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올라누스에 대하여...

 

백 배나 나쁜 것은 '관조하는 자들'이다.

 - 니체

 

 * * *

 

싸움이 커질수록 구경꾼들은 많아진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그 '싸움'이 점점 더 커질수록 구경꾼만 많아지는 게 아니라 그 싸움에 함께 뛰어드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많아지게 된다. 그렇게 해서 대개의 싸움은 '편싸움'으로 발전한다. 구경꾼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치 비양심적인 인물인냥 비춰지기 쉽고, 그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오래 전에 '관조하는 자들'에 대해 '특유의 거친 입담'을 거침없이 쏟아낸 바 있다. 비록 니체가 한 말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다툼'에 대해서까지 무슨 알맞은 지침을 제공하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백 배나 나쁜 것은 '관조하는 자들'이다 ㅡ : 나는 저 '객관적' 등받이 의자, 저 냄새를 풍기는 역사의 향락주의자, 반은 성직자 나부랭이며, 반은 호색가인 르낭Renan의 향기보다 구역질을 일으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르낭은 무엇이 자기에게 결여되어 있는지, 어디에 자신의 결함이 있는지, 이 경우에 어디에서 운명의 여신이 그 잔인한 가위를, 아! 너무나도 외과적으로 다루었는지를 이미 박수갈채를 보내며 가성(假聲)으로 소리 높여 말하고 있다! 이것은 내 취미에 맞지 않으며, 또한 견딜 수 없다 : 그러한 장면을 보고서 더 이상 잃어버릴 만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참아내면서 보는 것이 좋다.ㅡ 나는 그러한 장면을 보면 분노한다. 그러한 '관객'은 구경거리(알고 있는 일이지만, 역사 자체) 이상의 '구경거리'에 대해 나로 하여금 화나게 한다. 이 경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나크레온풍의 기분이 된다. 황소에게는 뿔을, 사자에게는 크게 벌린 입을 준 이러한 자연, 그 자연이 나에게 발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 ······ 신성한 아나크레온Anakreon에게 그것은 단지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밟기 위해서였다! 썩은 등받이 의자, 비겁한 관조, 역사에 대한 호색적인 내시 근성, 금욕주의적 이상에 대한 추파, 성 불능이 정의인 척하는 위선 같은 것을 짓밟기 위해서였다!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26절

 

싸움을 키우는 데 일조하는 심리 가운데는 '공명심'도 있는 듯하다. 공명심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의 뜻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공을 세워 자기의 이름을 널리 드러내려는 마음." 그런데 공명심이 포함된 예문이 사뭇 놀랍다. "공명심에 불타다." "공명심에 사로잡히다." 공명심이 얼마나 제어하기 힘든 '격정'인지는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공명심에 대해서 가장 날카롭게 파고든 역사가는 아마도 플루타르코스가 아닐까 싶다.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숱한 영웅들에 대한 기록을 살피는 동안 '공명심의 실체'를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공명심이야말로 '영웅들의 가슴을 가득 지배하는 심리' 가운데 하나라는 것도 알았다. 또한 영웅을 진정한 영웅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나 파멸에 이르게 하는 데 있어서 언제나 '공명심'이 문제가 된다는 점을 자주 강조했다. 공명심이야말로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영광이냐 파멸이냐를 판가름내는 '지극히 위험한 격정'이었으므로.

 

그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담은 숱한 영웅들 가운데 '공명심'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그는 바로 코리올라누스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홀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싸웠다. 그게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명예이자 행복이었기 때문이었다.

 

홀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다른 이들은 자기 이름을 떨치려고 싸웠지만, 마르키우스는 홀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싸웠다. 영광의 관을 머리에 쓴 그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안아주는 것이야말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명예이자 행복이었다.

