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하버드 새벽 4시 반
웨이슈잉 지음, 이정은 옮김 / 라이스메이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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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전자책을 자주 구매하게 된다. 전공서적은 어쩔 수 없이 구입할 수밖에 없어 자꾸만 쌓여만간다. 쌓이다 못해 거실 바닥 여기저기에 나뒹구는 정처없는 책들이 늘어갈수록 남편의 한숨은 늘어만 간다. 반면 나의 정신상태는 한 뼘조차 정상일수 없는 공황상태로 변해간다. 한 때 약 300페이지에 육박하던 나의 논문은...이제 후한 인심으로 추린다 해도 고작 30페이지 남짓이다(아주 후하게 걸러냈을 경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논문 심사청구 날짜는 다가오는데 어느 순간 형체를 잃어버려 너덜거리는 원고 몇 장 밖에는 가진게 없어 허허롭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자면 그 쌓여만가는 전공서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돈지랄'이라는 경박스럽고 천박한 그리고 노골적인 단어가 떠오른다. 평균 지능에도 못미치는 머리를 가지고서 감히 박사라는 타이틀을 얻어보겠다고...소위 '김박사'가 되겠다고 불철주야 알지도 못하는 전공서적을 이리저리 뒤적이던 나 자신이 한심해 미칠지경이다. 그 열정으로 중국어를 공부했다면....그 열정으로 베트남어를 공부했다면...그 열정으로 히브리어 같은 아니 라틴어가 더 좋겠다. 그런 사어를 공부했다면 얼마나 우아한 성취감을 맛보았을 것인가...

 

여튼 '하버드 새벽4시반'이라는 책은 전자책으로 구입했고, 구입한지 만 24시간 안에 완독하였다.

모초등학교 독서캠프 강사로 일하던 중 우연히 한 두페이지 읽게 되었는데 뒷부분이 궁금해서(사실 이런류의 자기계발서를 정독해본지 오래라 새삼스러운 반가움이 있었다) 구입을 감행한 것이다. 휴직한 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처지에 신간도서를 제 값으로 구입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다. 클릭하기까지 적어도 3번 정도 망설였던 것 같다(세상에나! 3번씩이나 망설였다니....한 인간의 주머니 사정은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로구나!)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이해는 되었지만 마지막 4번째 망설임을 수행하지 않은 과거의 나의 클릭직전 사고과정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정도라면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자책은 성격상 물릴 수도 없고, 되팔 수도 없다. 그냥 한 번 구입한 것으로 영원히 나의 책이 된다. 나의 소유다. 이게 참 묘한 느낌이긴 하지만 그림의 떡처럼 뭐....좀 그렇다.

 

내가 죽기 전에 보스톤이라는 곳에 갈 일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제주도 가는 일도 매우 번잡스럽고 힘에 부치고 되도록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나로서는 비행기를 무려 10시간도 넘게 타고 있어야 도착할 수 있다는 미국에 갈수 있을 성 싶지 않다. 하버드 대학 역시 지면으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그 하버드대학의 새벽 4시반은 마치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의 캠퍼스와 같이 활기차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작가는 지나치게 하버드생성애자인 듯 한데....사실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 성인이라면 새벽 4시반에는 자고 있거나 이른 기상을 하는 것이 맞다. 새벽 4시반에 불이 환하게 켜진 도서관에서 정상 컨디션으로 공부에 몰두하는 일은 24시간 높은 촉을 밝히고 암탉에게 알을 낳도록 압박하는 양계장 주인이 하는 일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하버드에 들어갈 정도의 암탉이라면 나처럼 비실대는 암탉이 가진 생산력보다 적어도 10배 아니 50배 이상 높은 생산력과 체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버드는 커녕 지방에 있는 작은 대학원에서조차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평재로서 이 책을 읽고 난 뒤 좀 스트레스가 풀렸다. 이런 논리다.

'태어날 때 은수저 물고 태어난 이런 인간들도 죽을둥살둥 해야 겨우 받는 박사학위를 나처럼 설렁설렁 공부하는 인간이 빨리 받는다는 건 말이 안되지 않는가...신은 정의롭고 공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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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관계 심리학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두행숙 옮김 / 걷는나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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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배웠다. 상처받지 않는 법을...그리고 행복에 대한 태도를...

