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기>

그저께부터는 잠오는 병에 걸려버려서 하루 종일 졸립고 밤에도 졸립고 낮에도 졸립고 눈감아도 졸립고 눈떠도 졸립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였다.

어제도 마찬가지로 골프연습하고 조프로님이 머라머라하셨는데 기억은 안나고... (잠결에 들었나..ㅡㅡ;) 집에 들어와서 쓰러져서 잠들었다. 아침에 요란한 알람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눈을 뜨고, 짜증 좀 내며 밍기적거리다가 씻고.. 화장하고.. 얼레벌레하고 있는데 아침 댓바람부터 왠 전화가..?

설겆이 하다가 쫓아가서 받으려했는데 끊겨버렸다. 번호를 슬쩍 보니. 헉. 선/생/님. 레슨 안간지.. ㅡㅡ; 4개월? 5개월? 허거덩... 그 동안 죄송해서 전화도 못 드리고.. 죽은 듯이 지냈는데.. 어인일이신고.. 약간의 죄책감과 약간의 민망함과 약간의 다행스러움을 느끼며..^^; 지금까지 전화를 다시 할까말까 고민중. (크흑. 죄송해요 선생님.. 전 공부는 아닌가봐유..ㅡㅜ)

누구말마따라 '교도소같은' 복도를 지나 밖으로 나와 한적한 길을 걸었다. 오늘은 학원까지 걸어서 와 보기로 했다. 왠지 날이 흐린 것 같아서 우산을 들고 나왔는데, 학원까지 걸어가는데 우산이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양으로, 마구마구 빙글빙글 돌리며 걸었다.

라페스타를 따라 걸으며 아직 불이 꺼져있는 옷가게들을 지나쳐왔다. 나는 문 닫힌 옷가게를 보면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2002년도에 유럽에 갔을 때, 밀라노에도 하필이면 일요일날 가서 모든 옷가게들이 문을 닫았었는데, 쇼핑을 못해서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불꺼지도 옷들만 진열되어 있는 한적한 옷가게들을 보면 왠지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고 싶어진다. 오늘 아침도 그랬는데, 문 닫힌 옷가게들은 사람들이 없어서 마음놓고 옷을 볼 수도 있고,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도 볼 수 있고. 아무래도 문 닫힌 옷가게에서는 그 시간 동안의 '휴식'을 느낄 수있달까..

좀 더 걸어가다보니 술집골목이 나왔다. 간판도 메뉴도.. 건물 사이사잉에 조명들도 아직 꺼지지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건.. 아직도 소주 2병, 3병을 놓고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아자씨, 아짐마들이 있다는 것. 놀라서 시계를 다시 볼 수 밖에 없었으니.. 지금이 오전 9시니 밤에 자고 새벽에 만나서 아침 9시까지 술을 마실리는 없고.. 그러니까 그 전날 저녁부터 시작된 술판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이렇게 아침부터 나와서 '일기'나 쓰고 있는 내 모습과 그네들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도 든다. ^^; 하루 밤이 지나도 끊어지지 않는 일상의 모습이 말이다.. 너무 자조적인가..

라페스타거리를 지나 새로 생긴 횡단보도를 건너니 이제 고등학교때 걸어다니던 분위기의 '아파트사이 숲길'이 나온다. 이게 바로 일산의 모습이다. 나는 이렇게 아파트 사이사이라도 공원과 나무가 있는 일산이 좋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다정한 이웃과 아름다운 주민'을 위해 최첨단 CCTV설치 완료를 경축하는 현수막. ^^ 무엇이 다정한 이웃이고 무엇이 아름다운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리고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아줌마, 출근하는 아저씨, 줄넘기하는 아줌마, 학교가는 귀여운 남학생들. 저 멀리 보이는 육교의 모습도 새로워 보였다.

토요일의 한가로운 아침 산책기 이정도면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제 커피 한 잔 마셔야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10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이렇게 표지가 예쁜 새책으로 봤다면 느낌이 어땠을까? 이 책을 얻게 된 것은 매너의 이벤트를 통해서. ^^ 취직한 턱에 알라디너들이 재미를 쏠쏠히 봤던 그의 후한 이벤트를 기억한다.  사실 처음 이 책을 받기 전에는 나에게 주어질 책이 이렇게 낡은 책이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매너의 설명으로는, 군대에서 가져온 책이라는데, 책은 1985년도에 나온 것이고 그 밑에 써 있는 가격이야 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니, 이 장편 소설의 책 값이 1800원인 것이다! 

각설하고,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어떻게 느낌을 쓸 도리가 없었다. 책을 읽었다기보다는 부우연 그림 한 점을 본 것같은 회화적인 느낌이 첫번째 이유이고,  또한 사실인지 허구인지 모를 정도로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그녀의 문장력에 책에 대한 느낌을 써야할 지, 아니면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 평가를 해도 되는 것인지 하는 느낌이 두번째 이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읽을수록 감수성에 물씬 젖게 되는 '박완서'의 소설 앞에 느낌을 적으려면 뭔가 더 '그럴듯한' 표현이 필요할 것 같은데, 나는 그런 글재주가 없어서가 진짜 이유다.

이 책은 담담하게 멍한 눈으로 온통 잿빛 뿐인 전후 도시 속에서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가족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살아가는 것' 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죽음과 삶 속에서 너무나 많은 죽음의 흔적속에서 유유히 살아가야만 했던 그 당시 그 어느 누구의 허무감과 더이상 아프지도 않은 무뎌진 절망감,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머얼고 먼 추억이 되어 버린 사람들의 상실감이 나타나 있는 책이다.

