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에서 한 문학의 강의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17
움베르토 에코 지음, 손유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움베르토 에코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는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 한다면 '대단한 사람'입니다. '공부 벌레'이기도 하고 '언어의 천재'이기도 합니다. 재능이 많은 분이기도 하지만, 노력이 더해졌다고 생각듭니다. 나에게 선하고 강한 자극을 주는 분이지요.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한 마디 했군요. '방대한 중세 세계라는 원자재로 희한한 베스트셀러를 써낸 작가'. 그의 최신작[프라하의 묘지]는 진작 구입해놓고 아직 못 읽었는데, 역시 중세가 무대이지요.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가 하버드 대학에서 한 여섯 '문학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꼭지글의 제목에 '숲'이라는 단어가 4군데 들어가는군요. '숲 속으로 들어가기', '루아지의 숲', '숲 속에서 서성거리기', '상상의 숲', '저 이상한 세르반도니 가' 그리고 '허구적 칙령들'입니다.


에코가 '숲'이라고 표현 한 것은 문학의 무대, 분위기 나아가서는 '문학'이라는 존재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 문학의 숲 속을 걸어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 또는 몇 개의 길을 가보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숲을 걸으면서 왜 어떤 길은 이용할 수 있고, 또 어떤 길은 이용할 수 없는지 알아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작품의 결말이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자 하는 1차원적 수준의 모델이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는 표현을 하는군요. 예를 들면, [모비 딕]의 에이허브 선장이 과연 고래를 잡을 것인가,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나오는 레오폴드 블룸이 1904년 6월 16일 스티븐 디덜러스를 몇 차례 만나고 난 후에 또다시 그를 만나게 될 것인지 등.


'모델 독자'라는 표현이 생소하시지요? 1차원적 모델 독자가 있으면, 2차원적 수준의 독자가 있겠지요. 에코는 "모든 텍스트는 2차원적 수준의 모델 독자에게도 말을 건네는데, 이런 독자는 주어진 이야기가 어떤 종류의 독자를 원하는지 궁금해하고, 모델 작가가 어떻게 독자의 지침이 되는지를 정확히 알고자 하는 독자를 가리킨다."  모델 작가의 목소리가 그것을 애써 찾으려는 2차원적 수준의 독자에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텍스트는 애거서 크리스타의 유명한 탐정 소설 [로저 애크로이드의 살인]을 들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화자'는 다른 사람에 의해 쓰인 책에서 '나'라고 말하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독자가 읽는 텍스트를 실제로 쓴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나아가선 그(화자)는 자신의 일기에 대한 모델 작가로도 행세합니다.


영화를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이 죽어버리는 영화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가 있다면 제정신이 아니던가, 주인공이 아닌 것이지요. 문학 작품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서성거림'의 대표주자는 프루스트라고 생각듭니다. 오죽하면 출판업자가 그의 작품을 거부하며 이런 표현을 했을까요. "나의 이해가 느린 건지도 모르겠지만, 잠들기 전에 자리에서 뒤척이는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서 30 페이지를 할애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불면증 환자도 읽다가 잠이 들 지경입니다. 아, 프루스트가 그런 의도로 썼을까요?  "나(프루스트)는 비록 잠 못들어도 당신(독자)이라도 주무시구려."  예술 형식에선 시간의 경과가 특별한 역할을 맡게 됩니다. 스토리 진행 시간이 [읽는 시간]과 일치하는 예술 형식들이 존재하는데, 음악과 영화가 대표적인 케이스지요. 영화에서는 스토리 진행 시간이 줄거리 시간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음악에서는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회화나 건축 같은 공간 예술들은 시간과 무관합니다.


에코는 서성거림 이야기를 하다가 슬그머니 포르노 영화 쪽으로 빠지네요. 그는 한때 포르노 영화 여부를 가려내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도덕군자라면 노골적이고 상세한 성행위 장면들이 있는 영화를 포르노 영화라고 답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포르노 여부를 가리는 많은 재판에서 어떤 작품들은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사실주의적인 목적에서, 혹은 윤리적 이유에서 그런 장면들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에코가 간파한 것은? "포르노 영화는 노골적인 성적 장면들을 보려는 관객들의 욕망을 채워주려고 만들어지지만, 1시간 30분 가량의 성행위 장면을 중단 없이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배우들이 피곤해서 그렇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관객들도 지루함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행위 장면들은 줄거리 전체에 분산되어 있어야만 한다."   리뷰 마무리가 4르노 이야기가 되어 좀 그렇습니다만, 무릇 역량있는 작가들은 독자들의 기다림 타임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에코가 안내해주는 문학의 숲길을 거닐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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