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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을 핥을 정도로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수국은 소담스럽게 핀 꽃잎 하나도 땅바닥에 끌지 않았다.
"많이 기다리셨죠?"
현관 등불 아래 환하게 드러난 릴리의 아름다움에 기타무라는 순간 가슴이 떨렸다. 촉촉이 젖은 꽃의 요정이 인간의 모습을 빌려 나타난 것만 같았다.
"맨 얼굴이 훨씬 좋아."
"위로해주지 않아도 돼요."
"정말인데."
릴리는 수줍어 고개를 숙이다가 물웅덩이에 잠긴 기타무라의 맨발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나한테 다정하게 대해주세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그렇지만, 특별히 다정하게 해주려고 그런 건 아냐. 뭔가 말로는 표현이 안되는군."
"자비 같은 건 아니죠?"
"자네에게 자비를 베풀 정도로 넉넉한 사람이 아니야."
릴리는 기타무라의 목에 매달리더니 격렬하게 키스를 했다. 뼈마디가 손바닥에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릴리의 등은 야위었다. 긴 입맞춤 뒤에 두 사람은 뺨을 맞대고 빗소리를 들었다.
"손님,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
""자자구?"
"아뇨, 그런 거 아녜요. 그런 말은 못 해요."
"마치 밤을 마시듯이 천천히 숨을 들이쉬더니 기타무라의 귓전에 가느다랗게 그 숨을 토하며 릴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속삭였다.
"부탁이에요. 나하고 같이 죽어줘요."
<아사다 지로, 수국꽃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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