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리스는 담배를 피운다. 하지만, 댄은 담배를 끊었다. 그는 담배를 선택하지 않았다. 댄은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하고, 래리는 담배를 끊었다. 그는 담배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가 다시 담배를 피우는지 안 피우는지 잘 모르겠지만 앨리스는 담배를 끊었다.
영화속에서 담배는 처음부터 등장한다. 앨리스는 담배를 찾아 처음 본 남자의 가방을 뒤지고, 결국 길에 있는 사람에게서라도 얻어 피운다. 그런 앨리스에게 댄은 담배를 끊었노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대답엔 확신이 없다. 앨리스는 안나의 전시회에 가서 우연히 이야기하게 된 래리에게 담배를 권한다. 하지만 래리는 담배를 거절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는 No했지만 마음으로 Yes했다. 아니다. Yes하는 듯 했다가 확실하게 No했다.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는 말은 안나의 대사이다. 안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그녀는 늘 Yes도, No도 아닌 채, 잘 모른다는 대답을 잘 한다. 댄은 다시 담배를 피우지만, 그를 다시 가진 앨리스는 이제 다시는 담배에 집착하지 않는다. (사실 말해서 그녀에게 다시 달라붙어 사랑을 고백하는 댄의 모습은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영화 속 스트립퍼, 제인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섹스는 하지 않는다. 래리는 비교적 솔직히 섹스를 바라고, 갈망하고, 실제로 하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며, 얻어낸다. 그는 늘 진실을 원한다. 이미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진실을 말하라고 몰아세우는 거다. 결국 그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스트립퍼는 아무에게나 몸을 팔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 사진작가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과 섹스한다. 과연 누가 창녀인가? 과연, 누가 부끄러운가?
영화 속 사진 작가는 확신하지 못하면서 결혼하고, 창녀 취급받으며 섹스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하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섹스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그 이유는, 그녀가 늘,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남자들은 담배를 필까 말까 고민하고, 결국 선택한다. 여자들은 진실을 말하도록 추궁당한다. 그리고 늘 그 진실이란 것은 사랑이 떠나가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용서란 말도, 사랑이란 말도 허공에 흩어지는 헛된 몇 마디일 뿐이다.
어쩌면 가장 심각한 loser는 래리인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우울증환자 아내와 함께 잠들며, 진실을 알고도, 진실임을 알지 못한 채 오늘도 잠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4명 모두 loser다. 그 누구도, 진정한 진실을 알지도 못하고, 진실한 선택을 하거나 받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집착을 싫어하면서도 집착하고,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하며, 또 정처없이 훌쩍 떠나 또 다른 물음표를 남기는 것이 사랑이라면. 어떤가? 해 볼만 한가?
사랑이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간단한 것만도, 그리고 그렇게 단순한 것만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섹스도 아니고, 게임도 아니고, 이기적인 줄다리기도 아니다. 하지만, 사랑은 섹스이고, 게임이고, 이기적인 줄다리기이기도 하다. 게임같은 사랑을 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