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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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64년 작품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서양에 알려진 한국의 문학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독일의 이미륵은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ßt)>(1946)란 소설로 이름을 알리는데 한국의 풍광과 풍습이 그들의 눈엔 기이했을 것이다. 미국에도 비슷한 시기에 강용흘이란 작가가 있었는데 제목부터 그저 서양인의 호기심을 동하는 <동양인 서양에 가다(East goes West)>(1937)를 펴냈다. 이들 소설에 쏠린 관심은 일종의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김은국이 특별한 건 호기심 정도의 서양의 관심을 일정 부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특이하군."이란 생각을 넘어 "너희도 우리처럼 이런 고민을 하고 있나?"하는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이 건 실존주의와 연결시키면 좀 더 뚜렷이 이해할 수 있다. 1960년대면 한 풀 꺾이긴 했지만 실존주의가 아직은 유효했을 때이다. 전쟁을 겪은 한국에서 실존주의적인 작품을 써냈으니 관심이 동했을법 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알베르 까뮈에게 헌정하고 있기도 하다.

  실존주의를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나눈다면 <순교자(The Martyred)>는 무신론에 해당한다. 이 주장이 성직자(신목사)를 통해 이루어지니 꽤 충격적이다. 순교를 이념의 선전수단으로 여기는 장대령과 맞서 사건의 진실을 말하는 신목사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진술을 한다. 이 소설과 소설적 구조가 거의 흡사한 엔도 슈사쿠의 <침묵(沈默)>은 이런 면에서 썩 흥미롭다. <순교자>가 발표된 이듬해(1965년)에 발간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배교한 성직자(신부)를 다루지만 끝내 "신은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어느 편에 설 것인지는 개인의 판단이지만 말이다.

  한국문학의 소개에 대해선 한 마디 더 거들고 싶다. 근래 주목받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대체로 관념적이고 실존적이다. 이청준과 이승우를 예로 들 수 있겠는데, 이 시선엔 "너희도 우리처럼?"이라는 입장의 동일함을 담고도 있지만, 뉘앙스를 달리하자면 "너희가 이런 고민까지?"란 신기함을 말하는 시선도 깔려있다 하겠다.  

 

               김은국(1932-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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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6-16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들어보는 작가네요. 문득 파고세운 닥나무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지지 궁금....

파고세운닥나무 2010-06-16 09:23   좋아요 0 | URL
문학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국문학을 전공하다 지금은 중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20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을 때 그 내용때문인지 일부 개신교신도들이 상영반대운동을 하기도 했지요.하지만 김은국씨의 정치성향은 철저히 한미동맹 반공지향이라서 보수파 인사들과의 친교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6-20 16:49   좋아요 0 | URL
김은국은 한국전쟁을 현역 군인으로 경험하고 미국으로 떠났죠. 미군인의 도움으로 말이죠. 그런 그에게 미국은 구세주였을테구요.
노벨문학상 후보였다는 후광 때문이겠지만 이 소설을 높이 사는 것엔 고개를 젓게 됩니다. 전후 선우휘 등이 보여준 반공 소설들과 별 다르지 않구요. 구세주의 나라 미국의 언어로 씌어진 당시 유행하던 실존주의가 살짝 가미된 소설일 뿐이지요.
영문학자인 김욱동 교수가 김은국의 작품을 다룬 책을 펴냈던데 영문학계야 그렇다쳐도 호들갑을 떨만큼 대단한 소설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간디의 물레 - 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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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표제작인 <간디의 물레>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학생들이 이 글의 진의를 얼마나 알지는 모르겠지만 간디도 그렇거니와 김종철도 급진적인 사람이다. 이 글의 폭발력을 알고 교과서의 편집자들이 실었을까? 알 수 없다. 근래 '삼성불매운동'을 접하며 간디의 위대함을 생각하곤 한다. 간디가 저녁마다 물레를 돌린 건 영국제국주의에 대한 전투이자 자본주의에 대한 전쟁 선포이다. 그가 걸친 옷 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영혼을 좀먹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피나는 결투였다. 간디의 투쟁이 우리의 급진적 지식인 김종철을 움직였을 것이다.

