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한국고대사 2 - 한국고대사학회 창립 30주년 기념 시민강좌 우리시대의 한국고대사 2
한국고대사학회 지음 / 주류성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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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고대사는 논쟁거리다.

박정부의 몰락에 기여한 역사교과서 파동도 그렇고

식민사학,강단사학이라는 비판

더해서 중국의 동북공정 등 고대사 이야기는 난무한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고대사에서 우선 주인공을 다시 정리해보아야 한다.

경남일대를 지배했던 가야는 500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삼국>이라는 관념에서 밀려나 있다. 더해서 가야의 유민들이 건너간 일본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임나일본부 덕분에 한국사에서는 서자 취급 받는다. 하지만 가야 문명은 상당히 독특하다. 멀리 오키나와에서 건너온 야광국자는 고령의 대가야 문화의 국제성을 잘 보여준다.


가야 말고도 또 달리 잊혀진 주역이 있다. 

바로 낙랑이다.

한나라 시절 팽창한 낙랑이 평양에 머물러 있던 시간도 수백년이다. 약 400년 가량..

하지만 한국사에서 아예 무시되거나 아니면 원래부터 한반도에 없었다는 주장도 재야에서 심심찮게 거론된다.


이런 논란 속에서 고대사학회에서 시민강좌를 오래 진행하고 결과물을 이 책으로 내었다.


읽다 보면 과거라는 민족이라는 근대의 개념으로 소화하기에는 매우 복잡 미묘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가령 한국이 일본에 자랑하는 왕인 박사를 살펴보자. 그는 원래 평양의 낙랑군 출신인데 백제로 유민으로 왔다가 다시 일본에 건너갔다. 그래서 일본은 그의 가계보를 만들어 분석을 해서 한국에서 준 것? 이라는 개념보다 중국으로부터 쭉 오는 흐름으로 파악하고 있다.


반대로 한국에 건너온 일본 문화도 있다.

이는 최근 마한 지역의 장구형 분묘에 대한 분석이 진행된 것이다. 처음 한국사의 이단아로 취급되던 이 문화에 대해서도 이 책을 보면 장구형의 여러 형태와 이유에 대해 분석한 글을 실었다.

아예 일본에서 넘어온 것, 서로 섞인 것, 백제와의 융합 등 다양한 형태가 분류되고 설명된다.


이렇게 문화는 하나로만 흐르지 않고 나보다 더 큰 거대한 흐름의 한 줄기인 경우가 많다. 

가야와 낙랑 그리고 일본까지 하나의 교류가 있었고 이들의 상호의존성은 생각보다 컸다. 이 흐름이 고구려의 약진에 의해 뒤흔들리면서 삼국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고구려와 백제 또한 사료를 잘 보면 중국과의 관계를 통해 문물을 흡수하고 한인 기술자들을 포섭하면서 주도권을 잡게 된다. 백제와 대방태수의 혼인,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 등은 그냥 나온 설화가 아니다.


이런 흐름을 찬찬히 보면서 사료와 유적 사이를 메꾸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건 흥미롭다. 

요즘의 고대사 전쟁터에서 상당히 신선한 시도고 개인적인 공부도 꽤 되었다. 

이런 공부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서영교 교수의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이었다. 하나 하나의 요소에 집착하지 않고 쭉 이어지는 큰 그림을 통해 당대를 넓게 보는 힘이 소중하다.


한가지 더.

요즘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베트남으로 기업들이 몰려간다. 심지어 현지 전문가를 모셔온 투자설명회도 열리고 한국의 PB들의 현지탐방 행사까지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건 베트남 역사다. 쭉 읽어 보면 한국사와 유사점이 매우 많다. 특히 한사군과 대비되는 월나라의 반독립과 정벌 이야기는 한국의 당대 상황을 이해하는데도 꽤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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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4-22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의 흐름이 결코 한 방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간적으로 역사가 발전하는 방향이 아닌 발전, 쇠퇴될 수 있다는 열린 가능성을 가진다는 점과 더불어 유념해야할 개념인 것 같습니다^^: 사마천님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마천 2017-04-22 14:01   좋아요 1 | URL
상호작용의 요소가 다양한게 참 재밌더라고요.
실제 국립박물관에서 낙랑고분 발굴 금동 장식품들을 보았는데 수준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런 걸 상기하면서 책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주변에도 있는 거대한 한민족 고대사 예찬론자들도 떠올리면서요..
감사합니다 ^^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시간 - MB부터 박근혜까지, 난세에 희망의 정치를 말하다
정두언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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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정치의 시대다. 대통령 지위투쟁은 치열한데 우리는 과연 대통령에 대해 무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실제 대통령을 만들어 본 사람이 있다.


