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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조장훈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평점 :
대치동이라는 환상에 대하여
말로만 듣던 대치동의 역사와 현실과 미래를 모조리 알 수 있는 책!
우리나라 입시제도 역사를 낱낱이 분석하는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현대사까지 읽어낼 수 있다.
저자는 학원 강사가 아니라 인류학자로서 학문을 연구했어도 탁월한 성취를 이뤘을 것 같다. 얼마나 공부를 하고 싶었을까...라는 마음에 안타까워진다. 학원 강사가 아니라 공부를 했어야 할 사람인데.....
작은 중소도시에서 태어나 40년을 이 지역에서만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학부모다.
SKY에 들어가고 싶어서 공부를 매우 열심히 했지만 중소도시 고등학교 전교 10등이 서울 유수 고등학교 반10등보다도 떨어지는 실력이라는 것을 그 당시엔 알지 못했다. 전교 10등 정도니 어디든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서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폼나게 살 수 있을거라 믿었다. (나의 믿음은 줄곧 나를 배신해왔고 그 시작은 바로 대입이 아니었나싶다)
다행히 현명한 선택 덕분에 공교육에 몸담고 하루하루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최소한 월급 받은 만큼은 해야지...적어도 세금 축내는 인간이라는 말은 듣지 않아야지...하고 출근한다. 나는 안다. 내가 꽤 잘 풀린 인생임을...물론 대기업 임원이나 의사, 판사, 변호사 등 전문직이 바라보면 하찮은 월급을 받으며 온종일 근로하는 노동자겠지만 그래도 교사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나쁘지 않은 직업으로 꼽힌다.
동료 교사들은 보면 한 때 공부를 너무 잘했었고, 그래서 SKY나 의대 정도는 거뜬히 갈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많다. 운이 안 좋았다고 믿기 보다는 중소도시에 살아서 정보가 부족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래서 자신의 자녀만큼은 서울 대치동에 보내 꼭 자신이 이루지 못한 신화를 이뤄보겠다고 두 주먹을 꼭 쥐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소감을 솔직히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첫째, 나 지금이라도 두 딸을 대치동으로 보내야 하나?
첫째가 중2다. 수학을 좋아해서 국립거점대학교 영재교육원에 합격했다. 본인은 하기 싫어했는데 아무래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내가 억지로 원서를 넣었다. 본인이 하고 싶어했던 초6 둘째는 떨어지고 첫째는 간신히 붙었다.
첫 날 영재수업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집에 왔다. 나는 후회했다. 조금 더 일찍 영재교육을 시키지 않은 것에 대해....그 영재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또다른 과외를 찾아야 할 판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다들 천재인데 자기만 바보같이 못 알아들어서 가기 싫다는 말을 듣고 나는 죄책감까지 느끼며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 책은 이런 패턴의 늪에 빠지는 엄마들이 찾는 대치동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돼지엄마들이 대치동으로 계속 몰린다. 학원 강사들은 이 엄마들과 협업하며 다수의 '듣보잡' 학생을 상대로 막대한 수강료를 챙긴다. 대치동에 본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방에서는 성업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사기아닌가?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간단한데 자식 문제가 걸리니 온갖 죄책감과 조급함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탄탄해진다.
둘째, 이 분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을 것 같아. 학력 카르텔에 집입하고 싶어!
논술지도에서 컨설팅으로 전환했다는 작가는 뛰어난 분석과 막대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학생에게 최적의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두 딸 손 잡고 가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두에는 사교육 종사자로서 뭔가 정리하는 마음으로 쓴다고 하였는데 혹여 이 책이 광고성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것 때문에 마음을 놓는다. 사계절은 그런 목적을 가진 작가에게 곁은 주는 출판사는 아닌 듯 하다.
셋째, 돼지 엄마의 아픔은 거울을 보는 것 같다.
대원족, 연어족, 대전족, 원정족이라는 대치동 구성원 분포 부분을 읽을 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특히 대전족에 마음이 쓰였다. 악착같이 대원족이나 연어족 클라스에 진입하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이 읽혔기 때문이다. 하우스 푸어이기에 삶의 질은 낮을 것이고, 외식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늘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살아갈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너희들의 미래 때문에 우리가 이런 식의 삶을 감내하고 있다며 부채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고 그들 스스로는 헌신의 전형이 되어 삶의 의미를 선택한 가난에서 찾을 것이다. 이런 유년시절을 보낸 아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는 아이로 자랄까? 대전족은 그들이 목표로 하는 물질적 삶을 누릴 수 있는 정서적 여유와 감사를 아는 아이를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넷째, 또 다른 이름의 대치동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대치동은 은마아파트와 동일어처럼 여겨진다. 정정당당하게 공부하거나 일을 해서 버는 돈의 개념보다는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정보를 독점하여 적게 일하고 공부하면서도 최상의 이득을 얻는 이속 밝은 이들의 전형처럼 여겨진다. 욕망이 이글거리는 그 한 가운데서 자신의 가장 찬란한 시절을 보낸 이름있는 스타 강사가 써 내려간 인류학적 기록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갖고 우리의 의견을 밝히는 일이 필요하다.
또 다른 이름의 '대치동'은 계속 생길 것이다. 우리의 '대치동'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대치동이 존재하는 이유와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한숨과 분노와 절망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대치동을 없앨 순 없지만 대치동에 울타리는 만들 수 있기에...우리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나와 내 자녀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