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선택의 산물
주택에 지출된 재고
정치,경제,사회,법률,역사,철학 등을 포괄하는 엄청난 넓이와 깊이를 지닌 경제학 고전의 명저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선조를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선조들이 시도한 것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어떤 실패를 했든 간에 "나의 아들아, 괴로워하지 마라. 네가 해내지 못한 일로 누가 너를 탓하겠느냐?"57


주석

57. 인도 경전 『비슈누 푸라나Vishnu Purana』에서 인용. "나의 아들아, 괴로워하지 마라. 네가 과거에 행하지 않는 일로 누가 너를 탓하고, 네가 해내지 못한 일로 누가 너를 탓하겠느냐?" 푸라나는 힌두교 신화에 대해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모든 경전을 가리킨다. 푸라나는 신에게 영감을 받아 쓰인 성전聖典으로 여겨지며, 각 신을 찬양하는 성전이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종교적인 지식만이 아니라 세속적인 지식까지 망라한 백과전서이기도 하다. 중요한 푸라나는 18종이며, 『월든』의 장수章數와 일치한다.




총 18장으로 이루어진 『월든』의 장수章數가 힌두교 경전인 푸라나의 숫자와 같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18개의 장들 가운데 대다수의 장들은 제목부터 소박하기 그지없다. 「콩밭」, 「마을」, 「호수」, 「난방」, 「겨울 동물들」, 「겨울의 호수」, 「봄」 등등이 그렇다.

그러나 몇몇 장들은 제목부터 좀 묵직하다. 「경제」,「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 「독서」, 「고독」, 「더 높은 법칙들」등등.

그런데 소로우가 이 책을 출판하기 위해 오랫동안 퇴고를 거듭하면서도(9년 동안에 7번이나 고쳐 썼다.) 유독 「경제」를 맨 앞장에 둔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18개의 장들 가운데 유난히 많은 분량을「경제」에 할애한 까닭은 무엇일까?(『주석달린 월든』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이 책은 본문 내용이 415쪽이고, 「경제」가 97쪽으로 약 1/4을 차지한다. 빼곡하게 달린 주석 또한 총 1,640개에 달하는데 그 가운데 「경제」에 정확히 400개가 달렸다.)

이제 와서 찬찬히 생각해 보니 소로우의 깊은 뜻을 조금은 알수도 있겠다 싶다. 그는 '현실과 멀리 동떨어진 이상'만을 추구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언제나 '단단한 토대'를 강조했던 사람이다. 다만 그가 강조한 '경제', 즉 소박한 삶에 필요한 경제, 진정한 여가를 즐기는 삶을 위한 경제를 우리가 여전히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현실과 너무 맞지 않는다고 지레짐작할 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지나치게 꿈을 좇는 이상주의자'로 서둘러 결론내리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경제」에서 다루는 여러 주제들 가운데 일부인 '옷'과 '집'과 '빵'만 하더라도 그에겐 할 말이 너무 많아 보인다. 의식주衣食住에 대한 그의 기나긴 안목과 날카로운 통찰은 당장 '집값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오늘날의 경제'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주는 듯하다.


인류의 유아기에 한 용맹무쌍한 사람이 피신처를 찾아 바위 틈새로 기어들어갔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모든 아이는 세상을 다시 시작한다.153 아이들은 비가 내리고 추운 날에도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 아이들은 소꿉장난을 하고 목마놀이를 한다. 그런 놀이를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완만하게 비탈진 바위나 동굴 입구를 보고 흥미를 느끼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가장 원시적이었던 조상이 그 부분에 대해 품었던 자연스러운 열망이 우리 안에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동굴에서부터 시작해 종려나무 잎, 나무껍질과 나뭇가지, 힘들게 짜서 펼친 아마포, 풀과 짚, 판자와 널빤지, 돌과 타일로 지붕을 덮는 단계로 발전해 나갔다. 마침내 우리는 야외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제 우리 삶은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분 좁은 울타리 내에서 이루어진다. 화덕에서 밭까지의 거리가 아득히 멀어졌다. 우리가 자신과 천체天體 사이에 어떤 장벽도 없이 더 많은 낮과 밤을 보낼 수 있다면, 또 시인이 지붕 아래에서 시를 읊조리지 않고 성자가 지붕 아래에서 그처럼  오랫동안 머물지 않는다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새들은 동굴 안에서는 노래하지 않고, 비둘기도 비둘기장 안에서는 순결을 지키지 않는다.(67쪽)


주석

153. ······ 어린 시절과 지혜의 관련성은 소로의 「아울루스 페르시우스 플라쿠스」에서 찾을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의 삶은 무척 즉흥적이다. 그가 모든 시간을 포괄하는 영원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는 매순간 어린아이며, 지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에서 불쑥 내던지는 원대한 생각은 어른이 된다고 해서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의 생각은 그 자체로 빛나기 때문에 구름에서 번갯불을 끌어내릴 필요가 없다." 소로는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의 마지막 단락에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날만큼 지혜롭지 못한 걸 항상 한탄해왔다."라고 썼다.