  김종철은 한 사립대 교수를 스스로 그만두었는데, 이유가 흥미롭다. 나이를 먹어가며 학생들과 소통이 되질 않는다고 한다. 홀로 물레를 돌렸던 간디처럼 그도 외로웠는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건대 또 한 이유는 절박함 때문이리라. 실천의 발목을 잡는 아카데미의 사유를 견디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생태주의 운동이란 게 오죽 바쁜 일이겠나? 이 정부 들어 할 일은 더욱 많아졌을테고.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말하며 한국 역시 다르지 않다 했는데, 그 예로 자신이 아는 한국 비평가의 대부분이 문학에서 손을 뗐다고 얘기했다. 최원식에 따르면 이 말은 과장인데 자신이 아는 한 김종철을 제외하곤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한다. 꽤 널리 회자된 얘기인데 당사자인 김종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별무관심인 듯 하다. 근대문학이 끝났다면 '새로운 문학은 뭘까?'라고만 그저 묻는다. 생태문학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말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사상적 거장으로 수입되는 한국에선 김종철의 쿨한 반응은 사둘만하다. 나는 가라타니를 그저 푸코의 후예로만 보는데, 김종철의 "그럼, 대안이 뭔데?"라는 질문은 꽤 통쾌한 반응이다.  

 

 

                김종철(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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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6-12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종철 선생이 이야기한, 경제성장이 무조건 좋은가? 하는 문제제기가 생각나네요.

이 분의 글을 읽으면, 칼럼을 봐도 곱씹어 생각할 여지를 주더군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6-13 11:16   좋아요 0 | URL
동감합니다.
사람들이 애써 마주치지 않으려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죠. 그 질문이 아프게 다가오지만 옳은 이야기이죠.
그래도 이론과 실천에 투철한 이만한 지식인을 가진 건 꽤 값지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뜬구름
후타바테이 시메이 지음, 이여희 옮김 / 태동출판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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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첫 근대 소설이다. 1887년작이니 한국(<무정無情>, 1917)과 중국(<광인일기狂人日記>, 1918)보다 30년 앞섰다. 앞섰다지만 이후 일본의 후배 작가들이 제 역할을 못 해냈다는 게 내 생각인데 그에 비할 때 한국과 중국은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선전했다.  

  우선 세 소설 가운데 가장 재미있다. 연애담인데 주인공 분조의 고민이 꽤 절실하고 현실성이 있다. <무정>도 연애담이지만 황당한 얘기다. 그 황당함이 이후 이광수의 파탄을 자아냈는지도 모르겠다. <광인일기>는 어둡지만 현실을 묘파하는 힘은 세 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묘하게 세 소설의 주인공이 모두 청년이다. 분조, 이형식, 광인은 근대를 맞는 동아시아의 청년들이다. 분조는 이형식과 광인 사이에 끼어 있다. 이형식처럼 설레발 치다가도 광인처럼 우울하다. 세 사람에게선 각 나라가 어떻게 유지되어 왔으며 근대를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한 일단의 실마리가 보인다.  

 

        二葉亭四迷(1864-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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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6-0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시마 유코에 이어 읽어보고 싶은 책이에요. 일본의 첫 근대소설이라니 소세키와도 비교해볼 수 있을것 같구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6-09 13:24   좋아요 0 | URL
주제와 기술적인 면에서 일본적인 스타일이 소설 곳곳에 보입니다. 알게 모르게 이 스타일을 이후 일본 작가들이 줄곧 유지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소설은 사실주의로 분류되는데요. 이 사실주의가 개인의 내면만 비추는 사소설로 이후 진화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나쓰메 소세키도 비교해보면 흥미로울 듯 합니다. 그가 사소설을 쓰지는 않지만 사실주의를 틀거리로 잡으면 한 데 묶을 수 있구요. 주제 의식에서도 꽤 비슷한 것 같아요. <뜬 구름>의 문제의식도 결국은 개인이니까요.
 