정두언

부침이 심한 인물이다.

MB때 실세로 떵떵거리다가 어느새 총애를 잃었고 결국 정권말에는 구속되어 실형을 살고 나왔다. 

관료, 정치인 그러다가 지금은?

종편의 패널이다.


중국 사서에 보면 정치판에서 밀려 두들겨 맞고 쫓겨난 인물이 타박하는 아내에게 그래도 내 세치혀가 남아 있다고 했다.

정두언도 딱 그렇다.

권세가 사라지고 지위가 사라지고 찾아오는 손님도 사라졌지만 그에게 여전히 남은 건 입과 글이다. 종편을 통해 입으로 부활한 사람이 어디 정두언 하나인가? 유시민,강용석 등 줄을 섰다.


그럼 이 책의 가치는 어떤가?

처음 별 기대를 안하고 슬쩍 보았는데 꽤 흥미로웠다.

MB의 부상과 침몰이 잘 드러난다. 

MB의 서울시장 캠프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병상에 찾아와 오래 개인이야기를 나누며 사람을 댕기는 친화력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이미 잘 알았던 홍사덕은 형식적이었기에 선거에서 선이 갈렸다.

서울시 행정의 핵심 성과였던 청계천과 버스통합의 경우 둘 다 비즈니스적 해법이 있었다. 청계천은 상인들에게 가든파이브라는 대안을 주었고, 버스통합은 버스회사의 고질적인 경영부실의 원인이 사업주의 편법이라는 점을 간파해서 여기에도 해법을 주었다.

이런 파격적인 성과는 경영 현장의 경험에 잘 녹아있었고 이를 상징물로 삼아 당시 경제에 초보였던 노무현의 대척점에 포지셔닝했다.


하지만 실제 정권을 운영하는 건 기업과는 다른 노하우와 도덕이 필요했는데 아쉽게도 MB는 그 점에서 약했다. 

겉과 달리 남을 잘 믿지는 않았던 MB는 인물의 외연이 잘 확대되지 않고 초기 인사들 중에 이미지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대목에서 정두언은 교수출신들에 매우 비판적이다. 우선 초대 국정원장에 임명된 김성호의 경우 부하 한둘이 거꾸로 위를 잡고 흔드는데 휘말려 아주 어리석은 결정들을 해댔다고 한다.

당대 비소설의 매력은 이런 점에 있다. 따끈따끈한 현실의 이야기, 기자들이 결코 언론에 담지 않는 현실의 실체를 드러내준다.

교수들이 이름만 거창하고 막상 까보면 조직이라고는 자기 연구실 정도 운영하면서 갑질해오던 것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교수중에 가장 가관은 대학 총장들이다. 숙대 총장의 오랜쥐 사태는 일부였다.

정작 문제는 정운찬 총리였다고 한다.

정총장은 본 실체에 비해서 너무 과대평가된 인물이라는 게 저자의 책의 비수 같은 평가다. 맡았던 미션이 세종시 문제 해결인데 전혀 힘을 못썼고 말고는 동반성장이라는 경제적 캐치프레이즈로 양극화 해법을 제시하는 추진력도 없었다.

가까이서 보니 이 타이밍에 이런게 나와야 하는데 기대하지만 엉뚱하고 감이 늦었다. 

덕분에 경질 수준으로 밀려나고 이후 정국은 박근혜에게 쏠리고 MB는 레임덕에 빠진채 임기 후반부를 맞는다.


사회는 변하고 정치는 정말 쉬지 않고 새로워진다.

정치가는?

마찬가지로 시대의 변화의 첨병에서 앞날을 보고 있다고 늘 자부하면서 가야만 하니 얼마나 피곤한 직업인가?

