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복사맨'(http://www.boksaman.co.kr)의 게시판에  두 권의 책을 문의하는 글을 남겼더니, 오늘 그로부터 이런 답 메일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희 복사맨을 찾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희는 주로 국회 도서관, 국립 중앙 도서관 학위논문관에서

자료를 검색하여 복사를 하지요.




신청하신 자료 중에서


소설 <눈에 관한 스밀라의 감각>은 국립 중앙 도서관에 상 하  두 권으로 검색되네요.

복사를 할까요?^^


소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검색이 안 되므로 복사를 못하네요.


죄송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오래 전 절판이 돼 버린 책들.....



그 중 이 두 권의 소설은 그동안 여기저기 헌책방을 기웃거릴 때마다 찾아보곤 하던 것인데,  나와 인연이 닿지 않은 탓인지 여직 구경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 복사맨에게 '복사해 주세요'라는 답신만 보내면, 올 겨울 나는 <눈에 관한 스밀라의 감각>을  읽으며 행복한 겨울나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복사맨은 이 활동으로 생기는 수익금 전부를 저런 용도로 쓰고 있다니, 그들의 정체(?)도 조금은 궁금하다.


어디에선가 보고 수첩에 옮겨 적어놓은 이 대목...... 바로 이 몇 구절 때문에 나는 복사맨을 통해서라도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몹시 춥다. 놀랍게도 영하 18도다. 눈이 오고 있다. 이제 내 언어가 아닌 언어로 말하자면 이 눈은 카니크다. 덩어리를 지어 떨어지다 땅 위에서는 가루가 되어 하얀 서리처럼 쌓여 가는, 크고 거의 무게가 없는 결정체들..... 나는 어떤 사람들이 교회의 축복에서 느끼는 것을 고독에서 느낀다. 나에게는 고독이 은혜의 빛이다. 나는 늘 나 자신을 향해 자비로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 의식하며 내 방의 문을 닫는다.



수학자 칸토르는 이런 말로 무한의 거리 개념을 설명한 적이 있다. 무한한 객실을 가진 호텔의 주인이 있다. 그 호텔은 만원이 되었다. 그때 손님이 한 사람 더 찾아왔다. 그래서 주인은 그 손님을 위해 일호실에 있던 손님을 이호실로 옮겼다. 이호실의 손님은 삼호실로 옮겼다. 삼호실의 손님은 사호실로 옮겼다. 이렇게 무한히 계속되자 일호실이 비어 새 손님을 맞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이야기에서 좋아하는 것은 관련된 모든 사람, 즉 손님들과 주인이 한 사람의 손님이 그의 방에서 평화와 고요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 무한한 일을 아주 당연한 일처럼 묵묵히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 이야기는 고독에게 보내는 큰 찬사다......"


내가 만난, 고독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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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2-0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 곳이 있었군요. 저두 저 책이 너무 궁금해요. 영화로는 얼핏 맛보기로만 보았는데...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들어가봐야징~ 감사해요, 님^^

2004-12-0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뭐 그런...^^ 사회를 맹글어 보자 그런 이야기로 들리네요..복사맨, 이제 없는 시간 쪼개가며 국회도서관 안 다녀도 되겠군요..주변인들에게도 알려줘야 겠어요...정말 정체가 궁금하군요,...복사맨~!

조선인 2004-12-0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옷, 유용한 정보입니다. 그런데 논문이 아니라 책도 복사가 된다구요? 음... 절판된 책에 한해서일까요? 조금 걱정됩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12-0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절판된 책에 한해서겠지요. 그런데 라일락와인님도 참 부지런하시고 열심이세요.

없으면 말지, 하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요. ^^

sandcat 2004-12-02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라일락와인님.

진작부터 즐겨 찾는 사람입니다. 우선은 <눈에...> 책 얘기라 혹해서, 저한테도 절실한 복사맨의 존재를 소개해주셔서 고마운 마음에 글 남겨요. <눈에 대한 ...>,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습니다. 참으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상상력을 만났었지요. 혹시라도 페터 회의 다른 작품이 궁금하시다면 "여자와 원숭이"는 아직 팔리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에레혼 2004-12-04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복사맨 만나 보고 오셨나요? 저는 저 답장만 받고 또 그 뒤로 묵묵부답.... 지금 그 책이 재번역 중이라는 풍문이 들려오기도 해서... 좀더 기다려 볼까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 중이랍니다.



참나님, 조선인님, 저처럼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광범위하게 자료 검색해 주고 복사까지 해 주는 저런 역할은 정말 목마른 이의 샘물 같은 거거든요.... 조선인님 염려대로 책의 경우는 절판된 경우에 한하겠지요, 복사와 제본 비용이 시중 책값보다 비싸니까, 출판된 책을 구할 수 있는 경우라면 굳이 복사맨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복사하지는 않을 듯싶어요. 님의 염려어린 지적을 접하고서야 뒤늦게 저도 아, 그런 문제가 있겠구나 싶어서, 다시 들어가 비용 부분을 꼼꼼이 들여다봤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에서는 그런 정도로 출판 시장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은 방지되고 있는 걸로 보여요.



이안님, 부지런이라니요.... 요즘의 저는, '부지런'이라니 어, 그게 어떻게 생긴 말이지 싶은데요..... 저건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책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고, '복사맨'이란 데가 어떤 덴지 시험 삼아 문의해 본 것일 뿐..... 그러고는 또 슬그머니 주저앉아 있는걸요.

부지런함과 열정이란 말은 '리뷰의 달인' 경지를 보여주는 님에게 돌아가야 할 말 아닌가요?



sandcat님, 반갑습니다. 님도 <눈에 대한...>의 팬이셨군요. 정말 이 계절이 되면 더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이에요. 그래도 님은 이미 읽어 보신 뒤라니 부럽습니다.

진작부터 즐찾...해 주셨다니.... 왠지 부끄러워지네요. 요즘 제 서재는 먼지 투성이인지라... 조만간 문 활짝 열고 청소도 좀 하고, 겨울 햇살 아래 향기로운 차 한잔 대접할게요. 가끔 들러 주세요.

비로그인 2004-12-04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사맨이라는 표현이 너무 재밌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