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 자신이 참전한 전쟁에 대해 쓴 기록

 

 

 

 

 

 

 

 

 

 

 

 

 

 

 

 

내 생각으로는 행운과 불운은 두 가지 최고의 권력이다.
인간의 예지가 운의 역할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없는 소리이다.

 - 몽테뉴

 * * *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들과는 다른 운명을 타고 났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잉태할 때는 물론이고 태어나고 자라면서 온갖 믿기 어려운 전설들을 쏟아낸다. 전쟁터에서의 기적같은 활약들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그들이 최후에 이르러 자신들의 찬란했던 생을 마감하는 절정의 순간은 위대한 시인과 예술가들의 작품 소재로서는 더없이 훌륭한 재료가 되기에 언제나 부족함이 없었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영웅들의 이야기에서도 독자의 감정을 가장 고양시키는 순간들은 대개 영웅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이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고대 그리스의 몇몇 영웅들의 죽음은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들-슈테판 츠바이크가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 말한 '역사의 피뢰침이 작동하는 순간들'에 해당하는-보다 훨씬 더 어두운 종말을 맞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영웅들의 운명과 영광은 다소 역설적이다. 그들이 엄청나게 운이 좋아 결정적 대전투를 아무리 멋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하더라도, 막상 전쟁이 그치고 평온한 일상이 한참이나 지속된 이후에 고요히 맞게 되는 영웅들의 죽음엔 희미한 어둠만이 깃들 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는 로마의 영웅들은 대부분 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비록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안토니우스의 죽음은 '본받지 말아야 할 영웅의 표본'답게 너무 찌질하다보니 그가 죽은 후 뒤따라 세상을 버린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이 훨씬 더 극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그는 옥타비아누스의 군대에 포위되자 자살 직전에 "클레오파트라여, 나는 그대를 잃었다고 가슴 아파하는 것이 아니오. 내가 가슴 아파하는 것은 명색이 원수인 내가 한낱 여자보다 용기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오."라고 말한 직후 자신의 칼로 배를 찔렀지만 자신이 방금 했던 말마따나 결국 마지막까지 '용기 부족'을 드러낸 셈이 되고 말았다. 자신을 노린 최후의 일격이 치명적이지 못했던 탓에 그는 몹시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다가 시종에게 이끌려 클레오파트라한테 옮겨진 끝에 그녀 앞에서 죽었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겨왔듯이 나 또한 고대 영웅들의 죽음 가운데 가장 극적이었던 장면은 카이사르의 암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주된 이유도 결국 그의 죽음을 둘러싼 몇몇 흥미로운 이야기들 속에서 뭔가 새삼 느껴지는 바를 얘기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지만, 그 '유명한 장면'을 둘러싼 이야기는 이미 너무나 익히 알려진 터여서 갑자기 불쑥 내놓기엔 어딘가 민망하다. 내 생각으로는 '카이사르의 죽음'이 그토록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보다 앞선 영웅들, 곧 아킬레우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죽음이 그보다 훨씬 '덜' 극적이었다는 점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참에 그들의 얘기를 '카이사르의 죽음'에 앞서 얼마간 펼쳐 놓음으로써 이 글의 진부함을 얼마쯤 희석시켜보려는 헛된 시도를 해보자는 것이다.

서양 문학의 최고봉에서 영원히 내려올 줄 모르는 작품은 누가 뭐래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아닐까 싶다. 그 작품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이고, 그를 가장 닮고 싶어했던 영웅은 알렉산드로스다. 그의 영웅적 면모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그려지는데, 그가 무수한 전쟁터를 누비면서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즐겨 읽으며 '전쟁의 교범'으로 삼은 얘기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2천 번의 여름' 이 지난 지금도 좀체로 그칠 줄 모른다.


하루는 다레이오스의 재물과 짐을 맡고 있던 자들이 그중에서 가장 값져 보이는 작은 상자 하나를 그에게 보내왔다. 그래서 그는 측근들에게 어떤 값진 물건을 그 안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의견이 분분하자 알렉산드로스는『일리아스』의 팔사본109을 그곳에 안전하게 보관하겠다고 말했다. 다수의 신뢰할 만한 역사가들이 이 일화가 사실임을 증언하고 있다. 알렉산드레이아110인들이 헤라클레이데스를 근거로 내세우며 주장하는 바가 사실이라면, 알렉산드로스에게 호메로스는 게으르거나 쓸모없는 원정길의 동반자가 아니었던 듯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아이귑토스를 정복한 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될 크고 인구가 많은 헬라스의 도시를 건설하고 싶어, 건축가들의 조언에 따라 부지를 선정하여 측량하고 울타리를 치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점잖게 생긴 한 백발 노인이 다가서더니 다음의 시행을 낭송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귑토스의 맞은편 큰 너울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에
      섬이 하나 있는데, 사람들은 그 섬을 파로스라고 부르지요.
111

 그러자 알렉산드로스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지금은 제방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카노보스 하구 조금 북쪽에 있는 섬이었던 파로스113로 갔다. 그리고 그곳 지형의 빼어난 점을 보고-그곳은 바다와 커다란 석호(潟湖) 사이로 뻗어 있는, 널찍한 지협과도 비슷한 길고 가느다란 지대로, 끝 부분은 큰 포구를 이루고 있었다-그는 호메로스는 다른 점에서도 찬탄받아 마땅하지만 더없이 현명한 건축가라고 말하며, 이 지형에 맞는 도시의 설계도를 작성하라고 명령했다.
(282∼284쪽)

주석

109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열본을 말하는 것 같다.
110 알렉산드레이아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어 이름이다.
111 『오뒷세이아』4권 354∼355행
113 파로스는 나중에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팔각 등대가 세워졌던 곳이다.



