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문학 작품선
신진호 엮음 / 학고방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봄 누에(春蠶)>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다. 논과 뽕밭을 주위로 하며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곳은 아직 개명이 덜 된 곳이다. 진나으리네 집이 망하게 된 것을 마을 사람들은 염라대왕 운운하고 있다. 동네 여인들의 대화 한 대목을 들어보자. “황도사가 점을 쳐보았는데, 올해는 뽕값이 4원까지 올라간대!”

  소설의 배경이 되는 농촌은 이제 자본주의화의 중심에 들어서고 있다. 통보영감은 개탄한다. “정말 세상이 변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화를 비켜설 곳은 이제 어디도 없는 것이다. 소설은 자본주의의 자장에 진입하는 농촌을 그림과 동시에 이로 인해 한 마을이 구조적으로 쇠락해감을 말한다.

  서술 기법을 살펴보면, 마오뚠(茅盾)의 소설은 농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인물들의 심리도 핍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오뚠이 리얼리즘과 자연주의 사조의 수용을 선도한 작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객관적 묘사가 주를 이룬다. 일전에 그의 장편소설인 <깊은 밤(子夜)>을 읽어보았는데, 이 소설 역시 환경 혹은 세계에 대한 여러 인물 군상의 반응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물론 <봄 누에>에 비할 때 편폭이 길기 때문에 루카치가 말하는 ‘총체성’과 ‘전망’이 이 소설에는 비교적 잘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읽을 때 종이에다가 인물과 삶의 조건, 성격 등을 적어가며 보았다. 작지 않은 종이였는데, 소설을 완독했을 때는 빼곡이 공간을 채웠다. 그런데 난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론가로서의 마오뚠을 잘 모르지만 소설 마저도 이론을 다루듯 이토록 치밀하게 써 간다면 독자는 옳은 이야기이나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난 조금 숨이 막혔다. 발자크의 소설이 가치는 있으나 재미는 없듯이 말이다.

  “그(통보영감)는 예순이 되도록 살아오면서 난리도 여러 번 겪어보았지만 윤기가 도는 푸르싱싱한 뽕잎을 나무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 가랑잎이 된 다음에 양이나 먹이게 되는 일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소설 서두의 한 대목이다. 이 대목을 읽는 가운데 난 문득 '근대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떠올랐다. 또 머리엔 아베 코보(安部公房)의 소설들이 떠올랐다. 1960년대 실종 삼부작이란 이름으로 장편 셋을 아베는 연달아 발표한다. <모래의 여자(沙の女)>, <타인의 얼굴(他人の顔)>, <불타버린 지도(燃えつきた地圖)>가 그것이다. 보통 아베 코보의 소설엔 근대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정평이다. 그의 작품을 시종 지배하는 우의성(寓意性) 때문일 것이다. 근데 난 구태여 찾아보고 싶었다. 머리굴려 찾은 바는 이렇다. 지속성의 파괴가 아닐까? 실종이란 잃어버림인데 결국 근대란 그 무엇도 소유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닐까? 직장인이 사라지고, 얼굴이 사라지고, 지도가 사라진다. 한 곳에 터 잡고 사는 중세는 지금과 비교하자면 소유에 있어 영속성이 강하다. 근대란 가질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닫는 데서 오는 섬뜩함을 아베는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다. <봄 누에>로 돌아가 통보영감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 말하지만 그의 체험과 지식도 이젠 지속성을 갖지 못하며 쓸모 없다.

  아다란 사람에 대해 관심이 갔다. “그(아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영원히 어울릴 수 없는 무엇이 있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딱 부러지게 알 수가 없었다.” 루카치라면 이 대목에서 문제적 개인의 출현이 요청된다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다를 보니 가족을 비롯해 동네 사람들과 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한 대목만 들어본다면, “부지런히 일하고 아껴 먹고 아껴 쓰는 것만으로으로는 허리가 부러진다 해도 잘 살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적 개인이 될 만한 소양이 있으나, 아닌 게 사실이다. 혹시 모른다. 이 소설을 장편으로 늘린다면 아다의 형상이 꽤 바뀔는지도. 한국문학을 공부하며 문제적 개인의 전형은 김희준이라 배웠다. 이기영(李箕永)의 <고향(故鄕)>의 주인공인데 일본유학을 한 지식인이다. 난 이후로 문제적 개인은 으레히 지식인이어야 한다는 괴상한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80년대 한국 소설을 대하며 생각을 달리 할 때도 있었지만. 하지만 난 비평가 김현이 죽기 얼마 전에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지적 교만 없이 어떻게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느냐?” 창작과 구조로 층위를 달리 한다는 걸 알지만 아다를 보며 이 구절이 생각났다. 아다는 좀 더 배워야만 문제적 개인이 될 수 있겠다.

  <봄 누에>는 한 계급의 전형으로서 통보영감 가족을 그리고 있다. 소설은 당대의 전형적인 한 가족을 모두 그림으로써 중국 사회의 변화되는 성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茅盾(1896-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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