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중국어 학원에 가서 공부 대신 사담을 주로 나누었고, 남편과 하얼빈을 보았다. 

영웅 안중근의 7일이 극적으로 잘 그려졌다. 남편이 영화를 같이 보자고 제한해준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준 감독과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당신은 일제강점기였다면 독립운동을 했을 것 같아?

-못했을 것 같아. 

-아무래도...그렇겠지?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와중에도 하얼빈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아서...특히 '꼬레아 우레'라고 열번 가까이 울부짖는 현빈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남편도 사뭇 그런 듯 하였다. 쉽게 움직일 수 없는 감동이 몸을 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되뇌였다. 우리는 왜 독립운동에 대해 쉽게 말하는가...그들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미국의 참전으로 우리의 독립은 가능했을 것이라고 왜 그리 쉽게...뭔가를 아는 듯 하며 말하는가...친일하는 이들의 마음에서는 '독립이 되겠어?'라는 확신이 꽃피웠지만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의 마음에서는 '언젠가는 될 것이다..우리나라의 독립이..안 되면 십년, 이십년, 백년이 지나도 우리는 되게 만들 것이다'라는 뿌리가 자리잡았을 것이다. 동지들과 함께 한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정우성이 분하고자 했던 과거 독립운동가 현재 마적떼 두목은 영화의 흐름을 잠시 흔들어 놓는 듯 하였지만 전여빈의 노력으로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폭탄을 갖고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이들을 애잔히 바라보는 정우성은 독립운동가의 또다른 모습일 것이다. 아울러 김상현의 존재는 이 영화의 진정성에 큰 빛이 되었다. 밀정이 되어 동지를 배신했다가 다시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탕아로 표현된 김상현은 아마도 그 시대에 수도없이 존재했던 인물일 것이다. 


영화 관람 후 남편은 술을 나는 콜라를 마시며 승진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고, 나는 해야 할 일이 분명 있음에도 그를 외면하고 그저 승진만을 바라는 사람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내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일어나서 스터디 카페도 가고, 단어도 외우고, 모의고사도 풀고, 오답정리도 해야겠다. 내일부터 직장에 나가는 날은 3시간, 직장에 나가지 않는 날은 6시간을 기준으로 토익 공부를 해서 2월까지는 반드시 875점을 넘기겠다. 나와의 약속이다. 해야할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잘 마무리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무엇을 하겠는가? 할 수 있다.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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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을 하다가 김민석 작가를 알게 되었다. 김민섭 작가를 아주 좋아해서 비슷한 이름을 지닌 이 분도 호감을 갖고 마주하게 되었다. EBS에서 방송도 촬영하셨다고 한다.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게 되실 것 같다. 


'자나깨나 말조심'

일을 열심히 하면...특히나 인풋 대비 아웃풋이 확실하지 않거나 불안정한 상황에 있을 경우 예민해진다. 그 예민함은 '내가 이렇게까지 조직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데 이 정도는 다들 양해해줘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교만까지 만들어낸다. 상당기간 높은 위치에 있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권위적인 사람이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출발점은 아마도 손해보는 감정에 대한 보상책이었을 것 같다. 


말을 예쁘게 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잘 써 놓으셨다. 

어쨌든 말은 줄이는 게 최선이라고 본다. 

말을 하는 것보다 말을 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데 유재석과 같은 mc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긴 한데 인터뷰하는 상대의 말을 끌어내기 위한 말이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듣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고, 상대방이 최선의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소스를 충분히 알려주는 그런 말하기인 것이다. 


내 직업이 교사임을 생각해보았을 때 아이들에게도 나의 생각을 주입하기보다 아이들의 생각이 어떠한지 끌어내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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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마다 한 번씩 내과에 간다. 

처음엔 층간 소음으로 인해 심장이 뛰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갔다. 간헐적으로 쿵쿵 울리는 그 소음 때문에 불안 증세가 심했졌고, 공황 발작과 같이 빨리 집 밖으로 피신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그 답답한 상황! 시각은 새벽 2시였고 사방은 고요했다. 나는 지옥 한 가운데에서 헤매고 있는 기분이었다. 일단 심장이 너무 뛰었다. 문제가 생겼다.

