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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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에 겐자부로의 산문은 언제나 기대 이상이다. 이런 책을 기획하고 출간해준 위즈덤하우스에도 감사하다. 독서가로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대체적으로 상세하게 나타나있다.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에 부합하게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는 점이 못내 아쉽지만 오에의 성격상 강의노트의 상당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한 뒤 윤문하였을 것이다. 그는 알려지있다시피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영어에도 능하다. 그가 원문을 통해 텍스트를 접하려 한 것은 정말 탁월한 그리고 운명적인 선택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제아무리 실력이 출중한 번역가라한들 원문이 가진 느낌 그대로를 번역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거의 평생을 오르한 파묵의 작품만 번역하고 있는 이난아씨 역시 번역의 어려움에 대하여 토로한바 있다. 오에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그의 문학적 역량과 시대적 상황과 그의 작품을 수준높은 영어로 번역해준 실력있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도 그저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언제쯤 나올까....라는 질문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문인의 작품을 빼어나고 아름답고 정확한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문학감성 충분한 번역가를 많이 양성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여겨진다. 번역가 양성은 산업으로 따지자면 가공업에 해당하는 분야이므로 뭔가...학자들 사이에서는...그게 국가차원에서 양성되어야 할 인재로서 자격이 있는가?라고 여겨질 것이 뻔하다. 예를 들어 미당의 작품을 번역하는 일은 미당을 제대로 연구한 학자들이 영어 실력을 갖춰 옮기거나 아니면 영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 미당 연구자의 도움을 받아 옮기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는 거의 실현되기 어려운 실정이고 후자의 경우는 그저 영어만 잘하는 사람이 상식수준의 문학 지식을 갖추고 번역한다고 나는 알고 있다. 전주에는 고전문학번역문화원 분원이 있다. 서울에 본원이 있고 밀양과 전주에 각각 하나씩 분원이 있다. 이 곳은 한학자의 추천을 받지 못하면 들어갈수도 없는곳이다. 요즘처럼 최첨단 시대에 고전문학 번역이라니....참 돈안되는 일을 하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번역문화원의 역할은 우리나라의 교양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마도 내 생각은 맞게 될 것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에드워드 사이드에 관한 그의 회상이다. 평소 에드워드에 대한 외경심이라고 해야하나....그런 것은 나 역시 지니고 있었다. 오리엔탈리즘은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개정판을 또 한 권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 그와 오에가 친하게 지냈었다니.....지란지교에 비유하고 싶다. 나 역시 그런 친구를 갖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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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상입니다
하지현 지음 / 푸른숲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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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으로 만난 하지현 선생님은 달변가처럼 여겨진다. 최근 출판 추세는 담론이나 인터뷰보다 녹취된 강의를 재편집하는 것이 대세인 듯하다.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나 '담론'과 강신주 선생님의 최근 시리즈가 그렇다. 이 책 역시 벙커에서 이뤄진 일종의 열린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김민정 시인의 편집자로서의 역량이 돋보인다. 그녀를 잘 알진 못하지만 그녀의 시에서 느꼈던 진정성이 출판계 일을 하면서도 나타나길 진심바란다. 성찰하지 않으면 완성에 쉽게 도달한다. 쉽게 성취된 완성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에 어려운 시기를 겪게된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현 선생님은 정상의 범위를 상당히 폭넓게 상정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이런 류의 강의만 좇아다니며 자신의 불행을 프레임에 끼워 맞추며 미래 역시 이런저런 일들로 채워지고 말 것이라고 추측하는 '심리화'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섣불리 상담받지 말라는 충고도 새겨들을만 했다. 개인적으로도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말을 믿기 때문에 어설픈 상담치료는 반드시 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혼자있고 싶어서 혼자임을 자처했던 이들이 자신이 비정상 아니냐며 질문해왔다. 하 선생님은 대체로 쿨한 성격인 사람을 건강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정신적인 문제가 외상으로 드러나는 것을 나쁜 사인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우울증과 우울한 성향을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외부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죽고싶다...미치겠다...삶이 무기력하다...이런 것들이 생각에만 머물면 우울한 성향이다. 이건 정상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 함께 체중이 급격히 빠진다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잠을 이루기 힘들다거나, 쓰레기가 방에 쌓이는 일은 bad sign이다.

