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모처럼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들었다.
"어디 갈까?"

근 3개월 동안 남편은 일 때문에 주말에도 바빴다.
툭하면 불려나갔고 툭하면 휴대폰 통화와 노트북과 씨름했다.
이제 그 일이 다 마무리가 되어서 남편에게는 짬이 난 것이다.
착한 남편, 심심한 아내를 위해 이번 주말만큼은 그냥 보내지 않겠다는 결의를 하더니
나들이 가잔다. 처음엔 충남 당진의 왜목마을에 가려고 했다.
펜션마다 빈 방이 없기도 했고 일출 일몰 밖에는 볼 것이 없을 것 같아서 방향을 바꿨다.
갑자기 남편이 "부여에 가자!" 고 말했다.  
부여는 남편이 중학교 1학년까지 다닌 소읍이다.
것두 나쁠 것 같지 않아 별 기대없이 그러자고 동의했다.  
"그럼 부여에 가지 뭐..."
내 대답이 끝나자 남편은 바로 짐을 쌌다. (아, 짐은 내가 쌌구나... 짐싸는 포즈만 ^^;;)

가끔 남편은 부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들려주었는데
그의 말에는 이런 말들이 섞여 있었다.

계백장군 동상 밑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정림사지에서 뛰어놀고, 
한 친구는 장난 치다가 낙화암에 빠지고 (발빠른 119 구조대에 금세 구출 ^^)  
부소산에 약수를 뜨러 다녔다.

기껏해야 동네 골목이나 누비며 놀았던 나와는 다른 데가 있었다.
역사적 명소에서 뛰어놀던 남편을 따라 부여로 떠났다. 
출발하기 전 인터넷을 검색하여 "부여문화관광호텔"에 예약했다.
오후 3시에 출발.





3시간을 달려 6시경 부여에 도착했다.
부여에는 서동요 촬영 때문에 요즘 관광객이 많이들 온다고 한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부여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93년에 출토된 금동향로가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부여박물관 앞.

20분도 채 되지 않아 부여의 골목을 죄다 누비고 다녔다.
정말 이런게 소읍이구나 싶을만큼 부여는 작았다.
하지만, 어딘가 다른 기운이 배어있었다.
시간이 정지된 곳,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고 시간을 머물게 하는 곳,
부여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남편이 초등학교 4학년때 하루종일 오락실에서 (학교도 가지않고 ㅎㅎ)
오락하다 걸려 어머니한테 엉덩이를 맞았다는 부여체육관도 그대로였고
서예학원이 있던 건물 1층에는 동아서점이 아직도 있었다. 
남편이 초등학교 2학년때 문을 열었다는 중앙수퍼도 건재했고
남편이 살았던 집도 그대로였다. 

부여에는 이상한 기운이 맴돌았다.
24시간 편의점이 있어도 세련되 보이지 않았고 
초고속 인터넷 설치 플랭카드가 달린 모텔도 비릿해보이지 않았다.
통나무로 만든 레스토랑에서는 통기타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와
80년대 어느 하루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고 들어와 다음날 일정을 세웠다.
부여에 살았던 남편 덕분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알뜰하게 부여를 여행할 수 있게된 건 정말 행운이었다.

내가 살았던 동네에 아직도 살고 있는 나도
신혼 초에는 남편에게 구석구석 많은 걸 알려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래봤자 정릉 유원지와 북악 스카이웨이가 전부였는데
남편은 정말 내게 보여줄 게 많았다.

그래서 남편은 틈틈이 서동요를 열심히 보았나보다.
백제인의 기상이 담긴 남편을 만나
한양 촌녀가 횡재했다.




다음날 호텔에서 조식을 하고, 9시에 본격적인 부여 기행을 시작했다.
얼마전 개관한 백제역사체험관.
최신식 시스템으로 꾸려진 체험관에는 백제의 일상이 그대로 전시되 있었다.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지만...




몰래 한 컷.



몰래 한 컷 찍었는데도 걸리지 않아서 또 한 컷!
대신 재빨리, 잽싸게! ^^




2층 전시실 앞의 불상.
(사진찍는데 정신팔려 이름을 까먹었다...흑)



1층 전시실 입구의 부조앞에서, 한양 촌녀 ^^

전시실에 들어가면 센서가 작동하여
그 유물에 대한 설명이 절로 흘러나온다.
감명깊었던 장소는 금동대향로 극장.
금동대향로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복제품이지만 스크린 아래에서 유리관에 들어있는 금동대향로가 튀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우와!" 소리를 질러 주목을 받았다 -_-''
한양 촌녀, 이 놀라운 시스템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소냐!

 

 

- 2탄을 기대하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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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3-2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탄을 빨리 올려주세요...!!
그나저나 백제는 참 대단한 나라였어요...
문화도 독특하고 새련되고.. 그런데 마지막 사진인물이 너무 작어요.....!!

조선인 2006-03-2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탄을 기다리며 추천!

진주 2006-03-2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적 명소에서 자란 사람은 확실히 다르네요!
누구는 하수구 공사판에 발목 빠질 때, 그 분께서는 <낙화암>에 빠지셨단 말이죠? 와 멋있다~부여 기행 저도 가보고 싶어요. 2탄 기대합니다^^

ceylontea 2006-03-27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사진이 너무 작아서 잘 안보이잖아요.. 이런건 반칙이야요....

ceylontea 2006-03-27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디 갈까?' 질문을 받고 싶어요..

물만두 2006-03-27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2탄!! 그리고 얼굴은 뭐 아는 사이에 멀찍이 찍으셨나요^^;;;

mong 2006-03-2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재물을 쓰시기 시작한 플레져님~
저도 부여 가고 싶어지자나요!!!

플레져 2006-03-2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백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공부해볼까 합니다.
작아야 더 아름다운 법이지요....ㅎㅎ

조선인님, 2탄, 3탄 다 즐감하세요 ^^

진주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ㅎㅎ
기껏해야 동네 골목에서 넘어져 다친 상처가 있는 저랑은 한참 다른 분들이어요.

실론티님, 2탄으로 가면 좀 큰 사진이...ㅎㅎ
어디 갈까? 이런 질문,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들어서 감개무량했어요!

만두님, 음음~ 민망해요...ㅎㅎ

몽님, 부여에 꼭 다녀오세요 ^^

로드무비 2006-03-27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재킷이군요. 새로 장만하셨다는 게.
너무 이쁘고 화사하네요.
부여는 진주, 경주와 함께 제가 좋아하는 곳입니다.
묘한 숨결이 어려 있는 곳.
사진으로 봐도 참 좋네요.^^

하루(春) 2006-03-27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흥미진진합니다.

반딧불,, 2006-03-2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부여박물관을 안갔었나 싶은걸요??
분명 다녀온 곳인데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니^^;;

부리 2006-03-2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관심을 받지 못했던 부여가 플레져님의 마술같은 글솜씨에 의해 새로이 태어나네요. 저도 부여 가고 싶잖아요...

플레져 2006-03-2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날씨가 좋아서 옷 색깔도 빛나는 것 같아요 ^^:;
제게도 부여는 이제 특별한 공간이 되었어요.
진주에도 꼭 가볼래요.

새벽별님, 맞습니다. 남편에게 물었더니...ㅎㅎ

하루님, 흥미있게 읽으셨나요? ^^

반디님, 부여박물관을 옮겼다고 하더라구요.

부리님, 부여 재발견 중입니다.
프라도 미술관도 다녀오셨으니 얼른 부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