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시내로 나와 점심을 먹었다.
얼추 오후 1시가 넘어있었다.
부지런하게 움직인 탓에 많은 걸 보았지만 그때 그때 감상을 따로 메모해두지 못했다.
그래도 사진을 보고 있으니 그때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난다.

식당 옆, 어느 집이다.
저 창살과 누릿한 네 짝의 미닫이문.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 있던 가겟집과 너무나 흡사하지만, 저긴 그냥 주거용인 것 같다.

부여에는 아직도 저런 가옥들이 많다.
리폼, 리모델링 같은 말들이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낡은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대신 부여에 와서 보면 참 좋겠다.




부여국립박물관 앞 ^^

사진빨에는 역시 붉은 색! ㅎㅎ
일부러 시선을 돌린 게 아니라 눈이 부셔서 정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정면을 바라본 사진에는 왠 찌질한 애가 하나 있어서 도저히 공개할 수 없다~!

박물관에서 금동대향로 진품을 보고 너무나 놀라웠다.
감시가 소홀하지 않아 사진 촬영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이건 정말 당연한건데, 왠지 아쉽다 ㅎㅎ



부여의 가로등은 참 단아하고 멋스럽기도 하지~



서동요 오픈세트장 플랭카드가 엄청나게 많이 붙어있다.
달리고 달려 도착한 세트장에는 수많은 인파로 가득했다.



어디가나 등장인물이 입던 옷 입고 사진 촬영하는 건 꼭 있다.
민속촌과 다름 없는 세트장 분위기.












마지막으로 무량사에 들렀다.
무량사 앞에서 표고버섯을 사왔는데 좀 깎았더니 아저씨가
"아가씨 깍쟁이 같이 잘도 깎는다"며 내 흥정 솜씨에 항복했다.


언제부터인지 가격표가 붙어있지 않은 물건만 보면 조금이라도 깎고 싶어진다. 
아줌마 근성이 아니라 연륜 탓인 것 같다.
깎아주세요, 하면 깎아준다는 걸 뒤늦게 터득...ㅎㅎ




극락전에 들러 삼배하고 시주했다.
무량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있다가 생을 마친 곳이라고 한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막혀 돌아오는 길에 좀 힘들었지만
갑자기 찾아온 행운의 여행 덕에,
친절한 부여가이드 덕분에 즐거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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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3-27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로등마저도 아름다운 도시군요...^^
그나저나 빨간색 잘 어울리시네요..

ceylontea 2006-03-2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어머.. 플레져님.. 사진 찍을 때 저런 포즈가 나와주시다뇨... 전 절대로.. 남사르러워 못한답니다.. ^^
빨간 코트가 너무 잘 어울립니다.. (갑자기 옷이 사고 싶어지는... --;;)
추천을 한번밖에 못함이 아쉬워요..

Mephistopheles 2006-03-27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다...소원은 들어주셨나요....^^

로드무비 2006-03-27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옆에 가면 달콤한 향수 냄새가 풍길 것 같아요. 새초롬한 자태가......
아가씨 밑에 밑줄을 치시다니! 흥=3

플레져 2006-03-27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제가 얼굴이 좀 하얗잖아요......... =3=3

실론티님, 눈이 부셔서 누구는 살인을 했는데 (이방인의 뫼르소)
저는 눈이 부신 탓에 저런 포즈가 나왔나봐요 ㅎㅎㅎ
추천 감삽니다. 꾸벅.

메피스토님, 소원을 곧 들어줄 예정이라는 전갈만 받았습니다 ^^

로드무비님, 정면 사진은 코미딘데 어쩌다 저 사진이 좀 잘 나와서...ㅎㅎ
아가씨, 라고 해서 표고버섯을 산거랍니다~ ㅋㅋ

stella.K 2006-03-27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플레져님이다!^^

잉크냄새 2006-03-27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전 들른 부여는 왠지 초라한 느낌마저 들었죠. 경주와 너무나 비교되는 모습이었죠. 몰락한 왕조의 후손들을 보는것 같아 씁쓸했었죠. 첫번째 사진을 보니 왠지 그때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겨웠던 모습일수도 있었겠구나 싶습니다.

플레져 2006-03-27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 ^^

잉크냄새님, 새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니듯 부여가 발전하는 도시가 되어도 낡은 것들을 낡았다는 이유로 애써 허물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골목들 마다 박물관처럼 오래된 것의 냄새가 나서 저는 참 좋았어요.

