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신문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
김태수 지음 / 황소자리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여기 늪이 하나 있습니다.

이 늪에 발목 채이면 재미있고 기묘하여 연신 웃음을 터뜨리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울하고 애틋해지는 늪입니다.


이것은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책에 대한 내가 만든 카피이다.

일간지 문화부 기자로 지냈던 저자 김태수씨가 근대의 신문에 실린 광고들을 주제로 책을 펴냈다. 100년 전이라면 우리 할아버지들이 살았던 시대이니 손에 잡힐락말락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이다. 근대는 반 만 년 역사 가운데 가장 큰 변화를 겪어야 했던 시절이며 아울러 주권을 상실하여 식민지 치하 암흑의 시절이다. 그동안 역사 공부를 통해 근대의 이러한 비통하고 참혹한 풍경은 익히 배웠으나 그 속에서 삶을 꾸려나간 근대인들의 생활 단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신문은 시대의 거울이다. 신문에 실린 광고에도 당시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반영된다. 근대인의 생활양상을 실은 당시의 신문의 광고를 본 나의 첫 소감은 “너무너무 재미있고 희한하다!”였다. 악랄한 일제 치하에서 피눈물 흘리며 신음만 할 줄 알았던 나의 선입견을 뒤엎은 것이다. 쏟아지기 시작한 신문물은 근대의 풍경을 더욱 부산스럽고 왁자지껄하게 만들었다. 외세의 침략과 봇물처럼 터진 낯선 이국문명이 분명 우리 선조들의 숨통을 죄고 혼란에 빠트리게는 했겠지만 그 속에서도 칡 줄기보다 더 질긴 생을 이어나가는 삶은 그토록 치열했던 것이다.


광고에 등장했던 품목들을 살펴보면, 양반의 전유물이었던 기생을 돈만 있으면 개쌍놈도 데리고 놀 수 있다는 기생 광고로부터 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는 고무신 광고, 바리캉과 양장, 자동차, 백화점까지 생필품들이 올라왔다. 그 광고들은 요즘이라면 모조리 광고 윤리위원회 같은 심의에 과장, 허위광고로 걸리고도 남는다.


“식욕은 늘게 하고 먹는 것을 몸으로 가게 한다.” 이것은 포도주 광고이며,

“맥주는 술이 아니라고, 그러면 무엇일까, 가로대 자양품이라.”하며 맥주를 자양강장제라고 우기는 식이다. 이런 마당이니 껌은 “과식한 후 10분간 씹으면 위의 중고함이 업서짐니다”라는 카피로 소화제 뺨치는 카피도 가능했으며 “불로초 캐러멜”상표도 그리 이상하진 않았다. 그럼, “포켓트에 너흘 수 있는 호화로운 식탁”이며 “에널기의 근원”은 무엇일까? 초콜릿이다.(^^)


근대에는 성문화가 극도로 문란함을 볼 수 있다. 신문에 성병약, 콘돔(삭구), 포르노그래피 광고들이 버젓하게 실려서 오늘날이라면 미성년자 구독불가 판정을 내려야하지 않을까. 잘나가는 기생의 얼굴을 실으며 요릿집의 근하신년 인사말이 실리고, “이것 참 훌용하다 진화, 진서, 진사진, 밤의 쾌락을 맛볼랴는 남녀에게 권합니다. 가을밤 긴데 한 번 보시요.”라며 남녀의 성행위 과정이나 접문(deep kiss)의 과정을 자세히 다룬 책을 당당하게 광고하기도 했다.


