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의 ‘운명‘에 대하여



그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장래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지 않은 채 뭔가 다른 방법으로 장래의 지침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 그들이 사리사욕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불명예스런 일을 설득하려 하며, 좋지 않은 일에 관해 교묘하게 잘 둘러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들의 반대자나 청중을 놀라게 하거나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중에서


 * * *


자신과 조국을 함께 동시에 저울에 올려 놓고 그 무게를 서로 비교하는 경우란 흔치 않다. 우선 자신이 그런 중차대한 판단을 내릴 만큼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과 조국을 저울의 서로 다른 접시에 올려 놓고 나서, 자기 자신을 조국보다 더 중시하여 끝내 조국을 버리는 경우는 더욱 흔치 않다. 왜냐하면 대개 조국을 버리는 것이 결국 자신을 버리는 결과를 빚기 쉽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조국을 팔아넘기거나 심지어 조국에 엄청난 폭력을 가한 인물들이 예로부터 드물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파멸시킬 뿐이었다. 그래서 자신과 조국을 서로 다른 접시에 올려놓고 '저울질'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 둘을 다른 접시에 따로 올려놓는 일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고 나서, 조국을 위해 자기 자신부터 먼저 내려놓을 줄 알았다. 그런데, 기어코 조국을 짓밟아야만 자신이 살아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처신해야 옳을까?


눈치가 조금 빠른 사람이라면 그런 인물을 너무 멀리서 찾는 수고를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 이 시간까지도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현직 대한민국 대통령이 바로 그와 비슷한 처지에 내몰려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살기 위해 검찰과 특검의 수사마저 갖은 핑계를 대며 회피한 채, 탄핵 심판마저 온갖 파렴치한 지연전술을 총동원하여 버티며 '기각 판정' 재판관들의 정족수 줄이기 게임에만 매달리는 모습만 보더라도 그를 달리 더 좋게 평가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기각 정족수는 이미 네 명(4/9)에서 세 명(3/8)으로 줄어들었고, 3월 13일 이후에는 두 명(2/7)까지 줄어들게 된다. 재판관 두 명만 반대하면 대통령은 '탄핵'에서 벗어나 다시 권좌에 복귀한다!)

우리들의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직 대통령의 온갖 만행에 가까운 어리석은 행동들은 아마도 두고두고 역사에 길이 남을 듯하지만, 정작 피소추인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그런 '먼 훗날의 평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할 겨를이 없는 듯하다. 우선 당장 자신의 안위부터 챙기기 바쁜 궁색한 처지에 내몰렸으니 일견 그럴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대다수의 국민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지극한 자기애(自己愛)'가 너무나 어이없게 느껴질 뿐이고, 대통령이 이미 저질러 놓은 추악한 범죄보다 그 이후에 조국과 국민을 대하는 반성없는 오만한 태도에 더욱 분노하게 되는 듯하다.

오로지 자신만 살기 위해 조국을 향해 아예 대놓고 폭력을 행사한 인물은 없었을까? 고대 로마의 코리올라누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비극적이면서도 인간 심리의 미묘한 부분까지 다시금 헤아리게 만드는 아주 희귀한 본보기라는 점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던 듯하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그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희곡 『코리올라누스』로 자신의 '최후의 비극'을 장식했고, 베토벤은 <코리올란 서곡>을 작곡했으며, T.S.엘리엇은 그 유명한『황무지』에 이 인물의 이야기를 기꺼이 담았을 정도였다.


코리올란 서곡(독일어: Ouvertüre Coriolan)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1807년에 하인리히 요제프 폰 콜린의 1804년 비극에 붙인 서곡이다. 코리올란 서곡의 주제와 구조는 보통 극의 진행을 따른다. C단조 주제는 코리올라누스의 결심과 호전성을 나타내며, E♭장조는 단념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소원을 나타낸다. 코리올라누스는 결국 이를 받아들이지만 로마의 문으로 옛 적들을 이끌고 돌아올 수 없었기에 자살하고 만다. 이 곡은 1807년 3월에 프란츠 요제프 폰 롭코비츠 공의 저택에서 열린 사설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여기서 교향곡 4번피아노 협주곡 4번도 같이 초연되었다.(출처 : 위키백과)


나는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통해 처음 들었는데, 몇 번이나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볼까 하다가 여태까지 미루고만 있었다. 『영웅전』을 마저 읽는 일이 훨씬 더 다급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에 얽힌 이야기를 매우 상세하게 다뤄볼까 한다. 왜냐하면 코리올라누스의 이야기를 너무 간략하게만 풀어 놓으면 자칫 '코리올라누스와 로마 사이의 갈등의 원인'에 대해 여러모로 미묘한 오해를 갖기 쉽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배경 설명과 몇몇 묘한 상황들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 인물은 순식간에 '악인'으로 낙인찍히기에 딱 알맞다. 그 자신에게도 그 나름대로는 아주 딱한 여러 사정들이 있었던 셈인데 말이다. 그런 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도 비판적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이야기를 짧게 줄이지 못했으니 그 점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한다.