작가는 '상처'에 관해서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전문가의 말을 모두 신뢰할 순 없지만 귀담아 들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주 작은 일을 하나 수행 중인데 그게 뭐라고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그 주제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 계속 논문을 찾아 읽어보고, 관련 지어 보고, 문장을 다듬고 다시 가설을 세우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특정 주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 적어도 누군가가 '그것이 뭔가요?'라고 물었을 때 엄청 지겨운 표정을 하고서 적어도 5분 내외로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 상태다(얼마지나면 사라져 버리겠지만)

 

 타인에게 민감한 나는(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많이 피곤한 삶을 살았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함부로 헐뜯는 것(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다고 전해듣거나 그럴 것이라고 짐작한 것...내 앞에서 나를 욕하거나 헐뜯은 사람은 지금껏 딱 한 사람 밖에 없었다)에 의해 나의 행복이 오락가락했다. 내 행복의 기준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다니...이것 참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또한 상대방의 언짢음과 불편함 혹은 불쾌함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받는 상처를 고려하지 않은 채 능동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굴욕적인 언행을 일삼았다. 나의 자존감은 성장하는 속도와 반비례하여 한없이 내려가기만 했다.

 

 작가는 충고한다. 상처를 받고 안받고는 내가 결정한다고....어떤 상황에서도 '존중받는 나'가 중요하다고....

 문득 드는 생각은 제대로 잘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는 이기적이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대개의 사람들은 내 입장에서는 매우 잘 살고 있는 인간군이라고 여겨진다. 나는 결심했다. 상처도 골라서 받기로...또 행복한지 안한지에 대한 결정권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만을 기준으로 삼아 선택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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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이다. 2014년과 제대로 작별을 하기 위해서는 2달 남짓을 기다려야 한다. 지루하다기 보다는 뭔가 말도 안되는 논리에 의해 묶여 있다는 느낌이 들어 불쾌하다. 누구나 연말이 되면 내가 왜 이렇게 일 년을 보냈단 말인가....하는 한탄을 하게 된다. 매년 그렇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무개념이거나 그럴만한 여유가 없는 사람이다. 다음해에는 조금 더 행복을 챙기자!라고 생각하며 다음 해 1월 1일을 기다린다. 12월 31일까지는 뭐랄까....잉여 인간처럼 이런저런 소일을 하거나 노닥거리다가 1월 1일이 되면 뭔가 새로운 인간이 된 것처럼 다르게 행동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잘 안다.

 

 나는 생각의 전환을 하기로 했다. 11월 5일부터가 2015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2014년 11월 5일은 2015년 1월 1일과 그 의미나 가치가 동일한 것으로 나에게는 새로운 날인 것 이다. 남들보다 2달 남짓 일찍 시작된 나의 새해 맞이 때문에 마음이 애매하다. 그러나 두 달 먼저 새로운 생각과 태도로 맞이하니 감회가 남다르다.

 

두 달 먼저 시작된 나의 2015년은 꽤 복되고 희망찬 일들로 가득할 것이다.

깊이 있는 독서와 품위 있는 관계가 나의 시간들을 수 놓아 줄 것이다.

내가 가진 무늬들이 더 선명한 색을 드러낼 것이며, 그 색을 찾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나눠줄 것이다.

2015년은 특별하고 아름답고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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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에 가본지가 백년도 더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음....이건 마치 날씬해 본지 10년도 넘은 느낌과 비슷하다랄까....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영화관이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뺄 수 있는 살들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체내지방들) 앞으로 결코 그런 마음을 쉽게 먹을 수 없다는 것과 마음 먹은 결과가 가시적인 성과로 딱 하니 드러나 보이는 때까지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건 정말이지 현실적인 문제다.

 

비긴 어게인은 훈훈하게 막을 내렸지만

사실 생각해보라.