끈 다 떨어진 홀몸에서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 정두언의 몸짓은 애처롭기도 하지만 대견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이 책을 통해 우리는 MB 시대를 새롭게 조망해보고 거기서 다시 박정부의 실체도 보게 된다.

책이란 언론에 없는 걸 드러내주면 그만큼 가치가 있다. 낙향해 그림 그린 김정희, 글을 쓴 정약용 대철학서를 남긴 플라톤이나 마키아벨리 다 실업자였고 정치적 패배자였다. 

정두언을 과대평가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순발력 있는 관료였고 대권을 만들어본 실세였다는 점에서 그의 삶을 녹여 만든 책에 그만큼의 가치는 있다고 총평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유사하게 느낀 책은 박철언 회고록이다. 지금까지 나온 그 시대 회고록 중에 꽤 잘 되었다. 현재의 남북관계가 박철언 특사 시절 보다도 못하다는 점이 안타깝고 아마 역사는 그의 과보다 공을 부각시켜보리라 생각된다.


참 하나더 하면 요즘 이렇게 죽어라 책 내서 자기부활하시는 분으로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있다. 연달아 낸 세권의 책은 상당히 흥미롭다. 그 이야기는 조만간 다시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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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혜와 책임 (반양장) - 한국 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송복 지음 / 가디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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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보수 사회학자 송복 교수의 신간이다.

사회학이란 프랑스혁명 이후로 사회가 흔들리는 현상을 해석하고 대책을 수립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떄로는 마르크스처럼 혁명가의 무기가 되고 반대로 베버와 같이 혁명을 막고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유지보수의 이론적 뒷받침을 해왔다.
한국에서 사회학은 어떠했을까? 
역시 80년대의 질풍노도 시기에 빨간책이라는 이름으로 손에 들려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한완상 교수 등이 후원자였다. 그 시기가 지나서 한동안 잠잠해졌고 최근 사회학을 보면 송호근 교수의 <그들은 소리 높여 울지 않는다>와 같이 연구의 범위가 넓어져갔다.

그러다가 2017년 이 시점에 우리는 다시 광장이 분노와 열망으로 가득채워진 모습을 보았다. 정치의 계절 속에서 사회학은 좀 더 깊게 원인을 사회구조와 변화에서 찾아본다. 
그런데 보수 원로 사회학자인 저자께서는 왜 어떻게라는 물음으로 진단해갈까 궁금했다.

책에는 맨먼저 자신이 보수가 된 원인으로 419에 대한 실망과 516에 대한 기대를 설명한다.
저자의 글에서 일부 직접 인용해본다.

"지식 중에서도 이론지보다는 실행지가 다르고 뛰어냐야 한다. 실행지는 메써돌로지, 이른바 방법론에 정통한 것이다. 당시 우리 지식인들의 최대 약점은 이 방법론의 무지, 아니 아예 방법론이 없다는 것이었다. 
원론적인 것, 당위적인 것만 내세웠다. 당시 최고 지성지라는 <사상계>를 지금 한 번 펼쳐 보라. 모두 원론이고 모두 당위다.
..
방법론을 가르치지 않는 학문, 그것이 학문이 될 수 없듯이."

당시 최고의 경제학자라는 서울대 성창환 교수도 이런 수준이었다고 저자는 통렬히 비난한다. 참고로 연대에서 학생을 가르쳤지만 저자는 서울대에서 수학했다. 그렇지만 당시 학창시절 교수들의 수준이 그냥 외국책 읽어주고 자기 이론은 전혀 없는 낮은 수준이었다고 회고한다.

반면에 기자의 눈으로 본 516 혁명 주체들은 실행적 통찰력이 있었고 성과를 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자연스레 저자는 보수적 이론가가 되었다고 추측된다.

