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아침, 출근길이었다.
차로 출근할 때면 언제나 듣게 되는 MBC FM.
김성주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굿모닝 FM" 시간이었다.
금요일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꼭지가 있나 보다.

한 기자(문화면 담당이겠지 영화잡지 기자일지도)가 나와서 이런 저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우주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영화의 줄거리와 주인공인 톰 크루즈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더니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합니다. H.G. 웰즈라는 작가가 원작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요. SF 소설로는 아주 고전에 손꼽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블라 블라 ..."

<우주전쟁> 정도면 어린 시절 아동판으로라도 제목이나 작가 이름은 익숙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내가 너무 앞서 나간건가.

그래도 명색이 신문기자(기자라면 박식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나의 이 직업적 편견도 만만치 않다)인데, 조지 웰즈와 소설 <우주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영화 이야기를 하기 위한 사전 자료 조사에서 처음 접해 본 듯한 저 말투라니. 조지 웰즈가 하루키나 알랭드 보통, 파울로 코엘료 보다 훨씬 더 친숙하고 유명한 작가라고 생각하는 내 관점(이게 문제라니까)에 비추어 볼 때 우리 나라 장르 문학의 길은 아직도 척박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자의 말.

"세기말의 암울한 미래관과 외계에 대한 두려움이 지배하는 원작과는 달리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서 잊혀져 가는 가족간의 사랑을 뒤돌아 보게 하는데요.(아주 새롭다는 말투로)"

OTL 이다 정말 OTL.

"원작과는 달리 스필버그는.." 하는 타이밍에 나는 "설마 가족애?"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는 그 단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나는 민망하기 까지 했다. 스필버그여. 이제 좀 바꿀때도 되지 않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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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rot 2005-07-2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애'라니...신선한데요.(헛헛)

상복의랑데뷰 2005-07-2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필버그가 바뀌기를 바라는 것보다 우주전쟁이 흥행에 실패하기를 바라는게 빠를 것 같습니다. --;

oldhand 2005-07-2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필버그는 어린 시절 상처가 있는 걸까요?
차라리 아무 생각없는 마이클 베이가 더 있어 보이는 요즘입니다. 하핫.
 

서재 폐인도 부지런해야 할 수 있다는 한탄을 한 적이 있기도 하듯이, 나는 게을러 빠졌다. 자식 앞에서도 게으른 아빠가 되어 버린 것 같으니 콩주에게 면목이 없다.

2월 1일 생인 콩주는 5월 11일이 100일이었다. 그리고, 게으른 아빠는 근 한 달이 더 지난 6월 6일에서야 겨우 100일 기념 촬영을 시켜 주었다. (물론 "100일 사진은 좀 더 지나서 찍어야 각도 나오고 사진 찍기 좋아"라는 주위의 권고를 적극 활용하였다.) 그리고, 기념 사진을 찍고 나서 다시 한 달하고도 열흘이 훌쩍 넘은 지금 이제서야 그 사진을 올리고 있으니... 초보 아빠는 아직 이런 곳에 사진을 올리는 것이 왠지 자식 자랑 하는것 같아 민망하기만 하다.

100일 사진 촬영의 "극초반"에만 콩주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내 짜증, 울음, 원망으로 뒤엉켜 촬영 끝까지 시종일관 그럴싸한 표정은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친구가 아니었다면 더 힘든 촬영이 되었으리라. (공짜로 앨범과 액자까지 여러개 만들어준 친구 L에게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를..)



이 타이밍에 분위기 Up되어 미친척 가족 사진까지 올리는 만행을.. -_-;
으음... 모자이크 처리라도 할걸 그랬나.

