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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늪이 하나 있습니다.
이 늪에 발목 채이면 재미있고 기묘하여 연신 웃음을 터뜨리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울하고 애틋해지는 늪입니다.
이것은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책에 대한 내가 만든 카피이다.
일간지 문화부 기자로 지냈던 저자 김태수씨가 근대의 신문에 실린 광고들을 주제로 책을 펴냈다. 100년 전이라면 우리 할아버지들이 살았던 시대이니 손에 잡힐락말락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이다. 근대는 반 만 년 역사 가운데 가장 큰 변화를 겪어야 했던 시절이며 아울러 주권을 상실하여 식민지 치하 암흑의 시절이다. 그동안 역사 공부를 통해 근대의 이러한 비통하고 참혹한 풍경은 익히 배웠으나 그 속에서 삶을 꾸려나간 근대인들의 생활 단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신문은 시대의 거울이다. 신문에 실린 광고에도 당시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반영된다. 근대인의 생활양상을 실은 당시의 신문의 광고를 본 나의 첫 소감은 “너무너무 재미있고 희한하다!”였다. 악랄한 일제 치하에서 피눈물 흘리며 신음만 할 줄 알았던 나의 선입견을 뒤엎은 것이다. 쏟아지기 시작한 신문물은 근대의 풍경을 더욱 부산스럽고 왁자지껄하게 만들었다. 외세의 침략과 봇물처럼 터진 낯선 이국문명이 분명 우리 선조들의 숨통을 죄고 혼란에 빠트리게는 했겠지만 그 속에서도 칡 줄기보다 더 질긴 생을 이어나가는 삶은 그토록 치열했던 것이다.
광고에 등장했던 품목들을 살펴보면, 양반의 전유물이었던 기생을 돈만 있으면 개쌍놈도 데리고 놀 수 있다는 기생 광고로부터 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는 고무신 광고, 바리캉과 양장, 자동차, 백화점까지 생필품들이 올라왔다. 그 광고들은 요즘이라면 모조리 광고 윤리위원회 같은 심의에 과장, 허위광고로 걸리고도 남는다.
“식욕은 늘게 하고 먹는 것을 몸으로 가게 한다.” 이것은 포도주 광고이며,
“맥주는 술이 아니라고, 그러면 무엇일까, 가로대 자양품이라.”하며 맥주를 자양강장제라고 우기는 식이다. 이런 마당이니 껌은 “과식한 후 10분간 씹으면 위의 중고함이 업서짐니다”라는 카피로 소화제 뺨치는 카피도 가능했으며 “불로초 캐러멜”상표도 그리 이상하진 않았다. 그럼, “포켓트에 너흘 수 있는 호화로운 식탁”이며 “에널기의 근원”은 무엇일까? 초콜릿이다.(^^)
근대에는 성문화가 극도로 문란함을 볼 수 있다. 신문에 성병약, 콘돔(삭구), 포르노그래피 광고들이 버젓하게 실려서 오늘날이라면 미성년자 구독불가 판정을 내려야하지 않을까. 잘나가는 기생의 얼굴을 실으며 요릿집의 근하신년 인사말이 실리고, “이것 참 훌용하다 진화, 진서, 진사진, 밤의 쾌락을 맛볼랴는 남녀에게 권합니다. 가을밤 긴데 한 번 보시요.”라며 남녀의 성행위 과정이나 접문(deep kiss)의 과정을 자세히 다룬 책을 당당하게 광고하기도 했다.
광고 뒤의 현장을 문헌에서 찾아보면, 당시 성병이 창궐하니 돌팔이 요법도 횡행하여 <시체요법>과 <수은치료법>도 모자라 사람의 생간이 효험이 있다고 하여 거리에 거지들이 사라지고(잡아먹어서), 아이들이 없어지는 무서운 일이 생겼다.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먹다니 소름이 돋는다. 이런 조선의 모습을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장년자 중 50%가 성병에 걸렸으니 조선도 이제 문명국이 됐다”라며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이토록 문란한 풍조를 만든 장본인이 일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제로 매춘문화를 우리 속에 이식시켰으며 미곡 수탈로 농촌을 허물어뜨려 농촌여성을 도시로 매몰아 매춘업에 종사하게 했다. 매춘관련세가 세입의 10%였으니 일제에겐 큰 돈벌이였다. 그 후 해방이 되어 일본은 물러갔으나 성병은 오래토록 우리땅에 보균자로 남아 있어 내가 겨우 한글을 깨우쳐 글씨란 글씨는 모조리 읽고 다닐 때(70년대)까지도, 동네 전봇대에 <매독 임질>이라는 글씨를 본 기억이 난다(뜻을 물어보다 혼났기 때문에 또렷이 기억난다).
책에 실린 광고사진이 풍성한 볼거리를 준다. 재미나고 쉽게 술술 풀어나가는 김태수의 입담에 400쪽에 달하는 책을 단번에 읽어 내릴 수 있고, 허황하고 톡톡 튀는 기발한 광고카피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웃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다 읽고도 삼 사 일이 지나도록 리뷰를 쓸 수 없었다. 호기심과 웃음으로 재미나게 읽다가 책장을 덮고 나니 내 가슴 밑바닥에서 짠하게 아픔과 고통이 터져 나왔다.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굶주려 흙 파먹으며 배고팠던, 성병으로 코가 문드러졌던 근대인들. 그들은 자고나면 나날이 변화하는 요지경 같은 세상에서 끊임없이 적응해야 했고 살아남아야 했다. 우울하고 참혹했으나 그렇다고 생을 포기하지도 않았기에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준다는 촤뿌리(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보며 나름대로의 문화를 이루었다. 근대사를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이 책을 읽고 건진 제일 큰 이득이다.
/050826ㅂㅊㅁ
그 외 사소한 이득, 1) 생생한 근대어 체득
2) 현란한 광고 카피 감상
“그리하야 국어의 변천에 관심이 많은 국문과 유생들과 카피라이터 희망자에겐 좋은 부교재가 될 것이며, 리뷰에서 소개한 것 외의 생생한 근대 풍광을 보길 희망하는 자는 가을밤도 긴데 속히 사서 보시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