과거는 그렇고 최근의 광장의 충돌은 사회 속에 문제가 곪아터져간다는 이야기다.
사회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빈부격차가 커지고 지배와 피지배간의 격차가 커진다. 이를 저자는 영국과 미국의 사회분석을 통해 분석결과를 보여준다.
영국은 상위 1%가 전체 부의 1/3을 점유한다.
특히 금융,철도,양조,선박 등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상당수는 대대로 상층이라고 한다.
이는 미국도 유사해서 부도 유사하고 인명록(Who's who)를 보면 남북전쟁때부터의 대대로 상층이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일본의 총리들도 천황가와의 혼맥 등 인연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 이들 나라는 한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올라가는 부의 일부는 자선 등의 이름으로 흘러 아래로 내려와 한바퀴를 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유태인들이 일찍부터 개발한 제도가 사회복지였다. 수확 후 이삭을 남기는 것(이는 밀레의 그림에 잘 나온다. 학교에서는 왜 그런지 모르고 배웠지만), 배고픈 유태인을 위한 기본복지 등을 잘 갖추어나가면서 그들은 공동체를 유지했다. 아니라면 어떻게 나라도 없는데 민족정신이 유지되겠는가?

한국의 민낯은 어떠할까?
저자는 막바로 칼날을 들이댄다. 공식 재판 기록에 나온 YS선거시 초원복국 사건에 나온 소위 사회 지도층의 녹취록을 보여준다.

지역감정이 그냥 담겨 있는 이권 추구형 언행이다.
영남과 호남 대결헤서 그냥 해먹자 딱 이수준이다.
이 대목에서 당시 주역이던 김기춘이 박근혜 정부의 비서실장으로 국정농단에서 큰 역할을 했던 걸 상기해보자.

저자는 이렇게 한국사회의 문제로
5무를 열거한다.

무역사
무도덕
무희생
무단합
무후계성

공감이 간다.

노학자가 들추어낸 한국의 민낯, 다음 정권은 솔직히 난제를 떠안고 출발한다. 누구든 엄청나게 커진 광장의 목소리에 떠밀려가며 난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5무 적폐가 해결되기 위해 보다 깊은 메스가 들이대주어지기를 바란다.

건강한 보수는 사회를 순환시킬 수 있는 시야와 헌신이 있어야 하고 그것만이 양극화가 혁명으로 가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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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혁신의 길 - 제17회 세계지식포럼 리포트
매일경제 세계지식포럼 사무국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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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세상을 읽기 위한 지식 부페식당은 없을까?

골고루 맛보다가 땡기면 확 집어 오는 그런 식당이면 좋겠다.
매경에서 해마다 여는 <세계지식포럼>이 2016년 17회를 맞았다.
각국의 일류 전문가들의 모임이라 상당히 수준 높은 그리고 입장료가 비싼 강연이 이루어진다.
이런 지식을 고스란히 모아서 책으로 내어주니 고맙다.

내용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 몇 개를 소개해보련다.

한반도를 보면 브루스 커밍스가 북한이 쉽게 안망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사우디는 체제 변환을 위해 노력중이다.
2017년 고속철도를 도입해서 메카와 메디나 두 도시를 연결한다. 참고로 사우디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비자를 내주지 않는 폐쇄적인 신정국가다. 석유 패권이 흔들하면서 다각도로 개혁 시도가 이루어진다. 실제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는 적은 편이었다고 한다.

투자 부문에서는 
금리인상이 오히려 기회라는 전문가의 주장이 인상적이다. 경기회복으로 진입이라는 전환점인데 실제 강연 이후 세계증시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회복의 증거는 주요 자원가격의 상승이다. 반도체도 여기에 포함된다.

발렌바리 재벌 산하의 사모펀드 대표가 존경받는 기업을 만드는게 목표라고 하는 대목도 인상 깊었다. 삼성을 비롯한 한국기업의 모델이 발렌바리가 되기를 바라는 주장이 많았는데 딱 필요한 시점이다.

기술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이 가장 핫한 주제였다.
마스터알고리즘을 지배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강한 주장이 나왔다. 인공지능의 논란 속에서 이 사업이 플랫폼화되면서 소수의 기업에 집중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그 소수 중에서 다시 최고의 알고리즘이 장악을 하게 되면 나머지는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다.
어디선가 스페이스 2001에 나오는 HAL과의 우울한 관계가 되살아나 보인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이 이미 발달하고 있을 때 정면으로 맞서는게 의미가 없지 않냐고 충고한다. 말과 굳이 경기장에서 달리기 시합을 할게 아니라 말을 타고 달릴수 있도록 승마술을 연마하라고 한다. 
실제 체스에서는 챔피언이 사람과 인공지능이 페어를 이룬 팀이라고 한다. 딱 맞는 비유다.

