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기 뭐 볼끼 있다고 가니껴?
당신은 물었지
볼 것이 없어서 간다오
예전에 언젠가 hnine님께서 올려주신 '화암사 가는 길'이라는 시 가운데 일부를 다시 떠올려 본다.
누구나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볼까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특히나 해가 바뀔 즈음엔 그냥 집안에 틀어박힌 채 '새해'를 맞이한다는 게 몹시 답답하고 억울한 기분까지 들 때가 있다. 가는 해를 아쉬워 하고 또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할 즈음 급작스레 고조되는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내면의 욕구'는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나의 경우, 예전에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을 참 많이 찾아 다녔던 것 같다. 특히 한 해가 저무는 연말이나 새해 첫날에 한겨울의 세찬 바람을 맞아가며 높은 산을 오를 때 자연스레 찾아오기 마련인 힘겨운 느낌들은 뭔가 스스로 '반성'의 의식을 고무시키고자 하는 내면의 의지와 아주 잘 결합한다. 그러고 보니, 가끔씩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 올라 어금니를 힘차게 꽉 물어가면서 '지나간 한 해' 동안에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 나쁜 습관을 떠올리고, 또 '새해에 이뤄야 할 목표들'을 새롭게 다짐했던 순간들도 떠오른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런 연말연시의 다짐들이 생각보다 제법 유용하다는 것이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 고요히 '흘러간 시간들과 다가올 시간들'을 함께 떠올려 보면서 그와 동시에 '나 자신'을 그 '세월의 흐름'이 배경을 이루는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보는 시간은, 그것이 비록 형식상으로는 홀로 꾸며낸 연극에 불과할지 몰라도,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늘 '일상성의 애매함' 속에 빠져 지내면서 좀 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살펴보지 못한 나 자신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아닐까 싶다.
접힌 부분 펼치기 ▼
마침 다른 분의 서재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일이지만(수단에 노트, 펜 보내기... ) 아프리카의 수단으로 보낼 '다이어리와 수첩들'을 좀 더 챙기려는 도중에, 내가 20년쯤 전에 적어둔 '연말연시의 어떤 흔적들'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도대체 일기를 쓰지 않다가도 '새해 첫날'에는 그래도 어쨌든 일기를 꼭꼭 쓰려고 애썼던 모습도 보이고, 새해의 결심들이 그냥 무위로 그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도 새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2/pimg_779883113812146.jpg)
(1991년엔 정말 술을 많이 마셨나 보다. 온통 술얘기 밖에 안 보인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2/pimg_779883113812148.jpg)
(이맘땐 책과는 담을 쌓고 지낸 시기여서 책에 대한 얘기는 아예 없다.)
펼친 부분 접기 ▲
이제 나이가 점점 들수록 추위에 맞서 칼바람 쌩쌩 부는 겨울산을 오르는 일도 다소 버겁게 느껴진다. 그럴 때 등산을 대신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나에겐 '동해바다로 가는 일'이다. 군대생활 3년 동안을 꼬박 동해안 바닷가에서 근무했던 나로서는 그쪽 방면이 꼭 유쾌한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턱은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동해의 푸른 바다와 그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7번 국도를 오르내리는 게 좋다. 기분이 제법 좋을 땐 그곳 동해안의 이곳 저곳이 마치 '아늑한 고향'을 찾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곤 할 때조차 있다.
해마다 여러차례 찾았던 동해안이지만 이번 연말에 찾은 동해안 바닷가는 유난히도 춥고 바다는 제법 거칠었다. 거센 파도를 담아 내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봤지만 워낙 추운 날씨여서 자동차 속으로 몸을 피신하기 바빴다. 더군다나 권금성의 케이블카는 강풍 탓에 아예 운행을 중단하였고, 백담사 가는 길도 온통 눈으로 얼어붙어 '운행 중지'였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 '강추위에 떨며 담아온 사진들'을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 보니 대략 난감하다. '그기 뭐 볼끼 있다고' 사진을 이리 찍었나 싶다. 그냥 묵히고 버리자니 왠지 조금 아깝기도 하고, 새해 첫날에 담았던 '호수공원의 겨울 풍경'도 몇 장 있고 해서, 이런저런 핑계를 구실로 사진을 올려본다. 그래도 '볼끼 너무 없다' 싶은 분들을 위해 동영상도 덧붙여 보았다. 동해 겨울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지난 한 해 동안 미처 이루지 못했던 여러 아쉬움들을 조금이나마 털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
* * *
그런데 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그기 뭐 볼끼 있다고' 라는 말을 더 자주 하게 되는 걸까?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놓는다.