어려서부터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신 덕분에 철학을 깊이 공부했던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원정길에 나서며 여러 권의 책들을 챙겼음은 불문가지다. 그가 아시아 내륙으로 건너간 이후 다른 책들을 구할 수 없게 되자 하르팔로스에게 명해 책을 좀 보내오게 했는데 거기엔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의 비극도 포함되었다. 그만큼 학구열이 뜨거웠던 그가 전쟁 중에도 자주 마음 속으로 『일리아스』를 떠올리고, 또 그 작품의 주인공인 아킬레우스를 얼마나 여러 번 떠올렸을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가 마케도니아를 떠나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 자신의 우상이었던 아킬레우스의 투구와 방패가 번쩍였던 바로 거기, 트로이아 벌판에 도착했을 때의 심정은 또 얼마나 감개무량한 것이었을까.


일단 일리온에 도착하자 그는 아테나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영웅들에게 헌주했다. 그는 몸에 기름을 바르고 측근들과 함께 관습에 따라 알몸으로 경주를 한 다음 아킬레우스의 비석에 화환을 바치며 아킬레우스야말로 살아서는 성실한 친구66를 만나고,죽어서는 위대한 전령67을 만났으니 행복하다고 찬양했다. 그가 돌아다니며 시내를 구경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에게 알렉산드로스68의 뤼라를 보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알렉산드로스가 그 뤼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아킬레우스가 영웅들의 명성과 행적을 노래하던 뤼라69를 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264쪽)

주석

66 파트로클로스를 말한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 퓔라테스는 서양 문학에서 우정의 본보기다.
67 호메로스를 말한다. 아킬레우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주인공이다.
68 여기서 알렉산드로스는 스파르테 왕비 헬레네를 납치해감으로써 트로이아 전쟁을 일으킨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의 별명이다.
69 아킬레우스가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혼자 영웅들의 행적을 노래하던 일에 관해서는 『일리아스』9권 185∼191행 참조.

 


기원전 334년 봄에 알렉산드로스가 아시아로 건너갈 때만 하더라도 그의 나이는 22세에 불과했다. 그가 트로이아를 지나 잇소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 이집트로 건너가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고(기원전 332년), 다시 유프라테스강을 건너 바빌론을 지나고 카스피해를 거쳐 인도의 탁실라 전투에서 대승을 거둘 때까지도 그의 나이는 서른을 넘어서지 못했다. 갠지스 강까지 건너려던 그가 결국 부하들의 만류에 발길을 되돌려 인더스 강을 따라 귀향길에 오르고, 파키스탄의 황무지를 통과하는 험난한 여정 끝에 마침내 바빌론에 안착했지만, 결국 그는 거기서 열병 때문에 고열에 시달리다가 갑작스레 죽고 만다.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서른셋이었다.

아킬레우스의 죽음에도 몇 가지 의혹이 없었던 건 아니나 다른 영웅들의 죽음에 비해서는 매우 차분한 분위기였는데, 그를 몹시도 닮고자 했던 대표적인 영웅이었던 로마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은 그보다 훨씬 더 극적이었다. 그의 최후에 관한 그 유명한 얘기로 재빨리 넘어가기 전에, 나는 기원전 61년 봄으로 이야기의 무대를 슬쩍 옮길 필요를 느낀다. 그때 카이사르는 히스파니아(오늘날의 스페인)를 통치하라는 명을 받고 알프스를 넘어 인구도 얼마 안 되는 아주 초라한 야만족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한 번은 히스파니아에서 여가 시간에 알렉산드로스의 전기를 읽다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더니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측근들이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묻자,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는 내 나이에 이미 그토록 많은 나라의 왕이 되었는데 나는 아직도 이렇다 할 위업을 이룩하지 못했으니 이 어찌 서글픈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477쪽)



서른아홉 살에 알프스의 산자락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처지를 탄식했던 그는 결국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후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 그의 조국이자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로 진군하는 결단을 내린다. 플루타르코스는 카이사르의 행위를 결코 '잘한 짓'으로 보지 않았다.


마침내 카이사르가 심사숙고하기를 그만두고 자신을 운명에 내맡기는 양 일종의 격정에 사로잡혀, 사람들이 절망적인 모험을 감행하기 전에 흔히 내뱉곤 하던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을 남기고는 서둘러 강을 건넜다. 그때부터 그는 줄곧 전속력으로 행군하여 날이 새기 전에 아리미눔으로 쳐들어가 점령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강을 건너기 전날 밤 해괴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가 친어머니와 근친상간하는 꿈을 꾸었기에 이르는 말이다.125 (506쪽)

주석

125 친어머니와 근친상간하는 꿈은 장차 나라를 얻을 것임을 뜻하는 꿈이라고 한다. 헤로도토스『역사』 6권 107장 참조. '친어머니와의 근친상간'을 플루타르코스는 arrhetosmixis('언어도단의 교합'이라는 뜻)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카이사르가 군대를 이끌고 모국으로 쳐들어가는 행위를 일종의 폭행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에 매료되어 『수상록』을 썼던 몽테뉴는 확실히 플루타르코스의 견해에 동조한다. 몽테뉴는 자신의 책에서 옛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숱하게 꺼내 놓는데, 그 가운데서도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를 비교한 대목'이 내겐 특히 인상적이다.