콩주는 엄마 아빠와 같이 살지 못한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를 둔 덕에 5월 부터 수지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지냈다. 그리고 지난 주에 더 멀리 강원도 인제의 외가집으로 다시 이사를 했다. 어린 나이에 환경이 자주 바뀌는 것이 너무나 안쓰러울 뿐이다. 못난 부모 탓에 먼 지방에 내려간 딸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온식구가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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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7-17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올드핸드님 너무 멋진 페이스(ㅎㅎ)잖아요!
두 분 내외와 콩주 그렇게 서고 앉으니 정말 그림 같은 가족이네요.
콩주 너무 깜찍하고 예쁩니다요.
세 식구 하루라도 빨리 모여 살아야 할 터인데.
아무튼 콩주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렴.^^

야클 2005-07-17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에 참 좋고 부럽습니다.
전 언제 맘에 드는 여자 만나서 사귀고 프로포즈해서,결혼식 올리고 아이 만들어서 낳고,다시 100일이 지나 이런 사진 찍어볼까요. ^^

물만두 2005-07-1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모자이크하실려면 님만 하세요^^ 옆지기님 한 미모하십니다... 콩쥐야, 무럭무럭 자라렴^^

로드무비 2005-07-17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소개팅은 잘하고 있나요?
소개 받기로 한 세 분 중 한 분이 꼭 야클님의 인연이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귀엽고 애절한 댓글이라 차마 모른체 지나갈 수가 없음.ㅋㅋㅋ)

야클 2005-07-17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T.T
이제 나머지 두명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만.

oldhand 2005-07-1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 멋진 페이스라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찾이 줄지 않기만 바랄뿐입니다. 으흐흐. 그림 같은 가족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아 볼라고 노력하고 있지요. ^^. 로드무비님의 도러처럼 깜찍하게 클 수 있기를 바랄뿐이죠. 근데 콩쥐가 아니라 콩주에요. ^_^
야클님 :: 중요한 3연전의 첫 머리 결과가 좋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도 파이팅 하세요. 언제 그러나 했더니, 콩주 엄마랑 처음 만나서 콩주 태어날 때까지 2년 밖에 안 걸렸습니다. ^^ 너무 암담해 하실 필요는 없을듯. 빠른 사람은 1년에도 해치우더군요. 하핫.
물만두님 :: 옆지기 칭찬까지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정말 말 그대로 무럭 무럭 자라는것 같습니다. 콩주는 첨에 한 달이나 일찍 세상에 나온 통에 평균 체중에서 1Kg이나 미달이었는데, 어느새 또래 평균 체중을 따라 잡더라구요.

로드무비 2005-07-17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이런, 콩주를 왜 콩쥐라고 썼을까?
고칠게요. ㅎㅎ^^

oldhand 2005-07-17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 애프터서비스까지 해 주시다니! ^^

poirot 2005-07-17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단란 가족이시군요. 괜히 흐뭇^^

날개 2005-07-17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 그림같은 가족이예요... 옆지기님이 너무 아름다우시네요.. 콩주가 엄마 닮아서 저렇게 이쁜 거였군요.. 저리 이쁜 딸을 둬서 얼마나 좋으실까~ ㅎㅎ

파란여우 2005-07-17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손님/제가 찾아오길 오늘 긴 시간 기다리셨죠? 다, 알아요.
생각했던 대로 샤프하게 생기셨고, 무엇보다 옆지기님이 아주 선한 눈매를 지닌
분이라는데 감흥합니다. 여자보는 안목이 탁월하시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했지만
울 콩주의 미모가 괜히 나온건 아니죠. 갠적으로는 콩주가 이유식 받아먹고 있는 옆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오동통한 팔뚝^^.한 번 만져 보고 싶군요.
가족사진, 올리신 덕분에 서재 순위 팍팍 상승중!!^^

