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은 비정상을 정상처럼 만든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던가? 불면도 영혼을 잠식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
새벽 1시가 넘어도 잠이 오지 않았고, 조급함과 초조함(결국 또 한 숨도 못자고 출근하게 될까봐...)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그 새벽에 집중력까지 선사해주었다. 독서생활의 최대 난관은 넥플릭스가 아닐까 깨닫고 있는 요즘...조금 멀리해야지 하다가도 이렇게 불면의 밤에 그마저 없으면 나는 어찌할까싶어 고마운 마음도 든다.
오늘 새벽 선택한 영화는 메릴 스트립 주연의 'Julie and Julia' 2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2002년 미국 뉴욕주 퀸즈에 사는 평범한 공무원 줄리는 8년간 습작만 한 작가지망생이다. 1946년 프랑스에 살던 줄리아는 프랑스 주재 미외교관의 부인이며 요리를 좋아하는 유쾌한 미국인이다. 줄거리를 아주 간략히 요약하자면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줄리가 줄리아가 발간한 '하인이 없는 미국인을 위한 프랑스 요리 만드는 법 500여가지'를 1년 간 모두 직접 만들어본 뒤 블로그에 글을 올려 유명해진다는 이야기다. 2002년 당시에 줄리아는 생존해있었지만 둘은 직접 만난 적이 없다. 줄리아가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진지하지 못하게 쓰고 있다며 줄리에게 비난의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요리는 별 관심있는 이야기가 못 되었고, 나는 글을 쓰고 싶어했던...더 정확히 말하면 남들도 읽고 싶어하는 글다운 글을 써서 작가가 되고싶어한 줄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냐는 것이다. 심지어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나씩 차분히 생각해보기로 한다.
2002년 줄리가 블로그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8년간의 습작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줄리는 1년간 줄리아의 요리 레시피를 직접 실행한 일지를 써서 작가가 되었다기보다 8년간 준비했던 이야기 실력을 마지막 1년간 실제 발휘해서 작가가 된 것이다. 즉 아무런 보상도 결과도 없던 그 8년이 있었기에 줄리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줄리아는 외교관 남편을 두었는데 책 출판이 거절되었을 때 TV출연을 권한다. 대다수의 남편은 이제 그만하자고 했을텐데...사실 줄리의 남편도 아내가 글을 다시 쓰게 만들고싶어서 블로그를 권한다. 중간에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결국 줄리는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를 통해 작가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인상적인 대사가 몇 개 있었다.
"아이디어만으로는 작가가 될 수 없어"
"태어나서 뭐라도 한 가지 마무리해보고 싶어. 마감이 필요해. 마감이 없다면 난 중간에 또 그만두고 말거야"
한 개인이 보내는 일상은 매우 단조롭기 때문에 줄리가 블로그를 500여개 넘게 쓰는 동안 소재 고갈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니 주변의 특이한 사람들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고...그러다보면 주변의 일반인을 온라인의 세계에 무방비로 노출한 무책임한 블로거가 된다. 줄리도 그랬던 것 같다. 남편이 집을 나간 일...상사가 괴롭히는 일 등 줄리의 블로그에는 줄리 자체가 담겨 있고 줄리와 관계된 모든 이들의 일상이 부분적으로 담겨있다. 그러나 이는 사생활 노출이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할 것이다.
'와일드' 영화가 생각났는데,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르다.
메릴 스트립에 대해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5번 넘게 반복해서 본 것 같다.
결론을 알면서도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내내 '제발 도망가요! 제발요!'라고 마음 속으로 소리지르는 나를 발견하며 놀라곤 했다. 그 둘은 멀리 떠나서 그곳에서 싸우고, 미워하고 심지어 헤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로 여겨졌다. 함께 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멀리 있지만 그와 그녀는 존재하기 이전부터 정해진 것처럼 서로에게 끌리고, 서로를 원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그와 그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여 더 바랄 것이 없는 그런 연인들도 있는 것이다. 없을 거라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늘 그런 경우는 없을거야~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의 문제다. 발견하는 시간의 문제....
이후 크라이머 대 크라이머, 소피의 선택,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 초기 그녀가 젊을 때 작품과 최근 시크릿 세탁소(요건 넷플리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영화는 하나하나 모두 큰 울림을 준다. 영어를 잘 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메릴 스트립이라면....ㅎㅎ 유튜브에 그녀가 했던 졸업식 축사나 아카데미시상식 소감 등을 원어 그대로 이해하고 싶은데 100분의 1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영어를 조금 더 잘하고 싶다.
내일은 '소피의 선택'을 다시 보고 리뷰를 쓰고 싶다.
원치 않았지만 불면은 이제 내 다정한 친구가 되겠구나....되도록 친절하게 대해야지. 친절은 가장 소중한 미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