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이곳 일산에서.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다닌 곳. 일산에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왠지 고등학교때는 대학을 졸업하고나면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일년 전 졸업을 하고 뭘 해야 하나 우왕좌왕 망설이며 서 있던 곳. 바로 그 자리에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그 때와는 사뭇 달라진 내 주변의 많은 상황들을 보며, 감회가 새롭다.
졸업을 한지 꽉 채워 1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만나는 사람들도, 하고 있는 일도, 입고 있는 옷도, 생각하는 것도, 관심사도. 변화라는 것이 어떤 때는 참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만, 하지만 변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 같아 어렵고 힘들더라도 변한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일 년동안 많은 생각들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이 곳 (참 어색했던) 알라딘에 대고 하소연도 하고, 글도 쓰고 하면서 많이 달라졌다. 역시 머릿 속을 정리하기에는 글을 쓰는 것이 참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내 마음은 온통 유럽에. 아니.. 도처에 흩어져 있었던 것 같다. 뚜렷한 목적도, 방향도 구체적인 방법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뜬구름이나 잡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다. 모르는 것도 너무 많고, 생각해야 할 것도 너무 많고, 결정해햐 할 것도 많았다.
물론 지금도, 많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확실히 다름을 느낀다.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뿌듯하기도 하다.
작년 한 해를 보내고 나서. 연주로의 공부는 생각을 접었다. 글쎄.. 공부를 포기하기 까지 좀 힘들었고 여태까지 늘 생각해 왔던 진로에 대해서 손을 놓는다는 것이 비겁하게 느껴져서 자존심도(?) 상했는데, 손을 놓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지금은 내가 왜 그렇게 한 길만을 고집했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왜 그때는 그게 그렇게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
물론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음악 공부, 더 하고 싶고, 연구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10년 연주 공부의 길로 가자. 이런 결심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은 모든 일이 즐겁다. 연습의 부담과 진로에 대한 끊임없는 갈등으로 늘 걱정과 우울함에 가득찼던 작년 한해보다, 올 한해는 좀더 새롭고, 다른 일에 몰두해서 즐겁고 신나는 한해를 살아보기로 결정한 거다. 매일매일 어떤 무거운 중압감과 해야만 하는 어떤 것에서 부터 풀려난 것 같은 해방감이 졸업한 후 1년 뒤에서 벗어지다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고민해서 얻은 결과가 나름대로는 뿌듯하다.
그리고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좀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좀 더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부담없이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 요즘엔 그래서 화장하는 것도 즐겁고, 쇼핑하는 것도 즐겁고, 유리창 닦는 일도 즐겁다.^^
마치 한참동안 사귀던 애인하고 시원~하게 헤어지고 나서 느끼는 해방감이랄까. 혼자로서의 신선함이랄까.. 이 효과가 얼마나 갈지..언제 또 공부에 대한 열망이 생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돌아갈 시간이 없지는 않을 것을 예감하지만.... 아무튼 지금은 현재로서 만족한다.
지금 이 순간 즐겁다는 것. 어제 즐거웠다라든가, 내일 즐거울 거라는 이야기는 필요없다. 지금 이순간, 여기에서 내가 즐겁고 기쁘다는 것. 그것은 삶을 누리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