. 템포가 일정하지 않음 스케일은 완전히 소화해 낸듯 말끔하게 잘 침. 응용력이 좀 부족한 듯. 마음 속의 노래가 부족.

민정: 콩쿨 1달 앞두고 곡을 바꾸다. ㅡㅡ;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손이 작고 자신감이 부족하여 소리가 찰지게 나지 않는 것 같다. 모차르트의 소나타가 아직은 버거운 듯. 터치가 전반적으로 가볍다. 날라간다.

윤아: 아직 악보를 잘 못 읽음. 반복 연습에 대한 부담은 별로 없는 듯. 앞으로 연습량을 더 늘려야겠다. (바이엘 2권 준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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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과 소피

 

 

 

 상상력이란 늘 즐겁다. 나는 차가 꽉 막혀있는 버스안에 있을 때, 지각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늘 버스위를 날아가는 상상을 하곤 했던 것 같다.

영화가 처음 시작했을 때 사실은 실망했었다. 여태까지 봐왔던 디즈니등 헐리우드식(?)의 애니와는 전혀 다른.. 마치 <빨간 머리 앤>을 연상시키는 간소? 하면서도 대충 그린 것 같은 그래픽과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대충 그린 것 같은 주인공들의 외모. 에이.. 몇 장 안 그렸구나. ㅋㅋ  역시 사람은 어떤 것에든 반복하며 익숙해지면서 고정관념에 빠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곧 나의 상상 속에만 살아있던 "날아다니는 남자친구"가 나타나면서 나의 이런 투덜거림은 환성으로 바뀌었다. 더군다나 걸어다니며 삐그덕 삐그덕 혀를 날름거리는 성이란! 놀랍다 놀라워. 난 영화가 시작한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불평했고, 불평한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놀라움과 두근거림으로 하울과 소피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 인간의 간사함이란..^^;)

난 사실 이 애니의 내용이랄지, 감독의 메시지랄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난 다만 내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은 상상력의 세계들이 물이 넘치는 우물에서 물을 길러내는 것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매력적인 소스들에 가슴이 뛰었다.

늘 언제나 하울에겐 익숙하고 낯익은 존재였던 소피가 하울을 만나는 장면은 너무 멋지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렇지 않을까? 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기다리던 사람을 드디어 만난 것이고, 한 사람에게는 전혀 중요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자신에게 우연히, 길에서, 매력적인 연인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하늘을 나는 남자친구라니! 할머니에서 원래의 소피로 변하기 전이라도, 그 때부터 이미 소피의 마음은 할머니가 아닌 꿈많은 소녀로 변해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 하늘을 나는 남자친구라니..ㅡㅡ;)

내가 느낀 많은 것들은 이미 너무나 많은 분들이 좋은 글들을 통해 이야기해주셨고, 나도 깊이 동감하는 바람에 같은 이야기를 또 하기는 좀 뒷북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 사실 이 리뷰를 쓸까 말까 많이 고민했지만, 이제는 이야기를 해도 이미 볼 사람들은 거의 다 봐서 영화 속 장면을 이야기해도 spoiler가 될 위험은 적은 것 같아서 몇자 적기로 했다.

<하울...>을 보며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상상력의 세계는 바로, 손잡이를 돌리면 바뀌는 성이다. 다리가 달린 성이 혓바닥을 날리며(ㅋㅋ) 돌아다니는 것도 놀라운데, 손잡이를 돌리면 바깥 세상이 변한다니. 어쩌면 내 마음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내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손잡이를 돌리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밝아지기도 하고, 전쟁터가 되기도 하며 깊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빠져드는가 하면 의무와 책임으로 가득한 일터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상상력이 그다지 놀랄만한 것도 아닌 듯도 하다. 하지만, 누가 감히 생각해 내겠는가 그런 집을! (그런 집만 있다면.. ^^ 날아다니는 남자친구 데리고 산다)

자신의 꿈을 위해, 자신의 호기심을 위해,  영혼을 팔아 버린 하울을 보면서... 마법이 빠져 쭈그랑 할머니가 되어버린 황야의 마녀를 보면서, 하울을 갖기 위해서 온 세계의 전쟁을 마다않는 왕궁의 마녀를 보면서.. 무엇보다 지켜야 할 것은 역시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세상이 흘러가는 섭리에 자신을 맡기며 받아들이는 지혜도 함께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울 자신과도 같았던 집이 무너짐으로 나는 하울이 죽는 줄만 알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를 구성하는 여러가지는 사실 껍데기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우리의 사회적 위치, 우리의 가정, 내가 이룬 학업, 명예, 돈. 뭐가 되든...