"우울증으로 가기 직전 단계네요. 스트레스가 심하신가봐요."

젊고 유능해보이는 의사 선생님은 무심히 말씀해주셨다. 

피 검사 결과 '이상지질혈증'으로 판명되었고(정상 LDL이 130인데 나는 137이상이었음), 이미 경미한 동맥경화증세가 나타나 0.009 정도의 지질층이 혈관에 쌓이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이미 쌓인 지방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셨고, 이 말씀은 앞으로 사는 동안 내 혈관이 뻥 뚫리거나 깨끗해질리는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뇨 전 단계라고 덧붙이셨다. 당뇨 전 단계로 볼 수 있는 수치가 5.6인데 나는 5.7이었다. 4년 뒤면 나는 당뇨병 환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50대가 되기도 전에 나는 당뇨인으로 입적하여 당이 포함된 모든 음식을 바라만봐야하는 그런 신세가 된다는 말씀에 살짝 현실감이 없긴 했다. 


속으로 읊조렸다. 

-선생님....저는 그리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렇다. 그닥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오래오래 살기 위해 건강을 챙기라는 말이 와 닿을리가 없다. 이대로 가면 빠르면 4년, 아무리 늦어도 5년 뒤에 당뇨에 걸린다는 말은...내가 꿈꿔왔던 젊은 나이 호상에 한 발짝 다가가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삶의 질이 현저히 낮아질게 뻔하다는 것과 나의 건강상태를 가족들이 눈치채는 순간 그 잔소리와 원망과 윽박은 무한 반복될 것이다. 병 때문이 아니라 병으로 비롯된 주변의 원망으로 내 수명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판이었다. 그건 내가 생각하는 호상과는 거리가 멀다. 


어쨌든 모두 다 초기상태라고 하니...

혈관 염증도 1이하로 수치가 떨어져야 하는데 1.28이다. 그것도 4개월 전에는 1.7이었는데 약 먹고 많이 줄어든 것이다. 이에 따라 백혈구 수치는 여전히 10만으로 높다고 걱정을 하셨다. 걱정하셨다기보다 의아해하셨다.


- 선생님, 백혈구 수치가 이렇게 높은 이유가 뭘까요?

- 이유를 모르죠. 보통은 운동부족과 스트레스입니다.

- 아, 네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가진 모든 병은 다이어트와 운동을 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못하니까 계속 약을 먹는 것이다. 약을 먹고 또 쓰레기 음식을 먹고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다. 


당뇨 전 단계를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기회가 된다면 나처럼 체지방률 48%로 도전을 시작한 분들께 희망을 줄 수 있는 책을 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운동을 해야하는데 그래야 할텐데 어떻게 할지 너무나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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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불공평함에 대해


엊그제 큰 딸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 이 세상에는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많은데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지.

-단지 부모를 잘 만나거나 뭔가 순간의 선택을 잘 해서? 뭐 그런 이유로 실력도 좋지 못하고 불성실한 사람들이 좋은 직장이나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불공평해요.

-원래 그래. 

-음...그래도 노력하면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들은 적어도 정당한 댓가는 받아야 맞는 거 아니에요? 정당한 댓가도 못 받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한 달에 몇 백만원씩 들여서 학원 보내는거야. 그 불공평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해보려고...그래도 여전히 불공평하겠지만...

-똑똑한 사람들 많은데...진짜 머리 좋은 사람들 많은데...그냥 편의점 알바나 하고 있고...컴퓨터나 고쳐주고 있고...학원 강사 하고 있고...딱히 더 나은 것 같진 않은데 공기업 다니고, 파리바게뜨 점장이라서 골프치고 다니고, 이건 뭔가 불공평해요. 


