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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 2005-01-17 12:41]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부자들도 사람이지만, 때때로 그들의 투자 안목은 예술만큼 길다. 지금 내가 산 그림 한 장이 언젠가는 사상 최고의 예술품이 될 지 모른다는 의미에서 투자는 예술보다 더 길 수도 있겠다.


2004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 한 장의 그림이 매물로 나왔다. `Garcon a la Pipe` 영어로는 `Boy with a Pipe` 1905년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것으로 파리 유학 시절의 작품이다.


이 그림의 소유자는 존 휘트니. 주영 미국 대사를 지낸 인물이다. 그가 죽은 후 다른 그림들과 함께 부인에게 상속됐다. 1950년 휘트니 대사는 이 그림을 당시 3만달러, 지금 화폐 가치로는 22만9000달러에 사들였다.


54년 후 그림 값은 얼마나 올랐을까. 1억400만달러.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종전 기록은 반 고흐의 작품 `가셰 박사의 초상`으로 1990년에 세워진 8250만달러였다.


피카소의 `파이프를 들고 있는 소년`을 누가 사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휘트니 가문이 54년간 이 그림에 투자해서 올린 수익률은 연환산으로 840%에 달한다. 이 그림을 사간 투자자(?)는 앞으로 몇십년 후 이에 버금가는 수익률을 기대한 것이었을까.


뉴욕, 런던, 유럽의 미술품 시장 규모는 연간 200억달러 수준이다. 뉴욕의 소더비 경매장에서는 한 해 27억달러,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미술품을 거래한다.


뉴욕의 미술품 시장은 5월과 11월에 절정을 이룬다. 런던에서는 2월, 6월, 7월, 12월 중요한 경매가 이뤄진다.


소더비와 크리스티같은 메이저 경매장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진짜 큰 손들이 다루는 물건들이다. 1980년대 유럽과 일본의 신흥 부호들은 가격을 따지지 않고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휩쓸어 갔다. `가셰 박사의 초상`도 일본의 한 기업인에 낙찰돼 화제를 불러 모았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그림 가격은 1990년대 중반 급락하고 만다. 일본의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큰 손들이 시장을 빠져나간 것. 미술품 가격을 지수로 만든 `현대미술100인덱스`는 1990년 4979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1996년에는 1915포인트로 급락했다.


IT 붐이 일면서 반짝 회복하는가 했던 미술품 시장은 다시 깊은 침묵속으로 빠져들었다. 911테러가 터졌고, 전세계적으로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미술품 시장도 한 겨울을 만났다.


그러나 미국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최근 고가 미술품 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소더비에서 인상주의와 현대 미술 경매를 담당하는 데이비드 노만 의장은 "미술품 가격의 상승을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1980년대 미술 시장은 경제적, 정치적 타격을 강하게 받았지만, 지금 시장은 911테러의 충격도 이겨냈다"고 말했다.


미술품 시장에도 전통 블루칩이 있고, 새롭게 떠오르는 기술주가 있다. 19세기 인상파의 그림이나 램브라트와 같은 대가들의 작품은 소더비나 크리스티의 단골 메뉴로 블루칩에 속한다.


반면 미국 플로리다 마이에미와 유럽의 중소형 경매장에 나와 있는 현대 미술, 제3세계 미술품들은 나스닥의 기술주와 같다.


마이에미의 미술품 경매상 로스 프리드만은 "예술 작품들은 포커판의 칩이 됐다"며 "가격이 저렴한 아프리카 미술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모든 투자는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가격도 낮지만, 앞으로 유명해질 것 같은 물건을 미리 사두는 것이다. 제2의 피카소, 제2의 고흐가 주변에 있는지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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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수 뉴욕특파원 (iligh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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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oren님의 "'1분 1초를 아끼는 삶'이 다다를 수 있는 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책"

sayonara님께서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템플턴 경은 인류애 증진 등에 기여한 공로로 87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았고, 월가에서는 "성인 존"이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투자원칙을 입증하듯이 한국이 IMF 경제위기에 빠져있던 1997년 12월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하기 시작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주식 매수를 선도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템플턴경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아직도 여전한 듯 합니다. 그가 약 7개월 전인 2004년 6월에 한국의 某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을 때 언급했던 내용 가운데 일부를 덧붙여 봅니다.

