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마다 한 번씩 내과에 간다. 

처음엔 층간 소음으로 인해 심장이 뛰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갔다. 간헐적으로 쿵쿵 울리는 그 소음 때문에 불안 증세가 심했졌고, 공황 발작과 같이 빨리 집 밖으로 피신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그 답답한 상황! 시각은 새벽 2시였고 사방은 고요했다. 나는 지옥 한 가운데에서 헤매고 있는 기분이었다. 일단 심장이 너무 뛰었다. 문제가 생겼다.

"우울증으로 가기 직전 단계네요. 스트레스가 심하신가봐요."

젊고 유능해보이는 의사 선생님은 무심히 말씀해주셨다. 

피 검사 결과 '이상지질혈증'으로 판명되었고(정상 LDL이 130인데 나는 137이상이었음), 이미 경미한 동맥경화증세가 나타나 0.009 정도의 지질층이 혈관에 쌓이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이미 쌓인 지방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셨고, 이 말씀은 앞으로 사는 동안 내 혈관이 뻥 뚫리거나 깨끗해질리는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뇨 전 단계라고 덧붙이셨다. 당뇨 전 단계로 볼 수 있는 수치가 5.6인데 나는 5.7이었다. 4년 뒤면 나는 당뇨병 환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50대가 되기도 전에 나는 당뇨인으로 입적하여 당이 포함된 모든 음식을 바라만봐야하는 그런 신세가 된다는 말씀에 살짝 현실감이 없긴 했다. 


속으로 읊조렸다. 

-선생님....저는 그리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렇다. 그닥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오래오래 살기 위해 건강을 챙기라는 말이 와 닿을리가 없다. 이대로 가면 빠르면 4년, 아무리 늦어도 5년 뒤에 당뇨에 걸린다는 말은...내가 꿈꿔왔던 젊은 나이 호상에 한 발짝 다가가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삶의 질이 현저히 낮아질게 뻔하다는 것과 나의 건강상태를 가족들이 눈치채는 순간 그 잔소리와 원망과 윽박은 무한 반복될 것이다. 병 때문이 아니라 병으로 비롯된 주변의 원망으로 내 수명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판이었다. 그건 내가 생각하는 호상과는 거리가 멀다. 


어쨌든 모두 다 초기상태라고 하니...

혈관 염증도 1이하로 수치가 떨어져야 하는데 1.28이다. 그것도 4개월 전에는 1.7이었는데 약 먹고 많이 줄어든 것이다. 이에 따라 백혈구 수치는 여전히 10만으로 높다고 걱정을 하셨다. 걱정하셨다기보다 의아해하셨다.


- 선생님, 백혈구 수치가 이렇게 높은 이유가 뭘까요?

- 이유를 모르죠. 보통은 운동부족과 스트레스입니다.

- 아, 네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가진 모든 병은 다이어트와 운동을 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못하니까 계속 약을 먹는 것이다. 약을 먹고 또 쓰레기 음식을 먹고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다. 


당뇨 전 단계를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기회가 된다면 나처럼 체지방률 48%로 도전을 시작한 분들께 희망을 줄 수 있는 책을 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운동을 해야하는데 그래야 할텐데 어떻게 할지 너무나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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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불공평함에 대해


엊그제 큰 딸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 이 세상에는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많은데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지.

-단지 부모를 잘 만나거나 뭔가 순간의 선택을 잘 해서? 뭐 그런 이유로 실력도 좋지 못하고 불성실한 사람들이 좋은 직장이나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불공평해요.

-원래 그래. 

-음...그래도 노력하면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들은 적어도 정당한 댓가는 받아야 맞는 거 아니에요? 정당한 댓가도 못 받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한 달에 몇 백만원씩 들여서 학원 보내는거야. 그 불공평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해보려고...그래도 여전히 불공평하겠지만...

-똑똑한 사람들 많은데...진짜 머리 좋은 사람들 많은데...그냥 편의점 알바나 하고 있고...컴퓨터나 고쳐주고 있고...학원 강사 하고 있고...딱히 더 나은 것 같진 않은데 공기업 다니고, 파리바게뜨 점장이라서 골프치고 다니고, 이건 뭔가 불공평해요. 


화가 났다기보다는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라는 그런 표정이었다. 공평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공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개념이 성립하려면 도대체 몇 개의 절차와 단계와 개념이 통제되고 합의되어야 하는 것인가...그게 가능하기나 한가? 

