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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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에의 최근작이니 초기작만 봤던 나로선 그의 소설이 꽤 변했다는 생각을 한다.  

 

  <애너벨 리>라는 시처럼 소설도 서정시마냥 마음에 감겨든다.   

 

  하지만 여전한 건 일본이 잘 못 들어선 근대와 전후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다.  

 

  시답지 않은 소설을 써대는 일본 작가들과 또 그런 소설만 번역해대는 우리에게 오에는 조용히 고민을 던져준다.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왔나?'를 말이다.  

 

             大江建三郞(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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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지기 2010-03-1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년 원년의 풋볼..뿌듯하게 읽었던 기억이....

파고세운닥나무 2010-03-10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며 절판된 고려원판 오에 겐자부로 소설전집을 모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에 대학구내서점에서 헐값에 팔았거든요.

그 때 몇 권 못 샀는데, 후회가 되네요.

친구가 제게 없는 오에 전집이 있다길래 그 친구가 보려는 책과 바꿔야겠어요.

<만연원년의 풋볼>은 갖고선 아직 못 봤네요.

다이조부 2010-03-10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 다카시 를 예전에 틈틈히 읽었습니다~

어떤 평론가는 책을 보니까 그 양반이 오엔 겐자부로한테 열등감은 있는것

아닐까 생각하더라구요.

한 번도 이 할아버지의 책을 읽어본적이 없네요. 도대체 지금까지 뭘 읽었는지

모르겠ㅇㅓ요 --

파고세운닥나무 2010-03-10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 다카시는 소설 같은 픽션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하죠.

필요로만 책을 보고 판단한다는 게 좀 그렇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사람 다 자기 분야에선 일가를 이룬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공격적으로 한 분야를 매몰차게 대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네요.

다이조부 2010-03-11 01:50   좋아요 0 | URL
다카시 는 어렸을때 부터 문학같은 경우도 원체 많이 읽었다네요 ^^

중학시절의 독서노트를 보니까 와 꼬맹이가 이렇게도 독서량이 풍부하다

니 놀랐어요.

전 주인장 보다 다치바나에게 호의적이에요. 그 양반도 문학을 전공했으

니까 소설만 줄창 보다가 회사선배의 권유로 논픽션을 봤을때 느꼈을 감정

은 개안의 심정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저는 그 양반의 거침 없는

태도가 마음에 들더라구요.

한국에서는 몇년 전부터 통섭이네 하면서 섹트주의 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보면, 아 이 사람은 정말 앎에 대한 욕구, 지식욕

의 한계에 다다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구요.

어째 다카시빠 같은~ 허걱

파고세운닥나무 2010-03-1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를 보며 칸트를 떠 올린 적이 있습니다.

<순수이성비판>을 보면 칸트가 '신에 대한 열망'을 말하는데, 다치바나는 신은 몰라도 전지(全知)에 대한 열망은 있는 것 같아서요.

자신이 잘 아는 분야라지만 지금 관심이 없대서 그리 말하는 게 저는 싫어서요.

다이조부 2010-03-11 13:24   좋아요 0 | URL

자주 가는 블로그에 마음에 드는 시가 있어서 소개해 봅니다

아마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시는 외국시는 이상하게 흥미가 안가던데

이 양반 시는 시어의 미묘함이 번역과정에 대부분 소멸됬을거라 짐작되도

의미 만으로 울림을 주는 경우가 있네요~



정원의 휘어진 나무는

땅이 나쁘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무가 휘었다고 욕을 한다.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 중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


다이조부 2010-03-11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생각해 보니까 철학을 짧은 시간이나마 전공했던 저도 순수이성비판 은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ㅎㅎㅎ


파고세운닥나무 2010-03-1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이성비판>을 독일어든, 우리말로든 독파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독일관념론이란 수업을 들었는데, 담당 교수가 칸트 전공이라 피히테, 셸링, 헤겔은 안 가르치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만 읽혔어요.

당연히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읽었죠^^;

다이조부 2010-03-12 00:55   좋아요 0 | URL


아마도 제가 요즘 이준구 미시경제학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이랑

칸트를 읽었던 주인장 마음이랑 얼추 비슷할거 같네요 흑~
 
워낭소리 - Old Partn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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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내 훌쩍이는 친구를 두고 난 '뭐가 그리 슬프지?' 무감했는데, 마지막에서 슬픔을 느꼈다.  

