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일반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는 책



(밑줄긋기)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발견한 구절들
 

모방한다는 것

모방한다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도 인간이 가장 모방을 잘하며, 처음에는 모방에 의하여 지식을 습득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모방된 것에 대하여 쾌감을 느낀다. 이러한 사실은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37쪽)


 


고상한 시인들과 저속한 시인들

시는 시인의 개성에 따라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되었다. 고상한 시인들은 고상한 행동과 고상한 인물들의 행동을 모방한 반면 저속한 시인들은 비열한 자들의 행동을 모방했는데, 전자가 찬가(讚歌, hymnos)와 찬사(讚詞, enkomion)를 쓴 것처럼 후자는 처음에는 풍자시를 썼다. (38쪽)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발견한 구절들
 

볼 가치도 들을 가치도 없는 것을 생각하느라

한 번은 카이사르가 부유한 이방인들이 로마에서 강아지와 새끼 원숭이를 품에 안고 다니며 귀여워하는 것을 보고는 그들의 나라에서는 여인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타고난 사랑과 정을 마땅히 사람에게 쏟아야 할 텐데도 동물에게 낭비하는 자를 나무라는 진실로 제왕다운 꾸지람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혼은 본성상 배우기를 좋아하고 보기를 좋아하는 만큼, 볼 가치도 들을 가치도 없는 것을 생각하느라 아름답고 유익한 것을 소홀히 하는 자들이야말로 비난받아 마땅하지 않겠는가? (184쪽)



 

안티스테네스의 명언

우리의 감각은 외부 세계의 인상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므로 유용한 것이든 유용하지 않은 것이든 모든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려는 자는 누구나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방향을 정할 수 있고, 일단 결정하면 힘들이지 않고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봄으로써 교화되기 위해 최선의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색채가 산뜻하고 쾌적해 시력을 증진시키게 되면 눈에 적합하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이성적 능력도 자신을 매혹하여 자신의 고유한 미덕으로 인도하는 그러한 대상들을 보도록 우리는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러한 대상은 미덕에서 우러나온 행위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러한 행위는 그것을 추구하는 자에게 경탄과 모방하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다른 경우 행위에 경탄은 하되 곧바로 그 행위를 모방하려는 욕구는 수반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흔히 어떤 작품에서 쾌감을 느끼면서도 장인(匠人)은 멸시한다. 예컨대 우리는 향수와 자포(紫袍)를 좋아하면서도 염색공과 향수 제조자를 천한 기술자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메니아스가 피리 연주의 달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안티스테네스가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오. 그렇지 않다면 피리 연주의 달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오."라는 명언을 남겼던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필립포스도 술자리에서 우아하고 능숙하게 현악기를 연주하던 아들에게 "그렇게 아름답게 현악기를 연주하다니, 너는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말했던 것이다. 왕은 짬을 내어 다른 사람이 현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듣는 것으로도 충분하며, 그런 경연에 참관하기만 해도 무사 여신들에게 큰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185쪽)



 

보는 사람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것

저급한 일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은 쓸데없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아름다운 일에는 무관심하다는것을 증명해 보인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라면 피사의 제우스 상이나 아르고스의 헤라 상을 보고 페이디아스나 폴뤼클레이토스가 되고 싶어 하지 않으며. 아나크레온이나 필레타스나 아르킬로코스의 시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들처럼 되고자 하지도 않는다. 어떤 작품이 우아하고 마음을 끈다고 해서 그것을 제작한 사람이 반드시 존경받아 마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방하고 싶다는 욕구와 동화되고 싶다는 충동과 열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들은 보는 사람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다. (186쪽)



 

단순히 행위를 고찰하는 것만으로도

그러나 탁월함에서 우러나온 행위는 당장 그러한 행위가 찬탄을 보내는 동시에 행위자들과 겨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우리는 우연히 주어지는 좋은 것들은 소유하고 즐기고 싶어 하지만, 탁월함에서 우러나오는 행위들은 실행하고 싶어 한다. 게다가 우리는 우연히 주어진 좋은 것들은 누군가에게서 받기를 원하지만, 탁월함에서 우러나온 행위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받기를 원한다. 선한 것은 우리를 능동적으로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며 당장 우리에게 행동하도록 촉구한다. 선한 것은 모방을 통해서만 보는 이의 성격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행위를 고찰하는 것만으로도 결단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영웅전을 계속 써야 한다고 결심했다. ······ 특히 온유함과 올바름, 백성들과 동료 관리의 어리석음을 참는 능력에 힘입어 두 사람은 그들의 조국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러한 평가가 옳은지의 여부는 내가 쓴 것을 읽고 독자가 판단할 일이다.
(186쪽)