그것이 비록 무너지고 없어지더라도, 혹은 아주아주 조금만 남더라도 우리의 영혼이 살아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살릴 힘만 있다면 우리는 죽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혼이지 그것을 둘러싼 껍데기가 아닌 것이다. 내가,내 영혼이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나의 마음을 지키고 소중히 아껴 줄 소피를 찾는다면 불가능하지만도 않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손잡이를 돌리면 배경이 바뀌며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모든 것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매력적인 하울의 성도 하울의 영혼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아깝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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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어느 시골의사의 이야기

인터넷 어디선가 읽은후 너무 가슴이 찡해 <어느 시골의사의 이야기>를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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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레지던트 일년차 시절이었으니, 이제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일이다, 나는 그당시에도 지금처럼 그만두는 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의업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전공과목을 다른과로 바꾸는 것에 대해 고민했었다), 더우기 이미 나는 그 전년도에도 다른 전공을 선택해서 트레이닝을 받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외과로 전공을 바꾼 전력이 있어서, 만약 또 그랬다가는 사회 부적격자로 낙인이 찍힐까봐 꾹 참고 견디고 있을 때였다.

그만큼 나는 의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사실 이 직업이 내게 가져다준 고(苦)는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나는 26살에 의대를 졸업한 이래, 지금까지 단 한해도 가운을 벗는 상상을 해보지 않은 날이 없었고, 실제 삼년전에는 그것을 실행에 옮겨서 가운을 벗고 육개월 동안 환자를 보는 않은적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지금의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여간 그렇게 고민이 많았던 젊은시절에, 나보다도 더 고민이 많은 환자를 만났다.

그녀는 그때 나이가 20 살 이었다, 그 힘들던 외과 레지던트시절 삼일동안이나 수술실에서 못 나오다가, 삼일만에 겨우 수술실을 나와서 짜장면 한그릇 먹고 막 눈을 붙이려는 순간에, 응급실에서 페이져가 울렸다.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몸은 천근만근인데, 전화를 걸어보니 염산을 마신 환자가 응급실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속으로 "죽으려면 그냥 아무도 안보는데가서 조용히 목을 매지. 염산을 마셔서 나까지 죽이려 드느냐"는 원망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응급실에 내려가보니 상황이 기가 막혔다.

우선 환자 나이가 겨우 20살 이었고. 더 기가 막힌일은 그녀가 임신중이라는 사실 이었다. 그녀는 6개월전에 성폭행을 당했었고. 그후 임신을 해서 혼자서 고민을 하다가, 자살을 하려고 염산을 마신 것 이었다.

사람이 염산을 마시면 그 결과는 그야말로 참혹하다, 먼저 구강 조직이 타버리고, 두번째로는 식도가 녹아 버리는데, 이때의 식도 손상은 무서운 합병증을 초래한다, 그나마 소위 양잿물과 같은 알카리에 입은 손상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이제 일단 염산을 마신 이상 이제는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식도가 다 늘어붙어 버리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살아 남는다 하더라도 평생 음식물을 삼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 눈이 부실만큼 예뻤다, 만 20세의 푸르름을 그대로 간직한 사회 초년병의 그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누군가가 끔찍하게 망쳐 놓은 것이다, 일단 응급조치를 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한 집중 치료를 받은 후, 그나마 생명은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망가져 버린 식도는 이제 어떤 음식물도 통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 2주간은 혈관 주사를 통해서 영양을 공급했지만, 사람이 그렇게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다, 그녀는 입원한지 이주째 되는 날, 수술실로 옮겨졌고 우리는 그 희고 고운 배를 명치끝에서부터 10센티정도를 절개해서 소장에 구멍을 뚫고 소장내로 호스를 집어 넣었다, 그리고 호스의 반대편은 절개한 상처를 통해 밖으로 연결했다, 이제 그녀는 배를 통해 소장으로 연결된 호스로 미음을 투여받으면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수술을 하고나서 상처가 악화되었다, 소장으로 들어가있는 관을 타고 소화액이 바깥으로 흘러 나온 것이다, 강렬한 산도를 가진 소화액은 상처주변의 피부를 녹이기 시작했고, 결국 그녀의 배에 길게 남겨진 칼자국 위에는 소화액이 입힌 화상 같은 커다란 흉터까지 덧붙여졌다.