 

에파메이논다스도 자신이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승리한 소식을 부모님이 살아 계신 동안 전할 수 있었던 게 생애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 모두 살아 있었으므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더욱 행운이었다. 그러나 마르키우스는 홀어머니밖에 안 계셨으므로, 아버지께 드릴 애정까지 모두 어머니에게 쏟았다. 그는 어머니 뜻에 따라 아내를 맞이했으며, 자식이 생긴 뒤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416쪽)

 

 - 플루타르코스, 『플르타르코스 영웅전 Ⅰ』, <코리올라누스 편>

 

 

어릴 때부터 몸이 재빠르고 누구와 맞붙어도 지치는 일이 없었던 마르키우스(코리올라누스의 원래 이름)는 크고 작은 전투에서 용맹을 떨친 끝에 마침내 로마 최고의 장군이 되었고, '코리올리'에서 맹활약한 덕분에 코리올라누스라는 영광스런 이름까지 덧붙이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한 순간에 '로마의 역적'으로 돌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코리올라누스가 아주 큰 세력과 권위를 얻었을 때 로마에서는 마침 귀족과 평민 사이에 갈등이 컸다. 평민들은 빚 때문에 귀족들로부터 학대를 받았고, 원로원은 부유한 귀족들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할 때 부유한 채권자들은 빚을 진 평민들에게 전쟁에 나가면 너그럽게 봐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집정관도 원로원 명령에 따라 이를 보증했다. 그러나 평민들이 적을 무찌르고 돌아왔는데도 대우는 그대로였고, 원로원도 예전 약속을 잊은 듯 시치미를 뗐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선 싸움과 폭동이 일어났다. 이 혼란한 시기에 '귀족과 평민 사이의 갈등'에서 '귀족편'에 가담한 것이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코리올라누스는 나중에 집정관 후보로 나섰지만 민중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그가 여러모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고, 민중들도 그가 나라를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로마인들은 관직에 입후보하면 속옷을 입지 않은 토가 차림으로 포룸에 나와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표를 부탁하는 게 그 당시의 관례였다. 코리올라누스도 다른 입후보자들이 했던 대로, 17년간 치른 수많은 전쟁에서 얻은 상처들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 보였다.  그런데 정작 선거일이 되어 모든 귀족이 그에게 호응하는 것을 본 민중은 갑자기 그에게 질투와 분노를 느꼈다. 귀족들 세력을 등에 없은 자가 집정관이 되면, 그나마 자신들에게 남아 있는 조금의 자유까지 송두리째 빼앗길까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민중들은 끝내 마르키우스를 집정관으로 뽑지 않았고, 마르키우스 자신도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격분했다.

 

이 인물이 그 이후로 얼마만큼 '로마의 파괴'를 위해 애를 쓰면서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을 거쳤는지는 여기서 자세히 다루기 어렵다. 다만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비극적이면서도 인간 심리의 미묘한 부분까지 다시금 헤아리게 만드는 아주 희귀한 본보기가 되었는지는 후세 사람들에 의해서 충분히 증명되었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그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희곡 『코리올라누스』로 자신의 '최후의 비극'을 장식했고, 베토벤은 <코리올란 서곡>을 작곡했으며, T.S.엘리엇은 그 유명한『황무지』에 이 인물의 이야기를 기꺼이 담았을 정도였으니까.

 

코리올라누스에게 간청하는 어머니(Coriolan supplié par sa mère)
지오반니 프란체스코 바르비에리(1591∼1666년), 1643년, 캉 미술관 소장

 

 

어머니와 그의 아내에 의해 무릎을 꿇은 코리올라누스 (Coriolan vaincu par sa femme et sa mère)

니콜라 푸생(1594∼1665), 니콜라 푸생 미술관 소장

 

 

코리올란 서곡(독일어: Ouvertüre Coriolan)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1807년에 하인리히 요제프 폰 콜린의 1804년 비극에 붙인 서곡이다. 코리올란 서곡의 주제와 구조는 보통 극의 진행을 따른다. C단조 주제는 코리올라누스의 결심과 호전성을 나타내며, E♭장조는 단념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소원을 나타낸다. 코리올라누스는 결국 이를 받아들이지만 로마의 문으로 옛 적들을 이끌고 돌아올 수 없었기에 자살하고 만다. 이 곡은 1807년 3월에 프란츠 요제프 폰 롭코비츠 공의 저택에서 열린 사설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여기서 교향곡 4번피아노 협주곡 4번도 같이 초연되었다.(출처 : 위키백과)