광고 뒤의 현장을 문헌에서 찾아보면, 당시 성병이 창궐하니 돌팔이 요법도 횡행하여 <시체요법>과 <수은치료법>도 모자라 사람의 생간이 효험이 있다고 하여 거리에 거지들이 사라지고(잡아먹어서), 아이들이 없어지는 무서운 일이 생겼다.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먹다니 소름이 돋는다. 이런 조선의 모습을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장년자 중 50%가 성병에 걸렸으니 조선도 이제 문명국이 됐다”라며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이토록 문란한 풍조를 만든 장본인이 일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제로 매춘문화를 우리 속에 이식시켰으며 미곡 수탈로 농촌을 허물어뜨려 농촌여성을 도시로 매몰아 매춘업에 종사하게 했다. 매춘관련세가 세입의 10%였으니 일제에겐 큰 돈벌이였다. 그 후 해방이 되어 일본은 물러갔으나 성병은 오래토록 우리땅에 보균자로 남아 있어 내가 겨우 한글을 깨우쳐 글씨란 글씨는 모조리 읽고 다닐 때(70년대)까지도, 동네 전봇대에 <매독 임질>이라는 글씨를 본 기억이 난다(뜻을 물어보다 혼났기 때문에 또렷이 기억난다).


책에 실린 광고사진이 풍성한 볼거리를 준다. 재미나고 쉽게 술술 풀어나가는 김태수의 입담에 400쪽에 달하는 책을 단번에 읽어 내릴 수 있고, 허황하고 톡톡 튀는 기발한 광고카피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웃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다 읽고도 삼 사 일이 지나도록 리뷰를 쓸 수 없었다. 호기심과 웃음으로 재미나게 읽다가 책장을 덮고 나니 내 가슴 밑바닥에서 짠하게 아픔과 고통이 터져 나왔다.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굶주려 흙 파먹으며 배고팠던, 성병으로 코가 문드러졌던 근대인들. 그들은 자고나면 나날이 변화하는 요지경 같은 세상에서 끊임없이 적응해야 했고 살아남아야 했다. 우울하고 참혹했으나 그렇다고 생을 포기하지도 않았기에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준다는 촤뿌리(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보며 나름대로의 문화를 이루었다. 근대사를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이 책을 읽고 건진 제일 큰 이득이다.

/050826ㅂㅊㅁ


그 외 사소한 이득, 1) 생생한 근대어 체득

                            2) 현란한 광고 카피 감상

“그리하야 국어의 변천에 관심이 많은 국문과 유생들과 카피라이터 희망자에겐 좋은 부교재가 될 것이며, 리뷰에서 소개한 것 외의 생생한 근대 풍광을 보길 희망하는 자는 가을밤도 긴데 속히 사서 보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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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8-2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을것 같네요. 카피를 보고 웃다가 그 속에 담긴 시대에 찡해질만한 책이네요.

진주 2005-08-26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이 도서는 대학교재로 채택되어 최대 2부까지만 주문이 가능합니다.(8월 24일 ~ 9월 30일)>라는 안내문구가 떴네요. 어느 과에서 교재로 채택했을까 궁금궁금^^;;

이 책은 발간한지 3일만에 재판에 들어갈 만큼 반응이 아주 뜨거운 책입니다요.

진주 2005-08-26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정말 재미있어요.
<엄청 재밌다, 엄청 우습다, 그리고 가슴 짠하다> 이게 제 20자 서평입니다^^;

panda78 2005-08-26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이 책, 너무 좋아서 막 여기저기 추천하고 다녀요. 진주님 리뷰 참 좋으네요. 가을밤 긴데 사서 보시요. ㅎㅎㅎㅎ
저도 이거 읽구 나서 근대관련 책 줄줄이 장바구니에 넣었답니다. 적립금으로 지를라구요. ^^

진주 2005-08-26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판다님 리뷰도 얼른 읽어 볼게요.
저는 저 부분을 읽을 때 뒤집어졌다니까요. 가뜩이나 가을밤도 긴데 포르노그래피를 봐라고 하면 어떡하라는 건지...^^;
재밌는 책입니다. 그쵸?