다시 시작한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럼에도 반드시 시작해야 한다라는 절대절명의 목표라든지 상황이 주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라는 느낌이 들만큼 오늘의 현실이 힘겨운 사람들...(대부분이 아마도 그럴 것이라 짐작된다) 아마 깊은 성찰이 동반되지 않은 리스타트라면 얼마 못 가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실 매일매일 다시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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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 - 이안 동시 평론집
이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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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 선생님은 동시계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하고 계신 분이다(본인은 '거목'이라는 단어를 매우 못마땅해 하시겠지만..). 글 쓰는 사람들 흔히 '작가'라고 통칭되는 분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어진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백석류'이다. '백석류'를 붙여서 쓰니 꼭 하얀색 석류를 뜻하는 것 같지만 그건 아니고 본명이 백기행인 백석 시인과 같이 타고난 글꾼인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뭐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 물고 태어나신 분들이라 뭘 쓰든 절창이 된다. 이 부류는 작가계의 로열 패밀리로써 감히 넘볼 수 없다. 최근에 나는 한강 교수님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두 번째 부류는 '정지용-임화류'다. 두 분을 폄하하려는 뜻은 전혀 없고, 뭔가 처세에 능하고 세력 만들기에 능한 인간적인 기운 강한 작가들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렇게 썼다. 정지용 선생님은 당대에 매우 뛰어난 시인으로 평가받은 동시에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누렸던 굉장히 운 좋은 작가 중 한 명이다. 임화 선생님은 월북 작가가 되는 바람에 남쪽에서 연구된 바가 적지만 여튼 필력보다는 처세에 능했던 분에 속한다. 작가동네도 사람이 사는 사회다. 권력 구조는 단 두 명이 모인 자리에서도 생긴다. 완벽한 평등은 이론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현실에서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이상적 이론이 현실화되기란 그 결과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그러므로 인간 세상의 권력 구도는 늘 언제나 있어 왔고, 현재도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이건 전적으로 내 주관에 의한 발언임을 밝히며).

 힘 겨루기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이기느냐이고, 지더라도 얼만큼 지느냐다. 도토리 키재기식으로 가려지는 경쟁은 서로 힘만 빠진다. 정지용은 그냥 힘빼는 처세에 능했고, 임화는 힘 얻는 처세에 능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튼 글쓰는 것이 직업인 이 사람들도 글 말고 다른 것으로 '쑈부'를 보려는 이들이 좀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부류들이 중앙으로 진출하여 힘의 축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작가동네도 사람사는 세상이니까...

 

 마지막으로 '개미작가'들이 있다.

 이건 순전히 내가 주식시장에서 따온 말인데.....'개미'들은 큰 손이 이리저리 짜놓은 판에 아무것도 모르고(가끔은 알고서도 어쩔 수 없이) 성큼 들어서는 이들을 통칭하는 상징어다. 이들은 시종일관 치졸하고, 불쌍하고, 쫌생이 같다. 큰 손들을 부러워하고 어떻게 하면 그들처럼 될 수 있을지 늘 공부한다. 다단계의 마지막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 진짜 칼 잠 자가며 노력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는 이렇게 수많은 '개미작가'들이 산재하다. 요즘은 큰 손의 세력이 평범한 노년 어르신들에게도 뻗쳐서 평생교육원 시창작 교실에 가보면 하루에 10편 이상 시를 써낼 수 있는 다작의 어르신들이 계시기도 하다. 슬픈 일이다. 그 많은 시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한다는 말인가? 개미를 위한 법적 조치가 제도적으로 만들어져야 함에도 이 동네는 도대체 그 보이지 않는 큰 손들이 자기 글 쓰느라 바빠서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신춘 소설 한 편 봐주는 데 얼마얼마라더라....시는 그보다는 좀 적게 들지만 손 한 번 댔다하면 그 사람이 봐준 티가 하도 나서 붙일 수가 없다더라....등등 '뭐라 카더라'식의 '썰'이 판을 친다. 불쌍한 개미들은 그 썰을 또 정보인냥 몰래 듣고 혼자 공부한다.

 

에휴 개인적으로 '개미작가군'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탕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기도 하다.

 

이 안 선생님의 동시 평론집은 아주 훌륭하다.

다만 그동안 교교하니 고요했던 동시 바닥이 추천하는 사람 이름 석 자만으로 유력지에 등단이 가능한 바닥이 되지 않을까 하여...그냥 좀 쓸쓸하게 적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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