비록 소로우는 뚜렷한 직업조차 없는 무능한 사람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이 책의 주석에 따르면 "소로는 하버드 대학교의 관리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저는 교사-개인 가정교사, 측량사-정원사, 농부-페인트공, 목수, 벽돌공, 일용 노동자, 연필 제조공, 사포 제조공, 작가, 때로는 삼류시인입니다"라고 자신의 직업을 소개했다.") 그는 누구보다 경제를 가볍게 다루지 않았고 경제를 철학처럼 중요시한 인물이었다. 그를 만날 때마다 나는 자꾸 그를 새롭게 쳐다보게 된다.


 

경제162는 가볍게 다루어지는 경향을 띠지만, 가볍게 결정해서는 안 될 문제다.(68쪽)


주석

162. 경제economy의 어원은 그리스어 'oikonomia'로 원래 가정이나 가사의 관리를 뜻했다. 소로는 이 장에 '경제'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이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를 넘어 '공동체가 부를 창출하는 방법 혹은 검약한 삶'까지 의도했다. 또한 그가 흔히 그랬듯이 어원적 의미에 중점을 두었다. 에머슨은 「개혁적인 사람」에서 "원대한 목표를 추구하는 경제, 따라서 소박한 취향으로 검약한 삶을 추구하고, 자유와 사랑과 헌신으로 행해지는 경제는 고결하고 고상한 일, 요컨대 신성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장의 뒤에서 소로는 생계를 위한 경제를 '철학과 같은 뜻'이라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지체없이 삶에서 실험해보는 것보다 삶을 사는 법을 더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겠는가? 내 생각에는 그렇게 해야만 수학만큼이나 그들의 정신을 훈련시킬 수 있다. 어떤 아이가 예술과 학문에 대해 뭔가를 알기를 바란다면, 나라면 그 아이를 학자의 옆집으로 보내는 식의 케케묵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뭔가를 배우고 실습하겠지만 정작 삶을 살아가는 기술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통해 세상을 조사하는 법은 배우겠지만 육안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법은 배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화학이나 기계학은 배우겠지만, 자기가 먹을 빵을 어떻게 만들고 벌어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할 것이다.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을 발견하는 법은 배우겠지만, 자기 눈의 티를 찾아내거나267 자기가 어떤 건달의 위성 노릇을 하는지 알아내는 법은 결코 배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초 한 방울에 숨어 있는 괴물들은 눈여겨보며 조심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주변에서 우글대는 괴물들에게 현혹당해 살아가고 있다는 걸 모르게 된다. 예컨대 관련된 책을 읽어가며 광석을 채굴하고 녹여 잭나이프를 만든 학생과, 인스티튜트에서 야금학 강의를 들었고 아버지에게 로저스 사의 주머니칼을 물려받은 학생이 있다고 해보자. 누가 손가락을 베일 가능성이 크겠는가? ······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서야 항해학270을 수강했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차라리 내가 직접 배를 몰고 항구를 한 바퀴 돌았더라면 항해학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았을 것이다. 가난한 학생조차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배워야 하지만, 철학과 동의어 관계에 있는 생계를 위한 경제학은 이 나라의 대학에서 진지하게 가르치지 않는다. 그 결과 가난한 학생은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와 세271를 열심히 읽으면서 아버지를 헤어날 수 없는 빚에 몰아넣는다.(95쪽)


주석

267. 「마태복음」7장 3절의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를 빗댄 표현이다. 비슷한 구절이 「누가복음」6장 41절에도 있다.

270. 항해천문학은 1830년대 하버드 대학에서 2학년 수학 강의의 일부였다.

271.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경제학자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썼다.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는 영국 경제학자로 『정치경제학과 조세의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을 썼으며, 장 바티스트 세(Jean-Baptiste Say, 1767∼1832)는 프랑스 경제학자로 『실천 정치경제학 통론 Cours Complet d'Economie Politique Pratique』을 썼다. 소로는 C.R.프린세이가 번역한 세의 『정치경제학 개론』(필라델피아,1834)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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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와 초등학교도
아이들한테 '참된 살림'을 안 가르쳐요.
어쩔 수 없겠지만,
교과서 엮는 학자들부터 살림을 모르고,
교과서로 교과과정 나가는 교사도 살림을 모르니까요...

oren 2013-12-15 00:07   좋아요 0 | URL
학생과 교사와 교과서마저 참된 살림을 가르치지 않으니, 가정과 사회가 그나마 그 역할을 떠맡을 수밖에 없을텐데, 경제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겠다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