 

  죽은 소를 할아버지가 일구던 밭에 묻는 걸 보고 저게 두 존재의 진정한 우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같은 우정과 사랑을 보기 힘든 현실이 슬픔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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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3-10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무척 좋았나봐요~ 극장에서 봤는데 전 심드렁했거든요. 이인화도 예전에 말했지만,

마찬가지로 서울 교외라도 도시의 아이로 성장해서일까요? 무덤덤 했어요. 왜 그렇게 인기

가 좋을까? 궁금했지요. 할머니의 표현이 정겹고, 고집불통 할배를 보면서 옛날 어른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이렇게 작은 규모의 영화에 사람들이 폭발적인 관객이 몰리는게

한국의 쏠림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3-1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도 심드렁했어요^^

영화의 영문 제목처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두 존재의 애틋한 마음이 다가오니 감동이 있더라구요.

말씀하신대로 소재가 갖는 특장도 있을테구요.

하늘지기 2010-03-1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드렁했던 1인 추가..
 
중국 현대문학 작품선
신진호 엮음 / 학고방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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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봄 누에(春蠶)>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다. 논과 뽕밭을 주위로 하며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곳은 아직 개명이 덜 된 곳이다. 진나으리네 집이 망하게 된 것을 마을 사람들은 염라대왕 운운하고 있다. 동네 여인들의 대화 한 대목을 들어보자. “황도사가 점을 쳐보았는데, 올해는 뽕값이 4원까지 올라간대!”

  소설의 배경이 되는 농촌은 이제 자본주의화의 중심에 들어서고 있다. 통보영감은 개탄한다. “정말 세상이 변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화를 비켜설 곳은 이제 어디도 없는 것이다. 소설은 자본주의의 자장에 진입하는 농촌을 그림과 동시에 이로 인해 한 마을이 구조적으로 쇠락해감을 말한다.

  서술 기법을 살펴보면, 마오뚠(茅盾)의 소설은 농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인물들의 심리도 핍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오뚠이 리얼리즘과 자연주의 사조의 수용을 선도한 작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객관적 묘사가 주를 이룬다. 일전에 그의 장편소설인 <깊은 밤(子夜)>을 읽어보았는데, 이 소설 역시 환경 혹은 세계에 대한 여러 인물 군상의 반응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물론 <봄 누에>에 비할 때 편폭이 길기 때문에 루카치가 말하는 ‘총체성’과 ‘전망’이 이 소설에는 비교적 잘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읽을 때 종이에다가 인물과 삶의 조건, 성격 등을 적어가며 보았다. 작지 않은 종이였는데, 소설을 완독했을 때는 빼곡이 공간을 채웠다. 그런데 난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론가로서의 마오뚠을 잘 모르지만 소설 마저도 이론을 다루듯 이토록 치밀하게 써 간다면 독자는 옳은 이야기이나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난 조금 숨이 막혔다. 발자크의 소설이 가치는 있으나 재미는 없듯이 말이다.

  “그(통보영감)는 예순이 되도록 살아오면서 난리도 여러 번 겪어보았지만 윤기가 도는 푸르싱싱한 뽕잎을 나무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 가랑잎이 된 다음에 양이나 먹이게 되는 일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소설 서두의 한 대목이다. 이 대목을 읽는 가운데 난 문득 '근대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떠올랐다. 또 머리엔 아베 코보(安部公房)의 소설들이 떠올랐다. 1960년대 실종 삼부작이란 이름으로 장편 셋을 아베는 연달아 발표한다. <모래의 여자(沙の女)>, <타인의 얼굴(他人の顔)>, <불타버린 지도(燃えつきた地圖)>가 그것이다. 보통 아베 코보의 소설엔 근대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정평이다. 그의 작품을 시종 지배하는 우의성(寓意性) 때문일 것이다. 근데 난 구태여 찾아보고 싶었다. 머리굴려 찾은 바는 이렇다. 지속성의 파괴가 아닐까? 실종이란 잃어버림인데 결국 근대란 그 무엇도 소유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닐까? 직장인이 사라지고, 얼굴이 사라지고, 지도가 사라진다. 한 곳에 터 잡고 사는 중세는 지금과 비교하자면 소유에 있어 영속성이 강하다. 근대란 가질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닫는 데서 오는 섬뜩함을 아베는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다. <봄 누에>로 돌아가 통보영감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말하지만 그의 체험과 지식도 이젠 지속성을 갖지 못하며 쓸모 없다.