나는 내 생각이 정말 '속물'이라는 목표에 적합해왔다는 것만이라도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이것마저 아니라면 나는 여전히 속물 사이에서도 위선자 취급을 당하니 말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지도 못하고,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도 좋은 선생님이지 못하고, 관리자들 사이에서도 좋은 부장교사이지 못했던 어정쩡한 나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뭔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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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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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되었는데 최애가 생겼다.
본래 TV도 잘 보지 않는데 정말 우연하게 보게 된 종편 채널에서 최애를 발견했다.
시리즈로 이뤄진 것 중 중간 것의 일부만 봤을 때도 나는 최애를 갖게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한참을 본 뒤에야 '아...'라는 탄식을 하게 되었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므로 나는 꽤 흥분되었다.
죽은 사람이나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내가 마음만 먹으면 숨쉬고 있는 최애 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이 내 인생을 뒤흔드는 것 같았다.
마흔이어서 돈은 좀 있으나 시간과 외모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마 스무살 때는 돈이 문제였을 것이다.
아이돌이었다면 더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현실감이 없었겠으나 연반인에 비슷한 나의 최애는 여전히 경계에 머문다. 경계에 머문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이 넘친다.

최애를 좋아하는 방식은 매우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오늘은 그 중 하나인 복권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매주 일요일은 복권을 산다.
딱 5000원어치만 산다.
거의 낙첨이지만 기독교인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나도 매주 일요일 오후에는 나눔 로또 복권 5000원어치를 산다.
만약 1등에 당첨이 된다면 최애 덕분이므로 무조건 3억~5억을 주겠다.
왜 3억~5억이냐면 매주 1등의 당첨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번 주는 1등 당첨이 10명이나 나왔기 때문에 25억 밖에 못 받았다. 이러면 3억이다.
그런데 45억이 넘는다면 5억을 주겠다.
조건 없이 주겠다.
그 돈으로 카페를 하든 의류매장을 내든 그것은 내 알바가 아니다.
최애 덕분에 나는 전혀 지치지 않고 복권을 사고 있다.
그러니 당첨된다면 최애의 지분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이다. 10분의 1은 있다.

나는 내 인생 중 가장 혼란스러울 때 최애가 빛이 되어줬다.
원래도 월급을 가져다주지 않던 남의 편이 진짜로 하나도 못 가져다주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버텨냈다. 최애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보고, 유튭영상을 계속 보고, 인스타 피드를 무한 반복해서 보는 일로 이겨냈다. 경계에 있는 최애라서 더 효과가 좋았다. 내가 변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죽기 전에 한 번은 멋지고 예쁜 모습으로 만나서 악수를 하고 싶었다. 엄청 고마웠다고...내가 최애 덕분에 학교도 다시 나가고, 공부도 다시 하고, 살도 많이 빼서 예뻐졌다는 말 많이 들었다고...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병원에 다녔을 거라는 말을 직접 내 입으로 해주고 싶었다.(최애는 편지를 싫어한다)

오늘부터 다이어트 일기 블로그도 썼다.
다이어트에 관한 모든 것을 쓸 예정이다.
내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쓸 것이고, 내가 읽은 다이어트 책도 쓸 것이다. 다이어트 영상도 영상기록으로 쓸 것이다. 생로병사의 비밀 등도 쓸 것이다. 운동도 당연히 기록할 것이다. 나는 48kg까지를 원한다.

그리고 최애 일기도 꾸준히 써 나갈 생각이다.
최애를 가진 마흔 아줌마의 일기를 쓰고 싶다.
아무도 안 봤으면 좋겠고, 봐도 모르는 척 했으면 좋겠다.
인류학을 공부하는 느낌으로 이런 류의 사람이 존재하는구나...라는 얕은 탄식으로 이 글들을 지나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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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다니며 공부할 당시엔 메일을 거의 매 시간 확인했다. 

메일로 논문을 주고받고, 필요한 자료들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메일은 휴대폰과 같이 중요했다. 

특히 학회 간사를 하던 시절에 메일은 정말 꼼꼼하게 확인해야 하는 그 무엇인가였다. 

그래서 그 당시 나는 '언니~메일로 보냈어요'라고 했을 때 '어~? 나 메일 잘 안 보는데..잠깐만..'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하루에 한 번도 메일 확인을 안 할 수 있지?'


그런데 2019년 이후 나의 삶의 패턴이 상당히 달라지면서 나는 예의 '하루에 한 번도 메일 확인 안하는 여자'가 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첫째, 주로 비슷한 일만 한다. 

둘째, 주로 만나던 사람만 만난다.

셋째, 하던 일 외에 다른 일을 절대 하지 않는다. 