“심지어 현재에도 한국에는 다른 어느 국가 보다 매력적인 종목(bargains)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국인들이 정직하고 근면하며, 검소하고 새로운 기회나 발상에 열려 있기(open minded)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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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템플턴, 월가의 신화에서 삶의 법칙으로
로버트 허만 지음, 박정태 옮김 / 굿모닝북스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이것은 책이 아니다. 이 책을 만난 사람은 한 인간을 만난 것이다.
  - 월트 휘트먼, 『풀잎(Leaves of Glass)』중에서

******

이 책은 존 템플턴의 전기이다. 그런데 템플턴 자신이 쓴 책이 아니라, 그의 위임을 받아 템플턴 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로버트 허만 박사가 쓴 전기이기 때문에 템플턴이라는 인물을 훌륭하게 보이도록 저자가 한쪽으로 치우치게 쓰지나 않았는지 걱정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염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회고록이나 자서전과는 달리 존 템플턴이 지나온 삶을 연대기 형식으로 비교적 평이하게 서술한 책이어서, 삶에 대한 '겸허한 접근'을 강조해온 템플턴의 인품과도 많이 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존 템플턴 경에 관한 책들이 늘 그렇듯이 이 책 또한 그의 월스트리트에서의 신화적인 성공 스토리에 대해서는 오히려 소박하게 다뤄진 느낌이 많다. 그 대신 절제와 검소함이 체화된 그의 고매한 인격과 높은 수준의 도덕성 및 인류에 대한 깊은 박애정신 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존경심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1912년에 미국 테네시 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존 템플턴이 현존하는 월스트리트 최고의 펀드매니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을 무덤덤하리만치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어서 전기를 대할 때 우러나는 감동은 다소 부족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존 템플턴이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마칠때까지의 성장 과정만 예로 들더라도 결코 평범한 인물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그는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11년 동안 한 과목에서도 A 아래의 성적을 받지 않았고, 센트럴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졸업생에게 수여한 다섯 개의 금메달 가운데 네 개를 받았으며,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 최초로 예일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템플턴 경이 어릴 때부터 습득한 훌륭한 삶의 자세와 덕목들에 대해서 훨씬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이런 점들은 템플턴의 삶의 자세와도 일견 닮아 있어서 공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존의 성장과정에서의 몇몇 일화들은 먼 훗날 존 템플턴이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이미 불굴의 인내와 자발적인 행동이라는 중요한 덕목을 이해했으며, 그의 아버지조차 아들의 의지력과 성공하려는 집념, 1분 1초까지 아껴쓰는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84년(지금은 92세) 이상을 살아오는 동안 텔레비전을 84시간도 시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예일대학교에 다닐때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잡지 구독을 권유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너무나도 어려웠던 그 일을 기어코 성공해 내는 과정을 통해 그는 근면과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한 지와 인생에서 시련에 부딪쳤을 때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불굴의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예일대를 졸업한 후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투자자문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졸업 직후인 1936년에는 세계일주를 떠나 7개월간 35개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 여행을 통해 얻은 다양한 경험이 후일 그가 세계적인 글로벌 투자가로 자리메김하는 데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일주 여행을 마친 뒤에 그는 월 스트리트에 있는 페너&빈의 신설된 투자자문 부서에 취직하게 된다. 결혼 초기부터 그는 자신의 소득 가운데 무조건 50%를 저축하기로 다짐했고, 철저하게 검약의 원칙을 지켰으며,
자동차와 집, 가구를 구할 때는 남편과 아내 중에 누가 더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지 게임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200달러가 넘는 자동차를 처음으로 구입한 것은 그의 재산이 25만달러를 넘어선 다음이었다고 하며, 맨해튼에서 월세 아파트로 이사갈 때는 가장 많은 돈을 주고 산 가구가 5달러에 산 소파였는데 그 후 25년 동안이나 잘 썼다고 한다.

존 템플턴이 1939년에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을 코앞에 두고도 주식을 매수한 일은 아마도 템플턴에 관한 일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얘기일 것이다. 그는 1달러 미만으로 거래되는 모든 종목을 100달러어치씩 매수했으며, 부도여부와 관계없이 총 104개 종목을 매수했다. 그가 투자한 원금 1만 달러는 평균 4년 정도 보유한 뒤에는 4만 달러 이상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 당시 그가 투자했던 최고의 주식은 주당 0.125달러에 100달러어치 총 800주를 매수한 철도회사 주식이었는데, 전쟁이 터진 뒤 주당 5달러까지 상승하자 모두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 5년만에 이 주식은 무려 105달러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100달러 어치를 사서 4,000달러에 판 주식이 그 뒤 5년만에 무려 84,000달러(840배 상승)까지 치솟았던 셈이다.