한국 로봇이 생각보다 정체되어 있다는 데니스 홍(한국계 스타 로봇과학자)의 따끔한 지적도 유용했다. 홍 교수 말이 대회에 나오는 한국로봇이 평범하고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로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정부과제 위주의 작업이 창의력을 죽이고 있다 한다. 아주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이것저것 내 흥미에 맞는 이야기를 뽑아보았는데 전체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엣지 있는 통찰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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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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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선조의 비열함을 <남한산성>에서 인조의 비루함을 그려내어 역사를 보는 눈에 충격을 주었다. 나라의 큰 난리 속에서 문필로 지도자들의 빛과 그림자를 들추어내었다.

신작 <공터에서>는 대상을 현대로 끌어당긴다.

현대라는 공간은 논란이 많다. 그래서 작가가 이 공간을 어떻게 다루어낼지 궁금했다.

최근 가장 큰 공터는 광화문 광장이었다. 탄핵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내려는 강력한 의지가 드높았는데, 그 반대편에는 태극기를 들고 모인 노인들이 있었다.

흘러가려는 힘과 떠밀려가지 않으려는 발더둥. 두 힘의 격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갈등이라고 해야 할까? 그 힘의 근저에는 세대 갈등이 있었다.

혹자는 이 두 세력을 영화에 빗대어 <국제시장><변호인>의 충돌이라고 이름했다.

영화로 표상되는 세대 간의 가진 기억들이 서로 다르고 기억 위에 부과된 의미도 다르기에 벽이 생긴다. 현실에 생긴 충돌방지용 차로 만든 벽 만큼이나 기억의 벽은 높아서 넘기 어렵다.

세대, 간단히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늘 존재한다. 사춘기는 그 한 표현이다.

이런 세대갈등을 가장 격렬히 체화한 존재가 바로 작가 김훈이다. 그의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작가는 이런 꼴로 살고 싶지 않다고 굳게 맹세했다고 한다. 돈이 없어 대학을 중퇴하고 밥벌이를 위해 한국일보에 입사 지원을 했을 때 부친의 문명(글 명성)을 익히 알던 오너는 그에게 부친에 대해 질문했었다고 한다. 그때 김훈은 내가 그 보다 못할리 없다고 당차게 (내가 들은 바에서 상당히 순화해서 묘사한 형태임) 말했다고 한다.

그의 가족사에 대해서는 또 다른 책, 수필집인 <라면을 끓이며>에 간간히 나온다. 밥이 뚝 떨어지는 삶, 그 삶에 대해서 가장이라는 존재가 보여준 무책임에 대해 신랄하기도 하고 냉소적이기도 하고 안쓰러운 동정도 보이는 미묘한 마음가짐이 보인다.

이 책은 그런 가족사를 중심에 놓는다. 두 핵심 주인공 마차세는 김훈이고, 마동수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김훈과 아버지 김광주는 문필로 이름이 높았다. 그렇지만 아들 김훈은 글이란 현실을 다 담지 못하기에 늘 말이 허무하다고 강조한다.

소설 속의 마차세와 마동수는 시대의 중심으로 살지 못한다. 식민지 백성 거기서 벗어나려고 독립운동이라고 해보았지만 그 실체는 매우 왜소했다. 말이 거창하게 뻗으면 김훈은 늘 말의 실체를 파고 들었다. 이는 작가 김훈의 여러 번의 필화에 잘 나온다. 이 작품에서도 말을 뻗어내는 운동가의 실체를 드러내서 그 허무함을 보여준다. 대단한 듯 보였던 독립운동도 막상 실제 독립이 되어서는 작은 응징하나 못하고 감방에 갇혀야 하는 전도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우스운 것은 그 운동 속에서도 주인공 마동수는 주변으로 매우 왜소했었다.

김훈에게 삶이 말이냐 밥이냐고 물으면 항상 밥을 먼저 내세운다. 영화 국제시장으로 그려진 짠한 세상인 함흥탈출과 부산피난이 있다. 그 시절은 가난했고 생존은 모든 가치에 우선했다.