코리올라누스에게 간청하는 어머니(Coriolan supplié par sa mère)
지오반니 프란체스코 바르비에리(1591∼1666년), 1643년, 캉 미술관 소장


그의 원래 이름은 카이우스 마르키우스였는데 '코리올리'에서 맹활약한 덕분에 코리올라누스라는 이름을 덧붙이게 되었다. 로마의 귀족이었던 마르키우스 가문에서는 이미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해 오고 있었다. 코리올라누스는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지만 그 점이 출세를 가로막거나 덕을 갖추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그즈음 로마에서는 무공을 가장 존중했는데, 마르키우스는 어릴 때부터 몸이 재빠르고 누구와 맞붙어 싸우더라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와 싸워서 패배한 사람들은 모두 마르키우스의 지칠 줄 모르는 강인한 체력 때문이라고 변명을 했다고 한다. 마르키우스는 아직 소년이었을 때부터 전쟁에 참가했는데, 그 무렵 크고 작은 전투 가운데 마르키우스가 월계관과 상을 받지 않은 싸움이 없을 정도로 용맹을 떨쳤다고 한다.


홀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다른 이들은 자기 이름을 떨치려고 싸웠지만, 마르키우스는 홀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싸웠다. 영광의 관을 머리에 쓴 그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안아주는 것이야말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명예이자 행복이었다.

 


에파메이논다스도 자신이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승리한 소식을 부모님이 살아 계신 동안 전할 수 있었던 게 생애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 모두 살아 있었으므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더욱 행운이었다. 그러나 마르키우스는 홀어머니밖에 안 계셨으므로, 아버지께 드릴 애정까지 모두 어머니에게 쏟았다. 그는 어머니 뜻에 따라 아내를 맞이했으며, 자식이 생긴 뒤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416쪽)


 - 플루타르코스, 『플르타르코스 영웅전 Ⅰ』, <코리올라누스 편>

 

마르키우스가 아주 큰 세력과 권위를 얻었을 때 로마에서는 귀족과 평민 사이에 갈등이 컸다. 평민들은 빚 때문에 귀족들로부터 학대를 받았고, 원로원은 부유한 귀족들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할 때 부유한 채권자들은 빚을 진 평민들에게 전쟁에 나가면 너그럽게 봐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집정관도 원로원 명령에 따라 이를 보증했다. 그러나 평민들이 적을 무찌르고 돌아왔는데도 대우는 그대로였고, 원로원도 예전 약속을 잊은 듯 시치미를 뗐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선 싸움과 폭동이 일어났고, 이 혼란한 틈을 타 적들이 다시 쳐들어와 약탈을 일삼았다.


마침내 정부는 적령기의 남자를 모두 소집하는 공고를 냈으나 누구 한 사람 그에 응하지 않았다. 귀족들은 당황했고, 정부 요인들은 법률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격렬하게 토론했다. 그러나 마르키우스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 경제적 어려움은 논쟁의 요점이 될 수 없으며, 법에 맞서 들고일어나려는 평민들 시위는 하루빨리 진압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도저히 구제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평민들은 한꺼번에 로마 시를 떠나 작은 산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행진하면서 외친 구호는 이랬다.


"우리는 끊임없는 귀족들의 참혹한 횡포에 못 이겨 로마 시를 떠났다. 이탈리아는 물과 공기과 뼈를 묻을 땅쯤은 줄 것이다. 하지만 로마는 우리에게 귀족들을 위해 싸우다가 다치고 죽을 일밖에는 해준 게 없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원로원은 대중의 호감을 받고 있던 의원들을 보내 그들과 협상을 벌였다. 양쪽에서 의견 대립이 이어지다가 시민들은 마침내 원로원과 화해하기로 결정했다. 평민들 요구대로 해마다 평민 다섯 사람을 뽑아 호민관을 구성함으로써 평민들 권익을 지키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호민관이 다섯 명 뽑혔고 그 가운데는 먼 훗날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살해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조상인 유니우스 브루투스도 있었다. 이때 마르키우스는 귀족들이 민중의 뜻에 따라 한발 물러선 일을 불쾌하게 여겼다.


그 무렵 로마는 볼스키와 싸우고 있었다. 로마 군대가 볼스키의 수도 코리올리를 포위했을 때, 마르키우스는 소규모 병력을 이끌고 볼스키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카토가 전사의 모범이라고 칭송할 만큼' 힘과 용기와 체력이 뛰어났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마르키우스의 활약 덕분에 로마군은 마침내 성을 함락했고, 많은 병사들은 약탈을 일삼기 바빴지만, 마르키우스는 집정관 부대가 진격한 길을 따라 볼스키군을 추격했다. 몹시 호전적인 적군의 주력부대와 맞선 마르키우스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들 정도로' 적군을 무수히 베어넘겼다. 병사들이 뒤로 물러나 휴식을 취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승리는 지치는 법이 없다"고 말하며 달아나는 적을 뒤쫓았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 집정관 코미니우스는 전리품의 10분의 1을 그에게 상으로 내렸지만 마르키우스는 '명예는 돈으로 값어치를 따질 수 없다'며 이 모든 재물을 사양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꼭 받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볼스키 사람 가운데 저와 가까운 친구가 하나 있는데, 지금은 포로가 되어 노예 처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 친구가 노예로 팔려가는 불행을 제 힘으로 막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사심없는 고결한 생각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들은 마르키우스가 세운 어떤 공보다도 그의 덕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이 대목에서 플루타르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물을 옳게 쓰는 일은 무기를 잘 쓰는 일보다 어렵다. 하지만 재물을 바라지 않는 것은 재물을 옳게 쓰는 일보다 더욱더 어려우며 고귀하다.'