oldhand 2005-07-1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oirot님 :: 보시기에 흐뭇하시다 하시니 저도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감사해요. 언능 poirot님도 좋은 가정을 이루시길.. ^^
날개님 :: 칭찬이 넘치십니다. 이쁜 딸을 둬서 좋기는 합니다. 하핫. 팔불출이 되는 경향이 좀 있는것 같지요?
파란여우님 :: 긴 시간 기다렸습니다. 하하. 생각했던 대로.. 라시니 저도 지난번에 봤던 사진 속의 여우님 얼굴이 떠오르는 군요. "생각대로의 표본"이셨던 여우님이시기에.. 콩주의 미모와 저의 여자 보는 안목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사와요.(근데 콩주가 아빠를 닮지는 않았단 말입니까?) ^^
새벽별 님 :: 새벽별님 말씀대로 그 날이 금방 올거라 믿습니다. 이제 6개월 넘어가면 좀 아프기도 하고 그럴텐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안타깝네요. 그리고.. 추천은 저한테 해 주세요. 핫핫. ^^

부리 2005-07-18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 저보다 훨 잘생기셨군요! 으음.... 메이져리그 선수들 중 누구와 닮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호세 비즈카이노라고 하면 화내실까나...

부리 2005-07-18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 이쁘네요...

oldhand 2005-07-18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힛! 부리님 호세 비즈카이노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가서 보고 왔습니다. 생긴건 상관없으니, 그 선수 만큼 연봉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흐흐.

상복의랑데뷰 2005-07-1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만에 들어왔더니 이런 멋진 사진이. 이래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싶어지나 봅니다. 뒤늦은 100일이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oldhand 2005-07-19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와요 ^^ (총각도 나름대로 좋다니깐요. 하하)
 

87분서 시리즈, 주정꾼 탐정 커트 캐넌 시리즈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스터리 작가 에드 맥베인이 현지 시각으로 그저께인 7월 6일 오후에 타계했다고 합니다. 향년 78세.
1956년 발표한 87분서 시리즈의 첫 작품인 <경관 혐오> 이래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국내에서도 많은 팬들을 갖고 있는 작가이지요.(물론 미스터리 애호가들 사이에서 뿐이겠지만) 이제 다시는 87분서의 카렐라, 마이어, 크링 같은 형사들과 새로운 조우를 할 수 없게 된것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거장과 한 시대를 살았었다는 것과 이제 그 사람과 더 이상 같은 호흡을 쉬고 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묘한 감상을 불러 일으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존 딕슨카와도 한 시대를 살았지만, 그들이 타계했을 당시에는 그들을 미처 몰랐으니까요. 이제 고령에 접어든 몇몇 다른 유수한 작가들도 머리에 떠오르네요.


아래는 화요 추리 클럽에 올린 전두찬 님의 글 중 일부 내용입니다.

     ---------------------------------------------------------------------------------------------
다음 기사는 클루라스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맥베인의 공식 사이트에서도 이 기사를 확인 할수 있음을 밝혀 드립니다.

We've just received word that long time author Ed McBain/Evan Hunter has died at the age of 78. No details yet, but word comes from a reliable source, and the McBain website shows simply "1926-2005" on the first page. We'll try to provide information as we have it.

McBain, the creator of the massively popular 87th Precinct series, the Matthew Hope as well as countless other books, who also, as Evan Hunter wrote The Blackboard Jungle, had been fighting cancer for the last several years.

아래 페이지에서도 맥베인의 사망 소식에 대한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hwforums.com/2149/messages/3682.html
     ----------------------------------------------------------------------------------------------

맥베인 추모 기념 미번역 작품의 출판을 슬며시 기대해 보면서 작가는 갔지만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작품이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저는 얄팍한 독자임에 틀림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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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7-0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드디어 멕베인옹께서 타계하셨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이드 2005-07-0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이드 2005-07-08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오랜만에 페이퍼백 읽어야지 하는 마음에 에드맥베인의 책 들고 나올까 콜린 덱스터 들고 나올까 고민하면서 보니, 안 읽고 사 놓은 페이퍼백이 열권이 넘더군요. 결국 덱스터의 last seen wearing을 들고 나오긴 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타계했다니 오늘 하루는 경건하게.

oldhand 2005-07-08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위에 맥베인의 팬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좋아하는 작가이구요. 사람은 가도 작품은 우리 곁에 남아 있겠지요.

