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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겠다 ㅣ 창비청소년문학 15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평점 :
'이런 소설도 있었구나'의 '이런'은 긍정적인 의미의 '이런'이다.
공선옥씨는 가난하기로 둘째가라하면 서러울만큼 찢어지게 가난했던 소설가다. 얼마전 전라북도교육청에 오셔서 특강을 하셨다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날 특강을 들은 다른 선생님들의 말을 빌리자면 굉장히 슬프고 아픈 이야기들을 놀라우리만치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듣는 내내 현실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감정이 북받쳐서 간간이 목소리도 좀 떨리고, 눈시울도 좀 붉어지고 그래야할 법한 이야기들을 저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을까 싶을만큼 조리있게 요목조목 잘 말씀하셨단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돈과 가난과 꿈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고, 공선옥씨 특유의 카리스마도 느껴졌다고 한다. 흔히 명강사들이 지니고 있는 재미는 없었지만 꼭 들어야했던 특강이었다는 평이다. 그 평 때문에 나는 그 즈음에 더더욱 애석해졌다.
이 소설은 가난하지만 '씩씩하게' 가난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국가에서 정해준 시간당 최저 임금인 삼천칠백칠십원을 받지 못한 민수는 단 두 번의 알바생활을 통해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어른들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하고 유린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도 좀 쓰여있긴한데 깊이 들어가진 않는다. 그보다는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 어쩌다보니 서로에게 웬수가 되고, 누구보다 돈 버는 일에 대해 성실했던 사람들이 그 돈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고 하는 일들이 쓰여있다. 아참 그리고 17살에 임신을 한 여자아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쩌면 그리 재미있게 썼는지....나도 그런 소설 쓰고 싶었는데....그러고보면 다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 같다. 얼마전에 읽은 '두근두근 내 인생' 역시 17살에 부모가 된 철없는 아이들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왜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면 소설 속 이야기가 되는데 50살 넘어서 부모가 되면 뉴스에만 나오는 일이 될까?
나는 한 번도 그런식으로 비참하게 가난해본 적은 없다.
물론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서 빚쟁이들이 온 것도 같고, 아버지가 그 뒤로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한 적도 없으신 것 같고, 이런저런 이유들로 밥대신 라면을 끓여 먹은 적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가난한 집 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잘 모른다. 그 처참하고, 수치스럽고, 원망스러운 그런 기분...쌀도 뭐도 아무것도 없는데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그런 절박한 상황을 나는 모른다. 그러나 공선옥은 잘 안다. 잘 아니까 잘 쓴다. 그렇게 잘 써주는 그녀에게 고맙고, 나도 내가 잘 아는 이야기들을 저렇게 잘 써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 쓰기 전까지 나는 내 인생이 참 쓰잘데없이 불행한 일이 잘도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내가 뭐 대단한 인물이 되려는 것도 아닌데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았다. 심리적인 것도 그렇고 물리적인 것도 그렇고....하도 그런 자잘하지만 어린나이에 넘기 버거운 일들이 일어나길래 콱 그냥 사라져버릴까도 생각했었는데 그래 우리 엄마도 있고 남동생도 있는데 내가 뭐가 대단하다고 그러냐싶어 쿨하게 참고 이겨내고 뭐 그래왔다. 그래 맞아. 쿨하게....어느 누가 이런 경험해봤겠어...하면서 나는 내 친구들보다 조금 더 단단해지는 거지 뭐...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게 고맙다. 나는 멸시가 무엇인지 잘 안다. 나는 허영과 허풍이 무엇인지 잘 안다. 나는 매맞을 때의 공포에 대해 그리고 매맞는 모습을 보는 이의 공포심과 죄책감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안다. 그리고 싸구려 동정심과 그 동정심을 농락하는 것에대해서도 수준급이다. 내가 잘 아는 것들을 아주 잘 써내려갈 것이다. 아주 잘....
공선옥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얼른 읽어보고 싶다. 그녀는 아마도 독일로 떠났거나 떠나기 직전일 것이다. 딸과 함께 독일로 건너가 오로지 글만 쓴단다. 집도 팔았다고 한다. 집 판 돈이 다 떨어지면 딸이 아르바이트해서 벌어온 돈으로 먹고 자고 할 거라고 당당하게 말했단다. 자신은 글을 쓰니까 그래도 된다고....당신도 그렇게 하라고....글 쓰고 싶은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다시 생각해도 무서운 여자다. 그리고 정말 부러운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