  아다란 사람에 대해 관심이 갔다. “그(아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영원히 어울릴 수 없는 무엇이 있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딱 부러지게 알 수가 없었다.” 루카치라면 이 대목에서 문제적 개인의 출현이 요청된다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다를 보니 가족을 비롯해 동네 사람들과 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한 대목만 들어본다면, “부지런히 일하고 아껴 먹고 아껴 쓰는 것만으로으로는 허리가 부러진다 해도 잘 살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적 개인이 될 만한 소양이 있으나, 아닌 게 사실이다. 혹시 모른다. 이 소설을 장편으로 늘린다면 아다의 형상이 꽤 바뀔는지도. 한국문학을 공부하며 문제적 개인의 전형은 김희준이라 배웠다. 이기영(李箕永)의 <고향(故鄕)>의 주인공인데 일본유학을 한 지식인이다. 난 이후로 문제적 개인은 으레히 지식인이어야 한다는 괴상한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80년대 한국 소설을 대하며 생각을 달리 할 때도 있었지만. 하지만 난 비평가 김현이 죽기 얼마 전에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지적 교만 없이 어떻게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느냐?” 창작과 구조로 층위를 달리 한다는 걸 알지만 아다를 보며 이 구절이 생각났다. 아다는 좀 더 배워야만 문제적 개인이 될 수 있겠다.

  <봄 누에>는 한 계급의 전형으로서 통보영감 가족을 그리고 있다. 소설은 당대의 전형적인 한 가족을 모두 그림으로써 중국 사회의 변화되는 성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茅盾(1896-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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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근대문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4
가라타니 고진 지음, 박유하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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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코와 데리다가 근대를 해체하고 또 다른 무엇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근대를 바로 알자는 것이다.  

 

  가라타니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근대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  

 

  이 책은 근대적 글쓰기의 기원을 말한다.  

 

  퍽 범위를 넓혀 놓았는데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  

 

  가라타니가 철학자로선 꽤 대단한 논의를 하는 것 같은데, 문학비평가로선 글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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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3-06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장이 읽는 책들은 십중팔구 덩달아 따라 읽고 싶은 생각이 드는 책이 많아요~

이제는 어리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취업을 하기 위하여 준비를 시작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주인장의 단평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할 수 밖에 없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3-06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라도 도움이 된다니 제가 너무 고맙습니다.

가라타니는 고민해볼 구석이 많은 사람이죠.

한 다리 건너 이 사람의 철학에 대해 들었는데 매우 독창적인 면이 많다네요.

근데, 위 책도 그렇고 문학쪽에선 잘 모르겠어요.

다이조부 2010-03-07 01:56   좋아요 0 | URL

코오진 이 한국의 문학평론가에게 끼친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문학비평이라는게 언제부터 인가 업자들끼만 돌려본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들리지만 말이죠~ 이 사람의 책을 읽어본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한국문학이

위기라는 진단을 하면서 코오진도 덩달아 언급되더군요.

제 생각에는, 1980년대까지 문학의 역할이 과도한 부담을 느낄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지식인이라고 하면, 철학자 나 역사학

자 보다는 상대적으로 문학평론가 가 민주화를 포괄하는 사회개혁에 더욱

공헌했다고 봅니다. 사회과학 전공자 나 이공계쪽은 과문해서 잘 모르지만.

제 기억으로는 한 10년 전쯤에, 한국문학 평론계에 현존하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김윤식이 가리타니 코오진을 표절했다는, 이명원의 문제제기가

생각나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3-07 09:33   좋아요 0 | URL
표절 논란은 유야무야 묻혔죠.

김윤식이 피하는 듯한 인상을 저는 받았구요.

인문학이란 게 좀 특수한 면이 있는 듯 해요.

자연과학과는 달리 공인된 저널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구요.

어쨌든 표절 문제 제기에 정정당당히 대응하지 못한 건 김윤식의 과오라고 생각해요.

사실 여부야 본인만 알겠지만요.

다이조부 2010-03-07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가민가한데 김윤식이 소극적으로나 표절을 인정한게 아닌가 싶네요. 자기식으로 표현하면

인용을 하면서 출처를 명시하지 않은 것은 실수니까요.