존 템플턴은 사실 미래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며 누구보다도 장래를 밝게 내다보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의 핵심적인 투자전략은 "비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매수하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늘 이렇게 묻습니다. 어느 곳의 전망이 좋으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올바른 질문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어느 곳의 전망이 최악이냐고 말입니다"

그가 제정해 1973년부터 인류애와 종교적 성취가 뛰어난 인물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는 템플턴상은 종교계의 노벨상에 비견된다. 지금까지 테레사 수녀와 빌리 그레이엄 목사, 한국의 한경직 목사 등이 템플턴상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존 템플턴은 펀드 운영에서 공식 은퇴한 뒤 현재 템플턴 재단의 자선활동에 전념하고 있으며, 매년 4000만 달러 이상의 금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사후에 전재산을 자선사업에 쓸 수 있도록 재단에 기증하기로 했으며, 자식들에게는 일체의 유산을 남겨주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후반부에는 존 템플턴이 직접 모은 "삶의 원칙" 200가지가 고스란히 소개되어 있는데, 그가 평생 동안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명언들도 두루 음미해 볼 수 있어서 좋다.

이 책에서 존 템플턴이 보여준 삶의 철학과 원칙은 일반적인 성공 원칙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일에 자신의 전부를 투자하고, 마지막 땀 한 방울을 더 흘리고,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고, 꾸준히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면 성공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또 삶이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스스로를 돕고, 부정적인 데서 긍정적인 것을 찾아내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올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전기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성공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는 일은 늘 흥미롭다. 그리고 보람있는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부단히 이끌어주는 힘이 있어서 좋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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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우 얇은 책이지만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
    from Value Investing 2012-02-08 23:25 
    이 책은 142쪽에 불과한 아주 얇은 책이다. 그렇지만 책의 제목 만큼이나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당신이 만약 참된 영혼이 깃든 원칙들을 선택했다면 ······ 더 많은 고객들이 찾을 것이다. 당신의 사업은 번창할 것이다. 만약 영혼이 깃든 원칙을 갖지 않고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며, 이 세상에 좋은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저자인 템플턴 경은 경고한다.2008년에 작고한 그가 생각하는 '영혼이 있는 투자 원칙
  2. '텔레비전을 84시간도 시청하지 않았다'는 사람의 인생 계획
    from Value Investing 2012-02-08 23:27 
    이 책은 존 템플턴이 제임스 엘리슨에게 구술한 것이지만 저자는 당연히 템플턴이다. 1912년에 태어나 3년 전인 2008년에 작고한 템플턴 경은 '성인과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1분 1초'를 아끼며 살았던 사람이며, 그의 '자서전'에서 읽은 내용으로는 '살아오는 동안 텔레비전을 84시간도 시청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는 이 책에서 21가지의 '템플턴 플랜'을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 하나가 모두 '금과옥조'처럼 소중한 원칙들이다.그
 
 
sayonara 2005-01-13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집니다.(템플턴이라는 인물이... ^^;)

템플턴의 사람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정말 훌륭한 인간이군요.

겉과 속이 다르고, 성공 이전과 이후가 다른 그런 졸부들에게는 볼 수 없는 아우라마저 느껴집니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oren 2005-01-26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yonara님께서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템플턴 경은 인류애 증진 등에 기여한 공로로 87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았고, 월가에서는 "성인 존"이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투자원칙을 입증하듯이 한국이 IMF 경제위기에 빠져있던 1997년 12월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하기 시작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주식 매수를 선도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템플턴경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아직도 여전한 듯 합니다. 그가 약 7개월 전인 2004년 6월에 한국의 某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을 때 언급했던 내용 가운데 일부를 덧붙여 봅니다.

"심지어 현재에도 한국에는 다른 어느 국가 보다 매력적인 종목(bargains)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국인들이 정직하고 근면하며, 검소하고 새로운 기회나 발상에 열려 있기(open minded) 때문이다."
 
돈 그 영혼과 진실 - 돈의 본질과 역사를 찾아서
버나드 리테어 지음, 강남규 옮김 / 참솔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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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비전이 3,000년의 역사를 아우를 수 없을 때,
그는 미망의 어둠 속에서 헤메이면서, 그 시대의 한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 -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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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돈'에 관해 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사회는 세 가지 근원적인 금기를 안고 있다고 말한다. 섹스, 죽음, 돈(화폐)이 그것이다. 사실 '돈'에 대한 얘기는 수세기 동안 '정중한 자리'에서는 입에 담지 말아야 할 주제들이었다. 그렇지만 금기는 항상 우리의 삶에서 분리해서 내다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돈과 문명의 관계는 DNA와 종의 존재와도 같다고 보며, 수천년 동안 인류 역사와 함께 해 온 '돈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물고기는 물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물고기는 그 속에서 헤엄을 치기 때문에 물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이 돈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처럼 돈에 대해 무지한 우리에게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과 그의 후예들이 제공한 중요한 단서들로부터 돈의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긴 여정을 우리 앞에 마음껏 펼쳐내 보인다.