새벽별님, 그럴게요!!! 갑자기 떠난 터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강행군을 했지만 이틀 정도면 여유있게 돌아보실 수 있을거에요. 특히 부소산성에 있는 많은 사찰들을 (특히 궁녀사) 돌아보지 못해서 아쉬워요.

하루(春) 2006-03-27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씨에 밑줄그으신 플레져님... 정말 아리따우시네요. ^^

조선인 2006-03-27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가 서동요에 폭 빠졌는데, 전 자꾸 딴생각이 나요. ㅎㅎㅎ

2006-03-28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 2006-03-28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아가씨~~!!
저도 어제 아가씨 소리를 들었답니다. 암만해도 눈이 뼜지^^

부리 2006-03-2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추천하는 건 플레져님의 미모로운 사진이 큰 몫을 했습니다^^

플레져 2006-03-28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아가씨라는 말이 참...좋더라구요 ㅎㅎ

조선인님, 서동요를 봤더라면 세트장 갔을 때도 좋았을텐데...ㅎㅎ
무슨 딴 생각 하시는거야요? ^^

아~ 나의 보드라운 속삭 이웃님, 반가워요. 좀 이따가 님 서재로 갈게요 ^^

반디님, 그 분의 눈은 정확할거라 사료되옵니다.

부리님, 한 장 더 올리면 추천 한 개 더 추가 되나요? ㅎㅎ
추천 감사합니다 ^^

조선인 2006-03-29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딴 생각 올렸어요. 캬캬캬
 






백제체험문화관에서 나와 신동엽 시비로 향했다.
지나는 길목에 있어서 잠깐 들러 사진 촬영과 작은 기도를 올렸다.
신동엽 시인의 생가에 들르고 싶었으나 시비로 만족.
시인의 기상이 내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그다음 행선지는 서동의 생가 궁남지.
궁남지 옆에는 "백제오천결사대출정상"이 있다.
남편은 충혼탑을 보며 감회가 새로운지 (그는 어쩌면 계백장군의 오른팔이었을까?ㅎㅎ)
묵념하듯 진중하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신라와 당나라가 쳐들어오자 의자왕이 계백장군에게 오천명의 결사대를 보냈다.
이 충혼탑은 보기에도 웅장하고 분기탱천하다. 
영혼들은 어쩌면 한밤에 깨어나  백마강가로 말 달리지 않을까.
위협적이고 사실적인 충혼탑 아래에서 백제의 영혼들을 만난 것만 같다.




서동의 생가 궁남지.
궁남지는 백제 최초의 인공 정원이라고 한다.








정림사지오층석탑.
얼마전에 오층석탑이 조금 기울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괜찮은가?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층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이용하였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층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등은
이 탑이 목조건물의 구조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데,
이러한 점들이 이 탑의 특징이 되고 있다.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 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었다.

-출처 : 네이버-






다음 행선지는 부소산성.
바로 여기에 낙화암이 있다.
산성에는 여러개의 사찰이 있다.
세명의 충신을 모신 삼충사. 자세히 보면 한양 촌녀가 보일 것이다 ^^

언제부터인지 충신을 모신 사찰에만 가면 향을 피워놓고 나온다.
안 그러면 뒤통수가 따가워지기도...ㅎㅎ



3km쯤 걸어가야 낙화암을 볼 수 있다.
아직 잘 차려입지 않은 나무들이지만 길은 참 호젓하니 좋았다.
남편은 새벽에 여기로 약수를 뜨러 왔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 새벽 세시에 약수를 뜨러오다니...!
당시 태권도를 배우던 무렵이라 태권도 샘께서 담력 테스트를 하곤 했는데
주로 궁남지와 부소산성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칠흑같이 어두운 밤 약수를 뜨러온 초등학생 3학년과 그의 일곱살배기 동생은
약수를 뜨기도 전에 이상한 소리에 놀라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로 집으로 갔다고 한다 ㅎㅎ



낙화암으로 가는 길, 해송.



낙화암 도착.
낙화암에서 바라본 백마강.
백마강을 보는데 자꾸 이런 노래가 흥얼거려졌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아래
울어나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는데
구곡간장 오로지
찢어지는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같구나

이 노래 말고도 낙화유수, 라는 노래가 낙화암 휴게소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구슬프고 한서린 노래.