바람돌이 2005-08-27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생한 근대 풍광을 보고싶으니 속히 사서 봐야겠사옵니다. ^^

panda78 2005-08-27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리뷰 안 썼어요.. ㅠ_ㅠ 페이퍼만 올렸어요. (그러니까 말예요.ㅋㅋㅋ 가을밤이 길면 이런 책이나 봐야지, 그걸 봐서 어쩌라구.. 울며 지새라구? ㅎㅎ)

진주 2005-08-2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님이 주신 <미래를 여는 역사>와 이 책을 세트로 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미래를 여는 역사의 탄실한 구성 위에 사회풍경을 곁들이면 더 이상 좋을 순 없겠지요. 전 이번 방학 동안 <미래를 여는 역사>로 중2, 중3 반에서 특강했는데 이 책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같이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뒷북을 쳤답니다. 이 책은 계속 보관함에 넣어 두고 있으면서도 책값이 만만찮아서 계속 미뤘거든요.
(내년엔, 이 책이랑 미래를 여는 역사랑 같이 수업할래요)
아참...미래를 여는 역사도 빨리 리뷰 올려야 하는디......

판다님, 그..그러시구낭..^^저는 제꺼 쓰기도 급급해서 다른 리뷰는 잘 못 봐요...(그..그쵸? 긴 밤에 청춘들에게 포르노그래피를 주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죠 ㅋㅋ)

플레져 2005-08-29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둘러 가지 않는 광고가 더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상품의 본질을 잘 설명하는 듯 싶은데요. 포켓에 너을 수 있는 훌륭한 식탁, 카피는 너무너무 멋져요. 책의 맛보기를 보여준다, 는 표현은 이럴때 쓰는 거죠? 리뷰 잘 읽었습니다, 진주님!

진주 2005-09-05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은 언제나 제 리뷰를 성실히 봐 주시네요.
고맙습니다.
(저는, 맥주는 술이 아니다, 자양강장제로다-하는 부분에서 포복절도..ㅎㅎ)
 



/호랑녀님이 보내주신 책들

호랑녀님, 어제 책이 왔뿌구만요. 두 권밖에 신청 안 했는테 왜 일케 많지? 했더니 <냉정과 열정사이>가 두 권짜리였구만요. 원캉 유명한 책이라 지두 이번 기회에 읽어보자꾸나 싶어 냉큼 손들었는데 보내주셔서 고마바예. <아빠와 함께 수학을>은 제가 수학엔 젬뱅인지라 이 책 읽으믄 울 남편이 한 몫 해줄랑가 싶어 기대만땅이구만예. 그라고, 조거는 뭣시라? <다섯빛깔 내 마음의 비밀노트>열어보니 이뿌리한 일기장임니더. 홍홍 잘 되얏다. 마침 밑줄긋기 노트가 하나 필요했는데 히힛. 호..혹시 저한테만 님의 사랑의 표시로다가 주신 건 아닌지 몰겠네예..음음 그라마 일케 나발 불믄 안 되는 거 아닌지 몰라몰라 그래도 난 자랑할꺼야.

손수건은 제껍니다. 여름동안 책 읽을 때 팔 밑에 까는 거~앗! 제 발가락도 나왔뿟네~ 흐걱...

헴헴헴....호랑녀의 흔적이 무엇이냐믄.....냉정과 열정사이 맨 뒤에 갈피에다 님의 흔적이 찐하게 남아 있어요. 책을 읽고난 후에 따끈따끈한 감상을 적어 놓으신 거 같아요.....옴마 멋있어요 호랑녀님~님의 새로운 모습이에요! 제가, 이걸 보고 월매나 가슴이 뛰었던지! 호...이거 귓속말로만 전하려다가 입이 근질거려 이 자랑 못하믄 화병이 도질 거 같아서 그만.....

자랑 끝~/050825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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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25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당^^

실비 2005-08-2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호랑녀 2005-08-25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랬던가요?
지워야 했는데...
잠수탈거에요 =3=3=3

진주 2005-08-2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쥬 만두님^^
실비님도 부러우신게죠 흐흐
호랑녀님, 안 돼~~~~~~~~~~~~~~~~~잠수타믄 안 돼.(한 편의 시 같았어요. 처음에 전, 책 속에 좋은 문장을 베껴 놓으신 줄 알았다니까요. 무지무지 문학적이었숨다.멋있었어요)

아영엄마 2005-08-2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저는 버스 떠난 다음에 그 소식을 들었다구요.. 힝~

날개 2005-08-25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호랑녀님이 뭐라고 써놓으셨는데요~ 저도 보여줘요!!!^^

panda78 2005-08-2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호랑녀님께 책 빌려본 적 있는데, 그때 흔적들을 몇몇 봤지요. 그렇게 책 속지에다 적어두는 것도 참 좋아보이더라구요. ^^
냉열사엔 뭐라고 적어두셨으려나,, 궁금해라. ^^

진주 2005-08-25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안타깝군요. 탐나는 책들이 무지 많았는데..저도 가까스로 건졌어요. 끝에서 두 번째...