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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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도 한 꼭지를 빌어 '쓸쓸함'을 말하던데 그를 보는 나의 마음도 덩달아 쓸쓸하다. 책이 출간될 즈음 저자가 하니TV에서 강연회를 가진 적이 있다. 강연중 총리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정운찬 얘기를 꺼냈다. 두 사람은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함께 다녔다는데, 한 사람은 총리 공관에서 일하고 또 한 사람은 그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홍세화는 '선배와 책 잘 못 만나 인생이 달라졌다'며 살며시 웃었지만 나는 그 이야기가 몹시도 쓸쓸했다.   

  케인즈학파로 분류되는 정운찬이 케인즈와는 도무지 관련이 없는 이 정부의 총리 자리를 덥썩 무는 장면은 비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학문적 신념이란 게 권력과 금력 앞에선 아무 힘이 없음을 여실히 깨닫는다. 이 책에서 독자인 나도 쓸쓸함을 갖는 건 물신 앞에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은 우리 사회의 초상화를 홍세화가 너무도 정확히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 개표방송에서 진보신당 상황실을 본 적이 있다. 암울한 분위기였는데 말석에 김상봉 교수가 앉아 있었다. 방송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홍세화도 어딘가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일전에 홍세화는 한 칼럼에서 철학 교수 김상봉이 부럽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교수로서 정치활동을 하는 그가 부럽다는 것이다. 개표방송을 보며 홍세화의 칼럼이 생각나 또다시 쓸쓸했다.  

  홍세화도 지쳐가는 모양이다. 그의 부인이 프랑스로 돌아가자 한다는데 그 역시 한국으로 돌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사회와 사람들에 지쳐가는 모습이다. 홍세화는 자신을 '감성적 사회주의자'라 말하는데 그의 감성이 이 무지막지한 사회에선 뭇매를 맞는 것 같다.  

 이 책은 그 매를 같이 맞는 연대를 바라는 홍세화의 호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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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6-09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야할 책이 자꾸만 늘어나는군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6-09 13:27   좋아요 0 | URL
홍세화 신도인 적이 있었는데요. 홍세화 선생처럼 저도 세상에 자꾸 지쳐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글이나마 접하며 연대하고 희망을 지니며 살고자 합니다.

다이조부 2010-06-1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세화씨가 김상봉교수를 부러우하는 이유를 적어놓았는데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요~ 쩝

파고세운닥나무 2010-06-14 16:49   좋아요 0 | URL
전에 한겨레내에서 기획위원으로 있는 홍세화의 정치활동으로 논란이 있었죠. 홍세화가 한 발 빼는 듯 했는데 그 걸 겪으며 교수로 정치활동을 하는 김상봉을 부러워한 것 같아요.
근데 제 개인적인 생각은 결국은 홍세화가 그 논란에서 승리한 것 같아요. 그 논란 이후로 홍세화를 비롯한 언론인들의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칼럼이 많아졌거든요. 그리 생각하면 꾸준히 정치활동을 요구한 손석춘은 아까운 사람이구요.
 
야자열매술꾼 열림원 이삭줍기 1
아모스 투투올라 지음, 장경렬 옮김 / 열림원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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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일 교수에 따르면 서구의 서점가는 제3세계, 특히 아프리카 문학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일찍이 헤밍웨이가 말년에 아프리카를 찾았듯이(<여명의 진실True at First Light>) 서구는 아프리카를 찾기에 바쁜 듯 하다.   

 

  문제는 서구의 잣대이다.  

 

  원시, 미개, 야만, 위험 따위로 아프리카를 규정하는데 야자열매술에 종일 취해있는 소설의 주인공은 이들을 모두 비웃는다.  

 

  그 허풍과 비웃음이 마냥 즐겁지는 않지만 한 번 싸워볼만 하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Amos Tutuola(1920-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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