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사적인
독서 】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_이현우
저 | 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의
부제는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라고
되어있다. 일곱 편의 고전에 대한
강의를 묶었다. 책의 각 장은 저자의 두
시간짜리 분량의 강의를 풀어서 편집했다.
책에서 다루는
작품은 《햄릿》부터 《돈키호테》, 《파우스트》, 《석상손님》, 《마담
보바리》, 《주홍글자》, 《채털리 부인의
연인》등으로
이어진다.
‘욕망’이
키워드이다. 이는 다시 작품별로
여성적 욕망과 남성적 욕망으로 분류된다.
사적인 독서는 무엇인가? 저자는 ‘아주 사적인 독서’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한 독서를 의미한다고 한다. 독자의 관심과 열망, 그리고 성찰을 위한 독서이다. 그런 독서의 과정에서만이 고전과 나(독자) 사이의 사적이고 은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욕망과
별도로 《마담
보바리》에서 뽑은 또 하나의
키워드는 ‘권태’이다. 권태는 프랑스의 이미지와
오버랩 된다. 영국은 ‘우울’이다. 권태의 의미는 현대에
들어서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중산층 부르주아의 정서로
바꿔 부를 수 있다. 빈곤층은 먹고살기
바쁘다보니 권태와 이웃할 시간이 별로 없다. 상류층은 그 나름대로
바쁘다.
“권태라는 것은 특정한
사회적, 시대적 조건아래 발생한
것입니다.”
《주홍글자》에선 ‘누구나 자기만의
주홍글자가 있다’라는 대목에 시선이
머문다.
“간통소설이되 간통이
드러나지 않는 소설, 《주홍글자》는 딤스데일 목사와
헤스터 프린의 두 갈래 길을 통해 죄와 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는 이야기입니다.” 작가 호손이 시대적 한계
안에서 진정한 죄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제기한 것만으로도 《주홍글자》는 고전의 반열에 들어선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파우스트는 신과 악마의
노리개인가?’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이 이 소설의 핵심내용으로 인식되어있다. 실제로 연금술도 익힌 좀
이단적인 대학자 파우스트가 16세기에 존재했다고
한다. 에라스무스, 루터와
동시대인이다. 파우스트는 인식을 위해서
삶을 희생한다. 삶을 산 게
아니라, 삶을 투자해서 인식을
얻으려고 했지만, 남은 게
없다. 파우스트의 첫 대사이자
탄식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심지어는 신학까지도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철저히 공부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는 가련한 바보, 전보다 더 똑똑해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가슴이 타버릴 것만
같다.” 아무튼 파우스트는
이제까지 앎을 위해 욕망을 억제해왔지만 ‘인생의
황금나무’는 다
지나가버렸고, 허망함을 참지 못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악마와 계약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석상
손님》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고전이다. 이 작품은
푸슈킨이 1830년에 쓴 네 편의 짧은
희곡 중 하나이다. 흔히 ‘작은
비극’ 혹은 ‘소
비극’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희곡의
주인공은 ‘돈
후안’이지만,
‘석상
손님’이라는 제목만
남았다. 이 작품의 주요
배역은 ‘석상
손님’인
셈이다. 로쟈 이현우는 이 희곡을
푸슈킨의 내적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푸슈킨이 결혼을 앞두고
쓴 여러 편의 작품 중 하나이다.
“나이가 들면 젊음과
작별해야 하는 것처럼, 결혼을 앞둔 푸슈킨은
나름대로 선택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어른 아이를 넘어서
제대로 된 어른이 되기 위한 고민이 담겨있다.
이 책에 담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이미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을 읽은 독자들에겐, 다른
이(저자)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또
하나는, 아직 이 작품들을
만나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젠 좀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것이다. 가급적이면 소개되는
고전을 읽어본 다음에 이 책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저자의 시각이 독자의
생각에 스며들면, 작품들의 속맛을 제대로
못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