그는 "카이사르의 경우라면 그는 자기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장수로 보아야 한다."라고 추켜세우기도 하고, 역사를 만들고 이름을 남기려면 "한 제국이나 한 왕국을 정복하는 데에 대장이 되어 보았어야 한다. 카이사르 같이 늘 상대편보다 약한 군대를 가지고 52회의 지정된 전투에 승리를 거두었어야 한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결국 <가장 탁월한 인물에 대하여>라는 장(章)에서 몽테뉴는 호메로스와 알렉산드로스를 불러낼 뿐 끝내 카이사르는 곁다리로 제쳐 놓는다. 여기서 몽테뉴의 길고 긴 '알렉산드로스 우위론'을 적잖이 소개했다가는 '카이사르의 죽음'을 제때 만나기도 여려울테니 그 가운데 극히 일부만 소개하고 다음 무대로 넘어 가겠다.


이 모든 것을 뭉쳐 생각해서

그의 학문과 능력의 탁월성, 그 순수하고 명쾌하고 오점과 시기심으로 더럽혀진 일이 없는 오랜 영광의 지속과 위대성,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그의 메달을 몸에 지닌 자에게는 행운이 온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경건한 신념으로 되었던 사실, 다른 역사가들이 어느 왕이나 왕공들의 공훈을 두고 쓴 것보다도 더 많이, 왕들과 왕공들 자신이 그의 공훈에 관해서 기술하였고, 다른 역사를 경멸하는 마호메트 교도들이 지금까지도 다만 그의 역사에는 특권을 주어 이것을 용인하고 숭앙하는 사실들을 고찰해 본 자이면, 그는 이 모든 것을 뭉쳐 생각해서 단 하나 내 선택에 의문을 품게 할 수 있었던 카이사르보다도 내가 역시 그를 택한 것이 옳았다고 고백할 것이다. 카이사르의 공훈에는 그 자신의 힘이 더 많았고, 알렉산드로스의 공훈에는 운의 힘이 더 많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몽테뉴는 어떤 판단에서건 어느 한쪽으로 명백히 기우는 일을 몹시도 어리석은 일로 여겼기 때문에 항상 그 반대의 이면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만큼 그가 이 두 영웅을 두고 내리는 자신의 판단에 대해 자꾸만 토를 다는 이유를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두 불덩이거나 또는 두 급류

그들이 여러 면에서 대등하였고, 카이사르가 어느 점에는 아마도 더 위대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여러 군데에서 황폐시켜 나간 두 불덩이거나 또는 두 급류였다.

소리내며 타는 마른 숲과 월계수 숲 속에
맹렬한 기세를 떨치며 번지는 화염과도 같고
신속히 고산 준령에서 떨어져 내려
물거품 던지는 급류가 소란스레 대해로 달려가며
모든 것을 파괴하여 그 통로를 터 나가듯. 
                     (베르길리우스)


그러나 카이사르의 야심엔 더 많은 절제가 있었다 하여도, 그것은 자기 나라의 궤멸과 세계의 전반적인 악화에 그의 낮고 추한 목적을 두었던 만큼, 너무 심한 불행을 초래하였기 때문에, 모든 점을 종합해 저울질해 보면, 나는 알렉산드로스의 편으로 기울어지지 않을 수 없다.



내 얘기를 여기까지 끌고 오는 동안, 우리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넜고, 트로이아를 비롯한 여러 도시와 강과 황야를 지났고, 로마를 지나 알프스 산맥을 넘었고, 내가 다른 책에서 끌고 나온 인용문들까지도 헤쳐 나왔다. 이제 드디어 우리는 마지막 '사다리'(그리스어로 klimax, 영어 'climax'의 어원)에 다다랐다. 나도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다. 원래 이 글은 '사다리' 부분만 쓸 작정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덜컥 내놓는 '뻔한 사다리' 하나를 어디에 걸친다 한들 도대체 누가 무슨 새로운 흥미가 생겨 그 사다리에 올라타 보겠는가 싶어 이렇게 멀고도 험난한 길을 내 스스로 꾸며본 것이다.
 

내가 만약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인『줄리어스 시저』를 미리 좀 읽었더라면 이 클라이맥스 부분을 훨씬 더 장황하게 장식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극에 나온다는 '브루투스의 명언'을 다른 책에서 몇 차례 접했으나 다행히 그게 전부였다. 몽테뉴가 유달리 좋아했던 브루투스를 위해서라도 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나오는 그의 연설만은 여기에 다시 한번 인용하고 싶다. 내 이야기의 나머지는 고스란히 플루타르코스에게 맡긴다.

"왜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에 대항하여 그를 죽였는지 이유를 요구한다면,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카이사르에 대한 나의 사랑이 결코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카이사르가 죽음으로써 모두가 자유인으로 살기보다 카이사르가 살아서 모두가 그의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카이사르는 나를 사랑했기에, 나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그가 행운을 타고났기에,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그가 용감했기에,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가 야심을 품었기에, 나는 그를 죽였습니다. 그의 사랑에 대한 눈물, 그의 행운에 대한 기쁨, 그의 용기에 대한 존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야심에 대해서는 죽음이 있습니다." 