마르키우스를 향한 칭찬과 갈채의 소리가 가라앉자 로마 집정관이 조용히 꺼낸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전우들이여, 받기를 원하지 않는 이에게 억지로 선물을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오. 그러니 우리는 그가 차마 거절할 수 없는 것을 하나 선물하기로 합시다. 다름이 아니라, 코리올리에서 그의 활약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코리올라누스라는 이름을 선물하자는 것이오."


이렇게 해서 마르키우스는 세 번째 이름을 갖게 되었다.


볼스키와 전쟁이 끝나자마자 평민들 사이에서는 또다시 다툼이 시작되었다. 전쟁 때문에 외국으로부터 식량을 들여올 길도 막혔고, 농토 대부분은 경작하지 않아 황무지가 된 상태였다. 먹을 만한 곡식이 없었으며, 곡식이 있더하더라도 그것을 살 돈이 없는 형편이었다. 선동가들은 귀족들이 일부러 민중에 대한 원한을 갚으려고 굶겨 죽이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이럴 때 마침 벨리트라이 시에서 사절단이 찾아와 자신들 도시를 로마 사람들에게 개방하겠으니 그곳에서 살 이주민을 보내달라는 말을 전했다. 최근에 전염병이 퍼져 시민이 전체 인구 가운데 10분의 1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로마 인구를 줄여야 했고, 또한 과격하게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내보냄으로써 나라 안의 걱정과 소란을 줄일 필요도 있었던 로마 정부는 불순분자들을 가려내 이민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때 평민을 대표하는 호민관들은 이 계획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정계 주요인물이 된 마르키우스는 민중을 선동한 사람들과 맞서면서 귀족들 편을 들었다. 그러면서 제비뽑기로 이민을 결정하고, 그 결과에 따르지 않으면 무거운 벌금을 내릴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렇게 해서 이민 계쇡은 예정대로 실시되었다. 하지만 민중들은 볼스키와의 전투에 출전하는 일만은 한사코 거부했다.


마르키우스는 자기 부하가 된 평민들과 몇몇 귀족들로 군대를 이루어 전투에 참가했고, 그곳에서 상당한 양의 곡식과 많은 전리품을 모았다. 값비싼 전리품들을 챙기고 돌아오는 병사들을 본 시민들은 전쟁터에 불참한 자기들 고집을 후회하면서도 부자가 된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꼈다. 그와 더불어 마르키우스에게 반감을 가졌다. 그가 평민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권력과 명성을 얻는 데만 신경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뒤 머지않아 마르키우스는 집정관 후보로 나섰다. 그가 여러모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고, 민중들도 그가 나라를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관직에 입후보하면 속옷을 입지 않은 토가 차림으로 포룸에 나와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표를 부탁하는 게 그 당시의 관례였다. 마르키우스도 다른 입후보자들이 했던 대로, 17년간 치른 수많은 전쟁에서 얻은 상처들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 보였다. 민중은 그 공적의 증거를 보고 모두 놀라며, 그를 집정관으로 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정작 선거일이 되어 마르키우스가 원로원 의원들의 화려한 행렬을 이끌고 공회당에 나타났을 때, 모든 귀족이 그에게 관심을 드러내며 호응하는 것을 본 민중은 갑자기 그에게 질투와 분노를 느꼈다. 귀족들 세력을 등에 없은 자가 집정관이 되면, 그나마 자신들에게 남아 있는 조금의 자유까지 송두리째 빼앗길까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민중들은 끝내 마르키우스를 집정관으로 뽑지 않았고, 원로원 의원들은 마르키우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집정관에 당선되자 마치 자기들이 모욕을 당한 것처럼 괴로워했다. 마르키우스 자신도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격분했다.


고집을 부리지 않아야 고독해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는 본디 강한 기질과 과격한 투쟁이 용기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정치가에게 차분함과 성실함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플라톤 말처럼, 정치가는 사람들 속에서 고집을 부리지 않아야 고독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했다.

하지만 마르키우스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몰랐다. 그는 천성이 단순해 자기에게 반대하는 자를 쳐부수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했다. 시민들의 원한을 폭발시킨 원인이 자신의 약한 의지에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로마 귀족 청년들은 그의 권력에 마음이 뻇겨 언제나 마르키우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해주었다. 마르키우스가 집정관에 오르지 못했을 떄에도, 귀족 젊은이들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동정과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처럼 맹목적인 충성은 마루키우스의 노여움을 더욱 부채질해 결과적으로 그에게 더 큰 해를 끼쳤을 뿐이다.(425쪽)


이렇게 한창 어수선한 상황에서 많은 곡식이 로마에 들어왔다. 시라쿠사를 지배하던 겔로가 선물로 보내온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 식량으로 최악의 궁핍한 생활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고 기뻐했다. 이제는 물가도 내려갈 테고, 선물로 받은 곡식은 무료로 분배되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시민들은 원로원 주위로 떼지어 기다렸다. 몇몇 원로원 의원들이 시민들 희망대로 선물받은 곡식을 무료로 나눠주자고 제안했을 때 마르키우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대중을 편든 의원들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들은 평민들 꽁무니나 따라다니며 아첨하는 자들이고, 귀족에 대한 반역자라고 주장했다.