*『몽테뉴 수상록』에서 발견한 구절들
 

비록 진창 속에 굴러도

내가 허약하다고 해도 그것은 평가해 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의 힘과 정력에 관해서 내가 가져야 할 의견을 변경하게 하지는 않는다.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모방할 수 있는 것밖에 칭찬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키케로) 비록 진창 속에 굴러도, 나는 하늘 꼭대기에 이르듯 도저히 모방할 수 없게 고매한 몇몇 영웅적 심령들을 주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51쪽)


 

군중

군중 속의 전파는 대단히 위험하다. 사람은 악인들을 모방하든지 미워하든지 해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다 위험하다. 그들의 수가 많으니 많아질까 두렵고, 우리와는 너무 다르니 너무 많이 미워할 일이 두렵다. (260쪽)


 

 

풋내기들

그것은 마치 무도회에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우리 귀족들의 점잖은 행세를 모방할 수 없으니까, 무도 학교를 세워 가면서 배운 위험한 뜀박질이나 익살스런 동작의 색다른 잡술을 가지고 장기를 삼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리고 정식 무도회에서 부인들이 천연스런 걸음으로 순진한 자세와 타고난 우아미를 보여 주기만 해도 되는 것을, 몸뚱이를 비꼬아 뒤흔드는 무도회에서는 그녀들의 자태를 값싸게 보여 준다. 나도 역시 본 일이지만, 탁월한 배우들은 일상적인 옷을 입고 화장기 없는 용모로도 그들이 예술이 줄 수 있는 모든 쾌감을 주는 데 반해서, 풋내기들은 공부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므로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옷을 괴상하게 입고는 우리를 웃기려고 동작을 거꾸로도 하고, 얼굴을 망측하게 찌푸리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관념은 《아에네이스》와 《광분하는 롤랑》을 비교해 보면 어느 경우보다도 더 잘 이해가 된다. 전자는 확고하게 날개를 활짝 펴서 높게 날며, 늘 자기의 방향을 잡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후자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아 앉듯,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 뛰어 돌아다니며, 자기 날개에 자신이 없어 짧은 거리밖에는 날지 못하고, 숨과 힘이 지탱 못할까 봐 밭이랑마다 내려서 쉰다.


그는 단거리 질주를 시도한다.             
   (베르길리우스)                                                               (436쪽)

 



 

원숭이처럼 모방하는 버릇

나는 원숭이처럼 모방하는 버릇이 있다. 내가 시를 써 본다는 수작을 했을 때엔(라틴어로 밖에는 써 보지 않았다), 그 시는 당시 최근에 읽은 시인의 티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내 최초의 시도 중의 어떤 것은 외국풍의 냄새를 풍겼다. 나는 파리에서는 어딘가 몽테뉴에서와는 다른 말을 쓴다. 누구이건 내가 주목해서 관찰해 본 다음에는 무엇인지 그의 티가 내게 박힌다. 바보 같은 모습이건, 불쾌하게 웃는 꼴이건, 우스꽝스런 말투이건, 내가 유심히 본 것을 나는 몰래 빼앗아 온다. 그것이 악덕이면 더하다. 그것은 나를 찌르기 때문에 더 잘 내게 걸린다. 그리고 뒤흔들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나의 기질 때문이 아니라 남을 본떠서 욕질하는 것을 본다.

마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의 어느 곳에서 본 끔찍하게 키가 크고 힘이 세고 무서운 원숭이의 수작만큼이나 몸을 잡치는 모방이다. 이 원숭이들은 달리면 잡을 길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남이 하는 것을 보고는 그대로 본뜨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그들을 잡는 방법을 빌려 주고 있는 셈이다. 사냥꾼들은 그것들이 보는 데서 끈이 많이 달린 구두를 꼭꼭 묶어 신고, 머리에 올가미가 달린 두건을 뒤집어 쓰고, 눈에 끈끈이로 바르는 체한다. 이렇게 하면 이 가련한 짐승들은 멋모르고 흉내를 낸다는 것이 제 눈에 끈끈이 칠을 하고 끈으로 몸을 묶어 얽어 놓는 것이다.
(968쪽)



 

심령을 지지도록 그대로 두고 있는 것

우리가 명예에 관한 모든 장점을 그들에게 양보하는 식으로, 그들도 마찬가지로 그의 결함과 악덕까지도 옳은 일이라고 인정할 뿐 아니라, 모방까지 해가며 그런 일하는 권한을 그들에게 주고 옹호한다. 알렉산드로스의 시종들은 모두가 그를 본떠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기울이고 다녔다. 그리고 디오니시우스의 아첨꾼들은 그와 같이 근시안인 체하느라고, 그의 앞에서 잘 부딪치고 발끝에 걸리는 것을 차고 둘러엎곤 했다. 탈장(脫腸)까지도 때로는 으스대며 자랑할 거리가 되었다. 나는 귀먹은 것도 뽐낼 거리가 되는 것을 보았다. 플루타르크는 왕이 왕비를 미워하자, 궁신들도 덩달아 사랑하는 아내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다.

