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영 선생님께

보내주신 신문 스크랩들은 어느 기사 하나 빼놓지 않고 꼼꼼하게 읽어두고 있습니다. 같은 보도자료를 각자 편집해낸 결과를 보며 각 신문사의 성격 등도 파악하고 있고요.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되어 감사인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원탁 토론을 배우기 위해 주말마다 타지로 향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분이시라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그러나 토론에 관심이 많으시다기에 어쩐지 저와는 멀찌감치 계시겠구나 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토론과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어울릴 수도 없는 심약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남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며 아, 이 세상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참 많구나...혼자 감탄하며 사는게 제 적성에 딱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 안부를 묻는 편지를 쓰고 있네요.  제 삶에 힘이 되는 인연입니다.

아 참, 저는 요즘 고마운 분들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방학이 되기도 했거니와 그동안 학교 업무와 육아일에 치여 주변분들께 신세만 지고 제대로 감사인사를 드리지 못하였는데 이렇게나마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대신에 '펜을 들었습니다'라고 쓸 수 있다면 저 자신이 참 만족스러웠을텐데 시대의 흐름을 따라 메일로 편지의 형식을 대신함을 널리 이해해주시길....달리기도 못하고, 노래도 못하고, 요리는 더더욱이 못하는 제가 딱 한가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독서입니다. 그래서 장래희망이 독서가지요(대학교 입학후부터 고정 장래희망이였으니 수명이 약 10년을 넘는 장수 장래희망임) 그 다음으로 봐줄만한 재주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제 머리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과 비교적 비슷한 수준으로 표현해낼 수 있으니 꽤 쓸만한 재주입니다. 요즘은 글을 쓸 시간이 마땅치 않아 순간순간 놓치는 생각들이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했지요. 나의 재주에 정성을 덧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고요.  

 

'당신과 닮은 책 한 권' 

 

가제입니다. 앞으로 제가 써 나갈 편지들은 나의 고맙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들과 닮은 책 한 권의 이야기로 엮여져 나갈 것입니다. 그 책을 읽다보니 그 사람이 생각난 경우, 그 사람을 생각하다보니 그 책이 생각난 경우 둘 다 유효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된다면 그 책을 사서 선물도해드리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뵐 때마다 신문과 책을 번갈아가며 읽고 계시던 선생님 모습에서 이 시대의 가장 지적인 소설가로 손꼽히는 '김연수'가 떠올랐습니다.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닌데 김연수, 김영하, 김 훈, 윤대녕, 공지영의 소설은 반드시 읽어봅니다. 김연수는 친필 싸인이 있는 책도 가지고 있습니다. 각별합니다. 소설 속에 스며든 그의 지적인 면모와 '나는 몰랐어'라는 순수한 표정의 다소 무책임한 면모까지(이런 것을 요즘 사람들은 시크라고 하나요?)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늘 긴장이 되고, 충격을 받고, 박수를 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길때 정말이지 화가 울컥 치밀어 오릅니다. 웃기게 들리겠지만 더 이상 내가 읽을 수 있는 그의 소설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그가 다음 신간을 내놓을때까지 나는 또 기다려야 한다는 그 생각 때문에 섭섭함을 넘어서는 묘한 감정이 솟구치지요. 이것도 병인듯 합니다. 

제가 오늘 다시 꺼내 읽은 책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입니다. 산문 모음집이지요. 김연수의 유년시절과 대학시절 이야기가 쓰여져 있고 문학을 하기까지의 여정이 펼쳐져있습니다. 한 시간에 한 편의 시를 써나갔다는 그의 이야기와 딸 이름을 '열무'라고 지었다는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매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관조하며 지내는 그의 태도가 유쾌합니다. 그러면서도 지적인 열정과 문학에 대한 진정성을 놓지 않고 자신의 중심에 표출시키는 그의 단호함도 마음에 듭니다. 사실 그러한 점이 선생님을 떠오르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보면 마냥 재미있게 웃으며 사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전문가로서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사람들....제가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분들이지요. 

언제쯤 다시 뵙게 될런지요? 기약이 없어 '언제 한 번 찾아뵐게요'라는 다분히 공수표적 성격의 인사만 건네게 될까 염려도 되지만 다시 뵐 때 이런저런 좋은 소식 전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2010.7. 23 

임실초 김주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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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02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임실초선생님이요?
저 임실초5학년2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