파란여우 2005-07-08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분이지만 옛손님께서 좋아하시던 분이니 애도합니다.

oldhand 2005-07-08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그렇게까지. 감사합니다. 여우 님. ^_^

상복의랑데뷰 2005-07-0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드옹의 미출간 소설이 몇 권 나오기를 바랍니다. ^^

야클 2005-07-09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하게도 맥베인의 책은 몇권 사놓고서도 아직 한권도 안 읽어봤어요. 어제까지도 살아있던 작가였군요.올 여름엔 읽어보려구요.

oldhand 2005-07-1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권이 아니라 팍팍! 나오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ㅎㅎ
멕베인의 소설, 적어도 제가 읽어본 87분서 시리즈는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 하나는 엄청난 작품들입니다. 가장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살의의 쐐기>라도 다시 출판 되었으면 좋겠네요.
 
망량의 상자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교고쿠도가 돌아왔다. 작년 봄에 출간된 <우부메의 여름>이 슬금 슬금 입소문이 나면서 충격적인 이 소설을 접했던 독자들이 손꼽아 기다려 왔던 후속작이다.
적지 않은 분량이었던 <우부메의 여름>보다도 두 배 가까이 불어난 양적인 증가 속에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좀처럼 느낄수 없는 기대감에 부풀어 첫장을 넘겼다.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추리작가가 누구냐 라는 질문을 한다면 잠시 고심 할 것 같다. 그러나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추리작가가 누구냐 라고 묻는다면 당장 "애드거 앨런 포"라고 대답할 수 있다.(포에게 '추리작가'라는 무리한 호칭을 붙인다면 말이다.) 그의  <모르그 가의 살인>, <도난 당한 편지>,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 그 이외의 비 미스터리 단편들까지, 읽을 때마다 나는 포의 천재성에 감탄 한다. 그는 '전설' 그 자체다.

<망량의 상자> 리뷰에 웬 포 이야기인가?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겠지만, 우부메의 여름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포의 그림자를 느꼈다. 아니 애드거 앨런 포를 추종하는 작가라면 이미 일본 추리 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가 있잖은가? 라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에도가와 란포는 그 이름에서 보듯이 포를 지극히 존경하고 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던 작가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그는 포의 감성적인 측면에 더 감화를 받은 듯 하다. 초창기의 란포는 <2전 동화>, <D언덕의 살인>, <심리 시험> 등에서 포의 정통파 추리 기법을 전수받은 듯 했으나 후일 그가 성공하고 일가를 이루었던 분야는 결국 이상심리와 기괴한 맛, 소위 '변격 미스터리'에서 였다.

그러나 포는 전체적인 작품의 경향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가 창조한 미스터리 소설 분야에선 적어도 변격 보다는 본격에 가까운 작가였다. 인간의 이성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조에서 태어난 것이 미스터리 소설 아니던가. 나는 <우부메의 여름> 초반부에서 세키구치와 토론 하며 양자역학과, 우리가 눈으로 보는것과 보지 않는것의 차이 등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교고쿠도의 모습과 <모르그 가의 살인>에서 '나'에게 귀납적 추리의 이론을 설파하는 오거스트 뒤팽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계속해서 언급되는 수많은 요괴들과 기이해 보이는 현상, 불가해하고 엽기적인 사건들이 작품을 뒤덮고 있지만, 작가는 한 발 더 나아가 그러한 기괴함에 휘둘리지 않는 굳건한 이성의 토대위에 자리잡고 있다. 교고쿠 나츠히코는 논리와 이성, 기괴함과 호러를 적절하게 조화시켜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 듯 하다. 그의 많은 작품을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과문한 나로서는 적당한 통속성을 제거한다면 오늘날 포가 추구하고자 했던 길을 가장 충실히 걷고 있는 작가가 교고쿠 나츠히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교고쿠도 시리즈의 또 다른 재미는 주인공 교고쿠도의 독창적인 주장들이다. <우부메의 여름>에서도 특이하지만 탄탄한 여러 이론들을 주장했던 교고쿠도가 이번에는 '범죄의 동기'에 대해 자신의 독특한 주장을 펼친다. 그는 '범죄의 동기에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일상에서 범죄를 격리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범죄의 진정한 동기는 없다. 다만 당시의 상황이 범죄를 저지르게 했던것'이라 말한다. 도리노모(지나가던 집이나 만난 사람에게 재앙을 끼치고 나서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마물)가 한 차례 휩쓸고 간 자리에 남는 것이 범죄이며, 누구라도 그러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라는 그의 주장은 사건의 해명과 함께 설득력 있게 입증된다.