유람선도 다니고~



보기만해도 아찔한 낙화암.
부소산성은 백제가 적군이 쳐들어오면 피난온 곳이라 식량을 모아둔 곳과
일출, 일몰을 볼 수 있는 정자가 따로 있다. 
낙화암에 가는데 집중하느라 사진을 찍지 못하고
정자 앞에 설명서만 읽고 지나쳤다. 아쉽다...ㅠㅠ




요거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하면
고란사에 고란 약수를 떠먹는 일명 바가지다.
약수가 저 깊은 곳에 있어서 기다란 쇳대를 달았다 ㅎㅎ



고란초가 피어있는 약수를 떠먹으면 회춘한다는 전설이 있단다.

옛날 어느 마을에 늙은 부부가 있었는데 자식이 없었다.
자식 갖기를 소망하던 부부는 고란초가 피어있는 약수를 먹으면
아이가 생긴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남편 정기에 도움이 된다나 뭐라나.
늙은 남편이 홀로 고란사로 떠났는데, 하루가 지나도 남편이 오지 않았다.
아내가 남편을 찾아 이곳에 와보니 웬 갓난 아이가 약수 아래 누워 울고 있었다.
자세히보니 그 아이는 고란 약수를 먹은 남편이 회춘하여 변해버린 것이었다! 으아~!  

남편이 물 한바가지를 더 먹으려 하기에 말릴 수 밖에 없었다.........




부소산성 정문으로 다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동차를 그 앞에 세워놨으니 다시 가긴 가야하고...
그래서 고란사 바로 아래에 있는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유람선을 타고 구드래 공원에서 내려 택시를 타거나 걸어가면 부소산성으로 갈 수 있으니까.
나만 그렇게 잔머리를 굴리나 했는데 다들 그렇게 하더라~ ㅎㅎ

다시 가기에 부소산성 길은 힘들뿐만 아니라
아직 더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서 시간 절약 차원이기도...ㅎ

이 배는 홍콩 에버딘 항구에서 탔던 배랑 흡사하다.
낡은 구명보트가 있는 실내 구조도 그러하고, 늙은 선장님도 비슷하다.
선장님의 꼼꼼한 설명은.... 잘 들리지 않아
부여의 산증인 남편에게서 이야기들을 전해들었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낙화암.



백마강이 왜 백마강이냐하면,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용을 낚았다 하여 이 강이 백마강이란다.

바로 저 바위가 소정방이 낚시한 곳이다.



구드래 공원.
다양한 조각상들과 깨끗한 산책로.
백마강가에 있다.


-3탄을 기대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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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03-27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마강 전경이 참으로 시원하고 아늑해 보입니다

Mephistopheles 2006-03-27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제의 탑은 신라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단아아고 정갈한 멋이 있어서 좋아요..^^
미륵사지 석탑만 생각하면 기분이 언잖아지지만 말입니다..

로드무비 2006-03-27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동엽 시비 앞에 저도 갔었어요.
그새 많이 낡았군요.
새벽 세 시에 초등학생이 약수를 뜨러 가다니
플레져님 옆지기는 아주 사내다운 분인가 봅니다.ㅎㅎ

플레져 2006-03-27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백마강 정말 멋있어요.
부여에 살면 매일 백마강에만 갈 것 같아요.

메피스토님, 백제의 멋에 뒤늦게 흥취했어요.
지금 삼국유사를 펼쳐놓고 백제 부분에 올인하는 중이어요 ^^

로드무비님, 신동엽 시비에 새겨진 시도 희미해서 잘 안보이더라구요.
울남편이 당시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는 자부심에 불타올라서...ㅎㅎㅎ

잉크냄새 2006-03-27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마강 수위가 많이 높아져 있던지요. 예전에 제가 갔을때는(벌써 10년도 넘었군요) 바싹 줄어 있었지요. 삼천궁녀가 도움닫기를 해서 뛰어내리지 않았으면 익사하기 전에 머리가 다 깨어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 시기입니다.
고란사의 스님은 잘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해질녘 잠시 들렀었는데, 그 스님이 자판기 커피 한잔을 부탁하더니 저를 붙잡고 얼마나 말씀을 많이 하시던지. 부처님 앞이라 일어서지 못하고 힘들어 죽는줄 알았습니다.

