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방
정윤주 지음 / 우듬지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영화 속의 방

    _ 정윤주 (지은이) | 우듬지

 

 

누군가는 명화 속에서 모델들이 입고 있는 복장에 관심을 쏟습니다. 또 누군가는 음악이나 노래를 들으면서 어떻게 그 음악과 노래가 만들어졌을까 궁금해 하면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또 이 책의 저자처럼 영화 속에서 방을 찬찬히 둘러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등장인물 너머로 그들의 방에 있는 가구나 벽지, 스탠드 같은 주변 환경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보통 사람들이 잘 못보고 못 듣는 것을 보고 듣고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저자 정윤주의 관찰은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던 학생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 점점 습관이 되었다고 하네요. 마치 보물찾기 하는 심정으로 영화를 본다고 합니다. 때로 그런 관찰이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을 놓치게 하는 경우가 있어서 두 번 세 번 영화를 다시 보는 불편함이 있기도 하지만, 그 습관은 점점 깊어지게 되었답니다. 이 책에서는 인테리어가 다채로운 영화들을 모아 런던, 파리, 뉴욕과 같은 도시 또는 지역별로 한 번 더 분류를 하였군요. 각기 다른 영화 속에서 그 도시 특유의 공기가 느껴지면서, 한편으로는 시대와 장식 요소에 따라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지역과 영화 제목은, 'London'. 'Nowhere Boy(2009)'입니다. 이 영화는 존 레논의 청소년 시절을 다룬 영화군요. '영국식으로 쌓인' 오래된 벽돌집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청년 존 레논이 기거했던 이모 집의 정경이 묘사됩니다. "사실 이 집은 번듯한 인테리어랄 것도 없이 기본적인 가재도구들로 꾸며져 있지만 녹색을 포인트 컬러로 사용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이 영화에서 인테리어와 패션의 녹색 컬러 매치가 가장 돋보였던 장면은 존이 어머니를 만나고 자정이 다 되어 들어온 다음 날 아침, 교복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오자 녹색 가구로 꾸며진 부엌에서 녹색 가디건을 입은 이모가 아침을 만들고 있었던 장면이다."

 

 

Paris 로 가볼까요? '꼬마 니콜라'를 만나봅니다. 저자는 '캔디처럼 달콤한 파스텔 톤 부엌이 있는 집'으로 묘사를 하는군요. 경험적으로 어렸을 때 기억과 성장해서의 기억은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렸을 때 느꼈던 색깔, 냄새, 형태 등은 더욱 충실하게 뇌 속에 기억으로 남겨 집니다. 반면 성장해서의 기억은 감정으로 똘똘 뭉쳐지게 되지요. 물론 어렸을 때의 정서가 늙어 죽을 때까지 붙어 다니기도 하지만, 심각한 트라우마가 아닌 이상은 대체적으로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영화 속에서 니콜라의 집은 1960~70년대 유럽의 빈티지 스타일로 꾸며져 있다. 연두색, 하늘색, 크림색 등을 적절히 포인트 컬러로 사용해 집 안의 공간들이 제각기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한데 어우러지는데, 그런 분위기는 자유로운 느낌의 파리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단정하고 아기자기한 북유럽 스타일에 가깝다."

 

 

 

 

이웃 나라 Tokyo. 저자는 여러 편의 영화를 소개하고 있지만,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볼까요.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 여성이 보통 남자와 사귀는 이야기지요. 단편에서는 그들이 사랑하고, 섹스를 하는 짧은 순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겠다며, 단지 지금만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좁고 불편해 보여도 조제가 몸을 숨기고 책을 읽기에는 더없이 편안하고 안정적이었던 작은 벽장은 그렇게 그녀의 현재 소망과 심경의 변화를 대사 대신 함축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Western Europe. 낡고 차갑지만 연인에게는 충분히 따스한, 그 여인의 작은 방 '더 리더'입니다. "남자는 다정하게 말하지만 어깨 너머로 보이는 그의 공간을 보면 주인이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남자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상 뒤의 벽면 가득한 책꽂이에 한 권도 흐트러지지 않고 가지런히 꽂힌 책들, 위아래로, 또는 옆으로 정렬해 벽에 걸린 흑백 작품들은 모두 그 간격이 꼭 자로 잰 듯 동일하다."

 

 

영화 속 장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쓴 글들을 보면서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품으로 쓰인 가구를 보면서 브랜드는 물론 제작년도까지 맞출 정도군요.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다른 이들과 다른 시각으로 보는 그 섬세함과 예리함에 감탄입니다. 문득 내가 거하고 있는 공간을 둘러보게 만듭니다. 내 공간에 정지되어 있는 물체들은 어느 덧 내 시야에선 익숙해진 것들이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에선 그것들을 통해 나를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아울러 미처 못 본 영화의 스토리와 인물들의 정서를 그 배경과 함께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 책 읽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