 

플루타르코스는 말한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대해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다른 이들 말에 무척 신경 쓴다고. 결국 '대중의 평가'에 대해 영웅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진정한 영웅과 무늬만 영웅인 사람이 판가름나는 셈이다. 톨스토이도 『전쟁과 평화』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남겼다. "숭고에서  우스개 사이의 거리는 불과 한 발짝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평판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하면서도
 
사람들은 평판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하면서도 다른 이들 말에 무척 신경 쓴다. 그리고 좋은 평을 듣지 못하면 화를 낸다. 메텔루스, 아리스티데스, 에파메이논다스도 모두 평판에 무관심했는데 그것은 세상이 자신에게 무엇을 주든 빼앗든 전혀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은 몇 차례나 추방되거나 선거에서 떨어졌어도,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조국에 대해 앙심을 품지는 않았다. 그리고 민중이 자신들에게 내린 처벌을 후회하고 다시 불렀을 때에는 곧바로 돌아와 민중과 화해했다. 대중의 평가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나쁜 평가를 해도 쉽사리 복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영예로운 자리에 앉혀주지 않는다고 앙심을 품는 것은, 오직 영예를 얻으려고 하는 탐욕에서 나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449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알키비아데스와 코리올라누스의 비교> 중에서
 
오늘 내가 뜬금없이 플루타르코스와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까지 두루 뒤적거린 이유는 바로 '공명심'이라는 낱말 하나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공명심'이라는 단어가 왜 하필이면 오늘 불현듯 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을까. 그건 바로 '문빠가 미쳤다'는 서민 교수의 도발적인 글 때문이었다.

 

그 분의 말씀대로, 소위 '문빠'로 불리는 일부 열성적인 문재인 지지자들은 기성 정치인이나 학자 혹은 심지어 언론계 사람들까지도 결코 섣불리(?) 비판하기 힘들 정도로 막강한 응집력과 파워를 과시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문빠'에 대해 홀홀단신 정면으로 맞서서 싸움을 거는 듯한 그의 태도는 일견 돈키호테 못지않게 자못 용감무쌍하고 당찬 데가 있었다. 오죽하면 그걸 보고 '골리앗 親文과의 싸움'으로까지 표현했겠는가.

 

그런데 서민 교수의 글과 인터뷰 등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대뜸 알아챌 수 있는 한 가지 묘한 감정을 발견했을 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그가 너무 '영웅 심리'에 도취해서 그런 글을 쓴 건 아닐까 하는 궁금증 말이다. 여기서 내가 표현한 '영웅 심리'는 어디까지나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나 수용 가능한 용어일 뿐이다. 그 심리는 한발짝만 옆으로 살짝 비껴나도 곧바로 '공명심'으로 뒤바뀌게 된다.

 

마침 오늘 뉴스를 보니 서민 교수가 정식으로 '사과문'도 올리신 모양이다. 그 내용을 보니 문재인 지지자들의 격렬한 저항과 비판이 예상외로 너무나 커서 화들짝 놀랐기 때문인지 혹은 자신의 글이 너무 과했다고 스스로 깨끗이 인정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풀 꺾인 모습'이 뚜렷하다. 멘탈이 정말 강하다는 그 분이 '처음부터' 진짜로 주장하고 싶었던 바가 무엇인지를 모를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이 말은 문재인 지지자들이 곡해해서 받아들이는 '일방적인 문빠 비난'을 겨냥하는 게 아니다. 서민 교수는 처음부터 '문빠의 무분별함이 파생시킨 부작용'을 우려하고 비판하고자 했다고 나는 믿는다.) 다만 그의 글 속에 담긴 표현들이 대부분 논리보다 감정에 치우친 듯한 측면은 매우 실망스럽다. 혹시라도 그게 '공명심'이 작용한 탓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무쪼록 그의 글이 그저 헛발질로 치부되거나 우스개로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문대통령에 대한 열성적인 지지자들 가운데 극히 일부 사람들 때문에 자주 나타나는 우려스런 부작용 또한 한사코 계속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플루타르코스의 표현대로, "지금은 공명심과 야심을 모두 버리고, 갖은 모욕 속에서도 오직 나라를 구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 * *