진주 2006-03-27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5,6학년 때 교과서에서 기행문으로 고란사 약수 부분을 잠깐 언급했던 대목이 기억나요. 으멋~제가 공부를 잘 했나봐요. 별게 다 기억나네=3=3=3

플레져 2006-03-27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저도 그 생각에 아찔했습니다. 근처에는 또 어찌나 험한 바위들만 있는지 저 나무 울타리로 가는데도 힘들더라구요^^ 보통 사찰에 가면 스님들을 뵙는게 참 힘든데 고란사에는 스님들이 많이 나와 계시더라구요. 그 스님들 중에 한분이 잉크냄새님께 말씀을 들려드렸겠군요 ㅎㅎㅎ (그고통, 잘 앱니다...흑.)

공부 잘하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진주님, 그 설화는 익히 알고 있던 건데 그게 고란사에 얽혀있다는 건 첨 알았어요 ^^ 저는 진주님보단 덜 공부 했나봐요. 헤~

조선인 2006-03-27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화암,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새로 생겼네요.

부리 2006-03-2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화암은 중학교 때 가본 것 같은데, 기억이 통 나지 않아요. 사진 보니까 가고 싶어요!

부리 2006-03-2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 깨지는 생각 하니 으으...... 무셔워요

플레져 2006-03-28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낙화암에서 바라보는 백마강이 눈에 선합니다.
낙화암 가는 길에 볼 거리도 많으니 꼭 가보셔요.

부리님, 낙화암에 갈 생각은 정말 한번도 못해본 것 같아요.
낙화암 절벽을 바라보면 강으로 떨어질 용기도 선뜻 나지 않아요.

2006-04-17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6-04-18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그렇게 하세요. 무례라니요..아이쿠...^^:;
책도 한 권 보내주실 수 있나요?
 



주말에, 모처럼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들었다.
"어디 갈까?"

근 3개월 동안 남편은 일 때문에 주말에도 바빴다.
툭하면 불려나갔고 툭하면 휴대폰 통화와 노트북과 씨름했다.
이제 그 일이 다 마무리가 되어서 남편에게는 짬이 난 것이다.
착한 남편, 심심한 아내를 위해 이번 주말만큼은 그냥 보내지 않겠다는 결의를 하더니
나들이 가잔다. 처음엔 충남 당진의 왜목마을에 가려고 했다.
펜션마다 빈 방이 없기도 했고 일출 일몰 밖에는 볼 것이 없을 것 같아서 방향을 바꿨다.
갑자기 남편이 "부여에 가자!" 고 말했다.  
부여는 남편이 중학교 1학년까지 다닌 소읍이다.
것두 나쁠 것 같지 않아 별 기대없이 그러자고 동의했다.  
"그럼 부여에 가지 뭐..."
내 대답이 끝나자 남편은 바로 짐을 쌌다. (아, 짐은 내가 쌌구나... 짐싸는 포즈만 ^^;;)

가끔 남편은 부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들려주었는데
그의 말에는 이런 말들이 섞여 있었다.

계백장군 동상 밑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정림사지에서 뛰어놀고, 
한 친구는 장난 치다가 낙화암에 빠지고 (발빠른 119 구조대에 금세 구출 ^^)  
부소산에 약수를 뜨러 다녔다.

기껏해야 동네 골목이나 누비며 놀았던 나와는 다른 데가 있었다.
역사적 명소에서 뛰어놀던 남편을 따라 부여로 떠났다. 
출발하기 전 인터넷을 검색하여 "부여문화관광호텔"에 예약했다.
오후 3시에 출발.





3시간을 달려 6시경 부여에 도착했다.
부여에는 서동요 촬영 때문에 요즘 관광객이 많이들 온다고 한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부여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93년에 출토된 금동향로가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부여박물관 앞.

20분도 채 되지 않아 부여의 골목을 죄다 누비고 다녔다.
정말 이런게 소읍이구나 싶을만큼 부여는 작았다.
하지만, 어딘가 다른 기운이 배어있었다.
시간이 정지된 곳,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고 시간을 머물게 하는 곳,
부여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남편이 초등학교 4학년때 하루종일 오락실에서 (학교도 가지않고 ㅎㅎ)
오락하다 걸려 어머니한테 엉덩이를 맞았다는 부여체육관도 그대로였고
서예학원이 있던 건물 1층에는 동아서점이 아직도 있었다. 
남편이 초등학교 2학년때 문을 열었다는 중앙수퍼도 건재했고
남편이 살았던 집도 그대로였다. 