정신과 의사인만큼 약물치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힘주어 말했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브라이언 리틀의 <성격이란 무엇인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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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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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을 보니 흡사 박사논문 한 편 쓴 것처럼 여겨진다. 많은 자료를 찾으셨고, 찾으신 자료를 잘 살려내신 것 같다. '책만 보는 바보'를 통해 안소영의 존재를 알았다. 서강대 철학과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의 부친과 주고받았다던 편지 역시 결코 잊을 수 없을 수준이었다. 부녀간 대화의 한 전형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듯하다.

 윤동주는 그녀의 말마따나 살아생전에 무명 시인이었다. 그도 조지훈이나 박두진과 같이 주목받고 싶었을 것이다. 청록파 시인처럼 고고한 학자풍의 시를 쓰고, 목가적인 향내를 물씬 풍기며 시인으로서의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왜 그렇지 않았겠는가....그러나 송몽규라는 걸출한 인물이 그의 곁에 항상 있었고, 그의 할아버지가 저 먼 곳에서 자리잡고 있었다. 가풍이란 이래서 중요하다.

 담백하고 정갈하고 단아한 전기 한 편 읽은 기분이다. 안소영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뵐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좋은 책을 쓰는 작가들에게는 그리고 온갖 현실적인 어려움을 딪고 자신의 좋은 글을 출판사를 통해 출판해 낸 작가들에게는 누구든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그에 비해 출판사를 통해 자신의 책을 출판해내는 지난함을 견디는 작가는 흔치 않다. 출판계에도 '금수저-은수저-동수저-흙수저'가 분명 존재한다. 이를 탓할 것이 아니라 금수저인 사람들이 아량(?)을 베풀어 흙수저에게 기회를 양보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한 권만 포기해주면 흙수저 10명은 자신의 이름이 찍힌 좋은 책을 낼 수 있고, 그 책을 우리 독자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 몇몇 아포리즘으로 그 말이 그 말인 책을 찍어내는 금수저 작가들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하는 말이다.

 2016년 네 번째 읽은 책이다. 아주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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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그림자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검의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1942.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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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의 말 - 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수전 손택 & 조너선 콧 지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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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논하는 일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인식이 최근들어 상식처럼 굳어지고 있는 것 같다. 상식이란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상식의 대부분은 규제와 관련되므로 오히려 자유로운 사고를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페미니즘의 사양길을 상식이라고 규정하는 일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독자의 평소 상식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일단 나의 상식선에서는 그렇다라고만 말해둔다.

한 때 페미니즘 운동의 최전선에 있던 이들이 한껏 인용했던 이들 중 '시몬느 드 보봐르'와 '한나 아렌트'는 익숙한 이름이다. 전자는 샤르트르의 연인으로서 그리고 '제2의 성'의 작가로 유명하다. 후자는 '이스라엘의 아이히만'으로 유명한 정치철학자다. 그녀들은 언제나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죽을때까지 자유로웠다. 수전 손택은 반전운동으로 유명하며, 섹슈얼리즘으로도 뭐 누구 못지 않게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있다.

인터뷰에 응하는 그녀의 태도는 권위와는 거리가 먼 그런 모습이었다. 전문적인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만남은 이토록 명료하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인터뷰 내용을 만들어내는구나 싶어 한편 놀랐다. 내가 읽어본 인터뷰 글 중 가장 뛰어났다. 조너선 콧은 그녀에 대해 굉장히 자세히 그리고 깊이 알고 있었고, 수전 손택은 조너선에 대해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세 살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고, 열 세살 때 만, 카프카 등을 섭렵했다는 수전 손택은 분명 언어영재임이 틀림없다. 그녀는 타고난 사상가이자 작가다. 글쓰는 작업이 무척 어려웠다는 것은 그만큼 완벽을 기하고자 하는 그녀의 성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영어에 익숙해서 그녀의 책을 모두 원서로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아주 잠시.....(it's impossible)

 엄마가 건강검진을 받는 동안 앉아서 읽은 책이다. 제목에 쓴 세 사람의 저서를 비교 분석하는 일도 꽤 흥미로울 것 같다. 그러나 이것도 임파서블 투 미....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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