이 책의 저자는 현재 버클리 대학의 펠로우, 콜로라도 나로퍼 대학의 교환교수로 재직중이다. 전자공학, 국제금융학, 원형심리학 등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쌓았으며, 단일통화 유로의 준비과정에도 참여하는 등 30여년 동안 돈과 관련된 분야에서 활동해왔고,「비즈니스 위크」에 의해 세계 최고의 머니트레이더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금융전문가이자 심리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지은이가, 신화, 역사, 심리학, 문화인류학 등 인문학의 성과를 빌려 돈의 영혼, 본질, 미스터리, 역사, 미래 등을 종횡무진 파헤치는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이 책은 흔히 접하는 '돈버는 기술'이나 재테크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책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의 철학자 켄 윌버는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의 종류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구조를 그의 명저 
모든 것의 역사(A Brief History of Everything)를 통해서 제시했다고 한다. 윌버가 제시한 지식구조는 두 가지 축으로 구분되는데, 좌우는 내향성과 외향성을 기준으로, 상하는 개인과 집단을 기준으로 했다고 한다. 윌버의 분류를 활용하여 '돈 문제'를 구분해 본다면, 개인적이면서 외향성이 있는 현상을 다루는 것은 사분위의 오른쪽 윗면에 위치한다. 즉 개인이 어떻게 돈을 증식할 것인가를 다루는 투자이론이나 재테크 기술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책은 개인적이면서 집단적인 내면의 세계를 다룬다. 이것은 윌버의 분류에서 볼 때 왼쪽의 윗면과 아랫면을 아우르는 영역이다. 이 책과 반대로 돈의 외향적이고 집단적인 세계를 다루는 책들은 주로 돈의 행태, 화폐시스템 및 유통과정 등이 핵심 화두이고, 이 책의 저자가 쓴 또다른 저서인「돈의 미래」라는 책이 여기에 해당되며 영국에서는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만큼 화제가 되었다고도 한다.

또한 피터 번스타인의
황금의 지배(The Power of Gold)라는 책도 인류의 화폐시스템에 대해 다룬 책인데, 황금이라는 금속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3,000년간의 역사에 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번스타인의 탁월한 솜씨는 버나드 리테어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이들 두 저자의 주장 가운데에는 '화폐(또는 황금)를 소유하고 축적하도록 부추기는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공통적으로 포함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내향적 측면에서 화폐시스템을 분석하는 일은 인간이 돈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을 탐색하는 일이기에 꽤나 힘겨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칼 융이 '원형과 심리의 관계는 본능과 육체의 관계와 같다'고 말한 것처럼, 돈의 본질과 원형 그리고 이 원형이 만들어낸 두 개의 그림자까지 파헤쳐 들어가면, 현대 금융 시스템의 핵심 감정은 곧 '탐욕'과 '빈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돈이 가지고 있는 양극단의 그림자인 탐욕과 빈곤은 두려움에 의해 서로 연결(매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돈은 단일한 실체이다.
돈은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쁨을 선사하는 사랑과 같은 반열이고, 인간에게 무한한 두려움을 일으키는 죽음과 같은 선상에 있다. -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불확실성의 시대 The Age of Uncertainty」中에서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현대 금융 시스템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 감정의 근원을 찾는 긴 여정의 로드맵이며, 돈이 유발한 강박관념과 충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단서를 제공해 준다. 저자가 독자와 함께 떠나려고 하는 여정은 인간의 머리(사고방식) 속에 대한 탐험이고, 현대사회가 터부시하는 돈에 대한 도전이기도 한 셈이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흥미가 생겨서 사게 된 책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읽기 전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알게 해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고대 이집트 왕조 시대의 온갖 여신 숭배 이야기에서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탐구를 거쳐, 기나긴 암흑기의 중세 중기의 이야기까지 돈의 본질과 관련된 인간 심리의 근원적 의식을 탐구하기 위해 수많은 책들로부터 얻은 방대한 지식들을 아낌없이 독자들에게 내보여준다. '머니(Money)'라는 말이 로마 신화의 여신 유노의 별칭인 모네타(Moneta)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에서 부터, 금융투기 및 공황과 관련된 현대의 언어 가운데 매니아는 마에나드스에서, 패닉은 신의 이름인 판에서 유래되었다는 온갖 다양한 얘기들도 빼놓지 않는다.