부여에는 이상한 기운이 맴돌았다.
24시간 편의점이 있어도 세련되 보이지 않았고 
초고속 인터넷 설치 플랭카드가 달린 모텔도 비릿해보이지 않았다.
통나무로 만든 레스토랑에서는 통기타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와
80년대 어느 하루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고 들어와 다음날 일정을 세웠다.
부여에 살았던 남편 덕분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알뜰하게 부여를 여행할 수 있게된 건 정말 행운이었다.

내가 살았던 동네에 아직도 살고 있는 나도
신혼 초에는 남편에게 구석구석 많은 걸 알려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래봤자 정릉 유원지와 북악 스카이웨이가 전부였는데
남편은 정말 내게 보여줄 게 많았다.

그래서 남편은 틈틈이 서동요를 열심히 보았나보다.
백제인의 기상이 담긴 남편을 만나
한양 촌녀가 횡재했다.




다음날 호텔에서 조식을 하고, 9시에 본격적인 부여 기행을 시작했다.
얼마전 개관한 백제역사체험관.
최신식 시스템으로 꾸려진 체험관에는 백제의 일상이 그대로 전시되 있었다.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지만...




몰래 한 컷.



몰래 한 컷 찍었는데도 걸리지 않아서 또 한 컷!
대신 재빨리, 잽싸게! ^^




2층 전시실 앞의 불상.
(사진찍는데 정신팔려 이름을 까먹었다...흑)



1층 전시실 입구의 부조앞에서, 한양 촌녀 ^^

전시실에 들어가면 센서가 작동하여
그 유물에 대한 설명이 절로 흘러나온다.
감명깊었던 장소는 금동대향로 극장.
금동대향로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복제품이지만 스크린 아래에서 유리관에 들어있는 금동대향로가 튀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우와!" 소리를 질러 주목을 받았다 -_-''
한양 촌녀, 이 놀라운 시스템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소냐!

 

 

- 2탄을 기대하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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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3-2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탄을 빨리 올려주세요...!!
그나저나 백제는 참 대단한 나라였어요...
문화도 독특하고 새련되고.. 그런데 마지막 사진인물이 너무 작어요.....!!

조선인 2006-03-2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탄을 기다리며 추천!

진주 2006-03-2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적 명소에서 자란 사람은 확실히 다르네요!
누구는 하수구 공사판에 발목 빠질 때, 그 분께서는 <낙화암>에 빠지셨단 말이죠? 와 멋있다~부여 기행 저도 가보고 싶어요. 2탄 기대합니다^^

ceylontea 2006-03-2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사진이 너무 작아서 잘 안보이잖아요.. 이런건 반칙이야요....

ceylontea 2006-03-27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디 갈까?' 질문을 받고 싶어요..

물만두 2006-03-27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2탄!! 그리고 얼굴은 뭐 아는 사이에 멀찍이 찍으셨나요^^;;;

mong 2006-03-2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재물을 쓰시기 시작한 플레져님~
저도 부여 가고 싶어지자나요!!!

플레져 2006-03-2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백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공부해볼까 합니다.
작아야 더 아름다운 법이지요....ㅎㅎ

조선인님, 2탄, 3탄 다 즐감하세요 ^^

진주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ㅎㅎ
기껏해야 동네 골목에서 넘어져 다친 상처가 있는 저랑은 한참 다른 분들이어요.

실론티님, 2탄으로 가면 좀 큰 사진이...ㅎㅎ
어디 갈까? 이런 질문,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들어서 감개무량했어요!

만두님, 음음~ 민망해요...ㅎㅎ

몽님, 부여에 꼭 다녀오세요 ^^

로드무비 2006-03-27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재킷이군요. 새로 장만하셨다는 게.
너무 이쁘고 화사하네요.
부여는 진주, 경주와 함께 제가 좋아하는 곳입니다.
묘한 숨결이 어려 있는 곳.
사진으로 봐도 참 좋네요.^^

하루(春) 2006-03-27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흥미진진합니다.