전체적인 색감은 잿빛이지만 내 가슴 속에 물든 느낌은 촉촉한 빗 색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10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7월
품절


오열이라든가 하다못해 신음이라든가, 그런 아픔을 나눌 엄살이 전연 마련되지 않은 온전한 나만의 비통-.-278쪽

저만치서 고등학생들이 배드민턴을 친다. 콕이 나비처럼 경쾌하게 날아와 라켓에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젊은 연인들의 찰나적인 키스의 파열음처럼 감각적으로 들린다.-28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양장) 믿음의 글들 176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그 유명한 C.S.루이스의 책으로, 그의 깊이있는 통찰력과 인격이 묻어나는 문장력,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상상력과 너무나 기발한 유머로 가득하다.

신앙서적을 읽다보면 여러 사람의 글들을 인용하는데, 그 중에서 유독 많은 것은 바로 C.S.루이스의 것들이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책에서 그를 알게 되었고, 마침내는 그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찾아서 보게 되었다.

대체로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기보다는 깊이있고 중요한 내용들이 많아서 설렁설렁, 대강대강 읽어버리고마는 나에게 유독 '정독'의 부담감을 주는 그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생각보다 가볍고, 그러나 생각보다는 예리하며 깊다. 그의 책은 반드시 하드카바여서만이 아니라 내용과 제목에서부터 늘 어떤 무게감으로 다가오는데, 이 책은 매우 재미있는 무게감이어서 그닥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내용인 즉, 사탄이 그의 조카 - 라기보다는, 쫄짜? ^^ - 에게 보내는 편지인데, 설정부터가 아주 재미있다.

이 책을 통해서 사탄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고, 한 번 더 확신하게 된 것은, 사탄은 거짓말쟁이이며, 그는 실제적인 힘을 하나도 갖지 못한 존재라는 점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세상의 권력을 쥔 듯 여겨지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아는 척, 가진 척, 줄 수 있는 척 할 사기꾼일 뿐이다.

그러나 사탄은 인간을 연구한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해서 연구한다. 마치 우리가 관심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연구하고 느끼고, 살피고, 대처하는 것처럼 그도 똑같이 아니, 더욱 깊이, 많이 연구한다. 바로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 이다.

간혹 사탄의 거짓말에 민감하지 못할 때도 있고, 한번 내 머릿속을 차지한 부정적인 생각이 떠나지 않을 때, 사탄의 이런 속성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또한 사탄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치밀하게 나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오늘의 신앙이 내일을 보장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선택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다. 아무 힘도 없는 사기꾼의 말에 귀가 솔깃할 것인가, 영원한 권능을 지니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우리의 부족함을 내려놓을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요일날 이사했다.

옷가지, 화장품. 집에 있던 가재도구들 조금 들고.. ^^ 음하하 갑작스럽게 얼렁뚱땅 이루어진 나의 독/립/에 나도 아직 적응이 안 되서 어이가 없지만.. 쫓겨난 건 아니고.^^; 한 6개월 정도 혼자서 살아보기로 했다. 이유는? 앞으로 그럴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외 기타 등등 여러가지 이유.

나도 사진을 잘 찍으면 이곳저곳 찍어서 올려보고도 싶지만..카메라도 없고.. 사진도 못 찍고..아직 정리도 다 안되서 지저분하기 짝이없기 때문에..^^ 아직은 밤에 자는 것도 서툴고, 조용한 적막함도, TV가 없는 것도 다 어색하지만.. 곧 적응되리라 본다.

조만간 장을 보러가야겠다. 엄마가 참외랑 콘 프레이크 싸가지고 오셨는데..칼도 없고^^; 시리얼 먹을 숟가락도 없고. 음하하. 그래도 아직까지는 재미있다. ^^; (와서 청소만~ 했지만..)

혼자 살다보면..아무도 없는 깜깜한 집에 들어가는 게 싫어지는 날이 올까?

왠지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알 수 없는 해방감 같은 것이 드니, 여태까지 집에서 난 제압하려고 했던 적은 없는데,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모를 일이다. 유럽여행 혼자 가서, 영국에 뚝 떨어져서 혼자서 종종걸음으로 예약해 둔 호스텔 찾아가던 그런 느낌이 든다. 왠지 설레면서 얼레벌레 헤매는 느낌..^^

암튼, 재미있는 일이 앞으로 많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 ^^ 한 번 뿐인 인생, 뭐 있나? 하고 싶은 것 한 번쯤 과감하게 해 보면서 사는 것이지.. ^^  Just try it!

**그런데 오늘 또 알라딘이 이상한가부다.. 알 수 없는 방문자가 100명이 넘었다. ㅡㅡ;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Hanna 2005-04-2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Kel님 닉네임을 바꾸셨네요?? ^^ 그림도 예뻐요.
음하하. 저도 마찬가지에요. 라디오틀고..시디듣고...정리 다 안했는데도...콤포넌트먼저 꼽았다는...^^;

Hanna 2005-04-26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오..브람스..빈집에서 듣는 브람스라... 멋지네요. ^^
전 아직 청소도 다 안 끝나서..어수선한 상태...ㅡㅜ 저희 엄마는..어제부터 또 잠적하셨어요...전화도 안 받고..ㅡㅜ 엄마 맞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