중세의 끔찍했던 마녀사냥의 얘기는 특히 흥미로운데, 이것은 인간의 의식속에 내재되었던 엄청난 '강박관념'이 얼마만큼 가공할 만한 수준의 '광기'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부족함이 없으며, 근대 이후의 온갖 금융투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준다고 설명한다.

한편, 유럽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각 나라마다 도처에 널려있는 웅장한 성당 건축물들이 과연 '언제 어떻게' 지어졌을까 하는 점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중세 중기로의 여행'에서 성당 건축의 사회경제적 진행과정들을 아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어 설명해 주며, '성당은 서유럽의 역사가 현대인에게 남긴 최고의 선물'이라고 극찬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당은 중세 중기 민중의 신념, 장인의 천재성, 지역민의 단결, 헌신의 상징이었다는 해석을 덧붙인다.

서구인들은 화폐시스템이 낳은 결과에 대해 무지하지만, 다른 문화권에 속한 관찰자들은 이를 쉽게 발견하고 지적한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예를 들어 퉁가섬의 한 추장은 축장이 가능한 양의 화폐에 대해 진실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돈은 다루기 쉽고 실용적이지만 썩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소유하고 축적하려 들고 다른 사람과 나누려 하지 않고는 이기주의자가 된다. 만일 한 사회에서 음식이 가장 중요한 소유물이라면, 그들은 이를 영원히 보관할 수 없다. 상하기 전에 다른 쓸모있는 것과 교환하거나 이웃과 나누려 들 것이다. 교환하지 않을 경우 먹고 남은 음식은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유럽 사람들이 왜 이기적인지 잘 알고 있다. 바로 돈 때문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앞서 언급한 피터 번스타인의
황금의 지배(The Power of Gold)라는 책에서의 주장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반짝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 황금이 인류경제의 중심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했던 까닭은 다름 아닌 인간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이야기에서 가장 현명한 주인공들은 그들의 생명을 이어줄 소중한 소금을 침묵 속에서 금과 교환했던 젠느와 팀북투의 소박한 원주민들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가 시종일관 해답을 구하려는 문제의 핵심 또한 '빈곤감에서 벗어나 창조와 지속가능한 복지를 가져올 수 있는 금융시스템에 눈돌리도록 하자'는 데 있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앞으로도 점차 그 설득력을 더해 가리라는 생각이 든다. 대안 화폐(보완 화폐)에 관해서는 월가의 스승이라고 얼컬어지는 벤저민 그레이엄도 이미 1936년에《비축과 안정》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한 적이 있었을 만큼 높은 관심을 보였던 적이 있었다. 그의 책
벤저민 그레이엄에서 그는 '나의 이름이 미래 세대에게 기억될 가능성이 있다면, 상품준비통화 계획의 창안자로서 기억됐으면 하고 바란다'고 말할 정도였다. 또한 경제학자 E.A. 톰슨 등은 표준적인 노동시간을 근간으로 하는 화폐시스템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이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이며 역사적으로 음의 화폐시스템을 추적하여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라서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는 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은이가 경제학적인 개념과 논리 대신 심리학, 신화 등 인문학적 방법으로 설명하는 점들이 경제학적인 개념과 분석틀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돈의 미스터리까지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인문학'의 힘과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또한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온갖 그림과 사진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어서 읽기에 별로 지루하지도 않다. 인류의 영원한 친구인 신화의 세계를 돈과 함께 여행하는 재미도 풍부하며, 여행이 가져다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인 몰랐던 사실 혹은 덜 알려진 사실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듬뿍 담겨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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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5-03-1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리뷰가 엉뚱한 곳에 올라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는 군요. <모든 것의 역사.는 섹스, 죽음, 돈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책입니다. 진화적 관점으로 세상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는 책인데... 아무래도 어디서 오류가 발생한 것은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oren 2005-03-17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살이님께서 덧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루살이님의 덧글 내용이 좋은 지적이라는 점부터 우선 말씀드리고 싶군요. 또한 켄 윌버의 명저로 알려진 모든 것의 역사(A Brief History of Everything)라는 책에 대한 님의 서평글도 잘 읽었습니다. 저는 켄 윌버의 책이 너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아직까지 읽어볼 엄두조차 못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님의 서평글 덕분에 새삼 이 책이 몹시도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확인해보게 됩니다.

