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_강신주 (지은이) | 천년의상상

 

 

詩人 김수영(金洙暎)을 만나봅니다. 우선 시인의 를 한 편 옮깁니다.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 나는 정지의 미에 너무나 등한하였다 / 나무여 영혼이여 /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 성장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 / 정리는 / 전란에 시달린 20세기 시인들이 하여놓은 일 /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 / 그리고 교훈은 명령은 / 나는 /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 /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 지지한 노래를 / 더러운 노래를 생기없는 노래를 / 아아 하나의 명령을" '序詩' 전문 (1957) - 김수영 시선집 [사랑의 변주곡] / 백락청 엮음 / 창작과비평사 / 1992.

 

 

이 시집을 엮은이 백낙청은 발문에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무릇 누구의 , 또 시 아닌 어떤 작품이건, 살아남은 자들의 지성스런 되살림을 통해서만 그 생명이 존속된다. 그런데 김수영의 경우에는 그러한 뒷사람들의 노력이 특별히 필요한 까닭이 있다.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그의 시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른바 '난해시'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김수영의 시세계가 60년대의 시점에서 이룩된 '참여시''현대시'의 독특한 결합인 반면 그런 형태로는 두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될 까닭도 없는-결합이기 때문에, 모더니즘과 반모더니즘 쌍방에서 오해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지성스런 되살림' 과정에서 이 책 [김수영을 위하여]가 쓰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김수영 시인의 시에 대해 '난해시'라는 평가는 다소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합니다. 리뷰어가 텍스트로 삼은 시인의 시집이 1990년도에 초판 발행 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위의 책(시집)을 구입한 때가 1992년도에 10303쇄가 발행된 다음 해입니다. 벌써 20년이란 시간의 흐름이 있군요. 그 때는 솔직히 난해했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니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걸요. 오히려 요즘 젊은 시인들의 가 더욱 어렵습니다. 역시 우리 젊은 시인들의 를 한 20년 쯤 뒤에 다시 읽어보면 이해가 될까요?

 

 

, 그럼 [김수영을 위하여]속으로 들어가 보렵니다. 지은이는 '사람을 사랑하는 철학자'라고 소개되는 강신주입니다. 프롤로그의 타이틀이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김수영을 아는가, 자유를 아는가'. 김수영을 모르면 자유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라는 뜻? 책은 3부로 되어있습니다. 시인을 위하여, 사람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3부는 자연스럽게 [김수영을 위하여]로 됩니다. 지은이는 김수영 시인을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이라고 표현합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김수영에 이르면서 무럭무럭 자랄 것만 같던 인문정신이, 시인이 피를 토하듯 시를 쓰며 열정을 담았던 그 기운이 어째서 지금 이렇게 나약해졌냐고 묻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김수영 시인의 위대성을 그는 천성적으로 시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인이 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한 번뿐인 자신의 삶을 타인의 흉내를 내지 않고 제대로 살아 내려고 했음을 말합니다. 이런 절절한 의지와 소망을 관철시키려고 했고, 끝내 그럴 수 있었기에 우리에게 위대한 시인으로 기억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김수영 시인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해결하기 힘든 세 가지 문제가 있다고 토로했군요. 죽음, 가난 그리고 매명(賣名)입니다. 시인은 '죽음'에 대한 구원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더는 죽음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의 바람일 수도 있겠지요. 시인은 1968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구원을 꿈꾸며 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가난보다 이웃의 가난, 특히 아이들의 궁핍한 삶을 더욱 걱정했다고 합니다. 매명으로부터의 구원은 문인들 중 특히 시인이 더욱 그러할 것 같습니다.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받을 원고료의 금액"을 헤아릴 때마다 시인은 "진정한 ''의 생활", 즉 시를 통해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하는 숙명을 저버리는 자신을 느끼며 자책했다고 합니다.

 

 

'서시'에 대해 지은이의 글을 간추려 옮겨 봅니다.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는 부분은 시인이 시의 모더니티를 시적 테크닉으로 추구했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있다고 하네요. "정지의 미"에 소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지은이 강신주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정지란 감각과 지성의 이분법을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감각은 가변적인 것, 지성은 불변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니까 정지란 계속 변하는 것이 아니라 불변한 채로 남아 있는 것이며, 감각적인 것이 아닌 지적이고 의지적인 이념을 상징한다."

리뷰라는 공간에 이 책의 향기를 모두 담을 수가 없군요. 아마도 이제껏 나온 '김수영 시인'에 관한 책에서 넓이와 깊이가 상당하다는 것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 정말 잘 만들어진 책입니다. 책에 실린 글 내용보다 편집이나 장정에는 사실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을 편집한 편집자 김서연을 주목하게 됩니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애쓴 편집자의 땀과 노력이 한껏 담겨 있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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