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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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_레나 모제 (지은이) | 이주영 (옮긴이) | 스테판 르멜 (사진) | 책세상 | 2017-08-30

| 원제 Les evapores du Japon: Enquete sur le phenomene des disparitions volontaires (2014)

 

 

 

매일 새벽 노리히로는 가게 앞에 서서 일꾼 모집인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 피로, 우울함, 겨우 입에 풀칠 정도만 하는 삶, 노리히로가 이미 경험한 일이다. “산야에는 저 같은 사람이 수천 명이나 됩니다. 갚지 못한 빚, 절망,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 싸움이 일상이죠. 그런데 자살하는 젊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노리히로는 경찰을 피하기 위해가명을 쓰고 있다. 마흔 살까지도 준수한 외모를 자랑하던 노리히로는 아내와 살면서도 바람까지 피던, 한때 잘 나가는 엔지니어였다.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했지만 평소와 똑같이 생활했다. 여느 때처럼 아내의 배웅을 받고 출근했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 앞에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지도, 말하지도 않고 차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런 생활을 일주일 동안 했다. “더 이상은 못하겠더군요. 저녁 7시가 넘어도 돌아갈 수 없었어요. 전에는 퇴근 후 상사나 동료들과 한 잔 하러 가곤 했으니까요. 길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집에 돌아갔는데 아내와 아들이 의심하는 것 같더군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가져다줄 월급도 없었구요.” 원래 같으면 월급을 받았을 그 날, 노리히로는 말끔히 면도하고 아내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한 후에 평소에 타던 지하철을 이용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방향이었다. 그는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증발해버렸다.

 

 

증발(蒸發). 이렇게 사라지는 사람이 일본에서 일 년에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남겨진 가족들 입장에선 갑자기 사라진 사람이 증발이나 실종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잠적(潛迹)에 가깝다. 잠수를 타는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 책이 일본인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니라, 프랑스인 부부의 공동 작품이라는 점이다. 저널리스트인 아내가 글을 쓰고, 남편(사진작가)이 사진을 찍었다. 이 프랑스인 부부는 인구 12800만 명의 일본에서 증발한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일은 무모하면서도 흥분되는 도전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본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거나, 증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는 증발을 테마로한 책조차도 처음인 듯하다. 일본사회에서(한국도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성인이 스스로 증발하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족들도 대부분 아무 말 없이 체념하듯 받아들인다. 실종자 가족들은 운명이라 생각하고 말을 아낀다. “그렇죠, 어쩔 수 없죠.” 그리고 이웃, 동료, 친구들에게 알려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앞에 등장한 노리히로(물론 가명이다)같은 사람들이 증발 후에 다시 연기를 피운 곳은 일본의 산야등지이다. 산야(山谷)는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곳이다. 도시속의 도시, 범죄자와 부랑자, 노숙자, 빈민들이 득실거리는 지저분한 소굴이다. 도쿄의 게토라고 할 수 있는 산야를 지워버리고자 일본 정부는 산야라는 지명을 지도에서 없애버렸다. 버림받은 땅이다. “세계 3위의 경제 대국 수도 안에 침묵이 가득하고 사회 규범이 통하지 않는 유령 같은 세계가 있다.” 바로 이 산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산야뿐만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다소 준비기간이 필요했을지라도) 일상의 터전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어둠이 주인 노릇하는 어느 한 곳에서 자신의 이름과 존재를 숨긴 상태로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인 프랑스인 부부는 1800일 동안 도쿄, 오사카, 도요타, 후쿠시마 등 거의 일본 전역을 훑으면서 스스로 사라진 사람들의 흔적을 좇았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일본의 슬픈 민낯이자 불편한 현실이다. 왜 그런지 우리는 일본의 사회적 변화를 뒤늦게 받아들이고(의식하던 안 하던 간에)일본의 현상이 곧 우리의 현상이 된 경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일본에서 스스로 존재감을 지운 상태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을 탓하기 보다는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연민의 마음이 먼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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