마르키우스의 말에 따르면 원로원이 민중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그들의 오만과 횡포를 더욱 부채질하는 짓일 뿐이었다. 평민들에게 호민관처럼 높은 지위를 허락하는 바람에 그들이 이처럼 두려움없이 마음대로 날뛰게 되었고, 원로원이 자꾸만 요구를 들어주면서 마침내 시민들을 국가에 해를 끼치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억제책은 시행되지 않아, 그들은 국가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법을 무시하고 집정관 말도 듣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저 여기 모여 또다시 민중에게 곡식을 무료로 나눠줄 법령이나 결정하면서 마치 헬라스의 가장 민주적인 정권인 양 대처한다면, 민중의 오만은 더욱 자라나다 못해 끝내 나라를 파별로 이끌어 갈 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마르키우스는 귀족 젊은이들과 많은 부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여들였다. 그들은 마르키우스가 어떠한 권력과 아첨에도 굴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들은 그의 주장이 초래할 결과를 내다보고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곧 민회가 열리고 심상치 않은 공기가 온 도시를 가득 채웠다. 마르키우스가 연설한 내용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몹시 흥분해 들고 일어났던 것이다. 호민관들은 마르키우스에게 대표를 보내 민중 앞에 나와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마르키우스는 소환장을 갖고 온 대표들을 무시하고 상대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호민관들이 그를 강제로 끌어내려고 했다. 공회당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렇게 싸우는 동안 날이 저물어 싸움은 잠시 멈췄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부터 흥분한 민중들이 곳곳에서 몰려드는 것을 보고 집정관들은 다시 원로원 회의를 소집했다. 그들은 시가지 전체에서 폭동이 일어날까봐 겁이 났다. 집정관들은 합리적인 제안과 적절한 결의로 성난 민중을 누그러뜨릴 방법을 찾아 평민들을 열심히 설득했다. 평민들의 분노가 가라앉고 차츰 조용해지자 호민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원로원이 생각을 바꾸었으니 민중도 원로원의 정당하고 공평한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 대신 마르키우스에게 다음과 같은 혐의에 답변하라고 했다. 첫째는 호민관 제도를 없애라고 원로원을 부추겨 민중의 권리를 빼앗으려 한 사실, 둘째는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할 때 소환에 응하지 않은 사실, 셋째는 보안대원을 구타하고 모욕해 반란을 일으킨 사실이었다. 이러한 질문은 마르키우스를 굴복하게 하거나, 아니면 그와 민중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속셈에서 나온 것이었다.

마르키우스는 이러한 사항을 해명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갔다. 민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며 마르키우스 말에 귀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한 것과는 달리 마르키우스는 사과의 말은커녕 호되게 민중을 꾸짖었으며, 얼굴 표정이나 말투에서 무시와 경멸의 태도가 고스란히 나타났다. 시민들은 분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마르키우스를 사형에 처하기로

이때 호민관 가운데 가장 과격한 인물이었던 시킨니우스가 잠시 다른 호민관들과 모여 이 일을 의논하더니 갑자기 군중 앞에 나와 엄숙하게 마르키우스를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보안대원들에게 그를 당장 타르페이아 바위로 끌고 가 절벽에서 던져버리라고 명령했다. 보안대원들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마르키우스 몸에 손을 대자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평민들까지도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다.(427쪽)


이렇게 해서 귀족들과 호민관과 시민들 사이에 무질서와 혼란이 일어났고, 마르키우스는 귀족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 재판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귀족들 가운데에 민중의 요구에 적대적이었던 강경파들과 민중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온건파들 사이에서도 크나큰 의견 차이가 생겨 서로 다투게 되자 마르키우스는 스스로 호민관을 찾아갔다. 그는 호민관들에게 자기 죄목이 무었이며, 민중 앞에서 무엇을 변명하라고 강요하는지 그들 속내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호민관들은 그가 국가 찬탈을 기도했으니 탄핵받아 마땅하며, 독재정권을 세우려고 한 죄과를 고백하라고 말했다.


이윽고 재판이 열렸다. 호민관들은 마르키우스를 반역죄로 기소하려 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죄목을 바꾸어 원로원에서 곡식의 시장가격을 낮추는 일에 그가 반대했던 것과 호민관 제도를 없애자고 주장했던 일을 끄집어내어 그를 몰아세웠다. 그리고 그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국고로 들여오지 않고 부하들에게 나눠줬던 일을 들먹이며 새로운 죄목으로 덧붙였다.


웃음을 띤 사람은 평민이요,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은 귀족

마침내 사람들 대부분은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마르키우스는 나라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형벌을 받았다. 민중은 마치 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기뻐했고, 원로원 의원들은 슬픔과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평민에게 이토록 큰 권력을 줌으로써 무모한 힘을 행사하게 만든 것을 보고 그들은 후회에 빠져들었다. 그 무렵에는 귀족과 평민의 옷에 구별이 없었지만 이날만큼은 얼굴에 웃음을 띤 사람은 평민이요,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은 귀족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430쪽)

하지만 정작 마르키우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 어디에도 굴욕을 당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이 친구들 모두가 걱정하며 안타까워했지만, 정작 마르키우스 자신은 본인의 불행에 대해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고통에 불이 붙어 노여움으로 변할 때

하지만 그것은 마음이 평온해서도 아니고, 자기 행동을 반성하여 달게 받아들였기 때문도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마르키우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엄청난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냉정한 그의 태도가 큰 울분의 증후임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하지만 고통에 불이 붙어 노여움으로 변할 때는 이미 좌절감이나 나약함이 사라지고 마는 것과도 같다. 열병에 걸린 사람의 정신이 갑자기 긴장되었다가 팽창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르키우스가 이때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은 곧이어 행동으로 나타났다.(430쪽)

그는 집에 돌아가 슬픔으로 통곡하고 있는 아내와 어머니를 붙잡고 이 불행을 부디 잘 이겨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곧장 귀족들 호위를 받으며 성문으로 갔다. 그는 아무것도 몸에 지니지 않고 요구하지도 않은 채, 부하 서너 명만 데리고 길을 떠났다.