-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연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

 


 - 마르쿠스 브루투스(기원전 85∼42년)


바로 그러한 자질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민중은 대부분 마르쿠스 브루투스 쪽으로 돌아섰다. 마르쿠스 브루투스는 부계로는 왕정을 종식시킨 브루투스의 후손이고, 모계로는 또 다른 명문가인 세르빌리이가(家)의 후손으로 카토237의 사위이자 조카였다. 브루투스는 새로운 독재를 자진해 철폐하고 싶었지만 그러한 열망은 카이사르에게서 받은 여러 가지 명예와 혜택 때문에 무너졌다. 파르살로스에서 폼페이유스가 도주한 뒤 카이사르는 그의 목숨은 물론이고 그가 탄원한 친구들의 목숨도 많이 살려주었을 뿐 아니라 그를 특히 신임하고 있었다.

브루투스는 그해에 법정관들 중에서도 가장 요직에 있었고, 3년 뒤에는 같은 후보인 캇시우스에 앞서 집정관이 되게 되어 있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이 문제와 관련해 캇시우스의 후보의 변(辯)이 더 옳기는 하지만 자기로서는 브루투스를 지나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음모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을 때 몇몇 사람이 브루투스가 음모에 가담했다고 고발하자 카이사르는 그들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손으로 자기 몸을 만지며, 브루투스는 통치자가 될 만한 좋은 자질이 있지만 바로 그러한 자질 때문에 배은망덕한 악당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뜻으로, "브루투스는 내 이 몸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것이오."라고 말했다.(543∼544쪽)


237 로마의 공화정을 사수하려던 스토아 철학자 소 카토를 말한다. 브루투스가 원로원을 중심으로 공화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카이사를 암살하게 된 데에는 그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 왕정을 종식시킨 브루투스의 조상, ‘땅바닥에 입을 맞추는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세바스티아노 리치, 1700~1704년

 

 


 -
브루투스의 외삼촌이자 장인인 카토(기원전 95∼46년).
   그는 탑수스 전투에서 카이사르에게 패한 후 플라톤의 《파이돈》을 읽으면서 자살했다.


어떤 죽음이 가장 훌륭한 죽음이냐는 문제

운명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기보다 피할 수 없는 것인 듯하다. ······

어떤 예언자가 카이사르에게 로마인들이 이두스라고 부르는, 3월의 그날 큰 위험에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그날이 다가와 카이사르가 원로원으로 가던 도중 그 예언자를 만나 인사하며 농담 삼아 "3월의 이두스가 다가왔구려." 라고 말하자, 예언자는 "네,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지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라고 나직이 대답했다.

이두스 전날 카이사르는 마르쿠스 레피두스 집에서 열리는 만찬에 초대받아 갔다가 긴 의자에 반쯤 기대 누운 채 여느 때처럼 서찰들에 서명하고 있는데, 어떤 죽음이 가장 훌륭한 죽음이냐는 문제가 갑자기 화두가 되자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한발 앞서 "예기하지 않은 죽음이지."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집에 돌아온 카이사르는 여느 때처럼 아내 곁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침실의 문과 창문들이 활짝 열리는 바람에 그 소음과 쏟아지는 달빛에 놀라 잠을 깨어보니 아내 칼푸르니아가 깊은 잠에 빠져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신음 소리를 토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 죽은 남편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는 꿈을 꾸었던 것으로 밝혀졌다.(545∼546쪽)




 -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44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 17세기 경



 - 붉은색 망토를 입은 카이사르에게 항복하는 켈트족의 수장 베르킨게토릭스



저 유명한 살인극과 사투가 벌어진 장소를 보게 되면

······ 이런 일들은 모두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원로원 회의가 개최되고 저 유명한 살인극과 사투가 벌어진 장소를 보게 되면 하늘의 어떤 힘이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그곳으로 카이사르를 인도하고 소환했음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폼페이유스의 입상이 있었고, 또 그곳은 폼페이유스가 자신의 극장에 딸린 장식 건물의 하나로 지어 봉헌했기 때문이다.
······

체격이 건장한 카이사르의 심복 안토니우스를 브루투스 알비누스가 일부러 장황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바깥에 붙들어두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안으로 들어갔고 원로원 의원들은 카이사르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편 브루투스의 측근들은 더러는 카이사르의 의자 뒤에 둘러섰고, 더러는 틸리우스 킴베르가 추방당한 형을 위해 카이사르에게 탄원하는 것을 지원하려는 듯 덩달아 탄원하며 카이사르의 의자가 있는 데까지 따라갔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자리에 앉은 뒤에도 여전히 그들의 탄원을 거절했고, 그들이 더욱더 뻔뻔스럽게 졸라대자 그들 중 몇 명에게 역정을 냈다. 그러자 틸리우스가 카이사르의 토가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목덜미 부분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이것이 공격 신호였다. 단검으로 맨 먼저 카이사르의 목덜미를 가격한 것은 카스카였다. 그러나 카스카는 이런 엄청난 거사를 시작하면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그의 가격은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경미했다. 카이사르는 몸을 돌려 단검을 잡고 놓지 않았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소리쳤는데, 가격당한 자는 로마 말로 "카스카! 이 악당 놈아, 이게 무슨 짓이야?" 라고 소리쳤고, 가격한 자는 헬라스 말로 자신의 형에게 "형님, 도와주시오!" 라고 소리쳤다.