제 덧글의 본론으로 돌아가서 말씀드리면, 제가 쓴 서평글 가운데 돈 그 영혼과 진실(버나드 리테어 지음, 강남규 옮김 / 참솔 / 2004년 3월)이라는 책에 대한 리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리뷰 내용에서 제가 켄 윌버의 책을 비롯한 몇몇 책들을 '링크'를 활용해서 올렸더니, 하나의 서평글에 대해서 관련 링크로 연결된 책들을 클릭했을 때에도 모조리 리뷰글로 등록되어 있는 '이상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한 편의 리뷰 때문에 제 서평글은 본래 대상으로 삼은 버나드 리테어의 책 말고도 ① 켄 윌버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책, ② 피터 번스타인의 황금의 지배라는 책, 그리고 ③ 벤저민 그레이엄의 벤저민 그레이엄이라는 책의 코너에서도 리뷰로 링크되어 올라가 있습니다.

이러한 점이 알라딘 측의 '의도된 링크'인지 혹은 '의도하지 않은 링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좀 더 보완하여 해당 서적의 '참고 리뷰' 혹은 '관련 리뷰'로 등록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무튼 제 서평글이 엉뚱한 곳에 올라있는 점을 발견하시고 덧글까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즐거운 나날 되시길 빕니다. 그럼.....

******

(덧붙임 : 제 서평글 중 켄 윌버의 책과 링크된 부분)

돈 그 영혼과 진실
버나드 리테어 지음, 강남규 옮김 / 참솔 / 2004년 3월

이 책은 흔히 접하는 '돈버는 기술'이나 재테크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책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의 철학자 켄 윌버는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의 종류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구조를 그의 명저 모든 것의 역사(A Brief History of Everything)를 통해서 제시했다고 한다. 윌버가 제시한 지식구조는 두 가지 축으로 구분되는데, 좌우는 내향성과 외향성을 기준으로, 상하는 개인과 집단을 기준으로 했다고 한다. 윌버의 분류를 활용하여 '돈 문제'를 구분해 본다면, 개인적이면서 외향성이 있는 현상을 다루는 것은 사분위의 오른쪽 윗면에 위치한다. 즉 개인이 어떻게 돈을 증식할 것인가를 다루는 투자이론이나 재테크 기술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끝>
 













며칠 전 모 일간지에 실린 '좋은 문장이란'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글쓴이는 시인이자 건축가였는데, 매우 짧은 글 가운데에서도 눈에 번쩍 띄는 부분이 있어서 일부만 소개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 누구의 문장은 악문(惡文)이라는 둥 비문(非文)이 남발되고 있다는 둥...... 그럼 좋은 문장이란 어떤 것인가? 소설가 최시한씨가 거침없이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절박해야 할 것, 정확해야 할 것, 아름다워야 할 것. 명쾌한 답변이었고 ......

예전에는 학교 졸업한 후 편지 한 번 써본 일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인터넷이 일반화 된 요즘에는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읽는다. 그렇지만 글을 써야 하는 절박함과 글쓰기의 정확함을 통해 읽는 이에게 글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노력은 반대로 더 적어졌다....."


비단 네이버에서 운영하는 이곳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악문(惡文)과 비문(非文)의 남발은 요즘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한 편의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고 난 뒤에 그 영화에 대해 '제대로 된 영화 관람평까지 쓰는 일'은 어떨까? 쉽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영화 한 편을 보고 내 나름대로 영화 관람평을 한 번 쓰려니까 왜 이리도 어려운지... 소설가 최시한씨가 제시했다는 좋은 문장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은 사실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위의 '세 가지 기준'에 어설프게 짜맞추는 흉내라도 내면서 영화 감상평을 어거지로 써보자면...



① 절박해야 할 것.

그리 절박해야 할 것이 별로 없다는 게 이 글이 '좋은 문장'이 되지 못하는 절박한 사정을 스스로 내포하고 있다고 봐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본다.

〈하울의 ...〉는 요즘 극장가에서 꽤나 인기를 끄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한 관람객들의 평가는 감동적이었다는 호평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상과열에 가까운 흥행몰이 성공 및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대해 다소 의아해 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또다른 많은 관객들은 아예 자기 자신의 반응 자체를 여러 극단적인 호평과 악평 사이의 어느 적당한 중간 지대에 편리하게 자리메김해 두는 것으로서 별다른 감정적 혼란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내가 이 영화를 본 느낌은 어떠한가? 아직까지는 '절박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감동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런가?


② 정확해야 할 것.