날개님, 저야 뭐 까발려 자랑하고 싶지만 호랑녀님의 허락을 받아야...

판다님, 저도 책 여백에 연필로 적는 걸 좋아해서 제 책은 남들에게 못 빌려 줘요...

水巖 2005-09-0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역시 부럽다고 말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진주 2005-09-05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이 이사 가신다고 책 받고 싶은 사람 손 들어~할 때 제가 낼름 손 들었거든요. 부러우시죠? 헤헤
 

참깨를 털며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갱이들

도시에서 십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낸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없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이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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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4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8-24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8-24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5-08-25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깨 한 번 털어봤음 좋겠네요. 시 좋아요 ^^

진주 2005-08-2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만 보이시는 08-24 12:33 빠트리는 거 없이 꼼꼼하게^^;
제게만 보이시는 08-24 13:31 저 도시태생이라 한 번도 못해 봤어요. 참깨 털고 싶다고 하면 농부들이 화 내려나....
검정개님, 그렇죠? 저도 그래요.

2005-08-25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5-08-25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만 보이시는 08-25 11:49님, 양은요????

2005-08-25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水巖 > 이런 시집 - 이오덕씨 시집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


2주기 앞두고 미발표 유고시 56편 엮어 펴내

이오덕씨 시집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


양장본 172쪽  /  한길사  /  9,000원

서울=연합뉴스  /  조선닷컴

입력 : 2005.08.23 10:13 00'

우리말글 살리기에 평생을 바쳤던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 씨의 미발표 유고시집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한길사)가 출간됐다.

오는 25일 두 번째 기일을 앞두고 출간된 이 시집은 이씨가 남겨놓은 시창작 노트 5권에서 가려뽑은 56편으로 엮었다. 이씨의 미발표 유고시들은 지난해 시전문지 ’시경’을 통해 12편을 처음 공개했고, 올해 4월 실천문학사에서 ’고든박골 가는 길’이란 제목의 시집으로 출간된 바 있다.

이번 시집에는 1990년대 이후 충주 무너미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연친화적 삶을 살았던 이씨의 생활상이 담겼다. 소박하고 간소한 생활의 자세,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우리의 말과 글을 아끼는 정성, 아이와 같은 순진함이 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나는 올해가 일흔이 꽉 찬 나이인데도/아직도 어린애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산속에 가서 한 포기 풀같이 살아가는 꿈/산속에 가서 한 마리 새같이 살아가는 꿈”(’나의 꿈’ 중)이라거나 “팥죽을 한 솥 쒀 놓고/멀리 있는 친구도 불러와/촛불을 켜 놓고/옛날이야기 하면서/같이 먹고/이웃에도 나눠주고/그리고는/팥죽 노래 부르고 팥죽 춤추고/팥죽 세상 만들어야지!”(’팥죽 2’ 중)라는 시에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어려운 말 하는 사람 믿지 않고/유식한 글 쓰는 사람 따르지 않고/쉬운 말 우리 말로 살아가는 사람/ 바르고 깨끗하고 아름다워라”(’우리 말 우리 얼’ 중)라는 시에는 우리말글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

40여 년 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손수 집안일을 해왔다는 이씨는 요리나 바느질 등 여성스러움 속에 깃든 생활의 기쁨을 노래한 시들도 남겼다.

“조그만 오지솥그릇에/찌개를 끓인다./된장을 풀어 넣고/풋고추 한 개 썰어 넣고”로 시작하는 이 시는 “보글자글 보글자글/된장찌개 소리로/하루를 시작하는 기쁨을/세상의 남자들은 모르고 살았지/여자들에게 빼앗겨 있었지/바보 같은 남자들…”(’찌개 끓이기’ 중)로 끝난다.