 

(아래의 인용문들은 내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전3권) 을 두 번씩이나 거듭 읽으면서 특별히 '공명심'이 언급된 대목만을 골라 뽑은 것이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젊은 시절 용맹하고 성격이 급했다. 이해력이 남달리 빠르고 날카로웠으며, 위대한 업적과 활동에 대해 불타오르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이는 모든 역사가가 똑같이 인정하고 있다. 휴일이나 여가 시간도 다른 소년들처럼 빈둥빈둥 놀며 게을리 보내지 않았다. 늘 연설이나 낭독법을 익혔고, 그것을 몸소 응용해 보기도 했다. 연설 주제는 학우들을 공격하는 내용도 있었으며, 변호하는 것도 있었다. 그를 가르친 스승은 언제나 입버릇처럼 그에게 말하곤 했다.

 

"너는 절대 작은 인물로 그치지 않을 게다. 좋은 인물이 되건 나쁜 인물이 되건 세상에 크게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242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테미스토클레스 편>

 

 

테미스토클레스가 얼마나 공명심에 마음을 빼앗기고 위대한 업적에 가슴을 불태웠는지는 마라톤에서 치른 페르시아와의 전쟁 때 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밀티아데스 장군의 훌륭한 지도력을 칭송하는 것을 본 테미스토클레스는, 어린 나이임에도 홀로 고민을 거듭했다. 밤마다 잠 못 이루고 언제나 나오던 연회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변화를 이상히 여겨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밀티아데스 장군이 승진하는 것을 상상하기만 하면 잠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마라톤 전투를 보고 전쟁이 승리로 끝나간다고 생각했을 때, 테미스토클레스는 이것이 더 큰 전쟁의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 전쟁을 내다보고, 헬라스 전체를 위해서 언제라도 싸울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일어나 출전할 수 있도록 아테나이에서 충분한 훈련을 받았다.(244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Ⅰ』, <테미스토클레스 편>

 

 

나이에 비해 너무 일찍 유명해지면 오히려 삶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공명심이 약한 사람들 이야기이다. 진실한 열정과 명예욕을 가진 사람은 세찬 바람을 맞아 빠르게 움직이는 배처럼 오로지 영예의 길로 치달린다. 이런 사람은 명예를 지금껏 해온 일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지 않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미 그가 얻은 명예를 욕되게 하지 않으려 온 노력을 할 뿐 아니라, 앞으로 더 큰 공적을 쌓기 위해 애쓴다.(416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코리올라누스 편>

 

 

티투스는 타고난 공명심으로 많은 공을 세웠다. 젊었을 때 여러 전쟁에서 거둔 전공들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다. 집정관 자리에 있을 때에는 온 세상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보았으며, 집정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스스로 군사 호민관 자리를 맡아 시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들어 공직에서 물러난 다음에도 젊은이들처럼 열광적으로 공명심을 좇았기 때문에, 때때로 사람들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한니발에 대한 그의 행동도 그가 쌓은 명성에 먹칠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니발은 카르타고에서 패배해 쫓겨간 뒤 안티오코스 왕을 찾아가 보호를 요청했다. 하지만 프리기아에서 진 안티오코스가 로마의 휴전 제안을 받아들이자, 그는 그곳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찾아간 사람이 비티니아 왕 프루시아스였다. 로마 사람들은 한니발이 프루시아스 궁전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미 늙은 데다 따르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티투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696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플라미니누스 편>


 

두 사람은 모두 결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티투스는 지나친 공명심, 그리고 필로포이멘은 완고함이었다. 티투스는 분노에 쉽게 동요되었으며, 필로포이멘은 한 번 맺힌 분노를 쉽게 풀지 못했다. 티투스는 필리포스에게 왕으로서의 존엄을 그대로 지니게 했고, 또 아이톨리아 사람들까지 부드럽게 다루었다. 하지만 필로포이멘은 고국에 대한 분노로 여러 마을들과의 동맹을 깨뜨려 버렸다. 또한 티투스는 한 번 친해진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친구로 대했으나 필로포이멘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조금이라도 감정이 상하면 여태까지 가지고 있던 호감을 모조리 없애버렸다.((700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필로포이멘과 플라미니누스의 비교>