<망량의 상자>는 <우부메의 여름>에 비하면 다소 선정적이다. 사건 자체의 엽기성은 좀 너무 나간것 아니냐 싶은 생각이 든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무사히 책을 읽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 정도이다. 당시의 의학과 과학 기술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벌어진다. 이러한 점들은 이 소설의 평가가 크게 엇갈릴 수 있을것 같다는 예상을 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바뀌는 시점 속에 얽히고 설킨 사건들이 자리를 잡아가는 작품의 얼개는 대단히 훌륭하다. 구성, 전개,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몰입감 또한 엄청나다. 수준급의 구성과 전개를 보여주고도 결말 부분에서 힘없이 무너져 버리는 작품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끝까지 힘을 보여주는 작가의 능력은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 왔는지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 될 수 있을것이다.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진 듯한 갖가지 사건들과 그 사건들에 관계되어 얽혀 들어간 모든 등장인물들은 지독한 인과율의 법칙에 지배당한다. 모든 사건과 모든 인연, 각자의 사연들은 한 뭉치의 실타래에서 풀려 나간것이었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망량에 얽매여 있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 던지지 못한 채 비극에 휩싸인다. 서로 서로가 얽힌 인과의 틀 안에서 망량은 더욱 커져만 간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동안 나의 머리도 점점 부풀어 오른다. 거대해진 망량은 마침내 어마어마한 지옥도(地獄圖)를 그려낸다.

소설은 시종일관 '상자'에 집중한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 속이다. 그리고 그 '상자' 속에는 '지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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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7-0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더 더워지면 읽으려고 했는데, 궁금궁금.

oldhand 2005-07-05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더워지면 읽으세요. 독자에 따라 평가가 크게 엇갈릴 것 같아서 강력 추천하기는 좀 그러네요. 하이드 님이 선호하는 스타일하고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듯 해서. ^^

하이드 2005-07-0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부메의 여름은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말이죠. ㅎㅎ 그렇게 얘기하시니 더 궁금!!

비츠로 2005-07-0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평가하기가 난해한 작가인 것 같습니다.

야클 2005-07-05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멋진 리뷰,잘 읽고 갑니다.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

미완성 2005-07-05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요-. 옛손님의 리뷰를 읽노라면, 역시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제일이야, 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떠올라요. 얼마 전에 국일미디어에서 나온 코난 도일의 '미스터리 걸작선'을 읽었는데 아주 재미나더라구요. 짤막짤막한 단편들이라서 스피디하게 진행되어 그랬는지는 모르지만..그걸 읽으면서 계속 옛손님이 떠오르더군요. 옛손님이라면 어떻게 리뷰를 쓰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망량의 상자라...근데 표지가 너무 무서운데요;;;;

oldhand 2005-07-06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 님 :: 우부메의 여름에 비해 더 끔찍한 내용이라서.. 읽고 리뷰 해 주세요. ^^
비츠로 님 :: 호오가 명확하게 갈릴 듯한 작가 네요. 우부메의 여름까지만 해도 보다 보편적인 스타일인줄 알았는데 말이죠.
야클 님 :: 항상 좋은 말만 해 주시는 야클 님. 감사합니다. ^^
멍든 사과 님 :: 한 우물만 파도 깊게 못 파는 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 국일 미디어의 미스터리 시리즈는 충실한 해설 등 장점도 많은데, 중복 출판된 책들로 인해 추리 팬들에게도 외면 받아 버린 비운의 시리즈이죠. 단편 소설들은 또 나름대로의 촌철살인이 있어서 저도 좋아해요. 코난 도일이야 뭐, 지금 보면 유치하다 어쩌다 해도 최강의 작가라 생각 합니다.^_^ 표지가 좀 무섭지요? 토막살인 사건을 다룬 소설이라 저런 무시무시한 표지가..