“바느질이 하고 싶어/그만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한 땀 한 땀 꿰매는 재미가 글쓰기보다 낫다./이런 행복을 몰랐으니 참 내가 지금까지/얼마나 바보로 살았나/세상의 여자들이 어째서 남자보다/더 끈질기게 더 오래 사는가 했더니/그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바느질’ 중)라고 노래한 시도 실려 있다.

생전에 이씨의 절친한 벗이었던 아동문학가 권정생 씨는 머리글에서 “마지막 남기신 이 쓸쓸한 노래는 기존 시단에서는 홀대를 받겠지만 고달프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에겐 위안이 될 것”이라고 적어놓았다.

지은 책으로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우리 글 바로 쓰기>,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개구리 울던 마을>, <일하는 아이들>, <문학의 길 교육의 길>, <어린이책 이야기>, <고든박골 가는 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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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뱅이를 아시나요 파랑새 사과문고 1
김향이 지음, 김재홍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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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김향이 작가의 차분한 문체를 좋아 하는데 이 책에서도 성급하지 않은 작가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때에 따라서 일필휘지로 단숨에 붓을 몰아붙여 글을 써야 할 때도 있지만 차곡차곡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듯한 집필의 흔적은 읽는 이로 하여금 경건한 마음까지 들게 한다. 저자 서문에서도 글이 써지지 않아 고통스런 마음으로 썼다가 독자에게 그 마음이 옮겨 갈까봐 글이 막힐 때마다 산길을 걸으며 마음을 달랜다는 고백이 진실하게 들린다.


일곱 편의 단편들에서는 누구나 한 가지씩 갖고 있는 컴플랙스에 관한 주제를 많이 다루었다. <너무너무 사랑하니까>의 얼굴에 흉한 반점을 갖고 있는 홍점이 이야기, 정신지체 장애우 이야기 <막둥이 삼촌>, 혼혈아 이야기 <쌀뱅이를 아시나요>, 화병으로 실어증을 앓는 <버버리 할아버지> 등.


표제작 <쌀뱅이를 아시나요>의 쌀뱅이는 실핏줄이 내비치는 투명하게 흰 피부가 쌀처럼 하얗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이다. 혼혈아인 쌀뱅이가 외국으로 입양되어 갔다가 성인이 되어 고향을 찾아와 친구와 재회하는 장면을 지루하지 않게 아련하게 잘 묘사하였다. 나는 일곱 편의 이야기 중에서 <너무너무 사랑하니까>가 참 맘에 들었다. 얼굴의 흉한 점을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을 표시하려고 준 선물이라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작가가 동화를 쓰면서 지표로 삼는다는 워즈워드의 말 <우리들은 감탄과 희망과 사랑으로 산다>를 실천하는 것 같다. 나도 앞으로 그런 애를 만나면 “너무너무 사랑하는 표시래”라고 해 줘야지.


김재홍의 수채화 그림도 동화와 잘 어우러져 아름답다.

/050822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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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5-08-22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보관함으로..... 이 책이 어울릴만한 애가 있을 것 같군요.진주님의 리뷰를 다시 보니 역시 좋네요. ^^

2005-08-22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5-08-22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세 개>가 후한 것도 아니지만 박한 것도 아니죠...?

2005-08-22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5-08-2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좋았는데....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주제도 하나 끼어 있어서...고만 세 개만 줬답니다..ㅡ.ㅡ

로드무비 2005-08-23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콤플렉스에 대해 다룬 글들이 재미있어요.
사람에게는 각자의 콤플렉스가 있는 법이고.....
일단 보관함에 넣습니다.(땡스투 누르고 바로 주문하려다
별 세 개 보고 주춤!^^)

진주 2005-08-23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저는 기독교인이라......기독교인이 아니면 괜찮은 이야깁니다.
이거 너무 주관성이 강한 별점이지요?(안 그러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