 

 

이러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리산드로스는 명예욕과 경쟁심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가 죽는 순간까지 공명심과 명예에 집팍했던 것을 단순히 그의 천성이었다며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스파르타식 이상(理想)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했는데, 이는 그의 본성에서 비롯됨으로 생각된다. 그는 자신에게 이롭다고 여겨질 때에는 권력자의 거만한 태도조차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이런 리산드로스 됨됨이를 그의 정치적 재능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위대한 인물은 우울증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라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헤라클레스 등을 그 예로 들었는데, 리산드로스 또한 젊은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나이 들어감에 따라 우울증에 걸렸다고 기록했다.(794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리산드로스 편>

 

 

"그래, 내 노예라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말인가?"

 

이처럼 리산드로스의 불타오르는 공명심은 처음에는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같은 위치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부담스러운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아첨하는 자들이 늘어나면서 그의 성향 속에 묻혀 있던 공명심과 함께 지나친 자존심과 교만함이 한껏 머리를 들었다. 사람들에게 상을 내리거나 벌을 줄 때에도 알맞은 정도를 넘어섰고, 한 개인으로서도 그 태도가 지나치다 여겨질 때가 많았다. 친구들이나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사람 됨됨이를 가리지 않고 아무에게나 도시를 다스릴 절대적 권력을 함부로 주었으며, 그에 비해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자신과 대립하는 자들에게는 한없이 가혹하게 굴었다. 리산드로스는 자신에게 적이 되는 사람들을 단지 내쫓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반드시 죽이고야 말았다.(812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리산드로스 편>

 

 

본디 오만한 성격이었던 술라는 이때 비로소 이름 없는 천한 신분에서 벗어나 시민들에게 좋은 평가와 칭송을 받게 되자 공명심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공적을 반지에 새겨 늘 끼고 다니면서 그것을 도장으로 사용했다. 보쿠스가 술라에게 유구르타를 넘겨주는 그림이었다.(829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술라 편>

 

 

갈등은 이렇게 작은 일로 시작되었지만, 곧 국민의 유혈 사태와 뿌리 깊은 당쟁을 거쳐, 전제와 국정 전체의 혼란으로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여기서 우리는 에우리피데스가 얼마나 현명한 사람이었는지, 또 그가 나라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공명심이야말로, 그것을 품는 사람에게 자멸을 가져오는 가장 무서운 독이라면서 늘 그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830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술라 편>

 
 

이 회담에서 술라는 의자 세 개를 준비해 가운데는 자기가 앉고, 왼편에는 아리오바르자네스 왕을, 오른편에는 파르티아 장군 오로바주스를 앉혔다. 이 일 때문에 오로바주스는 뒷날 파르티아 왕에게 살해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술라의 이런 행동에 대해 야만족을 상대로 로마의 위엄을 보였다고 칭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교만하고 무례했으며 공명심으로 가득 찬 행동이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오로바주스와 함께 온 한 칼다이아 사람은, 술라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며 그의 마음과 몸짓을 진지하게 관찰한 뒤, 자신의 원리에 따라 그 성질을 판단하고는, 술라는 반드시 최고의 인물이 되리라 예언했다. 또 그는 어째서 술라가 아직까지도 일인자가 되지 못했는지 이상할 정도라고 덧붙였다.(831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술라 편>

 