만약 원래가 메일로 일처리를 하는 직업이었다면 모를까 나처럼 그냥 출퇴근하며 만나던 사람만 만나고 하던 일만 하는 사람이라면 메일 확인이 매우 희귀한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메일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일상적이지 않은 사안을 처리할 때 보던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나 기관이나 나라 등의 소식지를 확인하는 일 등등 나의 일상과 한 걸음 떨어져 있는 일들이 메일로 도착한다. 굿네이버스에서 도와달라는 메일이나 희망제작소(나는 이 기관에 기부도 하고 있는데...)의 메일을 볼 때 클릭하지 않게 되는 때가 2019년이다. 로그인해서 들어가도 내가 클릭할 메일이 하나도 없는 일이 잦아지자 나는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세상사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2021년 6월 4일은 나에게는 약간 기념비적인 날인데...

그 날 이후엔 나와 큰 관련없는 메일들도 열어보려고 한다.

건강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 삶은 잘못 살아온 것이 분명하고,

지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은 인생은 좀 잘 살아가야 할텐데 라는 마음은 확실한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지만 

나는 내 메일의 여러 메일을 들을 열어보고 살뜰히 읽어볼 것이다. 

누가누가 높이 쌓나 시합이라도 하듯 그냥 쌓아놓았던 책들도 다시 읽어볼 것이다. 

읽고 좋았던 문구를 미리캔버스 등을 이용해 인스타에 올려볼 생각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20대 중반에 정말 이상할정도로 책을 열심히 그리고 깊이 읽었었는데...

그때는 좋은 문구가 너무 많아서 내가 컴퓨터로 쳐서 자발적으로 책갈피를 만들기도 했다.

스콧 니어링의 책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절대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심으로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율배반적인 날들이 계속되었다. 

한 1년 정도 지나고 나면 내가 읽었던 책의 제목만 기억하고 그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게 되는데

그 때 그 책갈피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너무 좋은 말들이어서....이 책 속에 이런 말들이 담겨 있었구나....다시 기억해야지~~라고 마음을 다잡곤 했었다. 


지금 다시 그런 시절이 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으나

노력해보고자 한다. 

노력하는 건 자유의지로 충분히 가능하고 

이건 누가보더라도 바람직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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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만해도 방안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현생과 거리가 먼 특정한 것에 집착해 있는 사람들을 '은둔형 외톨이' 혹은 '오타쿠'라고 해서 우려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대학을 졸업해도 사회진출이 어렵고, 하루하루 아르바이트만 해서 생계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작은 것에서 위로와 행복을 찾는 '소확행', '욜로' 등등의 신조어가 유행했다. 3평 방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오타쿠적인 삶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 모른다는 자발적 질문을 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BTS의 팬클럽이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부상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팬덤 문화에 대한 인식도 이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진심인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나의 학창시절을 돌아보자면 한창 연세대 농구부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고, 나는 그중에서도 '이상민'을 좋아하게 된다. 사실 '우지원' 선수가 얼굴도 잘 생겼고 여튼 모든 면에서 이상민보다는 인기가 많은 스타였는데 나는 항상 그런 선택은 피했었다. 남들이 모두 다 좋아하는 그런 스타는 안 좋아하는 것으로....설사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도 숨기는 것으로....그냥 왠지 모르겠지만 '나'라는 인간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난 가난하고 못생겼고 뭔가 촌스러우니까 top의 경우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음...사실 연예인은 좋아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VIEW라는 잡지가 인기였는데 그 잡지였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상민의 집주소가 나와 있었다. 무슨 유원아파트? 그런 곳이었다. 발렌타인데이에 진짜 초콜릿을 사서 우체국에 가서 붙였다. 담당 아주머니께서 받는 사람 주소를 보고 나를 한 번 보더니 

'이상민은 좋겠네...이렇게 선물도 받고'라고 하셨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다가 걸린 사람 같았고, 

그 자리를 도망나오고 싶었지만 돈도 계산 안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 끝까지 있었다. 아마 그 초콜릿은 버려졌을 것이다.


그 다음은 HOT의 장우혁이었다. 실은 강타를 더 많이 좋아했다. 그런데 역시나 같은 이유로 장우혁을 택했다. 고1인가 그랬었다. 캔디 장갑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HOT는 영원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더 많이 좋아했을 것도 같다. 


이후는 주로 작가를 좋아했는데 그 까닭은 소설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 때문이다. 

외국작가도 좋아했다가, 이미 돌아간 작가들도 좋아했다가, 나에게는 왜 이런 류의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한탄을 했다가....고3 이후 축처져 올라가거나 줄어들 기미조차 없는 살들을 바라보며 '사필귀정'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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