 

오장춘은 교실 창문에서 유리를 떼어 내고 학교 신축 공사장에서 철근을 훔쳤고 교실의 양은 주전자를 납작하게 찌그려뜨려서 가방에 담고 나와서 고물상에 팔았다.

그때 오장춘의 얼굴은 힘든 노동으로 먹이를 확보한 자의 피로감과 자부심으로 당당해 보였다. 마차세의 눈에, 그 음식은 이제 오장춘의 것이고 오장춘은 제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대한 권리가 있었다.”

 

밥이 우선되기에 거꾸로 김훈은 똥을 이야기한다. 밥이 똥이 되는 과정이 삶이라고 강조하는 걸까?

함흥탈출의 뱃전에서 사람들은 똥을 누었고, 미쳐 돌아서 바다로 빠졌다.

똥을 다 눈 사람들이 다시 살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한다. 부산피난에서 밥의 해결은 가장 원초적 도구(?, 작품을 보시기를)로 이루진다.

베트남 또한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다.

이 아수라 속의 삶에 대해서 말은 무력하다고 김훈은 강조한다.

 

너는 말해도 몰라. 막상 그 자리에 가보지 않는다면.”

이라는 마차세의 형 마장세가 던지는 말은 모든 논리와 명분을 치워버리게 하는 몸짓이다.

 

다 읽고 나니 공터의 노인들, 그리고 광장의 태극기 든 그 손들이 가진 기억이 만들어낸 구호란 기억의 왜곡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들이 좋았더라 하고 품고 있는 기억은 실은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었고 우아하지 않은 비장한 아름다움에 가깝다.

 

시간은 도도히 흘러간다. 역사는 과거를 치워버리고 오늘을 새롭게 재건축 해낸다.

아픔 또한 같이 흘러간다. 작가 김훈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 또한 그렇게 흘러간다. 그리고 이제 훌쩍 커버린 그의 눈에 아버지는 왜소하고 더욱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렇게 문자로나마 옮겨 적어 작품에 남길만큼 여유감이 생겼다고 보인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무책임한 아버지였지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실이 연결되어 있다. 인연이라는. 잊고 싶은 인연이지만 종종 되돌아오면서 놀라게 한다. 사진첩의 부자간의 닮은 모습이 그렇다.

작가 김훈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은 필력이다. 부자가 모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건 우연은 아니다. 유전이고 인연이다. 다 없어져도 나에게 남겨진 짙은 유전의 흔적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전쟁과 개발연대 세대의 부모들이 그렇다. 그들은 분명 자신이 받은 수준 보다 훨씬 높다랗게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위에서 더 고상하게 서 있을 수 있다.

개개인끼리 깊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노력 덕분에 오늘이 이 땅이 가능하다 점에서 서로 연결된 셈이다.

 

내 눈에 태극기부대의 주장은 황당하게 느껴진다. 거기서 무너져 탄핵이 부결되었다면 딱 나라꼴은 남미의 식민국가들 수준으로 퇴보할 것이다. 아니면 유혈사태.

그렇게 갈라진 기억들 속에서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이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그리고 <국제시장> 같은 포근함이 아니라 똥냄새가 풍기고 가난에 배곯는 김훈의 묘사를 포개본다.

그리고 작가가 가졌던 아버지에 대한 안쓰러움을 같이 느껴본다. 그냥 그럴 뿐이다. 거창한 이념도 명분도 아닌 그냥 안쓰러움을 가지며 책을 덮었다.

문장은 인간을 가르기도 쉽고, 또 부족해서 실체를 드러내기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글이라는 쓰임을 통해 우리는 서로 이어진다. 연민은 인간다움을 만들어주는 숭고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현대사와 그 속에서 고난 받은 이들이 <공터에서>와 같은 글을 통해 서로 연민을 가지며 하나의 덩어리로 모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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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3-2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이 1979년이 아니라 더 앞으로 전진한 현대를
다루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쩌면 작가가 가진 한계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마천 2017-03-20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아주 최현대를 다룬 것으로 <영자>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매우 감동적입니다. 한계라는 표현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한계에 확실히 도달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훈 작가는 아직 더 갈길이 있다라고 감히 주장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