그녀의 치료는 일년차인 내 담당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녀의 아픈 사정에 깊은 동정심을 가졌었지만, 그 속에는 아마도 "곱고 아름다운 여자아이의 갈라진 운명에" 대한 어떤 특별한 안타까움이 더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치료했고, 아울러 그녀와 친해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내내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치료를 하기위해 상의를 벗겨도,, 벌겋게 부어오른 상처에 소독약을 발라도, 심지어 못먹어서 말라비틀어진 가느다란 팔에 수액공급을 공급하기 위해 컷 다운(피부를 갈라서 혈관을 꺼집어내는 일)을 했을 때에도 그녀는 그야말로 얼음장처럼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심지어, 수술후 삼 주째 되는날 임신중인 아이를 유산시키기 위해 산부인과 분만실로 옮기는 중간에도,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은색 마이마이에 연결된 헤드폰을 귀에 꽂은 채 내내 음악만 듣고 있었다. 결국 정신과에 컨설트를 했고, 나도 주치의로서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그녀는 말을 잃어 버린채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그렇게 두달후 상처가 좋아진 다음 그녀는 배에 호스를 꽂은 채 퇴원했다 나는 결국 그동안 그녀와 친해지는데 실패를 한 것이다. 그녀가 퇴원한 이후에도 나는 한참동안 그녀를 떠 올렸다.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첫 인상과, 나중에 음식을 먹지 못해 창백하게 메말라버린 나중의 모습.그리고 상처받은 사슴처럼 세상으로 향하는 창을 닫아버린 그 안타까운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져서, 내게 상당히 오랫동안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재입원을 했다, 퇴원후 외래에서 진료를 받다가 이제 배안의 호스를 제거하고 식도를 새로 만들어주는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것이다. 이제 그녀의 운명은 바람앞의 등불이 된 것이다. 사람은 호스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으면서 사는데는 한계가 있다, 식물인간처럼 에너지 소모가 전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게 사는데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경우 도리없이 식도를 재건해야 하는데, 그녀처럼 식도가 협착이 되어버린 환자는 협착된 식도 대신에, 목에서 위장까지 연결되는 다른 통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요즘은 좀 다르지만, 그때는 일단 배를 열어서 대장을 일부 짤라낸 다음. 목을 절개해서 식도 입구에 한쪽 끝을 연결하고 다시 다른 쪽 끝은 위나 소장에 연결해 주는 수술을 했다,

그렇게하면 연결된 대장이 식도를 대신해서 음식물을 위까지 운반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술은 대단히 위험한 것 이었다. 당시 내 경험으로는 5명을 수술해서 한명이 살았었고, 교과서적으로도 생존률이 대단히 낮은 수술이었다, 일단 식도와 대장이 연결되면 , 그 두장기의 성질의 차이 때문에 연결부위가 녹아 버리기가 쉬운데, 이 연결부위가 녹으면 가슴속으로 염증이 진행되고,나중에는 가슴에 고름이 차서 어마어마한 결과를 초래한다,

대개 이 경우 환자는 가슴으로, 배로 고름이 흘러 내리고, 그냄새 때문에 사방 20미터에는 사람이 접근이 곤란 할 정도로 몸이 썩어 들어가면서 죽게된다. 이제 그녀가 그 운명의 시험대에 선 것이다, 불과 몇 달만에 그녀는 거의 미이라가 되어 있었다.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산다는 그녀가 그동안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이제 그녀는 그 가냘픈 몸으로 20% 의 확률앞에 혼자 선 것이다. 나는 수술전에 보호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그녀에게도 수술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다만 위험도는 적당히 낮춰서 설명하고 보호자와 본인의 서약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녀는 타인에게, 특히 남자에게는 차갑고 냉정했다,

수술이 시작되었다. 무려 12시간 반에 걸친 대수술 이었다, 먼저 배를 개복해서, 대장을 적당한 길이로 짤라내고, 짤려져 나간 부분들은 원래대로 다시 봉합했다, 그리고 30센티 정도 길이로 짤라놓은 대장을 목을 절개한 다음 식도에 연결했다, 그리고는 다시 가슴옆을 길게 절개해서 폐를 옆으로 밀어 젖히고, 심장 뒤로 공간을 만든 다음 그쪽으로 한쪽 끝을 내려서, 소장과 연결했다.

주임교수께서 수술을 하는데, 수술실에는 수술시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주임교수님의 손이 심장뒤로 들어가서 박리를 시작 할때는 심장이 눌리면서 맥박수가 120회를 넘어서고, 혈압이 급상승을 하기도 했고, 아래쪽에서 대장을 짜를때는 속의 내용물이 배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황급히 거즈로 장 주변을 수십겹의 거즈로 둘러싸기도 했다.

수술용 장갑을 낀 내손도 그녀의 배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녀의 소장과 대장은 배속에서 꺼집어내져서 조교수의 손끝에서 봉합되고 있었고, 나는 일년차라 위쪽 식도 연결팀으로 가지 못하고, 아래쪽에서 대장을 자르고 이어주는 일을 보조했다, 그때 수술용 장갑의 얇은 두께를 넘어 그녀의 장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은 내내 나를 묘한 슬픔에 빠지게 했었다.