 

이렇게 사건이 시작되자, 음모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은 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당황하고 놀라 도주하지도 카이사르를 도우러 가지도 못했다. 아니, 그들은 한마디 말도 못했다. 그러나 카이사르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들은 모두 칼을 빼어들었고, 카이사르는 사방으로 에워싸인 채 어느 쪽으로 돌아서든 그의 얼굴과 눈을 겨냥한 단검과 마주칠 뿐이었다. 카이사르는 야수처럼 이리저리 쫓기다가 결국 그들 모두의 손에 걸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제물 바치는 일에 참가하여 피맛을 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브루투스도 카이사르의 아랫배에 일격을 가했다. 일설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항하며 그들의 가격을 피해 이리 저리 몸을 틀면서 도와달라고 소리쳤으나 브루투스가 단검을 빼어든 것을 보자248 머리에 토가를 뒤집어쓰고는 우연이었는지 살해자들에게 그리로 밀려갔는지 폼페이유스의 입상이 서 있던 대좌에 쓰러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대좌가 카이사르의 피로 흠뻑 젖었으니, 수많은 상처를 입고 부들부들 떨며 자기 발 앞에서 쓰러져 있는 정적에 대한 이 복수극을 다름 아닌 폼페이유스 자신이 연출한 것처럼 보였다. 카이사르는 스물세 군데나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암살자들도 한 사람의 몸을 그토록 많이 가격하려다 서로 부상을 입혔다.(548∼550쪽)

 

248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했다는 "내 아들아, 너마저?"(kai su, teknon?)라는 유명한 그리스 말은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전』중 「율리우스 카이사르 전」 82장에 기록되어 있다. "브루투스여, 너마저?"라는 말은 셰익스피의 사극 「줄리어스 시저」에 나온다.




 - 원로원에서 암살당하는 카이사르

 

카이사르가 거둔 결실은 허명과 동료 시민들의 시기를 산 영광뿐

카이사르는 56세에 죽었으니, 폼페이유스보다 4년 조금 넘게 산 셈이다. 카이사르는 평생 동안 그토록 큰 위험들을 무릅쓰며 권력과 통치권을 추구하다가 마침내 간신히 목표를 달성했으나, 카이사르가 거기에서 거둔 결실은 허명(虛名)과 동료 시민들의 시기를 산 영광뿐이었다. 그러나 생전에 그를 도와주던 위대한 수호신은 사후에도 암살의 복수자로서 그를 따라다니며 모든 육지와 모든 바다에서 암살자들을 색출하여, 마침내 암살에 직접 가담했거나 음모에만 가담한 자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처벌했다.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 중에 가장 놀라운 일은 캇시우스에게 일어났다. 그는 필립포이에서 패한 뒤 카이사르를 찔렀던 바로 그 단검으로 자살했던 것이다. 초자연적인 사건들 중 가장 놀라운 것은 거대한 혜성이었는데, 그 혜성은 카이사르가 죽은 뒤 이레 밤을 밝게 빛나다가 사라졌다. 햇빛이 희미해진 일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그해 내내 해는 창백하고 흐릿했으며, 해에서 발산되는 열기는 약하고 무기력했다. 해의 열기가 증기를 흡수하여 공기를 정화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자 대기는 침울하고 무겁게 대지를 짓눌렀다. 그러자 찬 공기 때문에 열매들이 시들어 익기도 전에 땅에 떨어졌다.(553∼554쪽)


 

"브루투스여, 나는 네 악령이다."

그러나 브루투스에게 나타난 환영이야말로 카이사르의 암살을 신들이 달갑잖게 여긴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브루투스는 아뷔도스에서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 군대를 에우로파 대륙으로 인솔하려던 참이었는데, 밤에 여느 때처럼 자신의 천막에 누워 잠은 자지 않고 미래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브루투스는 장군들 중에 가장 잠이 적어 가장 오래 깨어 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천막 입구에서 무슨 소음이 들리는 것 같아 그가 등불 쪽을 바라보는데, 등불이 천천히 꺼지면서 엄청나게 크고 험상궂게 생긴 사내의 무시무시한 환영이 보였다.

처음에 브루투스는 겁이 났으나 방문객이 행동도 않고 말도 않고 조용히 자기 침상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자 그가 누군지 물었다. 그러자 환영이 그에게 "브루투스여, 나는 네 악령이다. 내일 필립포이에서 너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브루투스가 용기를 내어 "나는 너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지 방문객은 곧 사라졌다. 그 뒤 때가 되어 브루투스가 필립포이에서 안토니우스와 젊은 카이사르(옥타비아누스)에게 맞서 진을 쳤다. 첫 번째 전투에서 브루투스는 자기 앞에 버티고 섰던 적군을 무찌르고 뿔뿔이 패주시킨 다음, 젊은 카이사르의 진영으로 쳐들어가 약탈했다.

그러나 두 번째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밤에 같은 환영이 다시 그를 찾아왔다. 환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브루투스는 자신의 운명이 임박했음을 알아차리고 무턱대고 위험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전투 중에 쓰러진 것이 아니라 그의 군대가 패주한 뒤 가파른 언적으로 물러나 칼을 빼어들고 가슴을 찔러 자살했다. 이때 칼이 그의 몸에 제대로 꽂히도록 친구 한 명이 그를 도와주었다고 한다.(554∼555쪽)

 

 

 - 칼을 거꾸로 꼽아 놓고 그 위에 쓰러져 자살하는 브루투스



이제 클라이맥스도 모두 지났다.  결국 이 대목에 이르러 케인즈가 말했던 그 유명한 말인 "장기적으로는 우리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를 내 글의 결론으로 삼아야 할까. 그건 너무 싱거운 결말이다. 내가 몇몇 영웅들의 죽음을 장황하게 언급한 건 결국 애초부터 '그들의 운명'이 '운명'에 의해 미리 틀림없이 정해져 있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플루타르코스의 일관된 서술 태도 때문이었다. 영웅들의 운명은 확실히 필부들의 삶과는 너무 다르다. 어쩌면 그들은 정말로 하늘이 내린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사물에 대한 지식이 그토록 풍부했다는 플루타르코스가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무슨 수로 거기에 반박할 수 있단 말인가.

