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과학을 열다 작은길 교양만화 메콤새콤 시리즈 4
이옥수 지음, 정윤채 그림 / 작은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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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  

  _이옥수 글, 정윤채 그림 / 작은길출판사

 

 

 

다재다능하면서도 괴짜 과학자라는 애칭이 붙었던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만일 기존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송두리째 와해시키는 대재앙이 일어나서 다음 세대에 물려줄 과학적 지식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원자 가설일 것이다.” 라고 말했다.

원자 가설은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은 영원히 운동을 계속하는 작은 입자로서 거리가 어느 정도 이상 떨어져 있을 때에는 서로 잡아당기고, 외부의 힘에 의해 압축되어 거리가 가까워지면 서로 밀어낸다는 가설을 뜻한다.

 

물리학자들에겐 원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다. 파인먼이 원자가 사물의 기본이라는 생각은 세대를 이어서 전수되어야 할 물리학의 핵심 개념이라고 단정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원자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로 알려져 있다. 근대적 원자론은 19세기 초 영국의 존 돌턴에 의해 제창된다. 조지프 톰슨은 음극선관 실험을 통해 일명 푸딩 모델로 불리는 원자모형을 주장했다.

 

이 책의 주인공 하이젠베르크는 1958세계공식(World Formula)’이라고 알려진 식을 만들어서 모든 소립자의 특성을 유도해내려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영감을 받아 양자론의 발전에 앞장선다. 코펜하겐 해석이 양자역학의 공리로서 널리 인정받게 된 이후 자연현상의 근본적인 법칙이 대칭성이라는 믿음을 갖고 세계 공식을 만들고자 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평생의 친구이자 연구 파트너였던 파울리마저도 외면한 공식이지만, 대칭성에 대한 하이젠베르크의 믿음은 현대물리학 이론에 그대로 남아 있다.

 

책의 서두는 1958년 뮌헨시 800주년 기념행사장인 독일박물관에서 하이젠베르크가 연설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제 고향은 뮌헨이 아닙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뷔르츠부르크입니다. 뮌헨에서 꽤 떨어진 곳이죠. 1910년 아버지가 뮌헨대학의 그리스 문헌학 교수로 초빙되면서 우리 가족은 뮌헨에 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아홉 살이었다. 1920년 뮌헨대학.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할까 고심하던 그는 처음에 수학을 염두에 뒀으나, 이론물리학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가 대학에서 학문의 인정을 받게 된 계기는 조머펠트 교수와의 조우와도 관계가 있다. 조머펠트는 보어의 양자가설을 전자의 궤도를 원이 아닌 타원궤도로 확장하고 상대론을 적용함으로써 추가로 발견된 수소의 선스펙트럼을 완벽하게 설명했다. 이를 보어-조머펠트 원자모형이라고 한다. 조어펠트 교수는 하이젠베르크에게 제만 효과를 설명해보라고 하면서 의문점을 찾아보라고 지시한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이상 제만 효과라는 명칭이 붙은 실험이었다. 원자에 자기장을 가했을 때 선스펙트럼이 분리되는 수는 항상 홀수여야 하는데, 그 수가 짝수로 갈라지는 것이 관찰되었다. 그런 현상을 그때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상 제만 효과라고 불렀다. 하이젠베르크는 이 문제를 반정수(+1/2, -1/2)를 사용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에는 아무도 반정수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다. 양자수는 정수였던 것이다. 조머펠트 교수조차도 그건 불가능하네. 양자의 세계는 정수와 상관이 있는 걸세. 반정수는 있을 수가 없어.”라고 하이젠베르크의 말문을 닫는다. 그러나 그가 옳았다. 그의 이론은 나중에 전자의 에너지 상태를 기술하는데 쓰이게 된다.

    

 

하이젠베르크는 1927,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살에 라이프치히대학 이론 물리학 정교수가 된다. 독일에서 가장 젊은 교수로 기록된다. 히틀러의 등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하이젠베르크도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치의 강압으로 핵개발에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실패로 돌아갔지만, 전쟁이 끝난 후 그 후폭풍을 견뎌내야 했다. 원자폭탄 개발 경쟁에서 독일은 연합국이 벌인 다각도의 방해 작전으로, 처음에는 우라늄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충분한 양의 우라늄을 구하지 못하니 차선책으로 감속재인 중수를 사용하는 방법을 채택한다. 그때에도 중수 수송선 폭파 같은 방해공작이 끊이지 않았다. 반면, 미국은 중수 방식을 쓰지 않았고, 엄청난 비용과 우수한 과학자를 대거 투입한 덕분에 폭탄 제조에 성공한다. 하이젠베르크는 1932년 양자역학을 세운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노벨상은 1933년에 받음)

 

글과 그림이 만화로 재미있게 편집된 이 책을 현재 과학을 전공하는 학부생들이나, 미래의 과학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읽어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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