그리고 무려 12시간 만에 수술이 끝났다.. 수술후에도 나는 1년차로서 중환자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그녀의 상태를 체크하고, 한시간마다 혈액 검사를 하면서 인공호흡기의 계수를 조정했다,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가 밸런스가 맞지 않을 때 빨리 교정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항상 누군가가 옆에서 지켜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 임무였었다, 수술후 의식은 몇 시간만에 돌아왔지만, 상태가 안정 될 때까지 숨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어야 했다, 의식이 있는 사람이 인공 호흡기가 밀어넣는 숨을 그대로 받아 마시고, 기계가 마치 빨대로 빨아 들이듯이 내 가슴에서 공기를 빼내 갈때 내쉬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녀를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해 그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나는 그동안 끊임없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그녀는 필담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 했는데. 그녀가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자기의 마이마이를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그녀의 마이마이에 담긴 테입이 김광석의 "다시부르기" 음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몇달 째 반복해서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증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가 달린 채로, 그녀의 귀에는 김광석의 노래가 담긴 마이마이 해드폰이 꽃혀 있었다.

드디어 수술 후 7일째 되는 날이 왔다, 이제 선고가 내려지는 날인 것이다. 수술후 7일 째는, 방사선실에서 목을 통해 조영제를 흘린 후 가슴 사진을 찍는 날이다, 만약 대장과 식도를 이은자리가 녹아버렸다면 사진에서 조영제는 가슴으로 흩어져 보일 것이고, 수술부위가 잘 아물었다면 조영제는 목에서 소장까지 곱게 잘 흘러 내릴 것이다, 방사선실에서 주사기로 조영제를 투여하고 "슛"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결과는 다행히 성공이었다,,

조영제는 새지않고 곱게 흘러내려서 소장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기쁨이 박수를 쳤고, 그녀는 드디어 다음날부터 물을 먹기 시작했다, 무려 8개월만에 처음으로 목으로 무엇인가가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컵에 담긴 물을 빨대로 빨아 마시면서,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펑펑 울었다. 누구도 감히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서슬이 시퍼렇게 울었다. 나는 그렇게 곱게 생긴 사람이 그렇게 절절하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곡을 하듯 그렇게 울었고, 오랜 인공 호흡기 때문에 쉬어버린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메아리처럼 그렇게 병실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그야말로 둑이 무너진 것 처럼 눈으로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입으로는 목마른 아이처럼 한 컵의 물을 순식간에 다 마셔버렸다. 그녀는 물을 계속 요구했고,나는 간호사에게 내 허락없이 한방울의 물도 더 주지 말것을 지시했다. 물을 더 마신다고 안되는 것도 아닌데 왠지 물을 더 주면, 계속 그렇게 울음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수술 후 12일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그로부터 이주후부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물을 먹기 시작한 날, 그렇게 펑펑 울고 난 다음날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날부터 그간 먹지 못한 것, 말하지 못한 것이 봇물이 터져나온 듯,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의 가장 가까운 이야기 상대가 되었다. 결국 병동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내가 그녀와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 그녀가 병실에서 내내 들었던 음악이 바로 여기에 링크한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라는 곡인데, 나는 왜 그녀가 왜 내내 이곡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는지를 짐작 할 것 같았지만 더이상 묻지 않았다. 아마 그녀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누군가가 어느날 갑자기 자기를 벼랑에서 밀어 버린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그후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리고 그녀의 요청으로 밖에서 한두번 밖에서 저녘을 같이 먹기도하고. 둘이서 덕수궁을 산책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가끔 자신의 근황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그녀도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는 서서히 서로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대로 서서히 절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내게도 이제 그녀는 더이상 손을 내밀지 않으면 금방 죽을 것 같은 갸날픈 소녀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 퇴근하자마자 그녀가 내게 보냈던 편지들을 꺼냈다, 그러고보니 그녀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한번씩 내게 편지를 보냈고, 나도 답장을 했었다.

사람이란 이렇게 대책없이 상황에 빠져들기도하고, 또 어떨때는 영 새삼스럽다는 듯이 갑자기 생경하고 어색한 몸짓으로 손사래를 치기도 하는것이다. 나는 오늘 또 누군가의 우연찮은 불행을 매개로 그녀를 기억해 냈지만, 그녀는 아마 신문을 볼 때마다, 혹은 잡지를 읽을 때마다, 어떤 단어 하나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두번 다시 기억하기 싫은 그 끔찍한 투병 생활을 떠올리면서, 마지막으로 나를 기억해 낼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그녀에게 있어서 내게 대한 기억 역시 반드시 잊어버려야만 하는 커다란 상처중의 일부였던 셈이다,

시골의사 200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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