며칠 동안 그는 어느 시골 마을에 머무르면서 분노에 사로잡힌 채 온갖 계획에 골몰해 있었다. 그는 오로지 로마에 어떻게 복수할까 궁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로 하여금 로마를 상대로 맹렬한 전쟁을 일으키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가 찾았던 나라는 다름아닌 볼스키였다. 그 나라는 지난번 전쟁에서 큰 패배를 당했으므로 로마에 원한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군대와 재물에 있어서도 막강하다는 사실을 마르키우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찾아간 인물은 툴루스 아우피디우스라는 사람이었는데, 훌륭한 가문에 재산도 많았고 볼스키인들 사이에서 국왕이나 다름없는 존경과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분노와 싸우는 것은 너무나 힘겹다

마르키우스는 툴루스가 그 어떤 로마 사람보다 자기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태까지의 전투에서 몇 번이나 두 사람이 맞붙어 싸웠기에, 나라끼리 원수일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적개심이 짙게 깔려 있었던 것이다.

마르키우스는 툴루스가 너그러운 성격을 지녔지만, 로마에 복수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 어느 볼스키인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아래 시에는 그 무렵 마르키우스 행동이 잘 표현되어 있다.

분노와 싸우는 것은 너무나 힘겹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일을 하기 때문이다.(431쪽)

마르키우스는 해질 무렵에 툴루스 집으로 숨어들어가 부엌 아궁이 앞에 얼굴을 감싸고 앉아 있었다. 집안 사람들은 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으나 그의 풍채에서 나오는 위엄에 눌려 감히 누구냐고 묻지도 못하고 툴루스에게 가서 이 일을 알렸다. 툴루스와 마주친 마르키우스는 그제야 얼굴을 드러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이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모조리 빼앗겼소

"툴루스 장군, 나를 알아보지 못하오? 아니면 알면서도 당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소? 그렇다면 스스로 정체를 밝히겠소. 나는 카이우스 마르키우스, 즉 볼스키 사람들에게 커다란 폐를 끼쳤던 장본인이오. 아마 코리올라누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내가 볼스키의 원수임을 잘 알 수 있을 것이오. 이 이름은 이제 내 몸에 착 들러붙어 좀처럼 떼어낼 수가 없소. 그러나 나는 그 이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민중의 질투와 귀족들 배신으로 모조리 빼앗겼소. 나는 내 나라에서 추방되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소. 하지만 내가 장군을 찾아온 것은 나를 보호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죽음이 두려웠다면 내가 왜 하필 이곳에 찾아왔겠소? 나는 복수하기 위해 온 것이오. 당신에게 내 목숨을 밑기고, 나를 추방한 자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오. 그러니 툴루스 장군, 당신 적을 치려 한다면 여기 있는 나를 이용하시오. 그렇게 해서 나 한 사람의 불행을 볼스키 사람들 전체의 행복으로 바꾸시오. 나는 장군의 적으로서 싸웠던 것보다 장군을 위해 더 큰 승리를 거둘 것이오. 적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보다 더 유리한 법이니까 말이오. 그러나 만약 장군이 이제 전쟁을 더 할 생각이 없다면 차라리 나를 죽여주기 바라오. 과거에 장군의 적수였던 내가 이제 와서 충성을 보인다 해도, 그다지 이용 가치도 없는 사람을 오래 살려두는 것은 장군에게 쓸데없는 일일 것이오."(431∼432쪽)

이렇게 해서 마르키우스는 툴루스와 함께 볼스키 군대를 지휘하는 총지휘관이 되었다. 마르키우스는 볼스키가 전쟁 준비에 너무 많은 시일을 들여 공격 시기를 놓칠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는 다른 준비를 행정관과 시장에게 모두 맡기고, 자신은 가장 용감한 지원병들로만 군대를 조직해서 로마에 쳐들어갔다. 그 결과 너무나 많은 전리품을 얻어서, 진영에서 모두 써버릴 수도, 안티음으로 모두 가져갈 수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르키우스가 얻은 산더미 같은 전리품도, 그가 마음 내키는 대로 짓밟은 로마 영토도 그의 계획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성과에 지나지 않았다.

귀족들을 시기하고 의심하게 만들어

그의 목적은 로마 민중으로 하여금 귀족들을 시기하고 의심하게 만들어, 그들의 관계를 완전히 벌려놓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군인들을 보내 로마 시민들의 모든 농토와 재산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한편, 귀족의 농장과 토지는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귀족과 민중 사이에 더욱 심한 비난과 다툼이 일어났다. 원로원은 마르키우스에 대한 억울한 판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겼다며 평민들을 비난했고, 평민들은 귀족들이 원한과 복수심 때문에 일부러 마르키우스를 시켜 전쟁을 일으켰다고 의심했다. 또한 시민들이 전쟁터에서 싸우는 동안, 귀족들은 마르키우스에게 자신들의 재산을 지켜달라고 부탁하고서 편히 앉아 구경만 했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게다가 귀족들은 전쟁 중임에도 토지와 재산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흥분했다.(435쪽)

볼스키 사람들은 차츰 두려움이 없어져 많은 로마군을 물리쳤다. 볼스키에서는 시민들이 앞다투어 전쟁에 참가하겠다고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마르키우스는 더욱 강력해진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식민지인 키르케이를 함락했고, 그곳을 지나 라티움 지방으로 들어가 마음대로 약탈을 일삼았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에서 12마일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 볼라이를 점령했다. 이때 마르키우스의 명성은 온 이탈리아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였다.