우선 객관적인 흥행 성적을 두고 말하자면,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2004년 말 무렵 한꺼번에 경쟁적으로 선을 보인 미국과 일본의 유명 영화사(혹은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낸 3편의 애니메이션, 즉 〈하울...〉, 〈인크레더블〉및〈폴라 익스프레스〉의 세 작품 가운데 단연 압도적인 인기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해서는 '미국의 디즈니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로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와 존경심까지 품고 있는 터라, 영화 개봉초부터 전폭적으로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을테니 굳이 흥행성적에 대해 그다지 많이 놀랄 필요도 없어 보인다. 개봉 44일만에 벌써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일본 영화 관객 동원 1위 기록을 보유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자신의 종전 신기록을 갈아치울지도 모른다고 하니 말이다.


국내에서도 개봉 2주째에 접어든 지난 2일에는 관객 162만명을 기록했을 정도로 많은 영화팬들이 이 영화에 몰리고 있다. 단지 어떤 애니메이션이 비슷한 시기에 선보인 다른 경쟁작들에 비해서 월등한 흥행 성공을 보이고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의 우수성을 담보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많은 관객들이 몰리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것도 그리 불합리한 판단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물론 사람마다 다양한 이유와 해석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 쉽게 떠올려 볼 수 있는 요인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점이다.

우선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했음에 틀림없다.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재미있게 만든 애니메이션인〈인크레더블〉같은 영화에 관객들이 너무 많이 식상해 있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미국식 수퍼맨의 영웅적 활약을 펼치는 뻔한 스토리에 대해서는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 왔으니까 말이다. 너무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현실세계 속의 미국의 힘이 연상될 때는 웬지 영화속의 통쾌함과 유쾌함이 조금은 반감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최근의 극심한 경기침체 등에서 비롯된 답답한 현실로부터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 보려는 욕구와 맛물린 '동화같이 아름다운 로맨틱 환타지'에 대한 신드롬 또한 무시하지 못할 요소로 보인다. 2004년에 대히트한 드라마《파리의 연인》만 떠올려 보더라도, 막강한 능력을 소유한 남성과 평범한 여성의 사랑을 통해 '캔디렐라'(캔디+신데렐라)라는 신종 캐릭터를 창조해 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 외에도 좀 더 고상한 이유는 없을까?


③ 아름다워야 할 것.

사실 '아름다워야 할 것'은 '좋은 문장이 되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이었다.

그러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영화 한 편이 던져주는 수많은 아름다운 요소들을 제쳐 두고, 단지 영화 감상평을 구성하는 '짧은 문장'이 아름다울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에 어리석은 시도에 불과하다.

'아름답지 않으면 살 의미가 없어'하고 부르짓는 영화속 하울의 대사 한 마디야 말로 이 영화가 던져주는 핵심 포인트가 아닐까? 여기서 약간만 패러디하면 곧바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니까 말이다. '아름다운 영화가 아니면 볼 의미가 없어...'

연말 연시에 집중적으로 봤던 영화 가운데에서는 사실 개인적으로〈오페라의 유령〉이 가장 아름다운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심금을 울려대는 음악이나 화려한 무대의상 뿐만 아니라 ‘크리스틴’ 에미 로섬의 깊은 눈망울과 낭랑한 울림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관객들은 많지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막상〈인크레더블〉이나〈알렉산더〉같은 영화를 보면서 '아름다움'을 찾을려고 한다면 이야말로 생뚱맞은 일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사실, 애니메이션이 지니는 최대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실사 영화에서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는 한계를 마음대로 뛰어넘을 수 있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점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데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보고 나서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잠시라도 망연자실할 만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 한 장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도 온 정신을 집중하고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벌레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서는 벌레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확대경으로 본 세계가 아닌 진정한 벌레의 눈으로 보게 되면 풀은 거대한 거목이 되고 지면은 평탄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며 비나 물방울 등의 물의 성질도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됩니다. 이렇게 그려지면 재미는 물론 ‘진실’한 세계가 탄생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비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지브리 스튜디오만 이런 특장점들을 유난히 잘 살리는 것도 아니다. 디즈니와 픽사가 합작해서 만들어낸 멋진 애니메이션 작품들, 가령〈벅스라이프〉,〈토이스토리〉,〈니모를 찾아서〉등등만 살펴봐도, 실사영화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고 표현할 길도 없는 아름다운 세계와 흥미진진한 스토리들을 우리들 앞에 마음껏 펼쳐내 놓았으니까...

그런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이제까지 우리들에게 선보였던 애니메이션들은 앞에서 언급한 서구 자본에서 추구하는 만화 영화의 전형과는 꽤나 다른 독특한 매력과 감성들을 우리들에게 풍성하게 제공해 왔음도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들은 우리가 너무나 익히 알고 있듯이〈이웃집 토토로〉,〈천공의 성 라퓨타〉,〈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그리고〈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등등일 것이다.