로드무비 2005-07-0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저것 다 짚어주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리뷰입니다.
<망량의 상자> 사게 되면 다시 와서 꼭 님께 땡스투 누르겠습니다.
일단 추천!^^

oldhand 2005-07-06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도 과분한데 땡스투까지요. 추천만으로도 족합니다. ^_^

파란여우 2005-07-06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피드있게 쓰셨어요. 암튼, 전 납량물은 무셔요...꿈자리가 뒤숭숭하다는^^
말은 이렇게 해도 님에게 추천 해드려야 서재30위 순위에 오르시겠죠?^^

oldhand 2005-07-0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위라뇨. 단 한 번도 탐내 본적도 없는 자리입니다. 저같이 한달에 대여섯번 겨우 업데이트 할까 말까한 게으른 서재 주인이 언감생심. 여우님이야 제가 팍팍 밀어 드리지요!
 

지난 주 부터 단기간 파견 근무를 하게 되었다.
일단 한 달 동안은 평일은 10시, 토요일은 6시 정도가 퇴근 시간이 될 듯 한데..
왜 일들은 항상 휴가철에만 터지는 것인지.

원래 근무시간에 땡땡이 치며 서재질하는(그나마 열심히 하는건 아니지만)게 패턴이었던 나는 당분간 또 서재 업데이트에 심대한 타격을 받을 예정이다.

지난 목요일에 망량의 상자를 다 읽고 흥분에 차서 "오오! 리뷰 써야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야겠다!"라고 결심했으나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_-;

주말에는 써야지! 라고 맘 먹으며 부모님 댁에 갈때 그 두꺼운 책 두권을 싸짊어 지고 갔으나, 낮잠과 TV에 패배. (한밤중에 윔블던 결승전을 해 주냐고.. -_-;) 하릴 없이 책만 들고 왔다 갔다 한 꼴이 되었다.

왜 쉬는 날에는 컴퓨터 앞에 앉기가 이리도 싫을까. 더더군다나 머리 싸매고 글까지 써야 한다면! 그것은 내게 업무의 연장에 다름 아니다. -_-;
서재 폐인도 부지런해야 할 수 있다. 난 너무 게으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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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07-0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으른 사람이 서재질 하는 거 아닌가요??.그나저나 많이 아쉽네요. 님이 서재를 두고 격무에 시달려야 한다니...

oldhand 2005-07-04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으르면 오직 디비져서 뒹굴거리는게 본업이어야지요.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쓴다는것만으로도 엄청난 부지런함입니다. 서재 달인들은 존경받아 마땅해요!!

야클 2005-07-04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장가서 일하는 틈틈이 땡땡이 치며 서재질하는 것도 재미있답니다~~ ^^
<망량의 상자> 리뷰 빨랑 써주세요~~~

oldhand 2005-07-04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틈틈이 하긴 하지만 댓글 달고 마실 다니는 건 가능할지라도 글 쓰는건 힘들어요. 흑흑. <망량의 상자>리뷰, 허접하나마 쓰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

상복의랑데뷰 2005-07-05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oldhand 2005-07-0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많이 기다리진 마세요. ^_^

파란여우 2005-07-0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질을 편히 할 수 있도록 옛손님 회사 사장님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poirot 2005-07-05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 올인 0ㅂ0)

oldhand 2005-07-05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성하라! 각성하라! 여우님이 제 대신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요새는 poirot님도 역시 블로깅이 참 드문것 같던데요. 저와 같은 유파신가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