라비니움은 아이네아스가 세운 최초의 도시

한편 로마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거렸다. 시민은 전쟁할 의욕을 잃었고, 서로에 대한 비난과 공격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무렵 라비니움 시가 포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라비니움은 아이네아스가 세운 최초의 도시로, 로마 수호신들의 초상과 보물이 보존되어 있어서 로마의 요람이며 성지처럼 여겨지는 곳이었다. 이러한 라비니움 시가 포위되었다는 소식은 로마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이제껏 지니고 있던 생각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436쪽)

민중은 마르키우스에게 내린 추방 명령을 취소하고, 그를 로마로 돌아오게 하자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로원 의원들이 도리어 이를 반대하고 민중이 올린 제안을 거부했다. 마르키우스가 민중의 환영 속에 귀국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고, 민중에게서만 배척을 맏았으면서도 로마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한 마르키우스가 못마땅했을 수도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마르키우스는 더욱 분노했다. 그는 곧 라비니움 포위를 풀고 로마로 달려가, 바로 5마일 앞까지 진출해서 그곳에 진을 쳤다. 그가 이렇게 빨리 눈앞에까지 쳐들어온 것을 보고 로마 시민들은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원로원 의원들은 마르키우스를 불러 화해하라고 했던 평민들의 제안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원로원과 평민, 그리고 집정관이 만장일치로 마르키우스에게 사람을 보내 귀국을 종용했다. 원로원은 마르키우스에게 가는 사절을 모두 그의 친척이나 친구들 가운데에서 뽑았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30일의 여유

사절단이 적의 진지에 안내되어 들어갔을 때, 그들은 볼스키 사람들 가운데 앉아 있는 오만한 표정의 마르키우스를 발견했다. 그들은 공손한 태도로 자신들이 파견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마르키우스는 거만한 태도로 자기가 로마인들에게서 받은 학대를 신랄하게 늘어놓고 사절단들의 말마다 토를 달며 비꼬았다. 그러면서 지난번 전쟁에서 로마가 빼앗아 간 볼스키의 도시와 영토를 도로 내놓고, 로마에 있는 볼스키인을 라티움인과 똑같이 대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두 나라가 공평하고 정당한 조건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영원한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헀다. 마르키우스는 그들에게 30일의 여유를 주고 그동안 결정을 내려 회답을 보내라고 했다.(437∼438쪽)

마르키우스가 군사를 거두어 로마 영토에서 물러나자 볼스키 사람들 가운데 내분이 일어났다. 그들은 마르키우스가 어떤 도시나 무기를 적에게 넘긴 것은 아니지만, 로마에서 철수한 일 자체가 실질적인 반역 행위라고 비난했다. 또한 30일의 시간을 로마에 주었는데, 그동안 적들이 방어 준비를 갖춰서 전세가 뒤바뀔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마르키우스는 그 30일 동안 단 한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그는 로마 여러 동맹국을 공격하고 짓밟았으며, 가장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은 일곱 도시를 빼앗았다. 그리고 30일이 지나자 마르키우스는 또다시 전군을 이끌고 로마 가까이 갔다.

로마에서는 서둘러 사절을 마르키우스에게 보내, 노여움을 풀고 볼스키군을 철수시키면 양쪽 모두 이로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마르키우스는 '3일 안에' 예전에 제시한 조건을 수락할 것을 요구했다. 사절 일행이 돌아와 원로원에 이를 보고하자, 로마는 폭풍우처럼 몰아닥치는 위기를 느꼈다. 마침내 성직자와 사제들이 행사 때 입는 제복을 입고 마르키우스에게 찾아가서 전쟁을 멈추고 휴전 조건을 협의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되돌아갔다. 로마는 오직 혼란과 공포만이 떠돌았다.

이때 로마에서는 부녀자들이 날마다 신전에 나가 기도를 올렸는데, 그들 가운데는 로마를 위해 큰 일을 한 포플리콜라의 누이 발레리아도 있었다. 그녀는 다른 부인들과 함께 한달음에 마르키우스 어머니 볼룸니아의 집을 찾아갔다. 집안으로 들어간 여인들은 어린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며느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볼룸니아를 발견하자, 자신들과 함께 마르키우스 장군을 찾아가지고 간청했다. 이에 볼룸니아 또한 그 간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녀는 아들을 찾아가서도 별 도리가 없다면 아들 발밑에 엎드려 로마를 위해 탄원하다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볼룸니아는 며느리 베르길리아와 손자들 손을 잡고 여인들과 함께 볼스키군 진영으로 걸어갔다. 볼스키군은 연민과 감동으로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들의 가련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휘관들과 함께 단상에 앉아 있던 마르키우스도 마침내 맨 앞에 선 어머니를 발견하자 가슴 가득 차오르는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급히 단상에서 뛰어내려가 어머니에게 절을 올리고 끌어안았다. 그 다음 아내와 자식들도 껴안았다. 그는 가족들을 어루만지는 손길도, 흐르는 눈물도 참아내지 못했다. 또한 북받쳐 오르는 격정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때 마르키우스가 그의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얘기는 다음과 같았다.