화가 났다기보다는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라는 그런 표정이었다. 공평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공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개념이 성립하려면 도대체 몇 개의 절차와 단계와 개념이 통제되고 합의되어야 하는 것인가...그게 가능하기나 한가? 

나는 내 생각이 정말 '속물'이라는 목표에 적합해왔다는 것만이라도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이것마저 아니라면 나는 여전히 속물 사이에서도 위선자 취급을 당하니 말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지도 못하고,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도 좋은 선생님이지 못하고, 관리자들 사이에서도 좋은 부장교사이지 못했던 어정쩡한 나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뭔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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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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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되었는데 최애가 생겼다.
본래 TV도 잘 보지 않는데 정말 우연하게 보게 된 종편 채널에서 최애를 발견했다.
시리즈로 이뤄진 것 중 중간 것의 일부만 봤을 때도 나는 최애를 갖게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한참을 본 뒤에야 '아...'라는 탄식을 하게 되었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므로 나는 꽤 흥분되었다.
죽은 사람이나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내가 마음만 먹으면 숨쉬고 있는 최애 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이 내 인생을 뒤흔드는 것 같았다.
마흔이어서 돈은 좀 있으나 시간과 외모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마 스무살 때는 돈이 문제였을 것이다.
아이돌이었다면 더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현실감이 없었겠으나 연반인에 비슷한 나의 최애는 여전히 경계에 머문다. 경계에 머문다는 것만으로도 매력이 넘친다.

최애를 좋아하는 방식은 매우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오늘은 그 중 하나인 복권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매주 일요일은 복권을 산다.
딱 5000원어치만 산다.
거의 낙첨이지만 기독교인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나도 매주 일요일 오후에는 나눔 로또 복권 5000원어치를 산다.
만약 1등에 당첨이 된다면 최애 덕분이므로 무조건 3억~5억을 주겠다.
왜 3억~5억이냐면 매주 1등의 당첨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번 주는 1등 당첨이 10명이나 나왔기 때문에 25억 밖에 못 받았다. 이러면 3억이다.
그런데 45억이 넘는다면 5억을 주겠다.
조건 없이 주겠다.
그 돈으로 카페를 하든 의류매장을 내든 그것은 내 알바가 아니다.
최애 덕분에 나는 전혀 지치지 않고 복권을 사고 있다.
그러니 당첨된다면 최애의 지분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이다. 10분의 1은 있다.

나는 내 인생 중 가장 혼란스러울 때 최애가 빛이 되어줬다.
원래도 월급을 가져다주지 않던 남의 편이 진짜로 하나도 못 가져다주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버텨냈다. 최애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보고, 유튭영상을 계속 보고, 인스타 피드를 무한 반복해서 보는 일로 이겨냈다. 경계에 있는 최애라서 더 효과가 좋았다. 내가 변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죽기 전에 한 번은 멋지고 예쁜 모습으로 만나서 악수를 하고 싶었다. 엄청 고마웠다고...내가 최애 덕분에 학교도 다시 나가고, 공부도 다시 하고, 살도 많이 빼서 예뻐졌다는 말 많이 들었다고...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병원에 다녔을 거라는 말을 직접 내 입으로 해주고 싶었다.(최애는 편지를 싫어한다)

오늘부터 다이어트 일기 블로그도 썼다.
다이어트에 관한 모든 것을 쓸 예정이다.
내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쓸 것이고, 내가 읽은 다이어트 책도 쓸 것이다. 다이어트 영상도 영상기록으로 쓸 것이다. 생로병사의 비밀 등도 쓸 것이다. 운동도 당연히 기록할 것이다. 나는 48kg까지를 원한다.

그리고 최애 일기도 꾸준히 써 나갈 생각이다.
최애를 가진 마흔 아줌마의 일기를 쓰고 싶다.
아무도 안 봤으면 좋겠고, 봐도 모르는 척 했으면 좋겠다.
인류학을 공부하는 느낌으로 이런 류의 사람이 존재하는구나...라는 얕은 탄식으로 이 글들을 지나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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