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중국일기 2 - 고구려 패러다임 도올의 중국일기 2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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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중국 일기 2 】     도올 김용옥 / 통나무

 

 

도올의 중국 일기 두 번째 이야기는 고구려 패러다임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고구려를 생각하면 뿌듯한 마음이 들다가도 가슴이 아려온다. 작금의 중국은 고구려를 지우려고 안달이 나있다. 한민족과 만주의 연관성을 아예 삭제하려든다. 시작은 은밀했지만, 이젠 대놓고 작업을 한다. 중국은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 몰락에 대응해 중국의 단결을 목표로 한 ()중화민족주의를 주창한다. ‘()중화민족주의의 중심엔 중국 영토 내 이민족들의 역사를 중국화 하는 북방공정(몽골족), 서남공정(티베트족)과 동북공정(조선족) 등으로 중화 역사의 원심력을 확장하려는 의도를 근간으로 한다.

 

동북공정의 핵심 논리는 중국의 정사(正史)가 외국으로 보았던 고구려·발해를 현재 중국 영토에 있었다는 이유로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패권주의적 역사 인식이다. 이는 북한의 불안정성이 고조될 경우 과거 고구려 영역에 대한 역사 연고권을 바탕으로 북한 지역을 장악하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동북공정은 단순한 역사 귀속 논란이 아니라 한반도 복속을 위한 중국 확장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도올의 여정은 흘승골성, 상고성자, 미창구 장군묘가 있는 환인(桓仁)지역과 유리왕 천도, 환도산성, 장군총이 담겨있는 집안(集安)지역이다. 환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광개토대왕비가 있다. 도올은 광개토대왕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이라고 강조한다. 광개토대왕비는 광개토왕이 서거한지 (AD 412) 2년 후에 그의 아들 장수왕이 아버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자기 아버지 능묘 동편에 세운 것이다. 불란서의 중국학자 샤방느 덕분에 광개토대왕비가 유럽에 알려지게 된다. 샤방느는 19074, 집안을 방문하여 비의 사진을 찍고, 현지에서 탁본을 하나 샀다. 다음해 통보(通報) 2권 제9호에 이를 발표하게 된 것이다. 샤방느는 사마천의 사기를 불역했다.

 

흘승골성이니 홀승골성이니 하는 말이 한자의 의미와는 관련이 없을 것이지만 그냥 쳐다보더라도 그것은 홀연히 솟아있는 거대한 동물의 뼈다귀의 형상이다. 우선 이런 천연요새를 그 광막한 동북의 평원에서 발견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천연요새를 방비하느라고 쌓은 석성의 규모는 서울의 북한산성을 연상하게 하는 규모이니, 그것은 여간한 하부구조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신화가 아닌 대규모 민족이동의 사실이다. 도올 다운 표현이 깃든 흘승골성의 설명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있는 흘승골성은 현재 중국정부가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흘승골성을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발굴하고 조사한 것은 겨우 1986년의 일이다. 그 이전 중국인들은 이 산성의 존재조차도 몰랐다. 그런데 북한 학자들은 20년 앞서 1966년에 흘승골성에 와서 유적답사보고서를 썼다. 흥미로운 사실은 청나라(여진족)가 이곳을 자기들의 사원으로 모셨다는 사실이다. 광서(光緖)연간에 심양 태청궁 감원 이신선이 성금을 모아 옥황관을 건립하고 옥황대제를 모셨다. 혼강을 오가던 뱃사공들이 옥황관에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1966년 문혁 때 홍위병이 송두리째 파괴하여 절벽 아래로 정전과 사랑채 세 칸을 다 던져버렸다.

 

집안(集安)지역 환도산성에서 도올은 푸른 초원에 누워있는 고구려 피라미드 무덤 사이를 걸으며 회상에 잠긴다. 나일강변의 사막에 펼쳐있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웅장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집트의 사람들은 산이 없었기 때문에 산과 같은 피라미드를 지었다. 우리 초원의 산봉우리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더 장대하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주위를 둘러싼 산세에서 피라미드의 모습을 읽어내야 한다. 그 사이에 피어 올라온 계단식 적색총의 웅장한 모습은, 우선 죽어있는 사막과는 달리, 생명이 피어오르는 초원의 푸름 위로 솟아있는 것이기에 더욱 천지의 약동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죽은 자의 세계가 아닌, 영원히 순환하는 생명의 창조적 도약이다. 해모수는 천상계에서 지상계로, 또 다시 천상계로, 또 다시 지상계로 순환하는 구조 속에서 동명성왕을 잉태시켰던 것이다.”

 

집안지역에선 지금 우리가 흔히 장군총이라 부르는 거대한 7층 방형계단석실묘로 안내해준다. 이 장군총은 보통 장수왕의 능묘로 규정되고 있지만, 장수왕의 무덤임을 확증할 수 있는 자료는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군총은 모든 석총의 전형이다. 가장 완벽한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집안지역의 고적 중에서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조법종 교수에 의하면 동북공정이 공개된 이후 남·북한 및 국제적 비난에 직면한 중국 정부는 더 이상 이를 추진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고구려의 중심 공간인 지린성에서는 동북공정 논리를 지역화 하여 '장백산 문화론'으로 변형시켜 '고구려 빼앗기'에서 '고구려 지우기와 만주족 띄우기'로 더욱 심각한 역사 왜곡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장백산은 백두산을 부르는 중국의 명칭이며 '장백산 문화'란 백두산 권역이 현재의 중국 민족인 만주족 발상지이기 때문에 중화 민족의 공간이라는 논리이다. 또 만주족의 뿌리가 발해와 고구려이므로 결국 백두산 권역의 역사와 문화가 중국의 역사 문화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이러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고구려의 유적지에 대한 실태파악은 커녕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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