네가 끝내 한 나라의 파괴자가 되겠다면

아들아, 우리가 입은 옷이나 야윈 몸을 보면 네가 추방된 뒤로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게다. 네 앞에 있는 우리는 누구보다도 불행한 여인들이다. 우리가 가장 기뻐해야 할 이 순간이 운명의 장난으로 가장 두렵고 비참하게 되어버렸구나. 내 아들인 네가, 베르길리아 남편인 네가 조국의 수도를 포위한 모습을 보고 있단다. 다른 사람들은 불행 속에서도 신에게 기도를 드리며 위로와 구원을 구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기도조차 드릴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단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기고 너도 무사하라는 기도를 드릴 수가 없다. 너를 위해 기도드리는 일은 로마를 저주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네 아내와 자식들은 나라를 잃거나 그렇지 않으면 너를 잃어야 하는 슬픈 처지에 놓여 있다.

나는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살고 싶지 않구나. 네가 너를 설득해 갈등과 적대감을 우정과 화합으로 바꿀 수 없다면, 네가 두 나라의 은인이 되기보다 끝내 한 나라의 파괴자가 되겠다면 널 낳아준 이 어미를 짓밟지 않고서는 로마로 들어갈 수 없다. 내 나라 사람들이 내 자식을 이기고 기뻐하거나, 내가 낳은 자식이 조국을 정복하고 기뻐하는 것을 살아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너에게 볼스키 사람들을 배반하고 조국을 구하라고 부탁한다면 네가 난처한 처지가 될 것임을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동포에게 빈곤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야비한 짓이고, 우리를 믿는 사람들을 배반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위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재앙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볼스키나 우리 어느 한쪽만 이기거나 지지 않도록, 두 나라가 함께 살아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일은 볼스키 쪽에 더 큰 영광과 명예가 될 것이다. 지금 볼스키 군 전세가 유리한 만큼 누가 보더라도 너그러움을 베푼 것이라고 여길 테니 그보다 더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만일 그런 영광을 얻게 된다면 두 나라 모두 너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너는 두 나라 국민들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다.

전쟁의 결과란 늘 알 수 없는 법이지만 이번 전쟁에서 확실한 게 하나 있다. 로마를 이기면 너는 조국을 멸망시킨 원수가 되고, 볼스키가 지면 너를 아끼고 도와주신 이들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너 한 사람의 원한과 분노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442∼443쪽)

마르키우스는 어머니가 말하는 동안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마르키우스가 입을 열지 않자 어머니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왜 아무 말도 없느냐

"아들아, 왜 아무 말도 없느냐? 분노에 모든 것을 양보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고, 이런 중대한 일로 애원하는 어미 말에 따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냐? 지난날 받았던 학대를 기억하는 것은 위대한 사람에게 어울리고, 부모에게서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명예와 존경으로 보답하는 것은 선하고 위대한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느냐?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벌했던 너라면, 그 누구보다 은혜를 소중히 여겨야 옳다. 너는 이미 네 나라에 벌을 주었다. 그러나 이 어미의 은혜에는 감사할 줄 모르는구나. 너에게 아직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부디 내 청을 들어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말로는 안 된다면 이렇게라도 하는 수밖에 없구나."(443쪽)

이 말과 함께 그녀는 아들 발밑에 엎드렸다. 마르키우스 아내와 자식들도 이를 보고 똑같이 따라했다.

"오, 어머니, 이게 웬일이십니까?"

마르키우스는 소리치며 어머니를 부축해 일으키고는 그녀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이기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승리는 로마를 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저에게는 파멸입니다. 그 무엇에도 지지 않던 어머니의 아들을 마침내 보기 좋게 꺾어놓으셨습니다. 저는 이제 물러가겠습니다."

어머니와 그의 아내에 의해 무릎을 꿇은 코리올라누스 (Coriolan vaincu par sa femme et sa mère)

니콜라 푸생(1594∼1665), 니콜라 푸생 미술관 소장


이렇게 해서 사태는 모두 해결되었다. 어머니와 아내는 다시 로마로 돌아갔고, 볼스키 병사들은 로마에서 철수했다. 마르키우스의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누구라도 그런 일을 겪는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너그럽게 봐주었던 것이다. 그의 명령에 거역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까닭은 그의 권력에 억눌려서가 아니라, 모두 그의 덕망을 존경했기 때문이다.

한편 마르키우스가 군대를 되돌려 안티움으로 돌아오자, 오래전부터 그를 미워하고 시기하던 툴루스는 그를 없앨 음모를 꾸몄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를 잡을 수 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집회가 열리고 선동가들이 어리석은 군중 사이를 돌아다니며 마르키우스에게 좋지 않은 말들을 퍼뜨렸다. 그러자 마르키우스가 일어나 뛰어난 연설로 해명을 하자, 음모에 가담한 자들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마르키우스에게 달려들어 그 자리에서 그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의 죽음을 전해 들은 로마는 어떤 슬픔이나 존경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가 <대비 열전>(<영웅전>의 원래 제목)에서 코리올라누스와 비교한 인물은 알키비아데스였다. 두 사람 모두 조국을 배반했고, 또 국외로 추방되었을 때 조국을 철저히 파괴했다는 사실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플루타르코스는 <알키비아데스와 코리올라누스의 비교>를 통해 '코리올라누스의 잘못'이 알키비아데스보다 훨씬 더 나빴다는 점을 매우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 대목들을 살펴보면 플루타르코스가 얼마나 예리한 안목을 지닌 사람인가를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

아테나이 현명한 사람들이 알키비아데스를 멸시하고 싫어했던 까닭은 그가 정치 생활을 할 때, 민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비열한 아첨과 저속한 유혹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키우스는 그의 자부심과 귀족적인 태도와 더불어 정치 생활에서 보여준 교만 때문에 로마 시민의 미움을 받았다.

