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새여 꽃이여
새가 울 때는침묵꽃이 피어 無言
새여너는 사람의 말을 넘어거기까지 갔고꽃이여 너는 사람의 움직임을 넘어거기까지 갔으니
그럴 때 나는 항상 조용하다너희에 대한 한탄을너희의 깊은 둘레를나는 조용하고 조용하다
詩 : 정현종
꽃다발을 안은 여인 1981-90 x 73 cm -종이에 채색, 천경자
운길산.
숲.
어느새, 여름.
양수리 근처 안개낀 강.
다도할까요?
문고리~
소망.
개망초
산수국.
산수국
지네. 읍...징그럽긴하다...
은행나무의 나이, 525살.
엉겅퀴.
돌계단을 핥을 정도로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수국은 소담스럽게 핀 꽃잎 하나도 땅바닥에 끌지 않았다.
"많이 기다리셨죠?"
현관 등불 아래 환하게 드러난 릴리의 아름다움에 기타무라는 순간 가슴이 떨렸다. 촉촉이 젖은 꽃의 요정이 인간의 모습을 빌려 나타난 것만 같았다.
"맨 얼굴이 훨씬 좋아."
"위로해주지 않아도 돼요."
"정말인데."
릴리는 수줍어 고개를 숙이다가 물웅덩이에 잠긴 기타무라의 맨발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나한테 다정하게 대해주세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그렇지만, 특별히 다정하게 해주려고 그런 건 아냐. 뭔가 말로는 표현이 안되는군."
"자비 같은 건 아니죠?"
"자네에게 자비를 베풀 정도로 넉넉한 사람이 아니야."
릴리는 기타무라의 목에 매달리더니 격렬하게 키스를 했다. 뼈마디가 손바닥에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릴리의 등은 야위었다. 긴 입맞춤 뒤에 두 사람은 뺨을 맞대고 빗소리를 들었다.
"손님,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자자구?"
"아뇨, 그런 거 아녜요. 그런 말은 못 해요."
"마치 밤을 마시듯이 천천히 숨을 들이쉬더니 기타무라의 귓전에 가느다랗게 그 숨을 토하며 릴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속삭였다.
"부탁이에요. 나하고 같이 죽어줘요."
<아사다 지로, 수국꽃 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