고종석도 이미 지적했지만, 되풀이하면 김윤식이 안타까운 지점은 표절여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문제를 제기한 후학이 사면초가의 위기의 몰렸을때 정당하지 못한 비판에

선을 긋고 정리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이명원 지도교수가 김윤식한테 배웠다는데

이명원을 압박하면서, 했던 언설은 참 유치하고 비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김윤식은 아마도 넘기 힘든 산이겠죠~ 100권이 넘는 저서

를 출간했는데, 비평쪽에 관심이 있다면 김윤식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 양반이 쓴 책을

꼼꼼히 본다면 4년간의 학부생활은 훌쩍 가버릴것 같네요. 대학시절 국문과 학생들이

김윤식 선생의 책이 너무 많다고 투덜대던게 기억나네요.


국문학을 공부했던 주인장 한테 이런 이야기 늘어놓는게 쑥스럽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3-07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됐든 김윤식이 근현대 한국문학에 있어 큰 산인건 사실이죠.

근데 외부자로선 그 분의 연구가 부정확한 게 많다네요.

대학 때 일본현대문학을 전공한 교수님이 김윤식 교수의 연구가 부정확한 면이 꽤 있다고 하더라구요.

이광수를 언급하며 말씀하신 것 같은데, 구체적인 건 잘 모르겠지만 수긍가는 면이 있었네요.

가라타니를 얘기하다 여기까지 왔네요^^

Forgettable. 2010-03-3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몇년 전에 [윤리학]을 읽었는데, 무척 좋았어요. 독창적이고 신선했습니다. 아마 아는게 별로 없어서였는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3-31 09:28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철학자 김영민이 가라타니를 상찬하더라구요. 김영민이 좀체 그러질 않는데 말이에요. 철학 쪽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아요.
가라타니가 한국엔 비평이 이미 죽었다고 말한 적이 있죠. 문학비평가 김종철을 두고 한 말인 것 같은데요. 김종철이 사람이랑 휘말려 피해를 본 것 같은데, 김종철은 되려 아무렇지도 않아하구요. 반응이 재미있어요.
 
<리영희프리즘>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지음 / 사계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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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 들어와 리영희의 문명을 듣고난 후 구입한 책이 <轉換時代의 論理>였다. 굳이 한자로 적은 건 그 땐 이 책이 창비신서에 속해 붉은 색 표지에 한자로 저리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같은 출판사에서 개정판도 나왔고, 한길사에서 리영희 저작집으로도 나와 있는 걸로 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말하는 사람들의 평이 부담스레 다가왔다. 물론 내겐 '전환' 같은 건 없었으니 그가 평론 혹은 논문에서 말하는 이야기들이 책을 대할 즈음에는 그닥 새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중국에 대한 과도한 기대였는데 후에 신영복 교수를 알고난 후 두 사람이 중국에 관해선 의견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큰둥한 마음이 리영희의 자서전인 <역정>을 읽으며 바뀌었다. 짧은 감상에 그 때 했던 생각을 담아봤다. "어찌 이리 솔직할 수 있을까?  솔직하기에 또한 대담하다.  리영희는 자신이 용렬하다지만 그 정도도 용렬이라면 보기 드문 용렬이다. 자신은 남한 사회의 철저한 이방인이기에 솔직함만이 미덕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과 역사 앞에 이렇듯 솔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 반가웠다.  

  리영희의 절필 선언을 알게 된 후 그의 새로운 글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원로랍시고 사람들과 언론으로부터 잊히지 않고자 궤변을 쏟아내는 노인네들과 그는 얼마나 다른지? 헛 된 소리가 나오지 않게끔 자신을 틀어쥐는 용기와 절제는 가히 드문 경지다. 노촌 이구영이 뜻을 새겨 준 '無涯惟智'(지혜만이 한계가 없다)가 그는 참으로 어울리는 사람이다. 리영희는 '옷깃을 여밈'이 한갓 수사가 아님을 알게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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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3-06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영희 의 절필 선언을 두고, 김종철의 평가 가 생각나네요.

김종철은 리영희가 우리사회에 끼친 긍정적인 점에 수긍하지만,

파리의 에벨탑을 보고, 감탄하는 리영희를 보면서, 그런 태도로는 이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던게 기억나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3-0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서문을 쓴 홍세화도 같은 각도에서 비판할 수 있겠죠.