이러한 둘의 태도는 모두 옳지 못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민중 환심을 사기 위해 아첨하는 사람이 무례하게 구는 이보다는 낫다. 민중 앞에 머리를 숙임으로써 권력을 얻는 것도 수치스럽지만, 공포와 힘과 억압으로 권력을 지키는 일은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447쪽)


'고독의 친구'인 자존심과 고집을 내세웠으므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을 전해 들은 안티파트로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분은 여러 장점을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남을 끌어들이는 힘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그런데 마르키우스에게는 바로 이런 힘이 모자랐다. 그래서 그의 은혜를 받고 있던 사람들조차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플라톤이 말한, '고독의 친구'인 자존심과 고집을 내세웠으므로 좋은 목적으로 일을 하면서도 뭇사람들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449쪽)


어머니 말을 듣고 나라를 구할 게 아니라

알키비아데스는 자기 나라에 있을 때 정적을 눌렀기에, 비방하는 자들은 그가 없을 때에만 그를 공격할 수 있었다. 마르키우스는 로마에서 추방되고 볼스키에서 살해되었다. 부당한 죽음이긴 했지만 마르키우스 자신의 행동이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

만일 그가 전쟁을 시작함도, 그만둔 것도 자기 분노 때문이었다면 어머니 말을 듣고 나라를 구할 게 아니라, 조국을 구함으로써 어머니를 살리는 편이 훨씬 더 고귀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나 아내도 그가 포위했던 로마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사절단의 공식 제안과 사제들 기도는 거들떠보지 않다가 어머니 말만 듣고 군대를 철수시킨 것은, 어머니에 대한 존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마에 대한 모욕이었다. 이는 로마를 한 국가로 생각해서 구한 게 아니라 한 여자의 눈물을 보고 구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로마에 베푼 은혜는 어느 쪽에서 보아도 이치에 맞지 않고 무례한 일로 비칠 뿐이다.(449∼450쪽)

플루타르코스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부분은 '코리올라누스의 성격상의 결함'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대목을 옮기는 나 자신도 여기서 다시 한번 흠칫 놀라게 된다. 그의 지적은 탄핵 심판을 코앞에 둔 우리의 현직 대통령을 두고 판단해 보더라도 그다지 틀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사교적이지 못하고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성격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마르키우스의 사교적이지 못하고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에 있었다. 이런 성격의 사람들 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못마땅해 보인다. 또한 그 성격이 명예욕과 결합하면 화를 잘 내는 무자비한 사람이 된다.(450쪽)

플루타르코스가 <알키비아데스와 코리올라누스의 비교>에서 결론 삼아 지적하는 다음 대목은 한 나라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도 얼마든지 적용이 가능한 얘기로 들린다.

사람들은 평판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하면서도

사람들은 평판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하면서도 다른 이들 말에 무척 신경 쓴다. 그리고 좋은 평을 듣지 못하면 화를 낸다. 메텔루스, 아리스티데스, 에파메이논다스도 모두 평판에 무관심했는데 그것은 세상이 자신에게 무엇을 주든 빼앗든 전혀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은 몇 차례나 추방되거나 선거에서 떨어졌어도,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조국에 대해 앙심을 품지는 않았다. 그리고 민중이 자신들에게 내린 처벌을 후회하고 다시 불렀을 때에는 곧바로 돌아와 민중과 화해했다. 대중의 평가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나쁜 평가를 해도 쉽사리 복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영예로운 자리에 앉혀주지 않는다고 앙심을 품는 것은, 오직 영예를 얻으려고 하는 탐욕에서 나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449쪽)

T. S. 엘리엇은 <황무지>에 담은 코리올라누스에 대해 '스스로의 감방에 갇힌 인간'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참으로 명쾌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코리올라누스는 한때 로마에서 가장 뛰어난 장군으로 활약했지만 자신이 '집정관'에 뽑히지 못한 때부터 '민중들'을 미워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자신'을 위해 조국까지 배반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조국인 로마를 사랑했으나, 그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훨씬 더 중시했음에 틀림없다.(코리올라누스에 비한다면 브루투스는 그와 얼마나 달랐던가. "왜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에 대항하여 그를 죽였는지 이유를 요구한다면,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카이사르에 대한 나의 사랑이 결코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입장만을 가장 중시하고 앞세우는 인간이야말로 '오만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일까. 코리올라누스는 바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다가 스스로 몰락했고, 세월이 그토록 오래 지났어도 두고두고 '자기애의 화신'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 * *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싸움과 구경꾼과 공명심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7-12-26 12:13 
    백 배나 나쁜 것은 '관조하는 자들'이다. - 니체 * * * 싸움이 커질수록 구경꾼들은 많아진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그 '싸움'이 점점 더 커질수록 구경꾼만 많아지는 게 아니라 그 싸움에 함께 뛰어드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많아지게 된다. 그렇게 해서 대개의 싸움은 '편싸움'으로 발전한다. 구경꾼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치 비양심적인 인물인냥 비춰지기 쉽고, 그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오래 전에 '관조하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