고대의 영웅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놀랍도록 해박한 지식으로 가득 풀어낸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에 대한 몽테뉴의 판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을 하나만 더 소개하고 이 글을 맺고 싶다. '운명'에 관한 몽테뉴의 생각은 이 글의 적잖은 분량을 고려해서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몰래 숨겨서 덧붙였다.


플루타르크는 보다 만족을 주며 교양을 준다

세네카의 경우는 그 시대 황제들의 포학을 좀 옹호하는 것 같다. 그가 카이사르 살해범들의 장한 거사를 비난하는 것은 확실히 강제당한 판단으로 보인다. 플루타르크는 모든 면에 자유롭다. 세네카는 풍자와 재기에 충만하고, 플루타르크는 사물의 지식이 풍부하다. 플루타르크는 보다 만족을 주며 교양을 준다. 그는 우리를 지도한다. 세네카는 우리를 밀어 보낸다.


 

『몽테뉴 수상록』에서 찾은 '운'에 대한 생각

접힌 부분 펼치기 ▼

 

 

 

운은 우리에게 단지 재료만 제공하는 것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고 아무것도 우리들을 강제하지 않는다면, 병이나 궁색, 경멸 같은 것에도 좋은 맛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운은 우리에게 단지 재료만 제공하는 것이고 형체를 지어 주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라면, 우리에게 가장 괴로운 편으로 자기를 연결시키며, 그런 것에 쓰고 나쁜 맛을 준다는 것은 괴상하게도 어리석은 수작이다.(58쪽)
 


 

 

행복 또는 불행한 조건의 유일한 원인

운은 우리들을 좋게도 나쁘게도 하지 않는다. 운은 우리들에게 그 재료와 씨를 제공할 뿐이다. 우리의 마음은 운보다도 더 강하며, 행복 또는 불행한 조건의 유일한 원인이 되고, 자기 마음대로 운을 돌리며 적용한다. (76쪽)
 



 

 

한순간에 둘러엎는 힘

운은 어떤 때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을 정확히 노리고, 그가 오랜 세월을 두고 건설해 준 것을 한순간에 둘러엎는 힘을 보여준다. 라베리우스(기원전 2세기의 로마의 풍자극 작가) 말처럼 "정히 나는 살아야 할 일보다 쓸모없이 하루를 더 살았다"(마크로비우스)라고 소리치게 하는 것 같다. (87쪽)
 



 

 

운에 매이는 수가 많다

나는 의술뿐 아니라 더 확실성 있는 여러 기술도 운에 매이는 수가 많다고 본다. 시상이 떠올라 작가가 황홀한 무아경에 실려가며 시를 읊는 경우에는 왜 운을 탔다고 하지 못할까? 이러한 영감은 자기 능력과 힘에 넘치는 일이며, 그것은 자기 자신 밖에서 오는 힘인 것을 작가 자신도 인정한다. 웅변가들도 비상한 동작과 흥분에서 자기가 의도하던 것보다 넘치는 말을 할 때에 그것이 자기 능력이 한 일이라고 하지 않는다. 미술도 그와 같으며, 때로는 화가의 필법을 벗어나서 그의 구상과 지식을 초월하는 작품이 나오면 화가 자신도 감탄과 경악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운은 이런 모든 작품들에 그가 차지하고 있는 몫을 작가의 의도뿐 아니라 지식 없이 이루어지는 그 작품의 우아성과 아름다움 속에 더 명백하게 보여 준다. 능력 있는 독자는 흔히 다른 사람의 문장 속에 작가 자신이 그런 점을 알아보며 거기 넣은 것과는 다른 완벽성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더 풍부한 의미와 양상을 찾아 준다. 군사적인 작전으로 말하면, 운이 거기에 얼마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가는 각자가 보는 일이다.

우리의 충고와 고찰에도 그 속에 운과 요행이 섞여 있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예지가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것이 못되며, 예지는 예민하고 생동할수록 그 자체에 더욱 허약성을 발견하며, 그 자체를 경계하게 되기 때문이다. (141쪽)
 



 

운명에 패한 것

한 인간의 품위와 가치는 그 마음과 의지로 이루어진다. 여기 그의 진실한 영광이 있다. 용감성은 팔이나 다리가 아니고, 마음과 심령의 견고성이다. 그것은 우리의 말이나 무기의 가치에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자기 용기에 고집하여 쓰러지며, '쓰러져도 무릎으로 서서 전투하는'(세네카) 자, 아무리 죽음의 위험이 임박해도 태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는 자, 숨을 넘기면서도 경멸하는 확고한 눈초리로 적을 쏘아보는 자는 패하여도 우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운명에 패한 것이다. 그는 살해당한 것이지 패한 것은 아니다. (234쪽)
 



 

성격과 운

"각자의 성격이 각자의 운을 만드는 것이다." (코르넬리우스 네포스)                                             (291쪽)
 



 



그렇기 때문에 사건과 결과는, 특히 전쟁에서는 대부분 운에 달려 있고, 그 운은 우리 생각이나 조심성에 따라서 도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지당한 일이다. 다음 시도 그것을 말한다.