반딧불,, 2006-03-2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부여박물관을 안갔었나 싶은걸요??
분명 다녀온 곳인데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니^^;;

부리 2006-03-2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관심을 받지 못했던 부여가 플레져님의 마술같은 글솜씨에 의해 새로이 태어나네요. 저도 부여 가고 싶잖아요...

플레져 2006-03-2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날씨가 좋아서 옷 색깔도 빛나는 것 같아요 ^^:;
제게도 부여는 이제 특별한 공간이 되었어요.
진주에도 꼭 가볼래요.

새벽별님, 맞습니다. 남편에게 물었더니...ㅎㅎ

하루님, 흥미있게 읽으셨나요? ^^

반디님, 부여박물관을 옮겼다고 하더라구요.

부리님, 부여 재발견 중입니다.
프라도 미술관도 다녀오셨으니 얼른 부여로...^^;;
 

의자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詩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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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3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자 좋죠...

반딧불,, 2006-03-23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건 플레져님??

히피드림~ 2006-03-23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교하게 쓰여진 화려한 시도 좋지만 이렇게 수수하면서 말을 거는 듯한 시가 좋아요.^^

mong 2006-03-23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가 따스해요 ^^

잉크냄새 2006-03-23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그 의자에 쉬다 갑니다.

플레져 2006-03-23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의자가 불편할 때도 있는데 없으면 또 불편...
반디님, 그런가요? ㅎㅎ
펑크님, 흘러가는 물처럼...^^
몽님, 노란색 우드스톡군이 따스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ㅎㅎ
잉과장님, 오늘 하루 수고하셨습니다. 푹 쉬세요.
 

시집

기분이 울적할 때는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읽는다.
그중에서도 나는 이런 시를 좋아한다.


결혼을 하지 말거나
아이를 덜 낳을 것을.

내가 좋아하는 일에 광적으로 열중하고
다른 일에는 덜 신경 쓸 것을.

고기를 덜 먹고
산책을 많이 할 것을.

떠드는 시간을 줄이고
화장품에 덜 투자하고
그 대신 자선냄비에 더 많이 넣을 것을.

다리와 겨드랑이 털을 면도하는 데 시간을 덜 쏟고
천문대를 더 자주 찾아가 밤하늘을 구경할 것을.
그리고 동네 건달들이 더 자주 전화하게 할 것을.

詩 조안 셀쩌의 <당신이 살지 않은 삶> 전문

.................................................................................

-황주리 에세이 "날씨가 너무 좋아요" 157쪽-


 


삶은 어딘가 다른 곳에 2000년作
2000 / 91×117 / Acrylic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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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3-23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군요. 난 뭐하며 사는건지 원...

비로그인 2006-03-2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죠.
가끔 꺼내 읽으면서 자신을 돌이켜 반성하게 만들죠.

Laika 2006-03-23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치즈를 너무 많이 먹었는데.... 덜 먹을껄.....
시도, 그림도 한참 들여다 보게 만드네요...^^

2006-03-23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06-03-2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군요...^^

플레져 2006-03-2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지금 열심히 살고 있잖아요. 제가 다 보고 있습니다 ^^
따개비님, 황주리님 덕에 가끔 꺼내보게 될 것 같아요.
라이카님, 그 맛난 치즈를 드셨으니 맛난 하루 보내셨겠어요 ^^
비연님, 좋지요...^^

히피드림~ 2006-03-23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이 압권이군여....ㅋㅋ

플레져 2006-03-2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펑크님, 이미지 바뀌었네요? 와~ 미녀 발견! ^^
우리 동네엔 건달들이 없어서 불가능했던 대목이어요 ㅎㅎ

히피드림~ 2006-03-24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사진도 올려주셔여. 너무나도 궁금궁금...^^*
혼자 쑥스러운 펑크가,,,,ㅎㅎ
아참, 이거 퍼갈게요.^^

icaru 2006-03-2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살지 않은 삶....을 생각해 보니,,,
조안 아줌마하고 찌찌뽕인 거 저도 두 개씩이나~

플레져 2006-03-2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펑크님, 제 사진을 못보셨던가요? ㅎㅎ
쑥쓰러워 마세요. 넘 이쁘십니다 ^^

이카루님, 겨우 두 개? 난...서너개는 되나? ㅠㅜ

로드무비 2006-03-25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 건달들하고 연애하는 게 아무하고도 안하는 것보다 낫다는 게
저의 소신입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