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다시 카트만두로, 스와얌부나트와 왕궁을 둘러보다
오늘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지난 4월 하순에 네팔로 향할 때만 하더라도 '히말라야의 설산'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로 가슴이 부풀었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그에 못지 않게 '험준한 산길'을 제대로 완주할 수 있을까 싶어 '긴장'도 좀 되고, 또 '고산병'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마냥 들떠 있을 수만도 없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제 무사히 내가 살던 땅, 내가 살던 집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어느새 '밀려드는 안도감'과 함께 일상적으로 즐겨 먹던 '따뜻한 밥 한 그릇'이 그렇게 그립고 소중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아침에 짐부터 챙긴 후 나흘씩이나 묵었던 숙소를 떠나 다시 타멜의 한국식당 '경희궁'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아침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상점들을 다니며 히말라야 사진과 그림 등을 구입한 뒤 우리는 곧바로 트리뷰반 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10박 11일 동안 우리 일행들을 빈틈없이 챙겨주셨던 목사님과도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다.
원시적인 몸수색이 반복되는 답답하고 지루한 출국수속을 다 마치고 나서 비행기 탑승만 기다리고 있던 우리 일행들에게 뜻밖의 행운(?)이 한가지 생겼다. '안나푸르나'를 방문하고 귀국길에 오른 '엄홍길 대장님'이 우리와 같은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등장하신 것이다. 우리 일행은 단 한 번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통해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오른 산악계의 전설적인 영웅 두 분을 한꺼번에 만나뵙게 되었던 것이다.(이제까지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오른 산악인은 31명에 불과하다. 완등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가 한국이다.)
이제 오랫동안 열망해 왔던 '히말라야 트레킹'은 끝났다. 그러나 '히말라야의 눈부신 설산'을 보며 감동에 젖어 잠시 콧날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핑그르 돌던 그 순간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 가슴 속에 뚜렷이 각인되어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또 기회가 된다면 흰 눈에 뒤덮인 그 장엄한 봉우리들을 보기 위해 또다시 카고백을 꾸리고 배낭을 챙겨 히말라야를 찾아 갈 날이 분명 있으리라 믿는다.
<여행의 기술>을 쓴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그에 뒤이어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고 말한 대목이 나로서는 좀 불만이다. 사실 인간이 비행기나 기차를 타게 된 역사는 지극히 짧다. 오히려 '걷는 것과 함께 생각하는 일' 만큼 인간에게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습관도 드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히말라야 트레킹'은 오래도록 걸으며 우리 마음 속에 깊숙히 감춰져 있던 '내면의 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가 아닐까 싶다. 이에 걸맞는 글을 보통의 책에서 다시 찾아 인용할 수 있다는 건 기분좋은 일이다.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178쪽)
만일 세상이 불공정하거나 우리의 이해를 넘어설 때, 숭고한 장소들은 일이 그렇게 풀리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바다를 놓고 산을 깎은 힘들의 장난감이다. 숭고한 장소들은 부드럽게 우리를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216쪽)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고 외치고 싶어진다.(292쪽)
히말라야 트레킹을 나서는 데 있어서 혹시 '나이 문제'가 적지 않은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 도중에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분들을 여러번 만났다. 멀리 제주에서 오셨다는 어느 사진작가님은 명함만 봐도 연세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 무려 1947년생이었다. 나는 지레짐작으로 그 분이 '히말라야 트레킹'이 처음일 줄 알았다. 트레킹 도중에 그 분으로부터 '배터리 충전기'를 빌리는 '신세'까지 지면서 몇차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사진'에 관한 말씀만 하셨을 뿐 '다른 히말라야' 얘기는 전혀 입밖으로 꺼내지 않으셨다.
그런데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 분의 명함에 적힌 '포토갤러리'를 방문해 봤더니 그 분은 2010년 이후 에베레스트와 안나푸르나 지역의 난코스들을 두루 섭렵하신 분이었다. 게다가 트레킹 때마다 무거운 카메라와 장비들을 갖추고 엄청난 열정으로 숱한 사진들을 담아내기까지 하셨다.(히말라야의 멋진 풍광들을 담은 그분의 사진을 직접 감상하실 분들은 다음 사이트를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http://www.sun1947.com/xe/) 그분을 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평범하고도 진부한 얘기를 다시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라는 책에서 '엘랑비탈(elan vital)'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분출하는 생명력'을 인상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동물을 감수성과 깨어난 의식으로, 식물을 잠든 의식과 무감각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한 동물종의 삶이 아무리 충만하고 넘치는 것처럼 보여도 마비나 무의식이 언제나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동물의 활동에 있어서 발견되는 '수없는 쇠퇴와 퇴락'은 결국 '식물적 삶을 향한 방향전환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들 역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이런 저런 '무기력과 무감각'들을 좀 더 자주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또 불가피한 방향전환들을 감수하며 삶을 이어나간다. 그게 꼭 '식물적 삶을 향한 방향전환'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느덧 자꾸만 '어떤 잔해들을 쌓아가는 삶의 확실성'으로 다가서고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히말라야'의 드높은 설산들을 찾아서 가쁜 숨을 내쉬며 허파꽈리들을 강하게 자극시키고 다리의 근육들을 욱신거리게 만듦으로써 그런 방향전환의 속도를 조금 더 늦출 수도 있다고 믿는다. 히말라야는 '나이'를 탓하며 너무 일찍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며 '생동하는 삶의 활력'을 느껴보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의 철학자인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모든 말은 결핍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담지 못한다. 모든 말은 과잉이다. 내가 전하지 않으면 했던 것들도 전하게 된다."
내가 잡담처럼 길게 쓴 이 '트레킹 후기' 역시 비록 말이 아닌 글이지만 '결핍과 과잉'으로 점철된 듯싶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 널리 헤아려 부족한 부분과 넘치는 부분을 알맞게 채우고 덜어내며 읽어주시길 바랄 뿐이다.
(이번 트레킹을 함께 했던 우리 일행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특히 '랑탕 트레킹'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함께 떠날 일행들을 모집한 것은 물론, 네팔 현지에서도 푸근하고 넉넉한 리더십으로 우리 일행들을 늘 앞장서서 이끌어주신 장대장님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우리들의 무거운 짐을 날라주고 길을 안내해줬던 포터와 가이드에게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네팔 현지에서의 모든 진행을 홀로 도맡아 너무나 편안하게 '트레킹 & 시내 투어'를 두루 즐길 수 있도록 모든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박목사님께 다시 한번 깊이 머리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공항에서 만난 엄홍길 대장님.
- 엄홍길 대장님과 함께.
- 네팔 카트만두여 안녕~
- 어느덧 비행기는 산소가 희박한 8,000m의 고도를 날고 있다. 히말라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 * *
"안나푸르나는 우리가 빈 손으로 갔지만 앞날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시없는 보물이다. 안나푸르나를 오르고 우리 인생의 새 장이 열렸다. 인생에는 또 다른 안나푸르나들이 있다."
- 모리스 에르조그(1950년 인류 최초로 고도 8,000미터가 넘는 안나푸르나에 오른 프랑스 원정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