이들 작품들은 물론 '환경보호'라든가 '전쟁 반대'등을 포함하는 여러가지 강력한 메시지들도 포함하고 있지만, 어느 작품이든 한결같이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감독의 집요한 노력이 베어있지 않은 작품은 별로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들 영화를 두고 두고 아름다운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추구해왔던 '아름다움'을 가장 거리낌없이 드러내놓고 맘껏 펼쳐 내보인 작품이 사실 이번에 나온〈하울...〉이 아니었을까? 그림의 배경과 음악과 등장인물 등 모든 요소에 대해 '아름다움'으로 맘껏 채울려는 감독의 욕심은 화려한 꽃으로 온통 채색된 장면들에 이르러서는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조차 드는 점이 없지 않았다.

또한 여태껏 '하울'만큼 남자 주인공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하울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성우는 또 어떠하며, '마음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준 여주인공 소피와 말 한마디 제대도 못하는 허수아비의 마음씨는 또 어떻고..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인〈하울...〉을 보고난 관객들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 것'에 대해 두 갈래의 이율배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그 이유의 일단을 나름대로 해석하기 위해 심리학적 접근 방법을 조금 시도해 보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롭기만 하다. 심리학자인 칼 융이 제시한 '4등분 지도'를 바탕으로 살펴본다면 '연인의 원형'이 두 갈래의 반응에 대한 해답의 일단을 매우 쉽게 설명해 준다고도 생각된다.

연인의 원형은 죄의식을 갖지 않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거나 내보이기도 한다. 이는 타인이나 사물에 대한 연민, 또는 타인이나 사물과의 일체감을 의미한다. 연인의 원형은 예술과 아름다음에 대해 민감하다. 그렇지만 '연인의 원형' 또한 두 개의 그림자를 갖고 있는데, 너무 지나친 경우인 성중독과 너무 적은 경우인 성무기력을 들 수 있다. ...... 여기에서 이성과 과도한 이성(hyper-rationality)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즉, 엄격한 이성이나 빼어난 추리가 주는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성이 세계에 대한 해석을 완전히 주관한다고 주장할 때 과도한 이성화가 일어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는 말이다.

이 영화의 초반부에서 여주인공 소피가 군인들 앞에서 당황해할 때 멋진 꽃미남 마법사 하울이 등장하여 황야의 마녀의 부하들(소위 '고무인간')을 따돌리기 시작하면서 부터 어느새 소피와 하울은 하늘위를 꿈속처럼 날아올라 걸어다니게 되고, 히사이시 조의 환상적인 주제 음악인 '공중의 산책'이 영화 관람객들의 감각을 순식간에 사로잡는 순간에서부터, 이미 이 영화는 짧은 네 다리로 불안하게 삐걱거리며 움직이는 하울의 성처럼 관객들 사이에서도 뭔가 약간씩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게 만든 게 분명하며, 결국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관객들 스스로가 전혀 다른 색깔의 문을 통해 이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침〈하울...〉에 대한 영화 감상글 가운데 '과도한 이성화'에 대해 경계하는 멋진 글을 네이버 블로거 한 분의 포스트에서 발견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었다. 여기에 그 일부분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삐그덕 거린다.
움직이는 성을 구성하는 철골 구조마디에 미처 다 조이지 못한 나사가
수천개씩 맞물리며 불협 화음을 내듯,
이야기 구조는 엉성하고, 결론은 허겁지겁하며, 캐릭터는 의아스럽다.
게다가 그 많은 사건의 동기도 불분명하고, 캐릭터간의 관계도 불확실하다.
결국, 영화는 그렇게 모든것을 열어둔 채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웰 메이드 영화에 길들여진 어른들에게 흡족스러워야 한다고,
그 누가 주장할 수 있을까.
반드시 그래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배워버린 눈은,
더 이상 하울과 꿈을 같이 꿀 수 없다.

☞ 출처 블로그 : LENS 나의 렌즈로 보는 세상... http://blog.naver.com/draiburn.do)

좌충우돌하며 여기까지 이래저래 덜컹거리며 마음대로 내달렸던 영화 관람평도 거의 마무리할 대목이 되었다. 애시당초에 얘기를 시작할 때 의도했던 '좋은 문장'을 써서 읽는 사람들에게 글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려는 노력은 온데 간데 없어졌고, 결국 이상한 마법에 걸리게 되면 소피가 되어〈하울의 움직이는 성〉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며, 마법을 쓰는 하울과 같이 잠시나마 하늘을 마음대로 걸어다닐 수도 있게 된다는 영화속 얘기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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