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엘리엇의『황무지』와 사랑 받았던 여자 시뷜라
죽은 자의 매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도 라일락은 자라고
추억과 정욕이 뒤섞이고
잠든 뿌리가 봄비로 깨어난다.
차라리 겨울은 따스했거니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
메마른 구근으로 작은 목숨을 이어줬거니.
- T.S.엘리어트의 '황무지 <1> 매장(埋葬)' 중에서
* * *
또 한 번의 4월이 지나갔다. 그 누군가에게는 틀림없이 '내 삶에서 가장 잔인한 달'로 각인된 채로...
T.S. 엘리어트가 『황무지(荒蕪地)』를 쓰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이토록 자주 4월을 잔인한 달로 묘사할 수 있었을까.
어느새 4월은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서 앗아간 듯하다. 라일락 향기에 잠시 정신이 아득하던 순간들도, 찔레꽃 꺾으러 아지랭이 피어오르던 덤불숲들을 헤치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추억들도, 찔레꽃 너머로 살포시 겹쳐지던 어릴적 동네 여자 친구의 꽃처럼 예쁘던 동그란 얼굴도, 어린 아가의 손처럼 앙증맞게 돋아난 새잎들 위로 촉촉히 내리던 봄비의 추억들마저도...
4월이 잔인한 이유는 너무도 많다. 굳이 천재 시인이 93년 전에 쓴 '심오한 뜻'까지 헤아리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사실 그 시인이 그 시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는 그가 '죽은 자의 매장' 앞에 끌어다 놓은 다음 몇 줄로도 충분하다.
한번은 쿠마에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그토록 오래 살았던 쿠마에의 무녀가 저토록 처절한 소원을 내뱉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로마 신화에 따르면 이 무녀는 꽃처럼 피어오르던 아리따운 처녀 시절에 아폴론 신으로부터 구애를 받을 때 말했던 '한 가지 소원'이 화근이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을 사랑한 아폴론 신으로부터 '먼지 알갱이 수만큼 많은 생일'을 선물로 얻었지만 '그 세월이 줄곧 청춘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그만 깜빡하고 말았다. 그 바람에 그녀는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을 만큼 쪼그라든 채로 제때에 죽지도 못하는 슬픈 운명에 빠지고 말았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그려 넣은 쿠마에 무녀는 결국 늙었으나 여성스러움을 잃어버리고 남성처럼 우람한 근육과 힘을 갖춘 모습으로 뒤바뀐 채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다. 지나친 과욕은 해마다 돌아오는 4월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해소할 수 없는 영원한 고통 속으로 빠트릴 수 있다는 교훈과 함께.
[쿠마에의 무녀], 도메니키노(Domenichino 1581∼1641), 1610년경, 피나코테카 카피톨리나, 로마
T.S. 엘리어트가 '찬란한 4월'을 보며 떠올린 건 바로 '고통스런 삶의 반복'이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 '자연'에게도, 죽을 만큼 괴로워도 어쨌든 삶이 끝날 때까지는 또다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 인간들에게도 4월은 그래서 늘 잔인하게 다가오고 또 잔인하게 지나간다.
그런데 자연과 닮은 인간이 유독 자연과 틀린 점 하나가 이 대목에서 불쑥 도드라진다. 자연이 창조한 존재 가운데 유독 인간만이 '탐욕과 절제'를 모른다는 점이다. 인간의 탐욕은 그래서 늘 비극의 씨앗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목적'이 '특정한 쾌감을 산출하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카타르시스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비극에서 얻는 쾌감은 '위험 부담을 남에게 전가하고 얻는 경험의 쾌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이웃에 불행과 고통을 주지 않고는 배출될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의 스릴'을 비극이라는 안전판 위에서는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비극에 빠진 사람들의 형편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로 전환되는 순간 우리는 곧장 깊은 연민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에게 내재된 '공감하는 능력'이 불러일으키는 '확대되는 원' 때문이다.
고대의 시인들이 다룬 비극들은 거의 대부분 '왕가의 비극'이나 '영웅들의 비극'이 많았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과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와 『헬레네』등 비극의 제목만 살펴봐도 이 점은 쉽사리 알 수 있다.
그런데 현대의 비극은 오히려 '대중들'에게 주역을 떠맡겨놓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굳이 세월호의 비극이나 네팔 대지진의 참극을 예로 들 필요조차 없다. 사람들이 좀 더 풍요롭게 살기 위해 고안해 낸 '증권시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비극들만 살펴봐도 '대중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인간 탐욕의 역사를 살펴 보면 아주 오랜 옛날에는 주로 '전쟁을 통한 이민족 지배'가 탐욕을 만족시켜줄 주된 수단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모든 걸 얻게 된다. 단지 영토와 재물과 노예만 얻는 것이 아니라 승리에 뒤따르는 드높은 영광과 명예까지도 송두리채 차지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것' 가운데 전쟁보다 더 빠른 수단은 없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고찰해 보면 아주 오랜 옛날부터 가장 최근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역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이 금세 드러난다. 우리는 아직도 '전쟁이 남긴 비극'과 '전쟁에 대한 사죄 문제'가 여전히 우리의 코 앞에서 벌어지는 가장 뜨거운 뉴스임을 매일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과학이 진보하고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이 모든 걸 뒤바꾸어 놓았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무역이 활발해 지면서 곧 '경제와 돈'이 인간의 삶을 급속도로 빠르게 지배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 또한 거의 전적으로 '경제력'에 따라 판가름날 정도가 되었다. 이른바 '자본'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자본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주식회사가 빠르게 생겨나고 암스테르담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증권거래소'가 곧 전세계 여러 도시에서도 재빠르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부 자본가가 독점하던 주식회사는 곧 '주식'으로 잘개 쪼개져 '일반 대중들'에게도 급속하게 공급되면서 '기업의 소유권'이 널리 분산되기에 이르렀다. '주식의 대중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탐욕스런 일반 대중들의 손에 주식이 쥐어졌으니 주가가 급등락을 겪는 일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했다. 어느새 '금융투기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 만큼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투기의 역사'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게 바로 '튤립'이다. 그 무대 또한 증권거래소가 처음으로 생겨났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었다.
1624년 황제튤립은 당시 암스테르담 시내의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1,200플로린에 거래되었다.
튤립뿌리 1파운드가 단 1주일만에 20길더에서 1,200길더까지 치솟기도 했다.
당시 노동자 1달 봉급수준에서 5년치 연봉에 상응하는 값으로..
튤립 한뿌리를 위해 지불한 2,500길더로 27ton의 밀과 50ton의 호밀, 살찐 황소 4마리,
돼지 8마리, 양 12마리, 포도주 2드럼, 맥주 2큰통, 버터 10ton, 치즈 3ton, 린넨 2필,
장롱하나에 가득찬 옷가지, 은컵 1개 등을 살 수 있었다.
마침내 1637년 2월 3일 튤립시장이 붕괴했다.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내는지도 늘 흥미롭지만 그보다 더욱 흥미를 끄는 점은 '인간의 탐욕'은 결코 꺼질 줄 모른다는 점이다. 마이클 더글러스가 주연으로 나섰던 『월스트리트 2』의 제목도 그래서 'Money never sleeps'였다. 돈은 결코 잠드는 법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