그 무렵 술라는 로마군을 이끄는 지휘관이 되어 미트리다테스와의 전쟁에 나갈 생각을 하면서 의기충천해 있었다. 그는 집정관 지위도 앞으로의 계획에 비해서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칠 줄 모르는 명예욕과 공명심에 가득 찬 마리우스가 아직도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마리우스는 몸이 무거워지고 노쇠해 그즈음에는 전쟁에 나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로마군 지휘관 자리를 노렸다. 그래서 술라가 남은 일 때문에 급히 군영으로 달려갔을 때, 마리우스는 자기 집에 틀어박혀 지휘관이 되기 위한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 뒷날 이 계획은 로마가 싸운 모든 전쟁을 합한 것보다도 더 큰 피해를 로마에 불러왔으며, 마치 신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재앙에 대해 할리기라도 하듯이 로마 곳곳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834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술라 편>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리산드로스는 왕이 구원군을 이끌고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공명심에 사로잡혀 혈기만 믿고 있었다. 그는 적절치 않은 때에 무모하게 성벽을 공격하는 바람에 그때 튀어나온 보잘것없는 병사들 기습을 받고 쓰러졌다. 이는 스파르타 왕 클레옴브로투스가 레우크트라에서 적의 공격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페르시아 건설자 키루스와 테바이 장군 에파메이논다스가 전멸한 부대를 다시 일으켜 승리를 굳힌 뒤에 장렬한 최후를 맞은 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모두 왕다운 또는 장군다운 죽음을 이루었지만, 리산드로스는 이름도 없는 한낱 경장병이나 척후병처럼 불명예스럽게 목숨을 내팽개쳤을 뿐이다. 스파르타에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절대로 공격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성을 공략하는 전투에서는 아무리 용감하고 휼륭한 군인이라도, 이름 없는 사내나 여인들 손에 죽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었다. 그 무렵 스파르타 사람들은 '트로이 성문 앞에서 파리스에게 죽임당한 아킬레우스 같다' 말하곤 했는데, 리산드로스가 바로 이런 경우였다.(871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리산드로스와 술라의 비교>


이러한 시민들 마음을 눈치채고 누구보다 먼저 키몬을 불러들이자고 제의한 사람이 바로 페리클레스였다. 이처럼 그즈음 사람들은 자기가 지닌 원한을 이성적으로 해결했고, 분노를 표현하는 데도 온화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서는 개인 이익 따위는 돌아보지 않았으며, 욕망 가운데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공명심마저도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선뜻 내려놓을 줄 알았다.(897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키몬 편>

 

 

루쿨루스가 정치에서 은퇴한 것이 귀족들이 부패해서였는지, 아니면 이제까지 영예에 만족해 남은 삶을 평화롭게 보낼 생각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루쿨루스의 이런 변화를 두고서, 그가 마리우스처럼 되지 않기 위해 내린 올바른 결정이라며 칭찬했다. 얼마 전에 마리우스는 킴브리족을 정복해 찬란한 공을 세운 뒤에도 평범한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는 공명심과 권세욕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사람들과 섞여 정치를 했는데, 그로 인해 무서운 죄를 저질렀고, 엄청난 고생을 했던 것이다.

 

사람들 말처럼 키케로가 카틸리나 사건 뒤에 정치에서 물러나 조용히 남은 생애를 보냈더라면, 또 스키피오가 누만티아와 카르타고군을 정복한 뒤에 은퇴 생활을 했더라면 훨씬 더 복 받은 인생이 되었으리라. 정치도 다른 모든 일들처럼, 해야 할 시기가 정해져 있기 떄문이다. 그래서 정치가들도 운동선수처럼, 체력과 젊음이 다하면 새로운 상대에게 꺾이고 마는 것이다.(948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루쿨루스 편>

 

 

이렇듯 지나친 야망을 품은 사람은 자제심이 특별히 강하지 않은 한, 나라에 이로움보다는 해로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리산드로스가 무례하고 오만하게 행동했다 하더라도, 아게실라우스 또한 그런 인물의 잘못을 좀 더 바르게 고쳐주었어야 했다. 둘은 모두 공명심에 눈이 어두웠다. 그래서 한 사람은 왕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다른 한 사람은 친구의 단점을 눈감아 주지 못했다.(1090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아게실라우스 편>

 

 