인간의 모든 관찰과 행위와 체험 등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나이를 먹을수록 희박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충분한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청년시절뿐이며, 노년기가 되면 의식적인 생활의 절반은 잃어버린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의 생존의식은 나이를 먹을수록 희미해진다. 마치 아무리 훌륭한 미술품이라도 몇천 번이나 보는 동안에 감흥이 점점 없어지는 것과 같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모든 사물은 차츰 의식의 표면을 스쳐갈 뿐 별로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않는다. 다만 눈앞에 닥친 필요에 따라 움직일 뿐 나중에는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도 잘 모르게 된다. 따라서 의식이 감퇴함에 따라 세월도 빨리 흘러가게 된다.
그러나 유년시절에는 그렇지 않다. 모든 사물과 사건이 신기하기만 하여 모조리 의식 속에 떠오르므로, 하루가 매우 길게 생각된다. 이와 비슷한 일을 여행에서도 체험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난 후 한 달 동안은 가정생활의 넉달 동안보다 더 길게 생각되지만, 같은 사물을 몇 번씩 자주 대하는 동안에 차츰 지적인 능력이 둔해지므로 모든 사물들이 머릿속에 별로 인상을 남기지 않고 흘러가며, 생활도 점점 무의미하게 되고 시간이 무척 짧게 느껴진다. 흔히 노인들의 하루가 아이들의 한 시간보다도 더 짧게 생각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 * * *
1. 새햐얀 눈으로 뒤덮인 강원도 설악산, 한계령 부근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1/pimg_779883113811854.jpg)
Shooting Date/Time 2012-12-30 오후 3:14:32
2. 흰 눈을 닮은 자작나무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1/pimg_779883113811855.jpg)
3. 설악산 십이선녀탕 가는 길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1/pimg_779883113811856.jpg)
4. 겨울강, 바람이 전하는 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1/pimg_779883113811857.jpg)
Shooting Date/Time 2012-12-30 오후 3:40:14
5. 겨울 바다, 거친 파도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1/pimg_779883113811858.jpg)
Shooting Date/Time 2012-12-31 오전 11:58:51
6. 자주 찾는 바닷가, 광나루(남애항과 인구해수욕장 사이)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1/pimg_779883113811859.jpg)
Shooting Date/Time 2012-12-31 오후 12:08:33
7. 바다풍경횟집![](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1/pimg_779883113811860.jpg)
Shooting Date/Time 2012-12-31 오후 1:35:51
8. 갈매기의 꿈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1/pimg_779883113811862.jpg)
Shooting Date/Time 2012-12-31 오후 1:41:33
9. 거친 바다, 거센 파도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1/pimg_779883113811863.jpg)
Shooting Date/Time 2012-12-31 오후 1:44:58
10. 동해안을 떠나며...... 2012년의 마지막 햇살이 비치는 미시령 울산바위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1/pimg_779883113811864.jpg)
Shooting Date/Time 2012-12-31 오후 3:25:27
11. 2013년 3월 31일까지 운행을 중단한 '백담사 가는 버스정류장'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1/pimg_779883113811865.jpg)
Shooting Date/Time 2012-12-31 오후 3:40:54
12. 새해 첫날 풍경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2/pimg_779883113811867.jpg)
Shooting Date/Time 2013-01-01 오후 1:08:14
13. 스키장을 방불케 하는 호수공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2/pimg_779883113811868.jpg)
14. 눈덮힌 호수공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2/pimg_779883113811869.jpg)
Shooting Date/Time 2013-01-01 오후 1:34:12
15. 붉게 빛나는 산수유 열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2/pimg_779883113811870.jpg)
Shooting Date/Time 2013-01-01 오후 1:36:06
16. 눈썰매장으로 뒤바뀐 호수공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2/pimg_779883113811871.jpg)
17. 신나는 동네꼬마 녀석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2/pimg_779883113811872.jpg)
18. 저녁노을로 붉게 물들었던 그곳엔 어느 이름모를 처녀와 '눈사람' 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102/pimg_779883113811873.jpg)
Shooting Date/Time 2013-01-01 오후 2:41:57
* 거친 바다, 거센 파도
Shooting Date/Time 2012-12-31 오후 1:44:29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