결국 리영희의 대안도 사민주의가 될텐데, 그들에겐 프랑스가 일종의 현실적 대안이 될테니까요.

홍세화도 프랑스를 비판하는 걸 거의 보질 못했구요.

김종철의 에콜로지는 사민주의도 결국 근대의 한 방법론일 뿐이라 생각하는 거구요.

다이조부 2010-03-06 15:31   좋아요 0 | URL

홍세화 를 비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측에서는, 프랑스의 현실에

경도되어, 무조건적으로 프랑스를 옹호하는것 아니냐고 보는것 같은데,

홍세화도 그런 시각을 인지하고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것 같습니다.

김종철의 글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 분의 견해에 저는 동의하는 바가

많습니다. 경제성장만이 절대적인 선 인가 의문을 제기하면서, 우리의 대안

이 경제성장제로 가 될수도 있다고 피력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김종철의

견해가 절대 다수의 사람에게는 근본주의적이고, 현실에 적합하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것 같아요.

아~ 이렇게 잘 모르는 이야기를 주저리 늘어놓으니까 땀 나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3-0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종철의 진의를 잘 이해하시는 것 같아요.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하는 걸 김종철은 근본적으로 엎어버리죠.

전에 이청준을 비판하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김종철이 비판하는 각도에선 이청준도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이조부 2010-03-07 02:12   좋아요 0 | URL

김종철의 이청준 비판은 읽지를 못했는데, 강준만의 이청준 비판이

엉뚱하게 떠오르네요. 강준만은 이청준에게 예를 표하면서 논의를 시작하는데

지역문제에 관한 것이었어요. 이문열을 옹호하는 이청준을 보면서 전라도

출신인 이청준이 그러면 곤란한거 아니냐? 하는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이청준이 세상을 뜬 후, 그 양반의 소설 2권을 구입했습니다. 게을러서

읽지 못했는데, 맨날 책은 안 보고 겉 표지만 만지작 거리고 있죠 --

이청준 소설은 학창시절 읽은 것들 말고 본격적으로 읽은게 아쉽게도

하나도 없네요~ 이청준의 소설은 아니고, 일상에서 이야기인데, 담배를

끊기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이 할배를 보면서 깊은 동감을 느꼈어요 허걱


고종석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3명의 소설가를 꼽자면, 최인훈 과

이청준을 거론하더군요. 한명은 기억이 안나네요 ^

노이에자이트 2010-03-06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화혁명에 대한 시각에서 리영희에 대해 정반대되는 사람이 신영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혹시 두 사람의 중국관이 비슷한 곳을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3-30 16:20   좋아요 0 | URL
우선 두 사람 모두 혁명을 기대하죠. 저는 <강의>를 보며 신영복의 혁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는데요. <강의>를 읽고 적어본 감상입니다. "중국과 중국의 향후 행보가 시대적 문제의 대안이 되리라는 확신 때문이겠지. 난삽한 고전들을 관통하며 갈무리 해내는 것도 자신의 신념에 대한 다짐이리라. 혁명이 과연 대안이 될까? 리쩌허우와 류짜이푸의 대담집인 <고별혁명>을 공교롭게도 같이 읽었다. 제목처럼 혁명에 고별을 전하는 책이다. 중국식 혹은 중국이 겪은 혁명과 우리식 또는 우리가 겪은 혁명이 다를테다. 혁명 - 정확히는 문화대혁명이겠지만 - 이 싫어 중국을 뛰쳐나온 지식인 둘과 여전히 제대로 된 혁명이 없다며 혁명을 기다리는 우리의 지식인이다."
전에 신영복이 번역한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를 보면서도 문혁에 대한 역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이 책이 문혁의 상처를 말하고 있지만 문혁의 의미를 부정하진 않죠. '상흔문학'에서도 다이허우잉은 문혁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지 않는 작가로 분류되구요.


노이에자이트 2010-03-07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용한 답변 감사합니다.

동대문도서관 2010-07-2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동대문도서관 입니다^^
『근대의 책 읽기』 저자 천정환 교수님의 강좌 <독자, 그들의 대한민국 - 근현대 문학과 독자의 문화사>가 9월 7일부터 매주 화요일 7시에 동대문도서관에서 열립니다.

강의에 관한 더욱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blog.daum.net/ddmlib/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