그러나 스파르타가 멸망 직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아게실라우스 덕분이었다는 점만은 모든 역사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그는 공명심과 야심을 모두 버리고, 갖은 모욕 속에서도 오직 나라를 구하기 위해 지혜를 모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게실라우스라고 해도 그 옛날 스파르타가 누린 영광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신체가 단련된 건강한 사람이라도 한 번 심하게 앓고 난 뒤에는 전과 똑같아질 수는 없듯이, 스파르타 또한 지난날 권세와 명성을 되살려 놓을 수는 없었다. 오래 이어져 온 한 나라의 번영이 단 한 번의 실수로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는 결코 놀랄 일은 아니다. 리쿠르고스는 시민의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위해 정치조직을 만들고, 스파르타 법을 세웠다. 그러나 전쟁이나 독재가 끼어들게 되자 리쿠르고스가 만든 정치나 법질서가 더는 제구실을 못하게 되어 스파르타는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된다.(1116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아게실라우스 편>

 

 

그런데 루키우스는 포위된 해적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메텔루스와 싸움을 벌였다. 이 때문에 폼페이우스는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폼페이우스가 해적들을 살려내기 위해 자기 이름을 내걸어 그들의 피난처까지 제공한 일은, 메텔루스에 대한 시기와 경쟁심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옛날 아킬레우스가 적장 헥토르를 죽이지 말라고 한 일 또한 대장부다운 행동이 아니라 유치한 공명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그를 죽여 이름을 떨치면

자신의 가장 큰 명예를 잃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1150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폼페이우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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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12-26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에서 ˝백 배나 나쁜 ‘관조하는 자‘˝로 남겠습니다.

oren 2017-12-26 11:46   좋아요 0 | URL
현재진행형이니 차분히 관조할 필요도 있겠다 싶습니다.^^

qualia 2017-12-2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께 그렇게 효성이 지극했던 코리올라누스가 결국은 자살로 비극적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oren 님께서 올리신 저 명화들과 저 에피소드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저는 온갖 감정의 격랑에 휩싸입니다. 글보다 명화보다 더 깊은 비극적 삶의 의미, 인간 마음의 복잡한 심층을 헤아리게 되는 뜻밖의 겨울 아침입니다. 이런 귀중한 시간을 주신 oren 님, 정말 감사합니다.

oren 2017-12-26 11:55   좋아요 0 | URL
아, 참.. 코리올라누스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에도 나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해 자세히 모르겠지만, 제임스 조이스와 T.S.엘리엇이 주목한 부분 또한 ‘어머니와 아들 관계‘ 더군요. 코리올라누스의 어머니는 오로지 자식의 성공을 바라지만, 그게 바로 ‘조국을 배신하는 쪽으로‘ 향해 있다는 데서 견딜 수 없어 하고, 아들 또한 ‘어머니와 조국‘ 가운데 ‘양자택일‘을 요구받는 자신의 처지를 견디지 못해 끝내 자결하고 말고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수많은 캐릭터 가운데 가장 희귀한 인물이 바로 코리올라누스인 듯합니다.^^

포스트잇 2017-12-26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대통령에 대한 열성적인 지지자들 가운데 극히 일부 사람들 때문에 자주 나타나는 우려스런 부작용 또한 한사코 계속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플루타르코스의 표현대로, ˝지금은 공명심과 야심을 모두 버리고, 갖은 모욕 속에서도 오직 나라를 구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 사람들을 ‘문빠‘로 떼어내면서 왜 주목해야 하는지, 그것이 ‘오직 나라를 구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는‘ 때에 왜 유독 일부 사람들의 행태와 싸우겠다고 대대적인 선언을 하면서 주목하게 하는지,,, 그분께서 잘못된 판단을 하셨다고 봅니다. 이런 유형이 언제나 등장하기에 안타깝죠.
요즘 댓글조작러들이 자기도 문재인지지자지만, 혹은 문재인지지자였지만, 이란 문구를 넣고 악의적인 비판댓글을 쓰는 이유가 있겠죠. 아주 지능적인 것들입니다.

oren 2017-12-26 12:10   좋아요 0 | URL
사람들마다 아주 다양한 생각들이 있으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일부 극성스런 지지자들의 ‘도를 넘은 듯한 행위들‘이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문재인 지지자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와는 반대로, 진심으로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소한 부분들은 얼마든지 감싸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듯하고요. 그나저나 ‘나라가 걱정‘이긴 합니다. 북한 핵문제는 점점 더 ‘임계점‘으로 다가서는 형국인데 아직까지도 ‘해법‘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