흔히 소홀한 조치가 성공하고, 조심하다가 실수한다.
운은 반드시 행운을 받을 가치 있는 자에게
승인과 원조를 주는 일 없이, 피차를 가리지 않고 돌아간다.
그것은 우리들 위에 군림하여 우리를 지배하는 특별한 힘이 있어
모든 인생의 사물들을 그의 법 아래에 두기 때문이다.
      (마닐리우스)
                                         (308쪽)
 



 

운명의 화살이 쏟아져 와도

현자들은 사건들의 성질을 잘 저울질해 보고 고찰하고 나서 건강한 용기의 힘으로 그 위를 뛰어넘는다. 그들은 강력하고 견고한 심령을 가졌기 때문에 인생의 재앙들을 경멸하며, 발밑에 짓밟는다. 그들에게는 운명의 화살이 쏟아져 와도 도로 튀어서 끝만 뭉툭해지고, 그 신체에 아무런 자국도 남겨 주지 않는다. (333쪽)
 



 

우연의 힘

어느 옛 사람(세네카를 말함)은 우리는 우연 속에 살고 있으니, 우리에게 미치는 우연의 힘이 크다는 것에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하였다. (357쪽)
 



 

탁월한 경지에 이르고자 원하는 자들은

사색과 교양은 기꺼이 신임하는 것이지만, 그것 외에도 경험에 의해서 우리 마음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훈련시키지 않으면, 이 사색과 교양이 우리를 행동하게 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심령이 실제 행동에 들어선 때에, 탁월한 경지에 이르고자 원하는 자들은, 싸움에 서투른 상태에서 경험 없이 세파에 뜻하지 않게 습격당할까 봐, 혹독한 운명에서 은신하여 편안하게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운명의 앞에 나가서, 진짜로 어려운 시련에 뛰어들기도 하였다. 어떤 자들은 자진하여 춥고 배고픔에 단련받기 위해서 부귀를 버렸고, 어떤 자들은 불행과 노고에 몸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 힘든 노동과 혹독한 고생을 찾아 행동하였고, 또 어떤 자들은 신체의 어느 부분이 너무 유쾌하고 즐겁기 때문에 그들의 심령이 해이해질까봐 두려워하며, 시각이나 생식기관 같은 신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끊어 버렸다. (391쪽)
 



 

세평보다 더 운에 매인 일이 어디 있는가?

세평보다 더 운에 매인 일이 어디 있는가? "진실로 운은 모든 사물들에 지배력을 갖는다. 실제보다도 그의 변덕에 따라서 어떤 자는 올려 주고 어떤 자는 끌어내린다."(살루스투스) 행동이 세상에 알려지고 남의 눈에 띄게 하는 것은, 순전히 운에 달린 일이다.

자기 변덕대로 우리들에게 영광을 붙여 주는 것은 운이 하는 것이다. 나는 영광이 진실한 가치에 앞서 나가며, 흔히 상당한 거리로 가치를 초과하는 것을 보았다. 영광이 그림자를 닮았다고 맨 먼저 생각해 본 자는, 자기 생각보다 더한 일을 하였다. 이런 것은 두드러지게 헛된 일들이다.

영광은 어느 때는 본체보다도 훨씬 앞서 나간다. 그리고 어느 때는 본체보다 길이로 많이 넘친다.
 (686쪽)
 



 

출세하려면 운이 와서 내 손목을 끌고 갔어야 할 일이다

야심으로 말하면 교만과 이웃 간이랄까, 그보다는 딸 뻘이긴 하지만, 출세하려면이 와서 내 손목을 끌고 갔어야 할 일이다. 불확실한 희망 때문에 수고하며 인생 행로의 첫머리에 남의 신용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 당하는 고난을 겪어 내는 일 따위는 나 같으면 못해 냈을 일이다.
 (713쪽)
 



 

행운과 불운

내 생각으로는 행운과 불운은 두 가지 최고의 권력이다. 인간의 예지가 운의 역할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없는 소리이다. 원인과 결과를 파악해 보며, 자기 손으로 자기 사업의 진전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자부하는 자의 기도는 허황된 일이다. 특히 전략의 고찰에 있어서 허황되다. 우리들 사이에 가끔 보이는 군사상의 예보다도 더 용의주도한 신중성은 없었다. 그것은 이 대도박의 마지막 결판에 대비해서 중도에 패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인가?

더 나아가, 우리의 예지와 사고력 자체가 대부분은 우연에 매여 있다. 내 의지와 사유는 이때는 이렇게, 저때는 저렇게 움직이며, 그 중에도 많은 움직임은 나 없이도 되어 간다. 내 이성에는 매일 돌발적인 충동과 동요가 있다.