더 심한 것은 음탕한 버릇이 모든 버릇과 아울러 유행하고, 불충·모독·잔인성도 그렇고, 사교가 그렇고, 미신·무신앙·태만이 그렇다. 더 나쁜 일로, 도대체 더 나쁜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미트리다테스의 아첨꾼들은 그들의 왕이 명의(名醫)라는 영광을 얻고 싶어하자 자기들 몸을 째고 지지고 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험한 본보기로 다른 자들은 몸의 가장 미묘하고 고귀한 부분인 심령을 지지도록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다.
(1019쪽)



 

재치가 아니라 심령이 문제될 때에

속이 가장 짜이고 현명한 작가들을 두고 보아라. 그들은 옳은 논법을 둘러서 얼마나 경박한 다른 논법들을, 그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이 빈 논법들을 뿌려 놓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를 속이는 언어만의 헛된 말재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유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달리 쓸데없이 너저분한 이론으로 보고 싶지 않다. 이 서적 속에도 빌려 왔거나 모방했거나 해서, 이런 식의 문장이 상당히 여러 군데에 끼여 있다. 그러므로 좀 묘한 구절을 힘차다고, 날카로운 점을 견고하다고, '마시기보다도 맛보기에 더 좋은 것'(키케로)을 가지고 잘되었다고 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재치가 아니라 심령이 문제될 때에'(세네카) 마음에 드는 것 모두가 배불려 주는 것이 아니다.
(1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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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방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6-04-27 13:42 
    (밑줄긋기) 젊은이는 시가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젊은이가 시에 입문할 때, 우리가 작시술이 모방술과 그림 그리기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것이라는 총체적 서술을 해 준다면, 그 젊은이는 더욱더 견실한 자세를 취하게 되겠지. 젊은이에게, 시는 말하는 그림, 그림은 말 없는 시 58 라고 흔히 인용되는 말을 숙지시킬 뿐만 아니라, 거기에 덧붙여 그림 속에서 도마뱀이나 원숭이 또는 테르시테스59의 얼굴을 볼 때, 그것을 아름다운 것으로서가 아니라 유사한 것으로
 
 
다크아이즈 2014-02-02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작품이 우아하고 마음을 끈다고 해서 그것을 제작한 사람이 반드시 존경받아 마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방하고 싶다는 욕구와 동화되고 싶다는 충동과 열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들은 보는 사람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모방을 무시할 수 없는, 아니 모방하는 이유가 이 문장 하나에 다 들어 있은 것 같습니다.
후대들이 하고 싶은 말을 미리 다해버리는 대단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아니 대단한 고전들^^*

oren 2014-02-03 10:43   좋아요 0 | URL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만 하더라도 까마득한 옛날에 쓰여진 책인데, 그 책 속에도 그 이전에 쓰여진 또다른 고전들이 무수히 포함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새삼 놀랐어요. 그 책 속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물론이고, 고대 비극작가의 작품 속 싯구절들도 여러번 인용되어 있더군요. 거기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여러 작품들,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담긴 이야기들도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인용되어 있더군요. 그러니 그런 책들에는 '보편적인 교훈들'이 오롯이 담길 수밖에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숲노래 2014-02-0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흉내내기(모방)와 배우기는
모두 똑같이 바라보는 '모습'이지만,
받아들이는 '삶'이 사뭇 달라요.

한쪽은 슬픈 빛이 되고
한쪽은 아름다운 사랑이 되면서..

oren 2014-02-03 10:48   좋아요 0 | URL
네...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모방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모방하게 되는 숨겨진 힘도 지니고 있는 듯해요.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 가운데 그런 얘기를 찾으려면 한정도 없겠지만요. '붉은색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은색으로 물들고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어진다. 소리가 고르면 음향도 맑게 울리고 형상이 바르면 그림자도 곧아진다[近朱者赤 近墨者黑 聲和則響淸 形正則影直].'는 말도 비슷한 얘기가 아닐까 싶어요.

세실 2014-02-02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몽테뉴 수상록 읽으려고 꺼내놓았습니다.
새해에는 내적 성숙을 가져올 수 있는 책을 읽으려고요^^

'풋내기들은 공부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므로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옷을 괴상하게 입고는 우리를 웃기려고 동작을 거꾸로도 하고, 얼굴을 망측하게 찌푸리는 것이다' 최소한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 겠습니다^^

oren 2014-02-03 10:52   좋아요 0 | URL
세실 님께서도 이제 막 몽테뉴를 만나실 참이시군요. 그사람은 겉으로만 보면 몹시 따분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만나면 만날수록 은근히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랍니다. 재치가 번뜩이고 유쾌한 말장난과 해학도 가득 담긴 책이니 만큼 오래도록 즐겁게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