심령의 모양은 변한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속은 이때는 이 생각,
한 가닥 회오리바람이 구름을 밀고 가면,
그때는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베르길리우스)
                                                        (1035쪽)
 

 


펼친 부분 접기 ▲

 


 * * *

 

 

 

 

 

 

 

 







 















 



댓글(5) 먼댓글(3)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플루타르코스의 작품들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6-04-23 01:09 
    플루타르코스에게 붙은 별명은 '최후의 그리스인'이다. 그는 아폴론 신전으로 유명한 델포이에서 가까운 카이로네이아에서 태어나서 스무 살부터 아테네의 아카데미에서 철학을 배웠다. 나중에 이집트와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고, 로마에도 두세 차례 방문해 강의도 하고 집정관 등 여러 명사들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의 그리스는 이미 로마의 속주가 된 지 2백 년이나 지난 때였다. 찬란했던 그리스 문학도 이미 쇠퇴기
  2. 코리올라누스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7-02-10 09:16 
    그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장래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지 않은 채 뭔가 다른 방법으로 장래의 지침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 그들이 사리사욕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불명예스런 일을 설득하려 하며, 좋지 않은 일에 관해 교묘하게 잘 둘러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들의 반대자나 청중을 놀라게 하거나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중에서 * * *자신과 조국을 함께 동시에 저울에 올려 놓고
  3.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브루투스 가문의 인물들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7-07-01 19:23 
    "브루투스, 너 마저?" 이 짧은 대사만큼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것도 드물다. 이 말은 삼척동자도 웬만큼 안다. 왜? 누구나 한 번만 들어도 금세 '상황 파악'이 되기 때문이다. 친구들끼리 장난을 치다가도 "아무개, 너 마저?" 라고 외칠 만한 상황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맞닥뜨렸던가. 나도 언젠가부터 저 짧은 대사를 듣고 알게 되었다. 그게 언제였는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그 이후로 오랫동안 내가 품었던 생각은 이랬다. '브루투스는 '참 나쁜
 
 
숲노래 2014-02-13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삶이라면
죽음도 아름다울 테고,
아름답지 못한 삶이라면
죽음도 아름답지 못하리라 느껴요.

남들이 평가하거나 말거나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헤아릴 줄 알면
어떤 일이든 무엇이든
모두 스스로 즐거우며 아름답게 짓겠지요.

그나저나, 이 많은 '영웅'들은
스스로 '영웅'이어서
삶이 즐거웠을까요?

oren 2014-02-13 10:32   좋아요 0 | URL
저마다 자신에게 단 한 번 주어진 소중한 삶을 남들 때문에 억지로 자신의 뜻과 다르게 살 필요는 없겠지요. 군인이나 정치가로 살든, 시인이나 철학자나 소설가로 살든, 혹은 농부나 어부나 예술가로 살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이 가장 아름답겠지요.

'영웅'이라고 해서 철학자의 삶을 비웃고 조롱할 필요도 물론 없겠구요.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도 같은 삶을 거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듯해서 '영웅들의 죽음'을 살펴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떨치기 힘들더군요.

함께살기 님의 댓글을 읽으니 알렉산드로스가 만들어낸 '유명한 일화' 하나가 떠오릅니다. 그가 스물두 살때 아시아로 원정을 떠나기 직전에, 그러니까 그리스가 '알렉산드로스의 지휘 아래' 페르시아 원정에 참가하기로 표결하고 그를 총사령관으로 공표한 직후의 일이었죠.

* * *

많은 정치가와 철학자들이 찾아와 축하 인사를 하자, 마침 코린토스에 머무르던 시노페 출신의 디오게네스도 인사하러 오리라고 그는 내심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외인 크라네이온에서 계속 여가를 즐길 뿐 이 철학자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알렉산드로스는 몸소 그를 보러 갔다. 가서 보니 그는 햇볕을 쬐며 누워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자 디오게네스는 몸을 좀 일으켜 알렉산드로스를 응시했다. 알렉산드로스가 그에게 인사하며 원하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예, 햇볕이 가리지 않게 조금만 비켜주시오."라고 대답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자신을 그렇게 멸시할 수 있는 사람의 도도함과 당당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떠나면서 디오게네스를 비웃고 조롱하던 자신의 부하들에게 "정말이지, 내가 만일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겨울호랑이 2017-05-19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oren님 서재에서 자주 보게 되는 책이 몽테뉴 <수상록>이네요. 아직 읽지 않았는데,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저작인 것 같습니다.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의 죽음도 눈에 들어오지만, 특히 카토의 죽음이 인상적입니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을 연상하게 됩니다. 인상적인 영웅의 죽음을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 2017-05-19 18:17   좋아요 1 | URL
카토의 딸이자 브루투스의 아내였던 ‘포르키아의 죽음‘도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물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도 그녀의 죽음이 상세하게 나오고, 플루타르코스로부터 엄청나게 영향을 받은 셰익스피어도 <줄리어스 시저>에서 ‘포르키아의 죽음‘을 자세히 다루고 있고요. 그녀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의 ‘여주인공‘ 이름도 포르키아로 지었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을 결정적으로 이어준 인물이 바로 몽테뉴였죠. 몽테뉴는 플루타르코스를 가장 좋아했고, 그의 『윤리론집』을 흉내내어 『수상록』을 썼으니까요. 그리고 몽테뉴의 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이 바로 셰익스피어였는데(셰익스피어는 1603년에 ‘영역본‘ 『수상록』을 읽었다고 하더군요), 그의 여러 희곡에서 ‘몽테뉴가 주장한 내용들과 쏙 빼닮은 구절들‘을 구경하는 것도 몹시 흥미롭더군요. 몽테뉴 수상록은 너무나 재미있는 책이니 겨울호랑이 님께서도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17-05-19 1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항상 좋은 책과 좋은 저자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님 남은 하루 마무리 즐겁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